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자연에 살다보니...
2022년 2월 22일 화요일
음력 壬寅年 정월 스무이튿날
여전히 오늘도 한파가 머물러 추위가 대단하다.
이른 아침 기온은 어제보다 높은 영하 13도인데
바람이 꽤 거세다. 체감온도는 훨씬 낮은 것 같다.
한동안은 추울 것이라는 기상청의 장기예보이다.
산골살이에서 추위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는 않는
촌부이지만 그래도 날씨가 춥고 엊그제 내린 눈이
녹지않아 하던 일이 차질을 빚는다. 밭에서 쌓아둔
나무더미를 엔진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손수레로
장작집 앞까지 나르고, 도끼로 쪼개고, 장작집에
차곡차곡 장작을 쌓아두는 작업을 할 수가 없다.
뭐 그다지 급한 일은 아니니까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이지만 기왕 시작한 일이니까 마음 편하게 후딱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라서 어쩔 수가 없는 촌부의
조급한 성격탓이 아닌가 싶다. 날씨가 춥긴 했지만
며칠간 일을 못했으니 장작만들기는 그렇고 해서
장작집에 남은 토막나무를 쪼개고 다용도 창고로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무심한 하늘은 눈을 뿌리기
시작하여 오후 내내 흩날렸고 일은 오전에 멈췄다.
하늘의 더 쉬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며 푹 쉬었다.
며칠전 아침나절 운동을 나갔던 아내가 다급한 듯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으며 창문으로 내다봤더니
중앙통로 끝부분에 멈춰 서있었다. 아내의 말로는
"너구리 한 마리가 카페앞 데크에 와서 앉아 있어
길냥이 모녀가 먹이 먹는 자리를 빼앗긴 것 같네?
어서빨리 내려와 보셔! 무서워 못내려 간다니까!"
라고 했다. 부랴부랴 내려가보니 카페옆 작은 데크
아랫쪽 틈사이로 황급히 몸을 감추는 너구리, 데크
윗쪽에 털이 군데군데 있었다. 길냥이와 싸운 걸까?
상식으로 너구리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겨울철에는
동면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벌써 나와
우리집에 왔을까? 며칠전부터 아내가 걷기운동을
하다보니 너구리인 것 같은데 카페 뒷쪽에 으슬렁
거리는 같다고 했었다. 잠시 내려온 것이겠지 했다.
계속 카페부근에서 머물면 안될 것 같아 쫓았으나
거동이 불편한 것 같았다. 아내가 너무 불쌍하다며
먹이를 조금 갖다주면 좋겠다고 하여 안에 들어가
길냥이 사료를 빈 그릇에 담아서 주었더니 얼마나
굶었는지 이내 나와서 정신없이 먹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길냥이 가족에 이어 너구리까지 단지에
들어와 살면 야생동물 농장이 되겠구나 하며 둘이
웃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산으로 가지 않고 단지에
머무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군청에 야생동물
담당부서가 있다고 하여 전화를 했으나 야생동물을
포획을 해놓아야 가져다 동물보호센터에 맡긴다고
했다. 무슨 수로, 어떻게 너구리 포획을 하겠는가?
그랬는데, 어제 아침나절 장작집 앞에서 토막나무
쪼개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걷기운동 하던 아내가
호루라기를 불었다. 우리 부부의 비상신호 수단은
호루라기라서 지니고 다닌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내려갔더니 커플룸 주차장의 끝부분쪽 바베큐장에
너구리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아무래도 죽은 것 같았다.
삽을 들고 들어가서 건드려봤더니 이미 죽어있었다.
아무래도 묻어주어야 할 것 같아 망설이다가 도저히
손으로 만질 수가 없어 삽에다 살짝 얹어서 산으로
올라갔다. 아내는 너무 가엾고 불쌍하고 안스럽다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겨울철이라서 땅이 꽁꽁 얼어
흙을 파느라 꽤 고생했다. 나무옆을 조금 파고 묻은
다음 낙엽을 많이 긁어다가 덮어주고 혹시나 해서
나뭇가지를 주워다 낙엽위에 얹어놓고 내려왔다.
어쩌다가 우리집까지 내려와 우리에게 안타까움을
주고 생을 마감했는지 모르겠다. 자연에 살다보니
별의별 체험을 다 하면서 산다. 그렇잖아도 엊그제
고향에서 죽마고우를 차디찬 땅에 묻고 와서 아직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인데 너구리까지 묻다니...
첫댓글 살아가면서
산자와 죽은자를 만난다는 것이
여러가지 굴레가 있더라구요. 하물며
살아서 움직이던 동물이 죽었다면 이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가슴아픈일입니다.
다양한 경험속에서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는군요.
늘 건승하시며 행복한 하루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무지개 다리 건너간
너구리가 편히 잠들겠네요.
슬픔은 슬픔으로 묻어 두시고
오늘도 파이팅 하세요.
자연사랑
동물사랑
따뜻한마음
리스펙!!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