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문명과 문화가 함께 발전한 나라,
2.문명은 있되 문화가 없는나라.
3.문명도 문화도 없는나라가 그것이다.
(전통민속-傳統民俗 을
문화로 분류한다면
이 경우에는
문화는 있고 문명은 없는 케이스가 된다.
예를 들어
아직도 존재하는 미개척의 오지들이 그것이다.)
문명(文明)은
정신문화에 대해
주로
인간의 외면적인 생활조건, 물질문화를 의미하며
문화(文化)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
또는
그에 따르는 성과를 의미하며
학문, 예술,종교, 도덕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근자에는
이런 전통적인 표현대신
하드웨어(hardware) 와 소프트웨어(software) 라는
지구촌 용어를
차용해서 쓰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이 용어가 가지는 뉘앙스가
현대인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더 접근해 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 와 소프트웨어는,
우리시대의 총아인
컴퓨터에 빗대어 설명 하는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컴퓨터의 기계적 설비와 장치,
즉
그 본체가 가지는 기재와 형식은 하드웨어다.
무엇보다
컴퓨터는 우선 '물건' 이다.
그 자체로서는 자리만 차지할뿐
아무 쓸모도 없는
복잡하고 값비싼 기계일 뿐이다.
그러나
이 물건- 기계설비에
'프로그램' 이 들어가면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인 기능이 나타난다.
이때
'프로그램' 은 하드웨어에 대해
대표적인 소프트웨어가 된다.
따라서
컴퓨터자체는 문명의 산물이지만
그것에
기능을 부여하는 프로그램은 문화의 산물이다.
문명과 문화가
합목적적으로 연결될때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상태의 나라들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함께 발전한
선진국이라 부른다.
반대로
문명은 있되 문화가 없는 경우는
그 속성상
선진국이 될 수 없다.
형식과 내용의 불균형때문에
하드웨어만 존재하고
소프트웨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벤쯔는 소유했지만
그 운전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그런 케이스다.
지금의 우리생활에서
개인이 소유할수 있는
가장 큰 하드웨어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중 하나가 현대식 아파트일 것이다.
요지음
아파트들은 그 설계와 시공,
사용하는
건축자재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그만큼
인간의 주거환경은 크게 개선되어
거개의 사람들이
새 아프트를 선호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모두가 아는대로
아파트는
많은 세대가 조밀하게 모여사는
공동주택 형식이다.
겉으로 보이는 현대식 아파트는
하드웨어의 기준에서 본다면
거의 완벽하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드려다 보면,
이 거대한 하드웨어에는 그 운영상
반드시
필요한 소프트웨어가 거의 없다.
아직은
아파트 1세대라는
일천한 시간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는
여러사람이 함께사는 방법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고 교육이 없으며
특이
남-이웃을 배려하는
생활문화가 없는것이 더 근본적인 이유다.
살인에 까지 이르는
심각한 층간소음(層間騷音).
주먹다짐까지 오가는 주차시비.
집안에서
짐승을 기르는 일 때문에 생기는 시비,
시켜먹은
음식그릇을 씻지도 않은채
문앞에 내다놓는 이기적인 몰상식,
밤 늦은 시간에
두둘겨대는 피아노소리.
엘리베이터 안에서 담배피우고
쓰레기를 버리는 야만성,
밤10시가
지났는데도 떠들고 노는 아이들,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문명은 있되
문화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생활에서
가장 큰 문제인 층간소음은
설계와 시공에서
기술적으로 이를 상당히 줄일수 있다.
그러나
건설비가 높아져
평당분양 단가가 올라가는것을 우려하는
악덕업자들은 이를 기피한다.
이때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그 시공기준을 '법' 으로 정하면
이 심각한 문제는 크게 완화될수 있다.
(지금도 어느정도의 규제는 있지만
지켜지지 않고있다.)
그게 소프트웨어다.
그러나
아직 국회는
그런 '문화적정서' 가 거의 없다.
수준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때문이다.
거대한
정치적 쟁점에는 민감해도
국민의 생활을 편케하는
정밀하고 조밀한
문제에는 우선 개념도 관심도 없다.
(여기에는 유권자의 책임도 크다.
한번 선출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개인이 소유할수 있는
고가의 하드웨어중 하나가 자동차다.
1970년대,
이태리에서 디자인 되고 만들어진
현대의 포니 1 이
울산공장에 도착했을때
나는
그 차를 직접가서 봤으며 정말 감탄했었다.
이상하게도
카이로에는 지금도
유난히 포니1 택시가 많다.
얼마전
모 영화사가 영화에 필요한 소품으로
이 낡은 차를 역수입한 일이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자동차생산 6위 국가이며
자동차의 품질은
외국인들이 인정하는 수준이다.
이제는
차가 없는집이 없다.
도로에 넘쳐나는게
모양도 다양한 국산차량들이다.
그러나
자동차문명은 있되
자동차문화가 없는게
지금의 우리 현실이다.
