우리들의 자화상/정승집 말이 죽으면...
26일,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이 있는 날이다. 36회인 우리들은 그게 달력에 없으니 앞선 날자 매월 26일을 차용하여 동창회날로 정했었다.
나는 작은 배낭에 물을 담고, 한두시간쯤 시간을 당겨 모임장소 근처 부산시민공원을 한바퀴 돌았다. 예상대로 무더웠다.
비가 올것이란 예보속, 그래도 반가운 얼굴 숫자는 열예일곱명, 지난주에 모임의 회장이 먼곳으로 떠나 버렸으니 당연히 채워져야할 테이블 빈자리가 우리들 마음을 허전하게 만들었다.
경조사엔 웬만하면 몇사람은 대표하여 다녀오는데 타지역에서의 갑작스런 변고이고, 다들 나이가 있어 흩어져 살다보니 아무도 가보지 못한 것 같다.
한잔 술로 우울한 마음을 달래며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총무가 월례회 안건을 부의하며, 고인이 된 회장의 조문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모두가 안타까워했고, 우리 모두에게 닥쳐올 현실임을 실감했다. 옆좌석 여자 친구는 그가 자신을 가장 좋아했다며 함께 찍은 사진을 내게 보인다.(여자여! 니가 아니? 사내들 복잡한 속마음을...ㅎㅎ)
개별 조의금은 알아서들 했을 것이나, 그런데 회칙에는 부모상이나 자녀 혼사에 관한 조항은 있어도 본인의 사망에 대한 조항은 없단다.
그래서 총무는 임의로 처리하지 못하고, 월례회를 통하려 전체 의견을 모으기로 한 모양이다.
총무는 '비록 회칙에는 빠져있더라도 조화를 먼저 보냈는데, 추가로 조의금100만원 정도 성의를 보이는게 어떻겠느냐?'며 동의를 구했다.
그런데 찬반이 양립되었다. 먼저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몇명의 동의가 있었으나, 이어 발언한 친구는 "모임은 우리들을 위한 것, 조의금이 직접 친구(고인)에게 전달되는 것도 아닌데 회칙에 없는 그깟 돈 굳이 예외적으로 확대 처리하며, 본질을 회손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신중 의견을 말했다.
그러자 다른 친구도 "그래 그말이 맞다. 친구(고인)가 우리들에게 밥한끼 산걸로 받아들이자"라고 동의했다.
여기서는 소위 말하는 '정승 집 말이 죽으면 문상 가도 정승이 죽으면 가지 않는다'는 속담을 끌어다 유추 적용해 봄직하다.
이 모임엔 전례가 없고, 유가족 누구와도 일면식도 없으며, 조의금을 전달한들 그게 어쩌면 그들이 받아야할 합당한 금액(몫)인지에 대한 의아해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겠다.
정승이 가고 없는데 내이름 알린답시고, 유가족에게 '내가 누구요'하고 애써말하며, 바쁜세상 복잡한 관계를 따지는 것도 서로가 서먹할 것이라는 논리다.
예전엔 그게 아첨의 비유로 해석 되었으나 지금의 우리들은 그럴 필요는 없다.
총무는 그러한 의견들에도 일리가 있으니 차후에 회칙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자며 슬기롭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흥미있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여자 동창이 모임의 책임을 지고있는 지역모임에서는 회원들이 대부분 고령자여서 몫을 따져 회비의 일부를 나누어 주었단다. 한살이라도 젊어서 쓰고 가라는 의미란다.
"우리는 어떻게 할까?" 말하는 어느 친구의 말에 다른 친구가 답했다.
"우리는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때까지 그대로 가자. 그래서 마지막 남은 사람이 회장, 총무 겸직하고, 통장에 남은 돈가지고 밥도 사먹고, 애인 구해 해외여행도 다녀라. 누가 끝까지 살아 남을래?"
모두들 웃음으로 동의했다. 누군가 말했다.
"허허 그것 참 좋은 의견이다. 이 나이에 돈 그까짓게 뭐라고..."
나도 "그러면 여자들이 아무래도 유리하겠네"하고 말을 보탰다.(욕심을 내어볼까? 아서라...초심으로 돌아가자.ㅋㅋ)
우리는 식당을 나왔다. 장마철 무더운 공기가 우리들을 엄습해 왔다. 두어시간전 보았던 골목의 거리공연팀은 아직도 자리를 유지했다. 그냥 헤어지기 아쉽다며 커피점에 둘러 앉았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나이들면 어린이로 돌아간다더니 그말이 맞다. 이때쯤 되니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진솔되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아 좋았다.
이만큼 우리들이 살고난 결과는 지혜가 자라났고, 생각이 순수하고 무거워졌다는 것이 된다.
우리에겐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았을까?
그러나 7정이란 감정,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사랑, 싫음, 갈망)의 모든 세상의 풍파를 경험해 버린 우리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할것 같다.
어설픈 종교보다도 더욱 강한 삶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남은 여생을 보다 건강하게 마감해 가는 것이다.
오늘은 이쯤해서 마무리를 짓기로했다. 우리들은 지하철 출구를 내려와 다음에 만나자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긴장마속 해뜸같이 오랫만의 행복한 밤이다. 남은 시간들, 우리들의 테이블에 놓였던 팥빙수와 음료처럼 달달한 노후가 이어지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