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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수학여행 가서 점심을 먹은 수운회관 지하식당에서 나와 촬영한
세계 어린이 운동 발상지 비석과 천도교 중앙 교당.
지역의 신문에 칼럼을 발표해야 했는데, 때를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점심만 먹었지, 아무도 이곳이 어린이날의 시발지가 된 유서 깊은 역사의 현장임을 모르고 말해주지 않았다.
어른들은 기껏해야 길 건너편의 대원군 사저인 운현궁만 말하하였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바로 여기 천도교 교당에서 어린이들에게 동화도 들려주고 동요도 불러주며 어린이들을 키웠다.
3.1독립만세운동(천도교, 개신교, 불교 3종교 대표가 민족대표 33인을 구성)이 실패로 끝나고
암울한 시대에 어린이를 잘 키우는 것이 새로운 세상을 가져올 희망이었다.
소파 선생은 의암 손병희 선생의 사위였다.
어린이 라는 높임말, 새로운 말은 동학의 인내천 사상에서 새로이 의미가 부여되고
새로이 지어지고 새로이 쓰인 말이었다.
동학을 실천하는 집에서는 심지어 부모가 자식에게도 높임말을 썼다.
해월 선생의 외손자 정순철은 졸업식 노래(빛나는 졸업장을 타시는 언니께 꽃다발 한아름 선사합니다.....)를 비롯하여
많은 동요를 지었다.
해월 선생의 탄생지는 외가인 경주시 황오리이지만
고향 마을은 포항시 신광면 기일이고,
손씨 부인과 결혼하여 신접살림을 차리고 산 곳은 포항시 흥해읍 매곡리이고
화전민으로 살며 동학에 입문하여 수도하던 곳은 포항시 신광면 마북면 검등골이다.
어린이날 90주년이 되었지만, 해월 선생의 고향인 포항의 해맞이 공원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선생님들과 부모님들과 각 단체에서 나와 성대하게 해마다 행사를 열지만,
아무도 어린이날의 의미와 유래를 모른다.
문화 콘텐츠개발에 지자체마다 혈안이 되어 있다.
포항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영천에서 탄생하고 자란 포은 정몽주 선생이
포항에서 태어났다고 우기며 이상한 행사를 하느라 야단이다.
도올 선생은 해월 선생을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보다 더 순결한 인품의 위대한 스승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포항은 해월 선생을 철저히 망각하고 산다.
해맞이 공원에 해월 선생 동상과 어록비 하나 세우지 않고 있다.
해월 선생의 고향인 포항 학생들은 서울 수학여행 가서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를 키우던 어린이 운동 발상지,
천도교 중앙교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도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맛 없는 싸구려 점심 밥만 먹고 온다.
무지의 극치다. 동학의 역사와 정신이 철저히 잊혀졌다.
링컨보다 먼저 노예를 해방하고, 한 사람은 며느리로, 한 사람은 딸로 삼은 수운 선생은
사람이 곧 하느님을 천명하는 철저한 인간평등을 말씀하셨다.
링컨만 위인인지 알지,
진작 우리에게 링컨보다는 천배만배 더 위대한 분이 계셨음을 모른다.
안으로 양반의 유교에 대항하고
밖으로 제국주의 서양의 서학(서양의 종교, 기독교)에 대한 동학이었다.
경천(천지의 큰 생명인 하느님을 공경하고), 경인(사람을 공경하고), 경물(자연물을 공경하는)의 가르침을 베푼
해월 선생은 베짜는 며느리도 어린 아이도 하느님을 모신 고귀한 존재로 여겼다.
스승 수운 선생이 가르침을 베푼지 4년만에 양반 유교 국가권력에 의하여 참수된 뒤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기까지 30년 동안 하루같이 일편단심으로
해월 선생은 인내천의 새로운 문명의 가르침을 전파하였다.
일본군이 40만명의 농민군을 대량 학살하였다.
공주 우금치 전쟁에서 일주일 만에 10만의 농민이 일본군과 정부군 연합군에
의하여 학살되었다.
해월 선생이 1898년 서울 육군법원에서 교수형을 당하고
의암 손병희 선생이 동학의 3대 교주가 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 을사조약 전후로 하여 동학은 천도교라는 이름을 가지며 종교의 형태로 변형되었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을 개신교와 불교와 연합하여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고 새로운 세상, 새로운 문명을 열려는
개벽의 노력을 기울였다.
