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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30 ~ 31 대마도기행 (가락기행)
몇 달 전부터 계획한 기행, 늘 국내만 고집하던 문학기행을 이번엔 회장님의 권장으로
뜻 깊은 1박 2일의 해외여행을 추진하게 되었다.
비록 가까운 대마도지만 그래도 해외인지라~ 조금 걱정이 되었다.
신청한 사람16명, 국내기행이어도 스무 명 남짓 참여하는 터라
해외여행에 16분 참석은 다행이었다.
혹시 싶어 일찌감치 여권사본과 계약금을 받고 추진했지만
출발 며칠 전부터 결원이 생기기 시작한다. 걱정했던 상황이 생긴 것이다.
부랴부랴 회장님과 통화해 한분을 충원하였지만…….
문자와 통화, 메일로 확인하며 출발 일을 기다리지만 여전히 걱정이 된다.
여권과 준비물을 확실히 챙기시라고 확인에 확인을 거친다.
출발 전날 저녁쯤 확인 차 전화를 드렸더니 또 한사람의 결원,
출발일 며칠 전부터 아프시다고 걱정을 했는데 결국은~~
도무지 갈 상황이 아니라고 하셔서 부랴부랴 여행사에 전화해 배편이랑 취소했지만
환불은 많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미리 말씀하셨으면 손해를 덜 볼 수 있었을 터인데~~
이젠 더 이상 결원이 없도록 기도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하여 기행은 14명이 출발하게 되었다. 회원 아닌 두 분이 동참하시게 되었는데
관장님 친구 분은 관장님께서 못 가시는 바람에 걱정이 되었다.
소홀함이 없이 챙겨드려야하는데…….
연이은 우중중한 날씨가 염려되어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파도가 조금 있을 것 같다하여 걱정이 되긴 하지만 늘 씩씩한 회원님들이라 위안한다.
5월 29일 새벽 5시. 알람소리에 소스라쳐 일어난다.
장기간 여행에 익숙해 이틀간의 공백은 이제 느긋한 터라 잠시 동안 빈 여백의 공간을 채운다.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는데 홍고문님께서 전화하셨다.
배웅 차 시청에 도착하셨다고,
걱정하시는 마음이 읽혀져 마음이 찡하다. 빨리 가야겠다.
가방을 챙겨들고 5시 50분, 집을 나선다. 잘 다녀오라는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요사이 팔이 아파 잠도 제대로 못자고 뒤척이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기어가는 소리로 “잘 다녀올게요.”라며 작은 소리글을 남기고~~~
트렁크의 바퀴소리가 보도블록과 입 맞추는 소리가 경쾌하다.
진해에 사시는 분들은 6시5분 상공회의소 앞에 집결하라고 했는데
6시도 안된 시간 벌써 차에 올라계신다.
바로 출발, 성주동자치센터에서 윤영님과 정암님이 합류해
마지막 집결장소인 창원시청으로 향했다.
홍고문님과 관장님이 우리를 배웅하러 나와 계셨다.
함께 동참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잘 다녀오란 인사를 하신다.
함께 가셨으면 좋으련만~
이제 건강에 자신이 없어 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리다.
세분 고문님과 관장님 불참이 모두 건강때문이어 더욱 염려가 된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가락을 지켜주셔야 하는데…….
일행 중 한사람 운향님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바로 KTX를 타고 오기로 했기에 13명 합류,
이제 부산 국제여객선 터미널로 출발이다.
회장님 그리고 피치 못 할 사정으로 불참하신 세분, 그리고 우영옥부회장님께
찬조금을 두둑이 받고 불룩한 봉투를 나고 출발~~
홍고문님과 관장님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하자마자 정 많은 여정님, 눈시울이 붉어진다.
함께 하지 못한 두 분을 두고 우리만 가는데 마음이 아려서~~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출발점은 아픈 마음은 지우고 환한 마음으로 GO.
우리를 태운 봉고차가 창원터널로 진입하기 전, 한 분이 여권을 두고 오셨다한다.
클 났다. 빨리 집으로 전화해
사모님께 남산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고 가져다 달라고 부탁드린다.
부산까지 갔음 어떻할뻔~~ ㅠㅠ
다행히 빨리 달려오신 사모님 덕분에 다시 출발,
차 안에서 떡과 음료로 간단히 아침요기를 한다.
모시 떡이 쫄깃하게 마음까지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아 7시 30분쯤 부산여객선터미널에 도착,
가이드와 만나 승선수속을 하고 우린 느긋하게 운향님을 기다린다.
한참동안 못 본 얼굴이어 보고픈 마음이 크다.
