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호이안으로 가는 길
미썬에서 마주한 참파문명, 2시간 정도 보고 나왔다. 우리는 택시기사와 약속을 했었다. 미썬은 정말 너무 황량했다. 가게도 음식점도 없고 빠져 나올 버스도 없었으며 뙤약볕만이 내리쬐었다. 달랑 관광차 2대가 그 시각 미썬의 관광현황을 말을 한다. 택시와 예약을 안했더라면 어찌했을까싶다. 9킬로를 다시 가 버스타고 온 지점에 간다 해도 호이안을 향할 방도가 달리 없어 보였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호이안 까지 향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에게 지불한 돈이 무려 60만동(3만원)이니 그날 택시기사는 우리 때문 횡재를 한 셈이다.
우리는 GPS를 찍어 아예 맛 집으로 소문난 bale well이란 곳 근처에서 내렸다. 호이안에 있는 BALE WELL은 독특하게 한국어 간판을 볼 수 있는 식당이다. 이국에서 한국어를 만나는 건 재미있는 경험인데, 그만큼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증거도 된다. 베일 웰, 또는 바레웰 정도로 부르는데 정확한 명칭을 직접 확인해본 결과 베일 우물. 호이안 올드 타운 쪽에서 입구로 들어가는 간판을 보고 찾아가면 된다. 그곳은 '반쎄오'가 유명한 집이다. 반쎄오는 베트남식 파전이라 하지만 베일 우물에서 먹어본 반쎄오는 멕시코 전통 음식인 타코의 느낌이 더 강했다. 베트남 식 타코라고 말하고 싶은 반쎄오! 쌀가루 반죽에 각종 채소, 고기, 해물 등의 재료를 안에 넣고 반달 모양으로 부쳐낸 음식이 매력적이었다. 우리에게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가 존재한다면 베트남에는 반쎄오 옆구리 터지는 소리가 존재한다. 욕심 부려서 꼬깃꼬깃 싸다 보면 라이스페이퍼가 터지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내가 그랬다. 비록 입 크게 벌리고 투박하게 먹어야 하지만 그래도 어떠한가, 맛만 좋은 것을. 어느 정도 다 먹고 나면 테이블 위에 망고 or 초코푸딩이 놓여진다. 후식으로 제공된 망고푸딩도 괜찮았다.
호이안의 올드 타운은 타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 때문 통합구입권을 구입해야 한다. 타운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매표소가 설치되어 있어 공짜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지도를 놓고 혹시 방법이 없을까 했는데 매표소가 7군데로 철통방위다. 오가는 많은 사람들 틈에 일부러 끼어 들어가는 척을 해봤는데 여지없이 색출 당했다. 타운 안에는 입장권을 제시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가급적 사는 게 맞다. 그 무엇을 볼 것인가. 투본 강을 끼고 형성된 옛 거리는 포꼬 호이안 으로 불린다. 내원교를 시작으로 호이안 시장 까지 쩐푸거리, 응우엔타이훅 거리, 박당거리에 볼거리가 가득하다. 그런 이 올드타운은 앞바다 수심이 낮아 옛 그대로 원형 보존이 가능했다. 중세기는 유명한 무역항이었지만 베트남 전쟁사에서는 수심이 낮아 군항으로서 부적합 하여 역사보존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올드 타운 추천 코스로 관광책자는 하이난 회관, 꽌꽁사당, 푸젠회관, 중화회관, 도자기 무역박물관, 꽌탕고가, 득안고가, 광동회관, 싸후인 문화박물관, 내원교,풍흥고가를 두루 보고 응우엔타이훅 거리, 박당거리를 거쳐 다시 내원교로 돌아오는 코스를 추천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한마디로 호이안에서는 특별한 추천 코스가 없다. 그냥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고가옥이나 박물관, 향우회관에 들어서면 된다. 산술적으로 1~2시간이면 다 볼 수 있지만 커피도 마시고 쇼핑도 하면서 어슬렁거리다 보면 두시간도 좋고 세시간도 좋다. 목조가옥 2층 발코니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느림보 분위기에 젖어 힐링은 충분하다. 한마디로 호이안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서 가장 덜 서구화된 지역이다. 자신만의 고유가 결국 최상의 상표이며 정통과 전통을 만든다 싶다.
16~17세기 무렵의 옛 호이안은 인도, 포르투갈, 프랑스,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상선이 드나들며 크게 번성했던 무역항이었다지만 지금의 호이안은 베트남 중부를 유유히 흐르는 투본Thu Bon강과 지류가 하나로 이어지는 호아이(Hoai)강변의 자그마한 마을이다. 호이안을 소개하는 자료에는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지'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자연스레 마을은 다양한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색채를 품고 있다. 이 때문인지 이 작은 마을에는 여느 메트로폴리탄 못지않게 다양한 낯빛의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강물 잔잔한 마을 가운데에 아치형으로 지붕이 있는 목조다리 '꺼우 라이 비엔Cau Lai Vien·(來遠橋)'이 있다. 호이안이 가장 번성했던 17세기, 특히 일본과 중국의 상인들이 이곳에 거주할 무렵 당시 일본 상인들이 돈을 모아 두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았다는 곳. 바로 이국의 정서가 호이안에 있다. 라이 비엔은 멀리서 온 친구란 뜻이다. 호이안은 이 다리를 중심으로 구시가와 신시가로 구분된다. 다리 주변에 중국 복건성 상인들의 회합장소였던 '쭈어 푹 끼엔Chua Phuc Kien·(福建會館')과 베트남 상인 '풍흥Phung Hung'의 고택 등 옛 시간을 머금고 있는 명소가 이웃한다.
