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장
그때 사마리아 여인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유대인인 당신이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하시나이까?"라고 하니, 이는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과는 교제가 없기 때문이더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또 마실 물을 좀 달라고 너에게 말한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으리라."고 하시니
요한복음 4장 9절 10절
1. 예수님은 사마리아여인에게 그 여인이 나를 알았더라면 믿음을 구하였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이부분과 누가복음 23장 43절을 읽고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이 헬라인과같은 이방인들과 결혼한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멸시하였습니다. 마치 우리로 보자면 일본인과 결혼한 사람들로 생각하면 비슷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을 싫어하고 한국인들도 일본인들을 싫어하는데 두 민족간에 결혼을 한 사람들의 자녀들은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낮게 생각하고 대화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수칼지방의 야곱의 우물에 있던 물길러온 사마리아 여인은 사람들이 없는 제육시 즉 정오에 뙤얕볕에 물을 길러 온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여인은 예수님이 물을 달라고 하자 왜 자신에게 말을 거는지에 대해서 대답을 합니다.
어찌보면 굉장히 뚱한 대답입니다. 이 여인의 마음이 굉장히 닫혀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예수께서는 그 답을 들으시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그 여인이 오히려 생수를 구하였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인은 또 퉁명스럽게 물을 길 그릇도 없는데 어떻게 물을 얻겠냐고 묻습니다.
이 여인이 삶의 고통에서 배어나오는 말에는 친절이나 배려라고는 전혀 없는 것이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아시는 것같습니다.
왜냐면 그 여인이 만약 마실 물을 달라고 한 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안다면 그 여인이 그에게 생수를 구하였을 것이고, 그리고 그는 그 여인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 때문입니다.
즉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아시는 것입니다. 이 여인과 비슷한 사람이 또 있습니다.
예수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시니라.
마가복음 23장 42절 43절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오른편에 있던 강도입니다.
그는 사형에 처해질 죄를 지은 강도입니다. 그런 그를 예수께서는 오늘 그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오늘 강도가 죽어서 낙원에 간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이 오른편 강도의 구원으로 구원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 이 사람을 그전부터 아시고 그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마음에서 이미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자하면 구원받는 것이고,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오른편의 강도는 믿고자 하였고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한 것입니다.
전에도 글을 썻지만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속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우리를 구원합니다.
O 그때 매달린 행악자 중의 하나가 주를 욕하며 말하기를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네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라."고 하니라.
누가복음 23장 39절
이 왼편의 강도도 구원을 바라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과는 거리가 멉니다. 마치 하인부리듯이 구원하라고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이지만 만약에 네가 그리스도라면 나를 구원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사형을 앞둔 사람의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 욕이 나오고 두려움과 고통에 번민을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이 강도는 번지수를 한참 잘못짚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행악자가 되받아 그를 꾸짖어 말하기를
"네가 동일한 정죄함을 받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행한 일에 대한 보응을 받는 것이 참으로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 잘못을 행한 것이 없도다."라고 하고
누가복음 23장 40절 41절
오른 편의 강도는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이런 말이 그냥 당연해 보이지만 이 강도 또한 사형집행중에 하는 말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고 있는 사형을 자신의 죄에 의한 댓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회개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강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강도는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들었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죄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을 알았던 것을 자신이 사형당하는 와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에 매달렸던 행악자들을 바라볼때는 이들이 처형중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눈앞에 보이는 죽음 앞에서 그들은 악인이었지만 믿음의 차이로 지옥과 낙원이 갈렸습니다.
예수를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은 수칼의 사마리아 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칼지방의 물긷던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오른쪽에 매달렸던 강도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들어서 예수님을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수칼의 사마리아여인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인생속에서 그리스도라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알았다면 그녀가 예수님께 말씀을 구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여인아, 나를 믿으라. 너희가 이 산에서나 예루살렘에서도
아버지께 경배하지 않을 그 때가 오리라.
요한복음 4장 21절
하지만 그녀가 들어서 알고 있는 것과 믿음을 갖게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알지만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그 여인에게 믿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녀가 아직 믿지 않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여인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나는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아가 오실 줄을 아나이다.
그분이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일들을 말씀해 주실 것이니이다."라고 하니
누가복음 4장 25절
그녀가 믿음으로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는 장면으로 보이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그 여인이 예수님께 순종하여 믿음을 가지게 된것입니다.
예수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하니
마가복음 23장 42절
마찬가지로 들어서 알고 있던 오른편의 강도또한 믿음을 가지는 장면입니다.
단순해 보여도 그 배경과 상황을 생각하면 믿음과 믿음없음의 큰 차이가 보입니다.
겉으로 보는 것으로는 알수 없지만 사람안에는 들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 들음으로 마음으로 믿어서 그것을 굳게 지키고 있으면 그 믿음으로 어떻게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강도짓 하가 잡혀 사형을 당하기 직전 사람과 다섯이나 되는 남자들을 옮겨다니며 죄를 짓고 살아가던 여인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두사람의 공통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또 왼편강도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습니다. 구원과 심판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 있습니다.
이런 점이 성경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 왕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4장 14절
하나님은 믿음의 기회를 주시고, 그 다음에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하나님앞에서 변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이제는 끝이 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모든 민족들에게 왕국의 복음 즉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마치 왼편강도처럼 말이죠.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이글을 읽는 당신도 하나님의 말씀 즉 왕국 복음을 전파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로마서 10장 17절
들음이라는 것이 수칼의 사마리아 여인과 강도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아주 구체적이고 체험적으로 오래 듣는 것을 말씀하지는 않으신 것같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소문을 들은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강력한 체험이나 증거를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의 죄를 대신 갚아주신 그분을 믿고 나의 죄를 그분께 회개하고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단지 그들은 소문을 듣고도 믿음을 가졌습니다. 당신은 들었습니다. 그 다음의 믿음은 당신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