하루 저녁 우리 집에서 같이 잤으면 싶었는데~~~
일본여행가는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아마 엔화약세로 인해
여행을 계획한 이들이 많아서일 것 같다.
몇 년 전 박물 대 답사 때 후쿠오카로 가기위해 이곳에서 배를 탔던 기억이 났다.
많은 관광객들의 얼굴에 설렘이라는 웃음이 번지고
또 약간은 긴장한 어르신들의 모습도 보인다.
우리 일행은 모두 배 멀미 약을 공동으로 사서 하나씩 나눠 먹었다.
일기예보에 파고가 1 ~ 2M라고 했으니 잔잔한 편은 아닌 터라
미리 대비함이 좋을 것 같아서~~
국내 기행이었으면 음료와 주류 등등 준비 할 것이 많겠지만,
해외기행이어 준비하기가 난감하다.
그래서 적당히 조금만 준비하고 나머지는 현지조달을 하기로 했다.
그래도 걱정이 된다.
기다리던 운향님이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서 우린 입국수속을 끝내고 면세점에 들렀다.
몇 가지 되지 않은 작은 면세점이어 구경할 것도 별로 없었다.
아무것도 사지 않으려 했었는데 썬 크림이 시중보다 반값이어
횡재한 기분으로 두 개를 구매한다.
그렇게 여유시간을 보내다 9시 5분쯤 배에 승선하기 위해 개찰구를 통해 기인 통로를 걷는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많이 보인다. 힘들지 않으실까??
우리 고문님들보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승선하는 걸 보니
고문님들의 빈자리가 더욱 커 보였다. 함께 하셨으면 좋으련만~~~
저렇듯 몸이 많이 불편하신 분들도 가시는데……. 배에 승선해 자리를 잡았다.
일행들이 주욱 같이 배정되어 서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화기애애하다.
배가 부산항을 떠나 얼마 되지 않아 배가 울렁이기 시작한다.
멀미를 하는 사람도 눈에 띄는데 다행히 우리 일행은 담소를 나누며
기행의 멋진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부산항을 출발해 한 시간 가까이 가니 기인 섬이 보였다.
무슨 섬이냐 물었더니 대마도란다.
벌써!!!! 사람들은 먼저 일어 나 나갈 준비를 하고
승무원들은 자리로 돌아가라고 만류하고 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이다.
대마도 하카타츠항에 도착해서 입국심사를 했다.
이곳의 특이 한 점은 지문검사를 한다는 것,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 봤지만 지문 검사는 처음이다.
공연히 기분이 나빠지려한다.
그런 언짢은 기분을 지우며 대마도에 입성한다.
대마도가 이렇듯 가까이 있다니…….
먼저 나와 입국심사를 끝낸 터라 여유롭게 일본기가 펄럭이는 배들을 기웃거린다.
하늘엔 까마귀 떼인지 솔개 떼인지 모르지만 우리를 환영하는 듯 기일게 맴을 돌고 있다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정암님이 나오질 않는다.
무슨 일이??? 들어가지는 못하게 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더니 한참 후에야 나온다. 까닭은 묻지 말기!!!!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빨간 소형버스 64번에 탑승, 대마도의 협소한 도로를 달려
첫 관광지. 아름다운 해안 100선에 선정되었다는 미우다해수욕장에 도착,
대마도의 5개 해수욕장 중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작고 아담한 해안 풍경이 참 예쁘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엄마의 젖가슴처럼 볼록한 해안선이
조그만 바위섬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진 곳,
고운 모래와 더불어 옥빛 물빛이 정겹다.
우린 그 배경의 주인공으로 서기 위해 연출에 열심이다.
누가 주연인지 조연인지 그저 즐거운 비명으로~~
부드러운 모래가 발에 밟히는 감촉이 마치 밀가루를 밟는 듯하다.
한 무더기 복어새끼들이 노니는 후미진 바위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평화를 엿본다.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초점을 맞추어도 드라마 속 그림이 되는 풍경,
그 작은 아름다운 풍경을 눈과 가슴에 담는다.
조금 더 머무르고픈 욕심을 뒤로 하며 고픈 배를 해결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한다.
이른 새벽 출발한 터라 모시떡으로는 요기가 되지 않았을 터 다들 배고픈 표정이 역력하다.
대마도에서의 첫 식사, 和 식당, 카즈라고도 하는 곳, 일본식이다.
튀김 몇 조각, 회 몇 점, 그리고 밥과 국수 몇 롤, 단무지 두 조각 등,
정말 일본사람들의 소식하는 습관이 그대로 밥상위에 펼쳐져 있다.