해방이 된 지금은 남북이 통일된 나라를 이루는 것이 개벽의 과제이다.
어버이날은 미국에서 들어와서 우리의 효도 사상과 결합하여 크게 번창하고 있다.
어린이날은 우리 민족 고유의 동학에서 비롯하여 번창하고 있지만 그 참된 의미와 역사적 유래가
망각되어 버려 안타깝다.
소파 선생의 수필, 어린이 예찬을 다시 읽어보아야 하겠다.
사람이 하느님이다.
어린이도 여자도 노예도 흑인도 나무도 새도 산도 강도 하늘도 땅도 바다도 모두 하느님이다.
포항시 신광면 마북리 검등골, 해월 선생이 화전민으로 살며 동학에 입문하여 수련하던 곳.
용담의 물이 흘러흘러 네 바다의 근원이 되리.
검등골에 한 사람 있으니 일편단심이로다.
검등골 해월 선생 집터에 지금도 기도하는 동학의 분이 동학 깃발을 감나무에 걸어두었다.
신광면 기일, 해월 선생 고향마을 입구에 세워진 비석. 해월 선생 순도 100주년 기념하여 천도교중앙본부와 고향 사람들이 협력하여 세웠다. 글씨는 신광중학교 2학년 학생의 것이다.
소파 방정환의 생애 및 활동사항
1909년 매동보통학교에 입학, 이듬해 미동보통학교로 전학하여 1913년에 졸업하였다. 그 해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가정 사정으로 중퇴하였다. 1917년 손병희(孫秉熙)의 딸 용화(溶嬅)와 결혼하였다. 그 해에 청년운동단체인 ‘청년구락부(靑年俱樂部)’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18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 이듬해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1주일 만에 석방되었다. 1920년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 철학과에 입학하여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연구하였다.
1921년 김기전(金起田)·이정호(李定鎬) 등과 함께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소년운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처음으로 어린이라는 말을 썼다.
1922년 5월 1일처음으로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고, 1923년 3월 우리 나라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였다. 이 잡지는 월간으로서 일본 동경에서 편집하고 서울 개벽사(開闢社)에서 발행을 대행하였다. 같은 해 5월 1일에 ‘어린이날’ 기념식을 거행하고 ‘어린이날의 약속’이라는 전단 12만장을 배포하였다. 1925년에는 제3회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동화구연대회(童話口演大會)를 개최하였다.
1928년에 세계 20여 개 나라 어린이가 참가하는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개최하였다. 그가 남긴 작품은 번안물이 대부분이다. 그는 원문의 뜻과 흐름을 손상시키지 않고 외국어의 장벽을 무난히 돌파하여 동화 번안작가로서 그의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그가 번안 내지 개작한 동화들이 지닌 일관된 특징은 풍자와 해학의 정신과 교훈성에 있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종래의 유교도덕에 얽매어 있던 어린이들을 어린이다운 감성으로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 감성 해방은 시대적 상황과 결부되어 그들을 웃기기보다는 울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웬일인지 별 하나/보이지 않고/남은 별이 둘이서/눈물 흘린다.”(형제별)와 같은 동요에서 그의 이러한 모습은 잘 나타나고 있다.
그가 생전에 실천하고 남긴 업적을 간추려보면, 먼저 그는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최초의 아동문화운동가요, 사회운동가였다. ‘소년입지회(少年立志會)’의 조직과 3·1독립운동 참가, ‘천도교소년회’결성 및 육성이나, 아동을 ‘어린이’라는 용어로 ‘늙은이’·‘젊은이’와 대등하게 격상시킨 일 및 아동문제연구단체인 ‘색동회’ 조직, ‘어린이의 날’ 제정 등이 그것을 입증한다.
둘째로 번안 및 개작작가·동화작가·동화구연가·아동잡지 편집인으로서 그의 업적이다. ≪사랑의 선물≫(開闢社, 1922)을 비롯한 본격적인 개작 번안, 창작동화를 남기며 최초의 대표적인 구연동화가로 활약하고 ≪어린이≫지를 통하여 윤석중(尹石重)·이원수(李元壽)·서덕촌 등 아동문학가의 발굴, 육성에 힘썼다.