그곳 옛 거리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 천연 색감이 인상적인 갤러리, 수공예품을 파는 기념품 상점, 감각적인 디자인 숍 등이 촘촘하게 들어차 있다. 파스텔 톤의 건물과 푸른 잎사귀 무성한 가로수가 선명한 빛을 내비치는 호이안, 이곳에 손잡고 걷거나, 나란히 자전거를 탄 젊은 연인들이 많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들의 뒤를 따라 자박자박 걷는다. 벽도 쓰다듬어 보고, 빗방울 매달린 나뭇잎도 건드려 보고.그러다보면 베트남에서 느낀 뜻밖의 싱그러움 속에 스멀스멀 옛 추억도 따라 나선다. 손님을 기다리는 뱃사공들이 한가로운 투본강에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강변을 따라 늘어선 좌판에 앉아 까오라우(돼지고기, 숙주를 넣은 면 음식)를 주문하고 사람구경에 빠진다. 음식을 건네는 주인장이 “연인이 함께 배를 타고 투본강을 건너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부추길 만 하다. 하나 둘씩 불을 밝히는 오색 등(燈)속에서 나의 시간은 그만 정지하고 말았다. 현재를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해외여행은 먼 미래의 일이다. 언젠가는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지만 시간적 여유와 금전적 지출을 생각하면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이러한 사람들을 위한 호이안이 아닐까.
'너무 빨리 달리면 안 된다. 영혼이 못 따라오니까.’그러면서도 우리는 늘 바삐 걷는다. 충분히 잘 먹고 많이 걸쳤지만, 행복의 가치는 늘 저 멀리 가 있다. 그쯤 먼지 날리는 오래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 낙후하고 힘들고 불편하게 살아가는 곳이 돌이켜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호이안은 그 시간을 그대로 지키고 서 있다. 아주 천천히 걸으며 생각하며 자신을 조용히 꺼내 읽는다.
그러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면 호이안에서 조금 벗어나 꾸어다이 해변으로 가 보는 것도 괜찮다. 황금빛 모래와 야자나무가 펼쳐진 해변. 숲과 해양 생물 보호 구역인 참 아일랜드를 보려면 꾸어다이 해변에서 배를 타고 조금만 가면 된다. 누구든 호이안에서는 천천히 시간 속을 걸어가며 그렇게 추억을 붙든다. 그때가 좋았다, 그립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냥 잠시 멈춰 바쁘게 걸어온 길을 찬찬히 돌아보고 추억에게 말을 건네자.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삶의 한순간과 맞닿아 있는 애틋함을 호이안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다낭으로 간다는 버스가 끊긴 시각, 우리는 여전히 투본강에 남았다. 무대책이 낭만이 된 경우가 어디 흔했던가. 매달 보름이면 보름달맞이 축제로 연등을 띄운다는 호이안...상상이 가고도 남는 풍경들, 해질녘 하교 길 같은 아스라한 풍경들. 마음속에 인화지로 남는 풍경들. 호이안은 밤이 특히 아름답다. 거리에 장식된 수백 개의 전등이 일제히 켜지면 호이안은 속살을 드러내며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거리를 헤매던 이방인은 레스토랑으로 하나 둘 모여든다. 오래된 가옥을 개조해 만든 레스토랑, 카페 등이 제 맛을 알리는 그쯤 나도 따라 배가 고팠다. 우리는 스프링 롤을 또 시켜서 먹었다. 베트남에서는 하루 5끼가 정량이다. 80년대 폴모리아 연주곡을 배경으로 들으며 유수 같은 세월을 보듬은 유적지에서 갖는 식사는 아주 색다른 감회다. 부스스 떠오르는 내 청춘들.
한 단위가 아닌 뭉그적거린 전체가 비로소 어느 수채 풍경으로 윤곽잡혀 표현 가능하듯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비로소 큰 멋과 맛을 자아내는 호이안. 시간에 쫓기듯 나는 아쉬움에 등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길가 여행사 문을 빠끔히 열고 돌아올 다낭이야기를 했다. 이방인의 시선이 여전히 수줍은 아오자이 베트남 여성들. 가난 속에서도 그들은 웃는다. 과거보다 지금 얼마나 더 행복해졌을까. 덕분에 돌아올 방도를 찾았다. 다낭 공항에 갈 사람들 틈에 끼어 되돌아오면서도 나는 여전히 호이안을 마음 속 수채화로 담고 있었다. 옆자리 캐나다 처녀와 열심히 대화를 나누던 동료 K가 말했다. 아무래도 호이안은 따로 다시 와야 할 것 같아. 나도 바로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첫댓글 또 다시 그거리, 그 풍경들이 고스란히 다가옵니다. 일일히 고유명사까지 기록하여 베트남 다낭 쪽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신 회원들이 계시다면 크게 도움이될 것 같습니다. 물론 안내 책자도 있지만 조성원 작가님의 글처럼 구체적이며 섬세하지 않습니다. 지금 저는 인도차이나 전쟁사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합니다.
반쎄오에 관한 글을 읽는데 입에 침이 고이네요. 언젠가 먹었던 분짜 생각에요 ㅎㅎ
폴모리아 연주곡과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들.. 다낭 쪽이 요새 핫하다는데 기회가 되면 호이안에 한번 가보고 싶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2017년 늦가을에 다녀왔지요. 새삼 생각이 나고 공감이 됩니다. 종은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