식사 후 향한 곳은 부산이 멀리 보인다는 한국전망대,
구름이 방해꾼처럼 뿌옇게 시야를 가려 부산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 앞에 위치한 비석, 1703년 역간들 112명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이 새겨진 비다.
전망대 앞 바다가 와니우라라고 하는 곳으로 와니란 악어라는 뜻이란다.
이 뜻만 봐도 이 앞바다의 거셈을 알 수가 있었다.
그 곳을 지나던 우리나라의 많은 역관들이 희생을 당했다니~~· 비 앞에서 엄숙해진다.
비석 앞에는 한 그루 백정화라고도 하고 단정화라고도 부르는 나무가
단아한 하얀 꽃을 피우고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이 역관들의 억울한 눈물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말벌의 위협이 대단한 곳을 떠나
다음은 아소만을 360도로 둘러 볼 수 있는 에보시다케전망대로 향했다.
대마도에서 유일하게 동서남북 사면을 전망할 수 있는 곳,
계단을 딛고 올라가는 길 푸른 초목들이 싱그러워 깊게 심호흡을 한다.
60M쯤 오르니 정상,
올망졸망 우리나라의 다도해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풍경이 눈 아래 펼쳐진다.
옹기종기 섬들이 마치 소꿉장난을 하는 듯하다.
어쩜 베트남의 하롱베이도 연상케 하는 곳이다.
한국전망대에서 구름이 껴 시야가 흐렸었는데
이곳엔 맑게 개인 하늘아래 시야가 탁 트여 멋진 모습이 한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푸른 하늘엔 솔개 두 마리가 멋진 군무를 펼치며 우리 머리 위를 돌고 있다.
힘찬 세레머니의 몸짓, 떠나지도 않고 허공을 힘차게 돌며 우아한 날개를 펼쳐 무희를 선보인다.
아소만의 몇 겹의 섬과 바다 위 크고 작은 올망졸망한 섬들, 리아스식 해안의 아름다운 모습,
그곳에서 멋진 장면을 남기려 풍경이 된 웃음들을 하늘로 날린다.
솔개의 춤사위에 보답이라도 하듯…….
다음은 와타즈미신사, 돌로 된 문,
토리이라고 불리는 문이 5개있는데
3개는 바다 쪽에 있고, 2개는 육지 쪽에 있는데 만조 때는 물에 잠긴다한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2개의 문이 바다에 잠겨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물씬 자아내고 있었다. 마치 바다로 향하는 신기루 같은 느낌~
우리는 직무천왕의 아버지와 아들이 묻힌 곳에서
꽃을 의미한다는 하나와 돌을 의미한다는 이와의 설화를 들으며
숲이 우거져 원시림 같은 느낌의 길을 걷는다. 기인 푸른 호흡을 하며~
돌로 된 문, 우리나라의 일주문 같은 신사의 문을 통과한다.
유달리 무속신앙을 많이 믿는 일본인들의 풍습,
그 품은 내막은 태풍, 지진 등 자연재해에 나약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
무엇이든 붙잡고 매달리고 싶었던 마음을 드러낸 곳이란 느낌이들었다.
그리고 특이한 점, 대마도의 신사가 거의 우리나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거목을 타고 오르는 넝쿨식물의 싱싱함에 우리의 기운을 더해둔다.
다음은 만제키바시다리(만관교)로 향한다
원래 대마도는 상대마와 하대마가 붙어있던 섬이었는데
군사적 목적으로, 러일전쟁 직전 일본이 함대를 숨기기 위해
인공적으로 대마도의 아소만과 접해 육지부가 가장 좁았던
이곳을 절단하여 만을 만들었다고 한다
1897년에 굴착을 시작하여 1900년까지 운하를 완공하였고,
그 인공운하 상부에 교량을 놓아 상대마와 하대마를 연결한게 바로 만관교란다
두 개로 나뉜 대마도를 하나로 이은 빨간색의 다리,
영도다리와 비슷한 느낌의 작은 다리가 우리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그런데 웃음 지을 곳이 아닌
우리나라로서는 뼈저린 아픔이 스며있는 곳일 줄이야!!!
일본은 이 운하를 이용해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무찔러 승리했고
그로 인해 러시아의 항복을 받아내고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일본에겐 전승의 다리지만 우리에겐 눈물어린 통한의 다리인 것을~~
바다의 물빛이 유난히 푸르다.
지나 간 역사 모두를 감추고, 물살은 거세게 흐르고 있다.
마치 우리의 울들목처럼…….
이제는 한국인들의 관광명소가 된 운하,
비통함에 서린 칼날 같은 눈물로 흐르는 물살을 바라본다.