셋째로 그는 아동들을 소박하고 천진난만하며 순진무구하게 보고 감상적·관념적·권선징악적인 작품을 통해서 그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린이의 현실적·경제적 어려움을 이해하고 종래의 전통적인 부당한 대우를 시정하여 감성 해방(동심 회복)을 하려는 데 그 목적을 두었다.
그러므로 그는 금세기 우리 나라의 지사(志士)요, 선구적 언론인이요, 교육자요, 문학가로 불려야 마땅한 인물이다. 1957년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소파상(小波賞)’이 제정되고, 1971년 40주기를 맞아 서울 남산공원에 동상이 세워졌으나, 1987년 5월 3일 서울어린이대공원 야외음악당으로 이전되었다.
1983년 5월 5일에는 망우리 묘소에 이재철이 비문을 새긴 ‘소파 방정환 선생의 비’가 건립되었으며, 1987년 7월 14일에는 독립기념관에 그가 쓴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을 새긴 어록비가 건립되었다.
1978년 금관문화훈장, 1980년 건국포장이 수여되었다. 그가 생전에 발간한 책은 ≪사랑의 선물≫이 있고, 그밖에 사후에 발간된 ≪소파전집≫(박문출판사, 1940)·≪소파동화독본≫(朝鮮兒童文化協會, 1947)·≪방정환아동문학독본≫(을유문화사, 1962)·≪칠칠단의 비밀≫(글벗집, 1962)·≪동생을 찾으러≫(글벗집, 1962)·≪소파아동문학전집≫(문천사, 1974) 등 8종이 있다.
韓國現代兒童文學史(李在徹, 一志社, 1978)
韓國兒童文學作家論(李在徹, 開文社, 1983)
< 어린이 예찬 >
-방정환 선생-
어린이가 잠을 잔다. 내 무릎 앞에 편안히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다. 볕좋은 첫여름 조용한 오후이다.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을 모두 모아서 그 중 고요한 것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평화라는 평화 중에 그 중 훌륭한 평화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아니 그래도 나는 이 고요한 자는 얼굴을 잘 말하지 못하였다. 이 세상의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은 모두 이 얼굴에서 우러나는 듯싶게 어린이의 잠자는 얼굴은 고요하고 평화스럽다.
고운 나비의 날개, 비단 같은 꽃잎, 아니 아니, 이 세상에 곱고 보드랍다는 아무것으로도 형용할 수가 없이 보드랍고 고운 이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라. 그 서늘한 두 눈을 가볍게 감고 이렇게 귀를 기울여야 들릴만큼 가늘게 코를 골면서 편안히 잠자는 이 좋은 얼굴을 들여다보라. 우리가 종래에 생각해 오던 하느님의 얼굴을 여기서 발견하게 된다.
어느 구석에 먼지만큼이나 더러운 티가 있느냐. 어느 곳에 우리가 싫어할 한 가지 반 가지나 있느냐. 죄 많은 세상에 나서 죄를 모르고, 부처보다도 예수보다도 하늘 뜻 그대로의 산 하느님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무 죄도 갖지 않는다. 아무 획책(劃策)도 모른다. 배 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먹어서 부르면 웃고 즐긴다. 싫으면 찡그리고, 아프면 울고, 거기에 무슨 꾸밈이 있느냐. 시퍼런 칼을 들고 핍박(逼迫)하여도 맞아서 아프기까지는 방글방글 웃으며 대하는 것이다. 이 넓은 세상에 오직 이이가 있을 뿐이다.
오오, 어린이는 지금 내 무릎 위에서 잠을 잔다. 더할 수 없는 착함과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갖추고 그 위에 또 위대한 창조의 힘까지 갖추어 가진 어린 하느님이 편안하게도 고요한 잠을 잔다. 옆에서 보는 사람의 마음 속까지 생각이 다른 번추(煩醜)한 것에 미칠 틈을 주지 않고 고결하게 순화시켜 준다. 사랑스럽고도 부드러운 위엄을 가지고 곱게 곱게 순화시켜 준다.
나는 지금 성당에 들어간 이상의 경건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사랑스러운 하느님의 자는 얼굴에 예배하고 있다.
