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한
칸차나부리를 가다
글 | 김형근 (본지 편집인)
칸차나부리 시내
태국 사찰 순례 중 2018년 11월 26일에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널리 알려진 ‘메남 쾌’ 강을 갔다. ‘칸차나부리’라는 곳이다. ‘칸차나부리’에 들어가니 가로등 위의 물고기 조작이 마치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생동감있게 만들어져 있어 인상적이었다. 한국인들도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 태국 칸차나부리주인데 방콕에서 서쪽으로 약 120km정도 떨어져 있으며 방콕에서 승용차로 3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방콕에서 온다면 버스로 올수도 있다. 이 칸차나부리주는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접경도시이기도 하며 영화 콰이강의 다리의 배경이 된 죽음의 철길( Death Railway)이 있는 곳이다. 칸차나부리에서는 방콕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산과 구릉이 자주 보인다. 태국의 관광도시중 하나로써의 역할을 하는데 칸차나부리 부근에는 국립공원도 있고 볼거리들이 꽤 있다. 칸차‘나부리를 관통해 흐르는 태국인들은 ‘메남 쾌’ 강이라고 부르는 “콰이강‘에 건설된 ‘콰이강의 다리’라는 영화와 소설 콰이강의 다리의 배경이 되었던 ‘죽음의 철길(Death Railway)’은 이 지역의 대표적 관광상품이다. ‘콰이강의 다리’와 ‘죽음의 철길’은 아직도 이벤트 성으로 기차가 지나다닌다.
한국과 별 관계없는 영화속의 다리로만 생각하고 갔는데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 다리가 한국의 현대사와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일본군의 남방 진출을 위하여 6 만 명 이상의 연합군 포로와 태국, 말레이시아 등 20 만 이상의 아시아인 노동자가 동원되었고 이중에서 1만 6천명 포로와 10만명 노동자가 죽음을 당해 ‘죽음의 철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다리를 건설할 때 일본군은 군인 수가 부족하여 이 포로들을 직접 감독한 사람들이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군속들이었다고 한다. 이 조선인 군속들은 일본군의 가혹행위와 포로들의 원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23명이 전범으로 처형 당했다고 한다.
http://m.segye.com/view/20050731000382
또 한 가지 요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태국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데 일본이 ‘죽음의 철도’라는 명칭에 제동을 걸고 있다고 한다.
칸차나부리 지도
영화 "콰이강의 다리"
https://m.news.naver.com/read.nhn…
‘콰이강의 다리’라는 영화를 잘 이해하려면 당시의 국제 정세를 먼저 알면 좋다.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하여 전선을 태평양 전체로 넓힌 것은 1941년 12월이다. 이로 인해 일본은 식민지로 만든 조선과 일본, 그리고 만주국 등을 근거지로 하여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 아시아에 진출해있던 서구 열강과 중국을 동시에 상대하는 전쟁을 했는데 이 전쟁을 태평양전쟁이라고 한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하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 나라들에 의해 포위되었다. 이렇게 되어 태평양을 통해 물자 수송이 불가능해졌다. 이런 상황이 되자 일본은 군수물자 보급을 위해 인도차이나 천연자원이 필요해졌고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이 철도가 필요하게 되었다.
콰이 강의 다리에서 필자
콰이강의 다리
콰이강 다리 부근에 있는 중국 사찰
콰이강 다리 부근에 있는 사찰에 있는 사진 자료
콰이강의 다리 부근에 있는 식당
콰이 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는 1957년, 데이비드 린 감독에 의해 제작된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국의 영화이다. 대본은 프랑스 작가인 피에르 불이 쓴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 영화는 허구지만, 1942년~ 1943년에 있었던 역사적인 버마 철도 건설을 주제로, 철교 건설에 동원된 연합군 포로들을 소재로 한 것이다.