곳곳에 한국관광객들을 끌기위해 새로 세운 유적지,
대마도가 한국 땅이 아닌 일본 땅이라는 사실에 통분 할 뿐이다.
그런 어지러운 사심을 내려놓고 다리를 건너니
붕어빵 파는 곳이 보여 1개에 130엔씩을 주고 하나씩 샀다.
한사람 앞에 한 개씩 16개 2000엔 좀 비싸다 싶었는데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밀가루가 아닌 찹쌀가루의 쫀득함과 팥고물의 달콤함이 어우러져
정말 맛있었다. 점심으로 먹은 일식이 양이 적어서이기도 했겠지만~~
두 개씩 먹게 살 걸!!! 버스는 떠난 후이고~~ 다음을 기약하며
다음 목적지 해수온천장, 온천체험시간이다.
준비해 간 세면도구와 수건을 들고 온천으로 들어갔다. 물이 무척 매끄러운 느낌이 든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니 피곤이 쫘악 풀리는 느낌,
나른해지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는 시간을 즐긴다.
목욕 후 원희씨가 사 준 냉커피 두 잔으로 일곱 잔의 커피를 만들어 마신다.
이것이 우리 가락의 알뜰 살림법이기도~~~ㅋㅋ
개운하게 온천욕을 끝내고 이즈하라 시내로 진입해
호텔에 여장을 푼 후 저녁식사를 하러갔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어 햇살이 강하게 느껴진다.
현지식 BBQ식사, 가리비조개, 소고기갈비살, 돼지고기 삼겹살, 닭고기, 튀김 등등,
일식치고는 푸짐한 식사다. 일본의 유명한 아사히맥주까지 곁들여 멋진 성찬을 즐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 먹거리까지 푸짐해 지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식사 후 우리 일행은 이즈하라 시내와 골목길을 산책하기로 했다.
식당 앞에는 하천이 흘러가고 있었는데 바닷물이 들락거리는 곳이었다.
주변 상가에 들러 멋진 모자구경,
여정님과 원희씨 그리고 운향님은 자기에게 어울리는 모자 하나씩을 골랐다.
대마도의 추억을 담으려~
그리고 깨끗한 하천을 따라 오르니 조선통신사 행렬이 벽화로 즐비하게 붙어있다.
이즈하라의 골목길, 돌담과 일본식 가옥들,
정원이 없어서인지 현관 앞마다 예쁜 꽃들이 장식되어 있는 것이 특이했다.
크지 않은 집, 작은 가옥인 탓에 현관 앞마다 예쁜 꽃들과 화분 등으로 장식해
지나는 이들까지 웃음 짓게 해주는 듯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서서히 석양이 지는 길을 즐긴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신사가 눈에 들어온다. 우람한 나무와 멋진 소나무,
우린 가이드가 없어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관광객의 본분을 지키며 여기 저기 기웃거린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우리들과는 달리 공회장님은 야생화 찍기에 열심이시다.
배안에서도 내내 독서삼매경이시더니 관광할 때는
야생화를 찾아 이곳저곳 바쁘게 뛰어다니신다.
그런 열정이 있으시니 글을 잘 쓰시나보다…….
덕분에 야생화의 이름도 많이 알게 되었다.
작고 예쁜 ‘등심붓꽃’의 앙증스러운 모습도 만나 기뻤다.
우린 조그만 틈이라도 예쁜 배경이 된다 싶으면 무조건 찰칵이다~~~
이것 또한 열정 아닐까???
서서히 어두워져가는 길을 걸어 신호등을 건넌다.
뻐꾸기 소리가 우리와 함께 길을 건너고 있다.
대마도라는 환경과 어울리는 교통 신호음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싱그럽게 느껴진다.
마치 숲속에 든듯~~
그리고 가로등도 낮게 엎드려 걷는 이들의 발등을 비춘다.
독특한 가로등이 시선을 끈다.
은은한 불빛이 발등을 비추는 곳을 걸어 유치원을 지나니
우리말로 ‘사진 찍지 마시오.’라는 글이 눈에 띈다.
아마 지나는 한국관광객들이 애들의 노는 모습을 많이 찍었나보다~
어둠이 짙게 깔리는 길을 따라 신선한 공기를 깊게 호흡하며,
맑은 하천을 따라 돌담을 끼고 오르니 공기가 정말 상쾌하다.
그때 반짝 반짝 빛나는 것은~~아!! 반딧불이다.
오랜만에 보는 반딧불이 꼭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기분이다.
다시 어둠속에서 바다 쪽을 향해 걷는다.
항구가까이 가니 오징어냄새가 진동을 한다싶더니 수루메공장이 보인다.