어린이는 복되다 !
이 때까지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복을 준다고 믿어왔다. 그 복을 많이 가져 온 이가 어린이다. 그래 그 한없이 많이 가지고 온 복을 우리에게도 나누어준다. 어린이는 순 복덩어리다.
마른 잔디에 새 풀이 나고 나뭇가지에 새 움이 돋는다고 제일 먼저 기뻐 날뛰는 이도 어린이다. 봄이 왔다고 종달새와 함께 노래하는 이도 어린이고 꽃이 피었다고 나비와 함께 춤을 추는 이도 어린이다. 별을 보고 좋아하고 달을 보고 노래하는 것도 어린이요, 눈 온다고 기뻐 날뛰는 이도 어린이다.
산을 좋아하고 바다를 사랑하고 큰 자연의 모든 것을 골고루 좋아하고 진정으로 친애하는 이가 어린이요, 태양과 함께 춤추며 사는 이가 어린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기쁨이요, 모든 것이 사랑이요, 또 모든 것이 친한 동무다. 자비와 평등과 박애와 환희와 행복과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만 한없이 많이 가지고 사는 이가 어린이다. 어린이의 살림 그것 고대로가 하늘의 뜻이다. 우리에게 주는 하늘의 계시(啓示)이다.
어린이의 살림에 친근할 수 있는 사람, 어린이 살림을 자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 ― 배울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행복을 얻을 것이다.
어린이와 마주 대하고는 우리는 찡그리는 얼굴, 성낸 얼굴, 슬픈 얼굴을 못 짓게 된다. 아무리 성질 곱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어린이와 얼굴을 마주하고는 험상한 얼굴을 못 가질 것이다. 어린이와 마주 앉을 때 적어도 그 잠깐 동안은 ― 모르는 중에 마음의 세례(洗禮)를 받고 평상시에 가져 보지 못하는 미소를 띤 부드러운 좋은 얼굴을 갖게 된다. 잠깐 동안일망정 그 동안 순화되고 깨끗해진다.
어떻게든지 우리는 그 동안 순화되는 동안을 자주 가지고 싶다.
하루라도 3천 가지 마음 지저분한 세상에서 우리의 맑고도 착하던 마음을 얼마나 쉽게 굽어 가려고 하느냐? 그러나 때로는 방울을 흔들면서 참됨이 있으라고 일깨워 주고 지시해 주는 어린이의 소리와 행동은 우리에게 큰 구제의 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피곤한 몸으로 일에 절망하고 늘어진 때에 어둠에 빛나는 광명의 빛깔이 우리 가슴에 한 줄기 빛을 던지고 새로운 원기와 위안을 주는 것도 어린이만이 가진 존귀한 힘이다. 어린이는 슬픔을 모른다. 그리고 음울한 것을 싫어한다. 어느 때 보아도 유쾌하고 마음 편하게 논다. 아무델 건드려도 한없이 가진 기쁨과 행복이 쏟아져 나온다. 기쁨으로 살고 기쁨으로 커간다. 뻗어나가는 힘! 그것이 어린이다. 인류의 진화와 향상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린이에게서 기쁨을 빼앗고 어린이 얼굴에다 슬픈 빛을 지어 주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죄인은 없을 것이다. 어린이의 기쁨을 상해 주어서는 못쓴다. 그리할 권리도 없고 그리할 자격도 없건마는…… 무지한 사람들이 어떻게 많이 어린이들의 얼굴에 슬픈 빛을 지어 주었느냐.
어린이들의 기쁨을 찾아 주어야 한다. 어린이들의 기쁨을 찾아 주어야 한다.
어린이는 아래 세 가지 세상에서 온통 것을 미화시킨다.
이야기 세상 ― 노래의 세상 ― 그림의 세상
어린이 나라에 세 가지 예술이 있다. 어린이들은 아무리 엄격한 현실이라도 그것을 이야기로 본다. 그래서 평범한 일도 어린이의 세상에서는 그것이 예술화하여 찬란한 미와 흥미를 더하여 가지고 어린이 머리 속에 전개된다. 그래 항상 이 세상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본다.
