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전쟁사] <24> 퓨리(Fury), 2014
역사는 폭력적이다"
감독: 데이비드 에이어 출연: 브래드 피트, 로건 레먼
1945년, 히틀러가 자살한 4월 2차 대전 막바지 배경
독일군을 상대하는 미 전차부대 처절한 사투 그려
욕설만큼 자주 언급되는 기도문
십자가 연상시키는 전투 신 등 희생·평화를 끊임없이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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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막바지, 나치 정권의 총력전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1944년 6월 6일)을 기점으로 서부전선이 급격히 붕괴되면서 독일군은 모든 전선에서 패퇴를 거듭했다. 1945년 3월, 연합군은 라인 강을 건너 베를린을 향해 진격했고, 3월 말에는 소련군이 오스트리아 국경선을 넘었다. 한 달 후엔 이탈리아의 독일군이 연합군에 항복했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부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했다. 다음날 나치 선전가 괴벨스도 가족과 함께 자살했다. 1945년 5월 8일, 독일은 마침내 항복했다. 이로써 5년251일간의 전쟁이 끝났고 제3제국도 붕괴했다. 2차 대전으로 5000만 명이 희생됐다.
미군 전차부대의 악전고투
영화 ‘퓨리’는 히틀러가 자살한 1945년 4월, 전쟁 막바지를 배경으로 패망 직전의 독일군을 상대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한 미군 전차부대의 악전고투를 그리고 있다. 아군의 공격로를 확보하기 위해 독일 본토 깊숙이 들어간 전차병들의 처절한 사투를 담고 있다. 영화 제목 ‘퓨리(Fury, 분노)’는 미군 5명이 탄 M4 셔먼 탱크의 이름이다.
영화는 험난한 전차의 여정과 다름 아닌데, 아프리카 전선에서부터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은 퓨리 전차의 전차장 등 5명 중 신참 한 명을 빼곤 전차병 모두가 전사한다는 이야기다.
1945년 4월, 연합군은 독일의 심장부를 점령해 간다. 연합군의 공격로를 확보하라는 명령을 받은 전차부대 대장 워대디(브래드 피트)는 독일 마을을 차례로 접수해 간다. 하지만 부하 전차병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고 지원군이라고 왔는데 입대 8주의 사무 행정이 주특기인 신병이다.
퓨리 전차 일행은 최후의 발악을 하는 독일군과 공방전 끝에 한 마을을 점령한다. 워대디와 신참 로만(로건 레먼)은 거리 수색 중 여자 둘이 사는 독일인 집에 들어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려 하지만 뒤늦게 또 다른 부하 전차병들이 합석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이어 공격 명령이 떨어지고 퓨리 전차 일행은 서둘러 다시 적진으로 향한다. 하지만 탱크 퓨리는 지뢰를 밟아 서게 되고, 워대디와 4명의 전차병은 교차로에서 SS 친위대 300명과 마지막 일전을 치른다.
성경의 문구·기도문 많이 언급돼
영화에는 철학적이거나 기독교적인 대사들이 적지 않다. 독일 마을을 점령한 워대디는 한 건물에서 독일군 수뇌부가 마지막 파티를 벌인 후 집단 자살한 현장을 보고 “이상은 평화롭지만 현실은 폭력적이다(Ideals are peaceful, history is violent)”라고 신참 로만에게 말하며 전쟁의 광기를 비판한다.
퓨리 전차병들은 일상으로 욕설과 거친 말을 해대지만 성경의 문구나 기도문을 자주 언급한다. 전투에 익숙해지면서 진정한 전우가 되는 것을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식이다. 교차로에서 벌인 전투 신은 기독교 십자가를 연상시키며 희생, 안식, 평화를 은유하는 듯하다.
병사들의 트라우마 보여주는 식사 장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점령지의 독일 여자 엠바 집에서 하는 식사 장면이다. 전쟁 영화에서 가정 안의 식사 장면을 비중 있게 보여주는 것은 매우 드물다. 워대디와 로만, 엠바와 이모와의 식사 자리에 다른 부하 전차병들이 끼어들면서 벌어지는 유치하고 비열한 몸싸움은 전투 장면 이상의 긴장감과 살기가 있다. 이 자리에서 부하 전차병들은 하루 종일 말(馬)들을 죽인 사실을 털어놓으며 자신들의 거칠고 막가는 행동이 오랜 전투에서 살아남은 트라우마에서 연유했음을 알려준다.
또 다른 하나는 미군의 셔먼 탱크와 독일의 티거 탱크 간 전투 장면이다. 여타의 보병 중심 전쟁영화와는 달리, 들판에서 포를 쏘면서 전속력으로 돌진하며 벌이는 전차 간의 전투가 압권이다. 실제로 셔먼 탱크는 미군으로서는 처음으로 360도 선회포탑에 75㎜급 중포를 얹었으며, 장갑과 화력, 기동성이 우수한 전차이지만 독일 티거 탱크보다는 열등했다. 장갑이 두꺼운 티거 탱크를 1대 잡을 때 셔먼 탱크 3대가 터져야 한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티거 탱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영화에서도 4대1의 대결에서 티거 탱크가 미군의 셔먼 탱크 3대를 격파한다.
“이 탱크가 나의 집이다”
퓨리의 전차장, 워대디 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짧은 헤어 스타일로 남성미를 강조하고, 흙과 그을음으로 거뭇해진 얼굴에 전쟁의 고단함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부터 유럽까지 전선을 누빈 조지 S 패튼 휘하 제2기갑사단 소속 베테랑 전차장들 중 한 명이다. 겉으론 거침없고 터프한 전차장으로 행동하지만 속으론 동료들을 잃은 깊은 슬픔과 트라우마 때문에 혼자 괴로워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그는 영화 말미 전차가 고장 나 움직일 수 없게 되자 피하자는 부하 대원들의 말에 탱크를 치면서 “이게 내 집이다(It’s my home)”라며 최후 전투를 벌인다.
<김병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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