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자주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중에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야곱의 아내 라헬, 여왕 에스델 같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통해 중요한 인생의 교훈을 얻은 여자들 얘기가 많이 들어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나는 그것들이 철저한 사회주의자 부모 밑에서 자라는 귀여운 손녀에게 백발성성한 학자 랍비가 들려준 창세기 이야기들이었음을 알았다.
하와 할머니와 뱀 이야기는 내면생활(inner life)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할아버지의 하와 할머니 얘기는 나처럼 어린 하와로 시작된다. 하와의 아버지는 하느님인데 다른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딸한테 필요한 음식과 잠자리와 기타 모든 것을 대주신다. 거꾸로 하와는, 내가 우리 아버지에게 그러기를 요구받았듯이, 자기 아버지에게 순종한다.
하루하루 평범한 하와의 삶이 에덴동산에서 이어진다. 그녀가 따로 해야 할 일은 별로 없다. 거기 있는 모든 동물과 식물이 하와와 함께 살아가는데, 동산 중앙에 ‘하느님의 지혜’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나무가 한 그루 있다. 그런데 하느님은 이 나무에 대하여 아주 분명한 선언을 하셨다. 모든 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지만 그 나무 열매만은 먹지 못한다고 하신 것이다. 처음에 하와는 아무 문제없이 그 말씀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지혜안에서 자라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동산은 그대로지만 하와가 달라진다. 십대 소녀가 된 것이다. 하루는 그 아름다운 나무 곁을 지나는데, 가지 위에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이 말한다. “하와야, 이 나무에 맛있는 사과가 있는데 왜 따먹지 않는 거니?”
이 대목에서 할아버지는 언제나 그게 진짜 뱀이 아니라 지혜에 대한 인간의 갈망, 모르는 것의 유혹하는 힘, 신비로움이 인간에게 던지는 끝없는 매력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와의 첫 번째 교사가 된 뱀이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닌 탐색하는 인간 하와에게 말을 건 것이다.
하와는 아버지 하느님이 한 말을 기억에 떠올린다. 그 나무 열매는 따먹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와는 지금 혈기 왕성한 젊은이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 열매는 다른 열매들과 다르지 않았단다.” 하와 할머니가 그것을 먹을 때 하느님의 지혜가 그녀 내면생활의 일부가 된다. 거룩한 지혜를 자기 몸에 담은 것이다. 바야흐로 하와는 자기 몸의 모든 세포들 안에 작은 나침반인 하느님의 음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것은 하와의 후손인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과를 따먹은 일은 하와 할머니의 생활양식에 엄청난 변화를 가능케 했다. 더 이상 안전을 위해서 하느님의 집에 갇혀있을 필요도 없거니와, 자기 속에 하느님의 지혜가 들어있기에 안전한 환경에 그냥 남아있을 수도 없게 되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또 다른 데서는 불기둥으로 나타나기도 하거든. 하지만 하느님은 그것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아니란다. 그것들 모두 사람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의 형상일 뿐이야. 우리가 하느님을 알려면 그 모든 것을 의심해봐야 해.”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은 날마다, 순간마다 맹목적인 복종보다 내적 집중(inner attention)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단순한 복종보다 더 힘든 일로 보였다. 나는 하와 할머니가 참 안됐다는 느낌이었다.
현실세계의 복잡함은 우리에게 거룩한 음성을 듣는 데 힘쓸 것과 선한 삶을 위해서 져야 할 책임을 감당하라고 요구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언제나 깨어있으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내게 하와 할머니를 죄인으로보다 성숙한 어른으로 소개했다. 그 뒤 수년이 지나서야 나는 하와 할머니 이야기의 공식적 버전(official version)을 읽을 수 있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할아버지 버전의 하와 할머니 이야기에서 취할 바가 있다고 나는 본다. 우리는 전문가, 권위자, 의사, 정치인, 기술자, 교육자, 랍비, 목사, 신부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왔고, 그들이 우리에게 좋은 삶을 마련해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들에게 복종해왔다. 이제 우리 안에 있는 한 점의 은총(a spot of grace)을 찾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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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hel Naomi Remen, Kitchen Table Wisdom (Riverhead Books New York, 1996), pp. 273-276.
첫댓글 목사님 감사드립니다. 제가 궁금하고 풀리지 않았던 문제가 이것이었어요.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는 것과 그러므로~ 따르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이 우리 속의 지혜를 자라나게 하는 단초가 되는 거군요. 복종보다 더한 은총을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왜?라는 물음을 주셨고 그것이 깨어있음이 되겠군요. 내 식의 믿음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말씀도 이해가 됩니다. 아~ 감사합니다.
첫 단추 ... 내적 집중 ....어린 아이가 아닌 탐색하는 인간....성숙한 어른 ....깨어 있음..... 한 점의 은총(a spot of grace)을 찾을 때 ....
좁고 가느다란 마음이 확장되는 느낌입니다. 1+1=2인줄만 알았는데...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내면의 집중이라는 말씀에 힘을 얻어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