서구 선진국이 자동차 3세대라면
이웃 일본이 2세대이고
우리는
이제 막 1세대를 지나고있다.
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에서
우리는
여전히 세계1위이고
지체 장애자의 80%는 후천적,
즉
교통사고에 의한 피해자들이다.
⊙무서운 과속,
⊙습관이 된 신호위반,
⊙인간의 심성을 황폐케 하는 끼어들기,
⊙차선변경의 신호가 통하지 않는
살벌하고 각박한 인심,
⊙교통사고 뺑소니 차량들,
⊙주차되 차를
망가뜨려놓고 도망가는 해악,
⊙도난방지 경고음의 오작동으로
한밤중 잠에서 깨야하는 비극,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머리를 디밀어
모든 차량들이 얽혀버리는 이기적인 야만성,
⊙관광버스 통로에 굴러다니는 소주병과
길길이 뛰고있는 인간작태.
정말 적어 나가자면 끝이 없다.
하드웨어만 있고
소프트웨어가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라는 문명의 이기(利器) 도
그것을
운영하는 문화가 없으면 이 지경이 된다.
예를 들어
우리 주변에서는
직접 자기차를 운전하는 외국인을 볼수가 없다.
그들의
눈에 한국은 '자동차정글' 이다.
그들의 자동차 문화로는
한국 도로에서 운전할수가 없다.
목숨의 부지가
어려운데 누가 운전 하겠는가.
지금은
애들까지도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
휴대폰의 다양해 지는 기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고
여기에
상업주의의 선동까지 가세,
지금 대한민국은
휴대폰으로 덮여지고 있는중이다.
이제 사람들은
손에 휴대폰을 들고있지 않으면
불안증세까지 나타낸다.
깊이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지나
그것에 의지하고 매달려 있는
종속적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엄격히 말해
휴대폰의 다양한 기능중
건전한 일상을 위한것은 많지않다.
재미와 놀이가 휴대폰 값을 올리고
엄청난
통신비를 지불하게 하고있다.
이렇게
말 할수있는 가장 큰 이유는,
휴대폰 없이도
그 일상을 건전하게 사는 사람들이
함깨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화기는
유선이든 무선이든
사람들의 커무니케이션을 위한
문명의 이기일 뿐이다.
여기에 대해
'통화예절' 은 문화의 영역이다.
휴대폰의 경우
그 하드웨어 에서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주변에 함께있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크게 떠들어 대는 통화행태는
하드웨어에 대한
소프트웨어가 없기때문이다.
또
통화내용을 들어보면 거의가 '통신낭비' 다.
계속해서
휴대폰을 여닫는 연속 동작은
그 심층심리에
'불안'이 어느정도인지 알게해 준다.
새 상품만 나오면
온갖 감언이설에 속아
멀쩡한 물건을 두고 또 사게된다.
상품싸이클이
가장 짧은게 바로 휴대폰이다.
처음
디지털시계가 출시되었을때,
정말
엄청난 물량이 팔려나갔었다.
너도 나도 큰 유행이 되어
디지털 손목시계를 차고 다녔다.
그러나 지금,
거개의 사람들은
다시
아날로그식 시계를 차고 다닌다.
편리와 불편의 차이가 만들어
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디지털 방식은
'순간' 만 알려줄뿐, 앞뒤 연계가 안된다.
'시간' 은
앞과 뒤에대한 연결이 있어야
비로서
의미를 가질수 있다.
아날로그식이 다시 채택된 이유가 그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하드웨어에 대해
반드시
필요한 소프트웨어가 생겨날 것이다.
문제는,
그 필요성에 대한 우리들의 자각과 노력이다.
대표적인 하드웨어인
아파트도 자동차도 휴대폰도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야 하는
문화의 영역이다.
그 첩경은
말할것도 없이 교육이다.
유치원에서 부터 가르쳐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라나는 애들은
부모세대의 잘못된 행태를
그대로 배워 답습하게 되고
이는
그대로 하나의 '악순환' 이 된다.
그런데
지금 어떤 교육시스템 에서도
이를 위한
구체적인 커리큘럼이 보이지 않는다.
그게 우리의 후진성이다.
문명만 있고
그 문명을 운영하는 문화가 없다는것은
사실 무서운 일이다.
같은 칼이라도
주부가 들면 요리하는 도구가 되지만
강도가 들면
사람을 해치는 흉기가 되는게 그 원리다.
여기서
주부와 강도는
인간이 가지는 내적차이(內的差異),
즉
도덕성에 근거하는 문화의 차이인 것이다.
우리들이
문명과 함께 문화도 함께 가져야 하는
당위가 그러하다.
문명과 문화가 균형을 이룰때
그게 얼마나
사람살기에 좋은 환경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지금의
아수라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는것이다.
문명만 으로는
결코 선진사회가 되지못한다.
내용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다.
이미
우리들은 세계적 수준의
온갖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다.
이제
여기에 소프트웨어만 더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