綠筠軒(녹균헌)
蘇軾(소식)
고기가 없어도 식사는 할 수 있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살 수 없다네
사람은 고기가 없으면 허약해지겠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속되게 된다네
쇠약해져도 살은 다시 찌울 수 있지만
속된 것은 도저히 고칠 수 없다네
사람들은 이 말을 비웃어
고상하다 못해 바보스럽다고 하겠지만
만약 대나무를 마주하고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세간에서 어찌 양주학(揚州鶴)을 부러워하리오
可使食無肉 (가사식무욕)
不可居無竹 (불가거무죽)
無肉令人瘦 (무육영인수)
無竹令人俗 (무죽영인속)
人瘦尙可肥 (인수상가비)
俗士不可醫 (속사불가의)
傍人笑此言 (방인소차언)
似高還似癡 (사고환사치)
若對此君仍大嚼 (약대차군잉대작)
世間那有揚州鶴 (세간나유양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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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東坡詩集(동파시집)》 13권에 실려 있으며 원래 제목은 〈於潛僧綠筠軒(어잠승록균현)〉이다. 어잠
(於潛)은 절강성(浙江省) 항주부(杭州府)에 있던 현(縣)의 이름이며, 녹균헌은 ‘푸른 대나무가 있는 소실(小
室)’이란 뜻으로 승려가 거처하던 서실(書室)의 이름이다. 세상에 양주학(揚州鶴)이 있을 수 없듯이 대나무
를 사랑하는 고상한 삶을 살면서 고기를 배불리 먹는 부(富)까지 동시에 누릴 수는 없음을 읊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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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학[ 楊州鶴 ]
학을 타고 양주로 감.
有客相從各言所志 或願爲楊州刺史 或願多眥材 或願騎鶴上昇 其一人曰 腰纏十萬貫 騎鶴上楊州 欲兼三者
(유객상종각언소지 혹원위양주자사 혹원다자재 혹원기학상승 기일인왈 요전십만관 기학상양주 욕겸삼자)
몇 사람이 소원을 말하는데, 양주자사가 되기 바라거나 재물이 많기를 바라거나 학을 타고 하늘로 오르기를
원하거나 했는데, 다른 한 사람이 허리에 10만 관 돈을 두르고 학을 타서 양주로 갔으면 하니, 세 사람의 바람
을 모두 가지고자 함이었다.)
<사문유취事文類聚 후집後集>
양주는 아름답고 화려한 곳이어서 ‘春風十里楊州路(춘풍십리양주로 ; 봄바람 십리 양주길이여!)’란 싯귀까
지 있음.
若對此君仍大嚼 世間那有楊州鶴(약대차군잉대작 세간나유양주학 ; 만약 대나무를 대할 수 있고 고기도 먹
을 수 있다면, 세간에 어찌 양주학 얘기가 있겠는가?)<소식蘇軾 녹균헌綠筠軒>
一盃一盃事有緣 且莫論量鶴與錢(일배일배사유연 차막논량학여전 ; 술 한 잔 한 잔이 연분이거니, 학과 돈을
꾀하지 말라.)<권한공權漢功 정면재석상주필鄭勉齋席上走筆>
[네이버 지식백과] 양주학 [楊州鶴] (한시어사전, 2007. 7. 9., 국학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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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의 대나무 그림
소동파는 중국의 대시인일 뿐만 아니라 서예가로서도 송대(宋代)에서 첫손가락에 꼽혔다. 평소 그는 대나무
를 몹시 사랑했는데 유명한 〈어잠승록균헌시(於潛綠筠軒詩)〉를 남기고 있다.
고기가 없어도 식사는 할 수 있지만 可使食無肉
대나무가 없으면 살 수 없다네 不可居無竹
사람은 고기가 없으면 허약해지겠지만 無肉令人瘦
대나무가 없으면 속되게 된다네 無竹令人俗
쇠약해져도 살은 다시 찌울 수 있지만 人瘦尙可肥
속된 것은 도저히 고칠 수 없다네 俗士不可醫
사람들은 이 말을 비웃어 傍人笑此言
고상하다 못해 바보스럽다고 하겠지만 此高還似癡
만약 대나무를 마주하고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若待此君仍大嚼
세간에서 어찌 양주학을 부러워하리오 世間那有楊州鶴
이 시는 대나무를 읊은 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일 뿐 아니라 소동파의 인품을 엿볼 수 있는 작
품이기도 하다.
그의 희망은 고기 먹는 일과 대나무와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일인데 이 두 가지가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 있다
면 돈 10만 냥을 허리에 꿰차고 학을 타고 신선이 되어 간다는 양주학을 부러워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 소동파에게 어느날 묵죽화를 그려달라고 의뢰해온 사람이 있었다. 그 부탁에 따라 그림을 그리려고 하였
으나 공교롭게도 먹이 떨어져서 부득이 마침 옆에 있던 붉은 먹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러자 그림을 부
탁했던 사람이 의아스러운 얼굴상을 하고서 "이 세상에 붉은 대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동파는 그
자리에서 답하기를 "그러면 이 세상에 검은 대는 있는가"라고 하니 손님은 아무 말도 못하고 붉은 대나무그
림을 그대로 받아 돌아갔다.
그런데 그로부터 그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잇달아 일어났다. 이때까지 없었던 아들을 낳고 사업은 크게 성공
하여 왕후(王侯)를 능가할 부자가 되고 사회로부터도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서로 다투어 소동파의 집에 몰려와서 붉은 대나무그림을 그려서 받아 갔는데 이
상하게도 그 그림을 받아간 사람들은 모두 생각지 않았던 행운을 얻게 되어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주죽화
(朱竹畵)가 지금도 경사스러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이 고사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동파의 대나무 그림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2004. 3. 10., (주)넥서스)
[출처] [당시삼백수]綠筠軒(녹균헌) - 蘇軾(소식)
[출처] [당시삼백수]綠筠軒(녹균헌) - 蘇軾(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