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가 되는 고통
김소연
왜 하필 벌레는
여기를 갉아 먹었을까요
나뭇잎 하나를 주워 들고 네가
질문을 만든다
나뭇잎 구멍에 눈을 대고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나뭇잎 한 장에서 격투의 내력이 읽힌다
벌레에겐 그게 긍지였겠지
거긴 나뭇잎의 궁지였으니까
서로의 흉터에서 사는 우리처럼
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
화분에 물을 준다
물조리개를 들 때에는 어김없이
산타클로스의 표정을 짓는다
보여요? 벌레들이 전부 선물이었으면 좋겠어요
새잎이 나고 새잎이 난다
시간이 여위어간다
아픔이 유순해진다
내가 알던 흉터들이 짙어진다
초록 옆에 파랑이 있다면
무지개, 라고 말하듯이
파랑 옆에 보라가 있다면
멍, 이라고 말해야 한다
행복보다 더 행복한 걸 궁지라고 부르는 시간
신비보다 더 신비한 걸 흉터라고 부르는 시간
벌레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나뭇잎 하나를 주워 든 네게서
새잎이 나고 새잎이 난다
너를 이루는 말들
김소연
한숨이라고 하자
그것은 스스로 빛을 발할 재간이 없어
지구 바깥을 맴돌며 평생토록 야간 노동을 하는
달빛의 오래된 근육
약속이라고 해두자
그것은 한 번을 잘 감추기 위해서 아흔아홉을 들키는
구름의 한심한 눈물
약속이 범람하자 눈물이 고인다 눈물은 통곡이 된다
통곡으로 우리의 간격을 메우려는 너를 위해
벼락보다 먼저 천둥이 도착하고 있다
나는 이 별의 첫 번째 귀머거리가 된다
한 도시가 우리 손끝에서 빠르게 녹슬어간다
너의 선물이라고 해두자
그것은 상어에게 물어뜯긴 인어의 따끔따끔한 걸음걸이
반짝이는 비늘을 번번이 바닷가에 흘리고야 마는
너의 오래된 실수
기어이
서글픔이 다정을 닮아간다
피곤함이 평화를 닮아간다
고통은 슬며시 우리 곁을 떠난다
소원이라고 하자
그것은 두 발 없는 짐승으로 태어나 울울대는
발 대신 팔로써 가 닿는 나무의 유일한 전술
나무들의 앙상한 포옹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상처는
나무 밑동을 깨문 독사의 이빨 자국이라고 하자
동면에서 깨어난 허기진 첫 식사라 하자
우리 발목이 그래서 이토록 욱신욱신한 거라 해두자
⸻시집 『눈물이라는 뼈』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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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어찌 이리도 유려한가요. 그러나 왜 아픈지요. 바보스럽고, 제대로 숨기지도 못하고, 울보이고, 칠칠하지 못하고, 그런 나와 당신. 앙상한 나무들의 포옹이라니요. 내가 그렇고 당신이 그렇지요. 기웃거리고, 해찰궂고, 번복하고, 그리고 엎드려 울지요. 햇살은 이리 밝아지고 낮은 길어지는데. 그러나 돌아앉는 마음이 없진 않아요. 그래, ‘너를 이루는 말들’은 뭐 하나 반짝이지 않지만 고통이 너의 몫이고 상처가 너의 몫이니 그래, 내가 너를 마주 바라보기 위해 돌아앉으마, 그래야겠지요. 나무들은 푸른 잎들을 달고 가지와 가지의 간격을 메우며 푸르게 우뚝 서 있고, 오늘은 구름이 없고, 천둥이 자주 우는 여름보다는 조금 이른 계절이고, 이 생소한 별에 와서 나와 당신은 눈빛을 주고받고 있으니.
문태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