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오리가 품었던 알들이 마침내 부화했다. 그런데 딴 새끼들과는 다르게 모양새가 미운 녀석이 한 마리 있었고 다른 새끼 오리들은 미운 새끼 오리를 괴롭혔다. 훗날 알고 보니 그 오리 새끼는 다른 오리 새끼보다 훨씬 아름다운 고니였다는 게 안데르센이 지은 동화 ‘미운 오리 새끼(The Ugly Duckling)’다.
이 동화가 주는 교훈은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종차별은 오랜 역사를 두고 존재해 왔는데 흑인에 대한 차별이 대표적인 경우다. 미국 사회의 고질이다. 1940년대 미군에서도 흑인 병사들이 지원할 수 없는 성역이 있었다. 미 해군 잠수사를 양성하는 ‘해군 다이빙 스쿨(Navy Diving School)’도 그중 하나였다.
미국 최초의 흑인 잠수사… 실화 바탕
영화 ‘맨 오브 오너(Men of Honor)’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잠수사인 칼 브래셔(Carl Brashear)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1940년대 당시로는 백인들만의 영역이었던 해군 잠수사에 도전하는 흑인 병사 칼의 의지와 집념, 그리고 좌절과 영광을 그리고 있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잠수사의 전우애가 감동적이다. 칼은 실제로 1970년 최초의 흑인 다이빙 교관이 됐으며, 의족을 한 장애인임에도 그 후 9년 동안 해군에 몸을 담았다.
백인 훈련병들의 인종차별 극복
1943년, 당시 미국 흑인들은 자기가 원하는 직업조차 꿈꿀 수 없었다. 켄터키주의 가난한 소작인 아들로 태어난 흑인 칼 브래셔(쿠바 구딩 주니어)는 해군에 입대한다. 아버지가 그에게 해준 말은 “해군에 뼈를 묻어라”였다.
함정 취사병이 된 칼은 수영 실력과 배짱을 인정받아 갑판원이 되고, 헬기 추락 사고 현장에서 활약하는 잠수사 빌리 선데이(로버트 드니로)를 보고 잠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2년 후, 100여 통의 편지를 보낸 끝에 해양구조대에 배속 받은 칼은 건강 이상으로 현역에서 물러나 훈련교관이 된 빌리 상사를 만난다. 그는 해군 최고의 수석 잠수사지만 한편으론 트러블 메이커다. 훈련병을 혹독하게 다루기로 악명이 높다. 교관 빌리와 백인 훈련병들은 인종차별적인 훈련과 빈정거림으로 칼을 ‘왕따’시킨다. 심지어 구조대를 그만두라고 압박하고 회유한다.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하는 것이다. 보다 못한 아내 조가 “왜 그토록 잠수사가 되길 원해?”라고 물었을 때 칼은 “다들 안 된다고 하니까”라고 답한다. 마침내 칼은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흑인 최초로 미 해군 잠수사가 된다.
한편 빌리 상사는 전통을 깨고 흑인을 졸업시켰다는 것과 알코올 중독이 문제가 돼 다른 훈련소로 쫓겨난다. 수년 후, 칼은 미 공군의 스페인 해안 폭격기 추락 사고에서 핵탄두 수색 활동을 하던 중 갑판에서 불의의 사고로 한쪽 다리를 크게 다친다. 하지만 칼은 의족을 하고서라도 잠수부를 계속하고자 한다. 칼을 찾아온 빌리. 빌리는 지난 감정을 털고 칼의 개인 교관을 자청, 재활 훈련을 돕는다.
“제게 해군은 사업이 아닙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장애인 칼의 마지막 희망인 잠수사 재임명을 결정짓는 법정 장면. 의족을 한 채 법정에 선 칼을 향해 해군의 변화 운운하던 군 법관이 “현재 해군사업(Business of marine)은…” 하며 말을 시작하자 칼은 그의 말을 자르고 이야기한다.
“제게 해군은 사업이 아닙니다. 전 많은 전통을 체험했습니다. 좋은 것도 있었고 나쁜 것도 있었습니다. 위대한 전통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서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군 법관은 “그게 뭔가?”라고 질문한다. 칼은 답한다. “명예입니다.”
칼은 빌리의 도움으로 마침내 법정에서 150㎏ 무게의 잠수복을 입고 12걸음을 걸어 현장 잠수대원으로 재임명된다. 인종차별과 장애를 극복하고 영웅이 된 것이다.
바다 밑 빠른 물살과 싸우는 해군 묘사
영화는 해군 영화답게 해군 잠수사의 임무와 활약상을 보여준다. 바다 밑 빠른 물살, 높은 수압, 살을 에는 추위와 싸우며 벌이는 구조 활동과 산소 호스가 얽히는 위기 상황을 동료애로 극복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명배우 로버트 드 니로의 관록 있는 연기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영화 초반 악랄한 훈련교관과 성격 파탄자에 가까운 히스테리적인 행동의 캐릭터에서 후반 휴머니티를 발휘해 칼의 후견인으로 변신하는 폭넓은 연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잠수사 칼 브래셔는 천안함 구조 작업 중 순직한 UDT의 전설 고(故) 한주호 준위를 생각나게 한다. 고인은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자신의 안전을 돌보지 않고 차디찬 바닷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후배 장병들을 구하려다 잠수병으로 세상을 달리했다. 칼은 또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다리를 크게 다친 김정원·하재헌 중사를 기억하게 한다. 두 젊은 영웅은 조국과 국민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로 고된 재활을 마치고 다시 군인으로 우뚝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