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학사
제12장 오늘날의 전개양상 요약정리
성명:길태은(201455021)
제출일:2015.04.7
1.크로체와 형이상학자들
20세기의 미학적 논의가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학자인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 1866~1952)에 의해 개시되었다고 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는 미적인 것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가져왔는데, 이것은 두 가지 커다란 장점을 갖고 있다. 첫째, 이 새로운 개념은 미적 현상을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를 헤겔주의자로 인정할 만큼 상당히 관념론적인 형이상학의 맥락에서 해석하였다. 둘째, 그것은 수많은 문제들을 포용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참신하고 단순한 예술철학이다. 그의 중심적 공식인 ‘직관=표현’이, 많은 철학자들이 보기에는 심오하고도 전례없는 통찰들을 결정화한 것으로 여겨졌다.
크로체의 직관이론과 그의 예술론은 후기에 와서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두 가지의 주요한 보완 내지는 수정이 있었다. 크로체는 예술의 ‘서정적’성격을 발견했다. 다. 또한 이 직관이 언제나 하나의 정서이거나 감성적이라고 주장한다. “직관에 일관성과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감정feeling이다. 직관이란 실로 그러한 것이어서 감정을 드러내며, 또한 감정에 근거해서 감정으로부터 나타날 수 있을 뿐이다”(Ainslie역, p.247).이렇게 해서 모든 예술은 정서의 표현이다. 그리고 서정시가 그러한 표현의 전형이므로, 크로체는 ‘서정적’이라는 용어를 빌려와 이를 모든 예술에 일반화시킨다.
상이한 직관 개념이 앙리 베르그송(Henri Pergson, 1859~1941)의 철학 체계 속에 제시되어 있다. 직관―이것은 이제 “무관심이고 자의식적이며, 대상을 숙고하고 그것을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는 본능”(Arthur Mitchell역, p.176)으로 정의된다―은 실재의 핵심 속으로 들어가 우리로 하여금 철학적 진리를 발견케 한다. 이런 인식의 가능성을 ‘증명’해 주는 것이 바로 인간 속에 있는 ‘미적 능력’이다. 예컨대 화가가 어떤 생물의 경직되었거나 부드러운 성격을 묘사하는 곡선을 그릴 때, 그는 ‘일종의 공감에 의해 그 대상 속으로 자기 자신을 위치시키며, 자기 자신과 모델 사이에 놓여 있는 장벽을 직관의 노력으로 깨뜨림으로서“(p.177)움직임 그 자체를 직관한다. 그렇다면 추론적인 범주와 분석적인 성향을 갖는 지성으로서는 다가갈 수 없는 실재에게로 우리를 가까이 데리고 가는 것이 예술의 기능이다(이 주제는 또한 La Perception du Changement(1911)에 관한 베르그송의 첫 번째 옥스퍼드 강연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다).
베르그송의 미학 역시 정교하게 다듬어진 존재론적․인식론적 맥락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여기에서 이와 유사한 형이상학적 성격을 갖는 다른 몇몇 20세기의 시도들에 관해 합당한 관심을 기울여 주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2. 산타야나와 듀우이
죠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 1863~1952) ‘존재의 영역’을 네 가지로 구별했으며, 풍부한 상상력을 발동하여 자신의 가장 두꺼운 책에서 이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물질적 토대로부터 생겨나며 궁극적으로 그것에 묶여 있다. 적어도 이것이 산타야나가 보여주는 전반적인 사상이다. 산타야나는 예술에 관해(때로는 개개 예술에 대해 때로는 예술 전반에 대해)흥미롭고 인상적인 언급을 많이 하고 있다. ‘예술의 정당화’(제9장)는 다소 변명조로 다음의 요점을 지적하면서 시작된다. 즉 예술은 그렇게 해가 될 수 없으며―산타야나는 여기에서 플라톤이 이 주제에 있어서 다시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설혹 해를 끼친다 하더라도 아마 미약하고 일시적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무해(無害)가 예술의 유일한 덕목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술이 그 내재적 속성상 즐거운 것인 한, 예술은 삶 자체의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고 합리적으로 조절된 쾌의 한 경우로서의 “예술 일반은 합리적 삶의 시연(試演)이다”(p. 172). 즉 그것은 이성의 삶의 한 구성요소일 뿐만 아니라 모델이다.
20세기를 어림잡아 평가하면서 듀우이(1859~ 1952.미국의 철학자·교육학자)는 “나는 때때로 도구적 지식관을 발표하곤 했는데”(p.290), 만일 이런 점에서 지식과 대조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지막 분석(제14장)에서 다루어지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는 데 그것은 예술이 삶 및 문화의 여타 부분과 맺는 관계이다. 여기에서 듀우이는 그의 가장 깊고도 심오한 확신들 중 몇몇을 표명한다. 사회나 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마저 가로질러 인간과 인간 간의 의사소통을 촉진시키는 그 능력 때문에 예술은 인간을 교화하는 중요한 힘들 중 하나이다(p.244,332,335를 보라). 개인의 관점에서도 듀우이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는 예술의 가치를 그것의 “신선함”(p. 139)에서,―그리고 산타야나를 인용하면서 말하기를―자연적 경험 가운데서 ‘이상적인’가능성들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주는 데서 발견한다(p. 139). 도덕주의적이어서가 아니라 “선입견을 제거하고, 눈을 가리는 딱지를 없애버리고, 습관과 관례에서 생긴 장막을 찢어 없애고, 지각능력을 완전하게 해주는”(p. 325)그힘 때문에 예술은 최고의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Human Nature and Conduct (1922), pp. 160~164를 참조). 그리고 훨씬 더 심원한 능력―“우리가 하나의 전체로서 존재한다는 느낌과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는 더 큰 전체에 우리가 속해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강조하는 능력”(p. 195)― 때문에 예술은 종교적 특성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