오징어를 일본 말로 수루메라고~~
푸짐하게 먹은 저녁을 소화가 다 될 만큼 돌아다니며 이즈하라 시내답사를 끝냈다.
부산영도 우체국과 자매결연을 맺은 이즈하라 우체국에
턱하니 걸린 우리말에 정겨움을 더하며
호텔로 돌아 와 다함께 모여 준비해간 소주와 안주들을 꺼내놓고 대마도에서
맞이하는 가락기행의 하룻밤을 기념하기로 한다.
근처 슈퍼에 가서 아사히맥주와 일본과자 등을 사서 한국맛과 일본 맛을 짬뽕시킨다.
함께 하는 분위기는 늘 즐겁다.
그리고 먼 곳에서 합류해준 운향님 덕에 자리가 더욱 정겹다.
보고픈 마음이 함께 하기에~~~ 그리고 가족 같은 가락식구들이기에~~
이명호선생님의 위트로 분위기는 더욱 달달해지고 모두에게 기분 좋은 웃음꽃이 번진다.
두둑한 찬조금 덕분에 더욱 여유가 있는 자리,
오래 함께하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접고 내일의 일정을 위해 각자 방으로 돌아가 휴식하는 시간,
난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잠을 청한다. 짝지가 없어 혼자~~~ㅠㅠ
혼자서 홀가분하게 내 몸만 챙기는 여행이 아니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신경이 많이 쓰였나보다. 몸이 노곤하다…….마치 나락에 빠지듯이~~
다음날 새벽, 경쾌한 마음으로 잠에서 깬다.
두 명의 결원 때문에 정암님, 그리고 나도 독방을 쓴 터라 혼자만의 산책,
이른 새벽 공기를 만끽해 보기로 한다.
옆방 일행들을 깨워 함께 산책할까도 했지만 곤한 잠을 깨울까봐 혼자 호텔을 나선다.
어디로 가 볼까?
어제 저녁 돌았던 길들을 더듬어 천천히 가까운 이국의 흙내음을 맡아본다.
후쿠오카보다는 부산과의 거리가 훨씬 가까운 대마도, 꼭 우리나라 땅이란 느낌이 짙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그들을 생각하면
일본을 관광한다는 자체가 거북한 느낌도 있긴 하지만…….
대마도는 우리 창원의 최윤덕장군과 관련이 깊다.
대마도 정벌 때 완연히 우리의 것으로 만들었다면 좋았을걸!~ 노래가 부르고 싶다.
“ 독도는 우리 땅 ~~ 대마도도 우리 땅!!!~~”
물론 일본국민 전체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아니겠지?
염치없고 몰지각한 정치인들이 그런 몰상식한 말을 만들어내는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어제 반딧불을 만났던 장소로 향한다. 제비 떼들의 한가로운 아침나들이와 함께 하며~~
어제는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고려문과 조선국통신사지 비를 만났다.
왠지 숙연해지는 마음을 남기며 더 걸어 오르니
이번엔 덕혜옹주결혼봉축기념비를 안내하는 팻말을 보였다.
오래된 성곽을 지나 잘 정돈된 공원을 걸으니 기념비가 있었다.
우리나라 마지막 고종황제의 딸 덕혜옹주의 슬픈 이야기,
이 대마도에서는 축제의 날이었겠지만
한 많은 조선인들의 굴욕적인 눈물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가볍게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늦은 아침식사 시간을 기다린다.
이 여행의 일정이 너무 간단한 것 같아 편하면서도 싱거운 느낌,
그러면서도 여유 있는 산책을 겸할 수 있어 한가롭다는 이점이 교차한다.
유럽 여행 때의 바쁜 일정과는 다른 여유로움이 적응이 잘 안 된다.
얼마 전 다녀왔던 터키여행도 매일 새벽 기상에 강행된 일정이어
여유로운 산책은 꿈도 못 꾸었는데,
이곳은 1박 2일의 일정에도 불구하고 너무 여유롭다.
좀 더 많은 걸 보여주면 더 좋으련만, 아까운 시간이 많아 좀 아쉽다.
다음엔 자유여행으로 이곳을 찾아 적당한 여유를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또 다른 분위기의 여행을 꿈꾼다.
아침 8시 식사시간, 다다미방에 준비된 밥상이 너무 단출하다.
다행히 국과 밥은 리필이 가능해 어르신들의 식사가 안심이 된다.
고등어 한조각과 단무지 몇 개 완두콩 두 개, 두부 한 조각, 해초무침 쬐금,
김은 등분을 해도 너무 등분을 많이 한 것 같다.