1943년, 태국의 정글 속에 자리 잡은 일본군의 포로수용소에 송치되어 온 영국 육군의 니컬슨 대령은 소장인 사이토 대령과 무사도에 있어서 서로 통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당당한 태도로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는다. 부하들에게 처우 개선의 유리한 조건을 획득한 후에 영국군이 일본군보다 우수함을 보이기 위해서 실패만 거듭하고 있는 콰이 강의 급류에 일본군용의 교량 건설을 위한 설계를 작성하고 완성시킨다. 한편, 수용소를 탈출하여 영국군에게 구출된 미국 해군인 시어즈 소령은 영국군의 요청으로 하는 수 없이 특별부대를 안내하여 영국군 포로들이 건설한 교량을 파괴하고자 포로수용소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온다. 교량을 폭파하려다가 일본군 경비병에 발견되어 난전(亂戰)이 벌어진다. 이때, 니콜슨 대령이 보는 앞에서 소령이 일본군에게 사살되고, 특수부대원은 거의 전사하여 폭파장치 스위치를 누를 사람이 없자 현장으로 달려간다. 일본의 군용열차는 교량을 향해서 달려오고, 거의 현장에 도달될 무렵에 니콜슨 대령이 총에 맞고 비틀거리다가 폭파장치에 쓰러지면서 교량을 폭파시킨다. 교량은 파괴되면서 열차와 사이토 대령을 함께 삼켜버린다.
일본의 침략 지도
일본군을 반격하는 지도
죽음의 철도에 대한 유튜브 영상
나의 경우는 이 영화를 두번 보았다. 최근에는 한국가는 비행기 안에서 보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일본군인들이 매우 인간적으로 묘사되었다고 생각되었다. 2차 세계 전쟁 중의 일본군인들은 전쟁 승리 외에는 포로들의 인권이나 작업에 동원된 노동자들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나와 비슷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아래 글은 인터넷 검색으로 뽑은 글이다.
막상 영국 참전용사들은 오히려 일본 장교가 지나치게 인간적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태평양 전쟁의 경험 때문에 동시대를 다룬 영국 영화들에서는 일본군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출연한다. 심지어 이후에 나온 "수용소 여인" 같은 영화에서도 영국여자를 고문하고 강간하는 일본인들을 그릴 정도였으니, 이 작품에서 묘사된 일본인에 대해서 영국에서 비난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콰이강 다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경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다리에서 보는 주위 풍경은 아름다웠다. 강가에는 여러 개의 배위에 식당이 있는 선상 식당들도 보였다.
쾌이강의 다리에 부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죽음의 철도‘를 건설에 관한 자료를 모아 놓은 죽음의 철도 박물관이 있다. 나는 50여년이 지난 미주한국불교 역사에 관한 ’미주한국불교역사박물관‘ 건립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이 박물관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이 박물관은 호주에서 운영한다고 한다.
이 박물관에서는 제 2차 세계 대전 때 일본군의 강제 하에 건설된 태국과 미얀마를 연결하는 철도에 관한 역사를 다룬다. 당시 일본군은 연합군 포로, 태국인 등을 동원하여 철도를 놓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다. 박물관은 철도 구조, 위치, 당시 건설 상황과 작업 장면 등에 대한 사진과 그 장면들을 재생시켜 놓았다.
이 박물관에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한 지역과 날짜가 잘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이 지도에는 한국과 대만을 침략한 것은 기록에서 빠져있다. 타이틀은 ‘일본의 아시아 침략’ 이라고 되어 있다. 난 이 지도가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주 정부에 시정을 요구하여야 한다. 태국 주재 한국 영사관이나 대사관에서 해야 할 일로 생각이 된다.
이 박물관 외에도 시내 중심가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이 있었는데 당시에 운영되던 실제 기차를 갖다 놓았고, 직접 타 볼 수도 있었다.
이 지역에는 철도건설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을 위한 묘지가 여러 개 있었다. 박물관 앞에는 커다란 '칸차나부리공동 묘지(KANCHANBURI WAR CEMETERY)'가 있다, 여기에는 6982명의 연합군 포로들의 묘지이다. 20대 초반의 꽃다운 나이에 숨진 젊은이들의 묘지를 보면서 매우 가슴이 아팠다. 또 하나의 공동묘지도 볼 수 있었는데 이 공동묘지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았다.
‘콰이강의 다리’ 외에도 이 칸차나부리 부근에는 동국 사원도 있고, 2시간 정도 거리에는 태국 국립공원도 있다.
전쟁 묘지 공원
묘지 공원과 죽음의 철도 박물관
죽음의 철도 박물관 내의 전시물
죽음의 철도 박물관에 전시중인 사진 자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