어린이들은 또 실제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을 이야기 세상에서 훌륭히 경험한다. 어머니와 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 그는 아주 이야기에 동화(同化)해 버려서 이야기 세상 속에 들어가서 이야기에 따라 왕자도 되고, 고아도 되고, 또 나비도 되고 새도 된다. 그렇게 해서 어린이들은 자기가 가진 행복을 더 늘려 가는 것이다.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본 것 느낀 것을 그대로 노래하는 시인이다. 고운 마음을 가지고 어여쁜 눈을 가지고 아름답게 보고 느낀 그것이 아름다운 말로 굴러 나올 때, 나오는 모두가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여름날 성한 나무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의 어머니가 아들을 보내어 나무를 흔든다고 보는 것도 그대로 시요, 오색의 찬란한 무지개를 보고 하느님 따님이 오르내리는 다리라고 하는 것도 그대로 시다.
개인 밤 밝은 달의 검은 점을 보고는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금도끼로 찍어내고
옥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고 천년만년 살고지고
고운 노래를 높이어 이렇게 노래 부른다. 밝디 밝은 달님 속에 계수나무를 금도끼 은도끼로 찍어내고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자는 생각이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이러한 고운 노래를 기꺼운 마음으로 소리 높여 부를 때, 그들의 고운 넋이 얼마나 아름답게 우쭐우쭐 자라갈 것이랴 ? 위의 두 가지 노래는 어린이 자신의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고 큰 사람이 지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하나 몇 해 몇 십 년 동안 어린이들의 나라에서 불러 내려서 어린이의 것이 되어 내려온 거기에 그 노래에 스며진 어린이의 생각, 어린이의 살림, 어린이의 넋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린이는 그림을 좋아한다. 그리고 또 그리기를 좋아한다. 조금도 기교가 없는 순진한 예술을 낳는다. 어른의 상투를 재미있게 보았을 때 어린이는 몸뚱이보다 큰 상투를 그려 놓는다. 얼마나 솔직한 표현이냐. 얼마나 순진한 예술이냐.
지나간 해 여름이다. 서울 천도교당에서 여섯 살 된 어린이에게 이 집 교당(내부 전체를 가리키면서)을 그려 보라 한 일이 있었다. 어린이는 서슴지 않고 종이와 붓을 받아들더니 거침없이 네모 번듯한 사각 하나를 큼직하게 그려서 나에게 내밀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 그 어린 동무가 그 큰 집에 들어앉아서 그 집을 보기는 크고 네모 번듯한 넓은 집이라고밖에 더 달리 복잡하게 보지 아니한 것이었다. 얼마나 순진스럽고 솔직한 표현이냐 ? 거기에 아직 더럽혀지지 아니한 이윽고는 큰 예술을 낳아 놓을 무서운 참된 힘이 숨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한 포기 풀을 그릴 때 어린 예술가는 연필을 쥐고 거리낌없이 쭉쭉 풀 줄기를 그린다. 그러나 그 한 번에 쭉 내어그은 그 선이 얼마나 복잡하고 묘하게 자상한 설명을 주는지 모른다.
위대한 예술을 품고 있는 어린이여! 어떻게도 이렇게 자유로운 행복만을 갖추어 가졌느냐?
어린이는 복되다. 어린이는 복되다. 한이 없는 복을 가진 어린이를 찬미하는 동시에 나는 어린이 나라에 가깝게 있을 수 있는 것을 얼마든지 감사한다.
첫댓글 학급경영의 제 1 원칙이 '아이들 공경'입니다.
공경의 눈으로 보면 '문제아'는 없고 '문제 가정'만 보입니다.
아이를 보는 눈이 순해집니다. "선생님, 쟤들 제발 혼 좀 내세요." 할 정도로...ㅎㅎ
숙연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마북면 검등골'에 꼭 가고 싶군요. ^^
우리나라의 자부심이며, 자랑거리요, 꿈과 희망이지요.
*어린이 날* 유래와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겼습니다.
훌륭하신 조상님과 보배로운 아이들을 생각하며 진중한 삶을 살겠습니다.
어린이의 날을 다시 한번 더 새겼습니다.
감사합니다~
의로운분들의 얼이 살아숨쉬는 포항에는 김희준 선생님이 계셔서 그 전통이 계속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끊어진 다리를 보수하듯 역사의 숨소리가 계속 나도록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