小食의 일본인들의 식사, 여기서 웃음보따리~~
여성회원 몇 분이 “여기서 한 달만 있으면 다이어트는 확실히 되겠다.”며 한마디씩 하자.
이명호선생님 “그럼 나 같은 사람은 기어나가겠네” 한바탕 웃음~~~
그렇게 유쾌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의 커피 한잔에 행복해하며
이제 이즈하라의 역사관광을 시작하였다.
처음 관광지는 호텔 바로 옆에 위치한 팔번궁신사,
대마도의 대표적인 신사의 하나로 이곳은 15대 천왕, 응신천왕의 신사,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응신천왕은 백제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란 것,
이 내용을 더 상세히 알아보면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백제 근구수대왕은 왕자 시절에,
일본에 건너가서 성무천황의 반란을 평정하고 362년에 응신천황이 되고,
성무천황의 후비인 야가하에히메를 취하여 아이부인으로 삼고,
야가하에히메가 침류대왕을 임신하니 태중에서 삼한왕, 즉 대마도왕으로 임명하고
5세에는 왜왕으로 임명하였다한다.
근구수대왕은 백제로 돌아가서 태자가 되고
고구려의 침략에 맞서 고구려 평양성(압록강)에 달려가 고국원왕을 전사시켰고
마침내 백제대왕이 되었다가 383년에 다시 일본으로 가서 예전천황이 되었단다.
제 15세 천황이 된 응신천황應神天皇(320~394)은 백제 근구수대왕近仇首大王이라는.
난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런 내용을 일본은 왜곡하여
일본서기에 신공황후는 경행천황 9년(서기 200년)에 응신천황을 임신한 채,
아이가 나오지 않도록 돌로 배를 싸고 나무로 만든 갑옷을 입고 한반도에 출병하여
삼한을 정복했다고 한다. 아무튼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이나 일본이나 다들~~~
인근 신사는 19대 대마도 도주의 아내인(혼이시 마리아) 와 그 아들을 모신 곳이란다.
산사 입구는 토리이(돌문)가 두개 세워져 있었는데,
모양은 하늘 천(天) 모양의 일주문 비슷한 구조물로
신사 입구에 세워 신역을 나타내는 일종의 문이다.
토리이에서 토리(鳥=도리)는 우리말로 새(鳥)를 나타낸다한다.
일본에서는 새가 신과 인간사이의 연결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에
새가 앉아있을 수 있는 모양의 구조물을 설치했단다.
그리고 샘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산사의 약수터와는 달리 마시는 물이 아니고,
이곳은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기 위해 이곳에서 흐르는 물로 손을 씻고 입을 씻는 곳이란다.
체험하는 시간, 이들의 풍습을 잠시 따라 해본다.
신사에 오르니 유난히 많은 석등들과 오래된 고목들이 주변 경관을 엄숙하게 만든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고려 문,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 입구에 위치한 고려 문.
대마도 번주가 살던 ‘사지키바라’ 성의 제3문으로 조선통신사를 맞기 위해 만든 것으로
현재의 고려문은 1989년 태풍으로 파손된 것을 현 위치에 복원한 것이란다.
그리고 그 옆에 위치한 조선시대 후기 한일간의 유학자 아모레모리효수가 주창한
외교원칙 ‘성신지교린’을 기리는 비를 보고
조선통신사 비 앞에 선다.
쓰시마번은 임진왜란 후 조선과의 국교회복을 위해 전력을 다하였고
그 결과 약 200년간(1607~1811) 12회에 걸쳐 통신사 사절이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단다.
이 통신사의 방문으로 이루어진 활발한 교류와 우호 관계를
21세기 한일우호의 지향점으로 삼고자 1992년 비를 세웠다는데
여전히 일본은 위안부문제, 독도문제 등. 우호는 뒷전이고
자기네들이 유치한 역사를 왜곡하는데 만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다음은 대마도 역사 민속자료관을 둘러보았다.
도내의 문화재와 고고역사자료 등, 민속자료와 조선통신사 두루마리그림 등의
귀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덕혜옹주와 결혼한 다메우키백작의 유화 그림 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가난한 백작이었지만 음악, 문학, 미술등 다방면에 두각을 보여 준 멋진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아주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아침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7시 정각이 될 때
시내에 울려 퍼지던 음악이 의아했었는데 그게 바로 다케우키백작이 작곡한 곡이란다.
아~~!!! 특별한 경험이었구나. 그 음악의 정체를 알고 나니~~~
이 역사관에서 제일 궁금한 것은 이층에 밀폐된 일기장들~~~
이것이 공개되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아침에 혼자서 산책하며 전부 돌아 본 곳이지만 가이드의 설명이 덧붙여지니
곳곳이 다시 새롭게 다가온다.
덕혜옹주는 조선 26대 고종의 딸로 1931년 5월 쓰시마번주 소 다케유키백작과 결혼하였는데
소 다케유키家 모두는 일본 황실이 보이는 쪽에서 엎드려 절을 했으나,
덕혜옹주만은 꿋꿋이 조선의 자존심을 지켜내고 일본 황실에 향해 절하지 않았다한다.
역시 한국의 황실여인이었구나!!!
하지만 덕혜옹주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잃은 슬픔과,
학우들에 의한 노골적인 따돌림으로 인해 점점 정신질환을 얻게 되고
당시 '정신병'이라는 병은 부끄러운 병으로 인식되어,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끄러워한 남편 '소 다케유키'는 처음에는 그녀를 치유하려 했으나,
그도 점점 지쳐가서 뒤에 가서는 옹주를 방에 가두고 묶어 두는 등의 학대를 했다고 한다.
1955년 이혼 후 1961년 한국으로 귀국한 덕혜옹주는
1989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별세하였다.
이곳의 비 역시 2001년 11월에 복원된 것이란다.
역시 우리나라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비 앞에는 우리나라 동전과 일본 동전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그냥 답답하고 슬퍼진다.
이곳에 서니~~~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바로 옆 크로버들에게 눈길을 돌린다.
슬그머니 앉아 네잎클로버를 찾기 시작~~ 행운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개 두 개 따다 보니 내 손바닥엔 행운이 그득 쌓여있다.
그 행운을 나누기 위해 우리 일행들에게 아침의 행복과 함께 기쁨을 전달한다.
물론 가이드에게도~~
모두 하나씩 행운을 안기고 나니 내 마음은 행복이 넘실거린다.
덕혜옹주의 눈물을 네 잎의 행운으로 지우며 화려하게 복원 된 가네이시죠(금석성)성을 올라
이끼 낀 성벽, 콩란이 무수히 자생하는 오랜 역사의 터를 돌아보고
성벽과 어울린 수국과 한 컷을 남기고
공회장님의 말씀으론 별로 배경이 되지 않은 곳에서 또 한 컷을 부탁하고
면세점으로 향한다. 일본 기념품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화장품, 약품 등등, 우린 찬조하신 분들의 고마운 마음에 답하는 선물을 준비하고
다음 목적지 수선사로 향한다. 엊저녁 식사 후 걷던 골목길을 지난다.
어제 이 근처에서 산 모자를 멋지게 쓰고 관광에 열심인 두 사람의 모습이 더욱 멋지다.
우린 골목길에서 환하게 핀 꽃들과 인사를 한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만나던 꽃들이 많이 눈에 띈다.
물 만난 고기처럼 공회장님의 카메라는 쉴 새 없이 찰칵거리고
우린 그 틈새마다 얼굴을 내어민다~~~ㅋㅋ
꽃을 찍고 싶어 하시는 그 마음 알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며~~~
그리고 도착한 수선사입구 백제의 비구니가 지었다는 정토종인 사찰
이곳에 최익현 순국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구한 말 대유학자이자 구국항일투쟁의 상징이었던 최익현선생님,
'내 머리를 자를지언정 내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는 완강했던 분,
이곳 대마도에 유배되어 순국하신 분이다.
이곳 수선사에서 장례를 치루고 유해는 부산으로 이동되었단다.
이곳에 선생의 넋을 기리고자 1986년 한일 양국의 유지들이 힘을 모아 세운 비가
우리 일행을 맞았다.
작은 절 수선사 옆에는 많은 비석들이 즐비했다.
선생님의 뜻을 기리며 우린 회장님과 함께 잠시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것으로 대마도의 관광은 끝이 났다. 이제부터 주어진 자유 시간~~
2시간 30분의 자유 시간을 즐겨야한다. 이 좁은 도시에서~~~
우린 흩어져 나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상점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좀 더 알찬 관광을 즐기기 위해
첫 코스로 찾았던 고즈넉한 팔번궁신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기로 했다.
몇 사람은 상점으로, 몇 사람은 팔번궁신사로,
우린 천천히 이곳의 분위기와 환경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진다.
신사 옆에 위치한 일본가옥의 정원에 핀 양귀비와 어울려 핀 보랏빛 꽃들,
그리고 담쟁이들이 그림을 그려놓은 것 같은 돌담에 우리의 천진한 웃음을 내려놓는다.
나이는 까맣게 잊은 지 오래~~ㅋㅋ
아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사진 한 컷, 한 컷에 담으며
다시 동심으로 돌아 간 시간을 마음껏 즐긴다.
그 와중에도 공회장님의 독서는 시작되고
우리의 철없는 시간과 멋진 여유는 살아 꿈틀거린다.
그런 멋진 장면들을 남기며 돌아다니다 그래도 시간이 여유가 있어 상가 답사를 시작한다.
예쁘고 작은 접시들이 눈에 뜨인다. 난 상가에서 싸고 멋진 선글라스 두 개를 구입한다.
천 엔짜리 두 개, 만원의 행복이다. 아직까지 시력이 좋아서 주어진 행운이다.
부모님께 받는 귀한 유산, 감사한 마음이 든다. 저렴한 선글라스로 대마도의 추억을 남기며
여행사에서 하나씩 선물한 대마도의 명물. 카스마키빵을 들고 여객선 터미널로 향한다.
하천에는 바닷물이 많이 유입되어 어제의 맑은 물빛은 사라지고 바닷물이 넘실거리고 있다.
우리의 길 떠남을 아쉬워하듯…….
여객선 터미널에 향하는 길 예쁜 꽃들이 손을 흔든다.
나리꽃 닮은 알스트로메리아가 눈을 붙든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또 찰칵~
터미널에 도착해 배 시간을 기다리며 각 각의 여유로움을 엿보는 시간을 가지고 배에 탑승,
여정님과 기행경비 결산에 온 신경을 모은다. 환전한 돈과 계산을 하려니 복잡하긴 하다.
영수증대조까지 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기행문을 완성하기 위해 부지런히 펜을 놀린다.그러다 보니 금방 부산 도착,
운향님을 부산역까지 태워주고 싶었는데
결국은 혼자 택시를 타고 가서 서운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을 알지만~~~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운향님의 목소리가 나까지 눈물짓게 한다.
우리는 참 아름다운 인연의 끈으로 엮여있구나~~~
우리 일행은 그냥 헤어지기 서운해 창원 순수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조촐한 일본식 식사와 비교되는 푸짐한 한식 상에 마냥 행복한 식사시간이다.
인정이란 게 덤으로 얹혀있는 한식 상,
모자라는 반찬은 언제든지 공짜로 시켜먹을 수 있는 살기 좋은 곳이다.
이렇게 우리의 첫 해외 기행은 끝이 났다.
마지막 결산 보고까지 끝내고 함께 참석해주신 두 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기행을 순조롭게 끝낸 것에 대해 회장님과 회원님들께도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가락카페에 펼쳐 질 우리의 흔적들을 기대하며~~~
첫댓글 똑 부러지는 사무국장님 심히 염려가 되셨던 모양입니다.하것지예 애 많이 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모자 영수증과 뒤바뀐 영수증 한 장 때문에 잠시 잠깐 혼돈을 줬지만....
시력이 약한 죄로...단디 한다고 메모까지 했는데 배부른 뒤에 정신줄을 놓아서 그만
우리가 천진하긴 했던 모양이에요. 회장님께서 다들 몇 살인지
예순 줄에 가까운 님도 저러한데 저야 뭐 철부족 당연
사무국장님께서 올려 놓으신 기행기와 사진 덕분으로 동행하지 않고도 대마도를 다 둘러보아 고맙습니다. 회원의 임무를 다하지 못해 송구할 뿐입니다. 점차 더워지는 여름날 가락님들 모두 건강하신 몸과 마음으로 영원한 현역으로 활기찬 나날을 보내시길 기원 드립니다.
사무국장님의 대미도 후기를 읽고 나니 1박2일간의 즐거움과 행복감이 생생하게 되살아 납니다. 기꺼이 동행할 수 있도록 애정을 보내주신 햇살님 덕분에 가끔씩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이 또 쌓입니다. *^^*
와! 정말 정말로 감동이다 우리 국장님 다시보게되었다.
준비하고 인솔하면서도 꼼꼼스런 1박2일의 일정을 메모로 새록새록 기억나게 후기를 적어주신 사무국장님 정말 짱!~~~~입니다^^* 흐트러지고 희미해진 추억들도 이곳에 오면 언제든 다시 볼수 있을 것 같아 감사한 마음도 함께입니다.^^
대마도 동행은 기쁘고 비동행은 샘난다. 신나는 대마도 기행은 가락문학 역사의 또 한페이지를 장식하였네요. 몇해전 대마도 가서 분통이 터졌는데 혈압오를까봐 이번기행 사양했심더. 쪽발이한테 안물려가고 잘 돌아 오셔서 다행이오. 다음엔 어디가도 신변을 위해 야와라 유단자인 나를 꼭 챙기시오------오. 일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