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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변신』
출처-<민음사>
우리도 벌레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출처-<유튜브 Gustavo (링크)>
"아!" 쥐가 말했다. "세상이 날마다 좁아지는구나. 처음엔 하도 넓어서 겁이 났는데, 자꾸 달리다 보니 마침내 좌우로 벽이 보여서 행복했었다. 그런데 이 긴 벽들이 어찌나 빨리 마주 달려오는지 나는 어느새 마지막 방에 와있고, 저기 저 구석엔 덫이 있다. 나는 그리고 달려 들어가고 있다." (중략) "너는 달리는 방향만 바꾸면 돼."라고 고양이가 말하며 쥐를 잡아먹었다.
-카프카 저, <작은 우화>
넓은 세상을 정신없이 달리다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고, 그 다음엔 고양이에게 잡아 먹히는 것. 이것이 카프카가 말하는 인생이다. 인생이 이토록 비극적인 것이라면, 사람이 벌레로 변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레고르 잠자' 에게는 그의 부모와 여동생인 '그레테', 총 세 명의 부양가족이 있다. 그레고르의 아버지는 가게 하나를 운영하다 파산했다. 그는 아버지가 빚을 진 사람이 사장으로 있는 회사 외판 사원으로 근무하며, 그 빚을 갚아가고 있었다. 동시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가장으로서 그레고르의 삶은 어둡고 힘들었지만, 그는 자신 덕분에 가족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벌레가 된 가장, 그레고르
그레고르는 새벽 5시 출발 기차를 타기 위해, 전날 자명종을 4시로 맞췄다. 하지만 눈을 뜬 시각은 6시 30분.
"큰일났다!"
시간을 확인한 그는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여러 개의 작은 다리가 달린 벌레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족들의 걱정과 질책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꿈이 아니었다. 몸은 넓적했고, 손과 팔이 사라졌다. 그 자리엔 끊임없이 제각각 움직이는 작은 다리들만 있었다.
출처-<교보문고>
그는 결국 몸을 침대에서 떨어뜨리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몸을 흔드는 것은 가능했기에, 그는 그네를 타듯 온몸을 흔들었다. 진동이 커지자 있는 힘을 다해 침대에서 몸을 날렸다.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는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그의 등에는 탄력 있는 딱지가 있어 다치지 않았다. 다만, 머리를 가눌 수 없어 바닥에 부딪혔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침대에서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시계는 이미 7시가 넘었다.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출근하지 않은 그레고르를 만나러 매장 지배인이 집에 찾아온 것이다. 몸이 아플 거라고 호소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와 누이동생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배인은 몸이 좀 불편해도 장사꾼들은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장이 얼마 전 그레고르에게 맡긴 미수금이, 오늘 그가 출근하지 않은 원인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일단 몸이라도 일으켜 세우려고 최선을 다했다.
방안 장롱에 의지해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몇 번 미끄러졌으나 힘껏 몸을 흔들어, 마침내 꼿꼿이 일어섰다. 하반신에 타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고, 바닥에는 그의 발바닥에서 분비된 점액이 묻어 있었다. 그레고르는 가까이 있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던져, 그 가장자리를 작은 다리들로 꽉 붙잡았다. 겨우 몸을 가눌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목표는 8시 기차라도 타는 것이었다.
출처-<교보문고>
방문을 열어야 했다. 입으로 열쇠 구멍에 꽂힌 열쇠를 돌려 보려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턱 힘은 세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힘으로 열쇠를 움직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입으로 열쇠를 물고, 온몸의 중량을 실었다. 입에서 갈색 액체가 나와 방바닥으로 뚝. 뚝. 떨어졌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문 가장 가까이에 있던 지배인이 "오!"하고 소리쳤다. 어머니는 그에게 다가오는 듯하더니 아버지의 두 팔에 안겨 쓰러지고 말았다. 이내 지배인은 몸을 돌려 아주 조금씩 문을 향해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발바닥을 불에 덴 사람처럼 재빨리 몸을 움직여 집을 빠져나갔다. 지배인이 도망치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는 정신을 차린 듯했다. 그는 식탁 위에 놓인 신문을 집어 들어 흔들었다. 발을 쾅쾅 굴러 그레고르를 다시 방 안으로 몰아넣으려 했다.
벌레로 살아가기
어스름한 저녁 무렵, 그레고르는 혼수상태와 같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를 다시 방으로 몰아넣으려 한 아버지의 발길질에 작은 다리 몇 개에서 피가 흘렀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몹시 배가 고파졌다. 문 쪽에서 달콤한 냄새가 났다. 잘게 자른 흰 빵조각과 우유가 담긴 접시가 놓여 있었다. 사랑하는 누이동생이 가져다 놓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레고르는 자신에게 더듬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 안이 어두웠기에, 그것으로 서툴게 방을 더듬었다. 작은 다리로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몸을 밀어 나갔다. 드디어 우유 속에 머리를 박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레고르는 실망했다. 웬일인지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우유가, 혐오스러울 정도로 맛이 없었다. 그는 다시 방 한가운데로 이동했다.
「그는 서둘러 소파 밑으로 기어들어 갔는데, 거기서 그는 등이 약간 눌리고 머리를 들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곧 아늑함을 느꼈고 다만 너무 넓적해서 머리를 소파 밑으로 완전히 집어넣을 수 없는 것이 유감일 뿐이었다.」
출처-<Luis Scafati>
다음날 이른 아침, 누이가 방문을 열었다. 누이는 소파 밑의 그를 보고 너무 놀라 밖에서 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러나 곧 자기 행동에 후회라도 한 듯,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와 빵과 우유를 살펴봤다. 누이는 그것들이 그대로인 것을 확인하고 나갔다. 다시 들어와 헌 신문지 위에 반쯤 상한 오래된 야채, 저녁 식사에서 먹다 남은 소스 묻은 뼈다귀, 건포도 몇 개, 그리고 치즈 한 조각과 마른 빵 등을 펼쳐 놓았다. 그리고 접시 하나에 물을 따르고 방을 나갔다.
「그는 치즈, 야채, 소스를 정신없이 잇달아 먹어 치웠다. 반면 신선한 음식은 맛이 없었고, 냄새조차도 견딜 수 없어서, 까먹고 싶은 것들을 그것들로부터 조금 끌어다 놓기까지 했다.」
누이가 다시 들어오자 그레고르는 소파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는 툭 불거진 눈으로, 그가 먹지 않은 음식과 남긴 음식을 빗자루로 쓸어 양동이에 쏟아 넣고, 나무 뚜껑으로 잽싸게 닫는 누이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레고르는 날마다, 이렇게 음식을 받아먹었다.
그가 변신한 지 한 달이 흘렀다. 이제 벽과 천장을 이리저리 가로질러 기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일이 가장 즐거웠다. 마룻바닥에 누워 있을 때보다 한결 자유롭게 숨 쉴 수 있었으며, 가끔 행복에 겨워 방심 상태로 있다가 바닥에 털썩- 덜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상처는 입지 않았다. 전과 다르게 몸을 마음대로 놀릴 수 있게 되었다. 누이 역시 그레고르의 이런 유희를 눈치챘다. 그가 기어 다닌 곳에는 점액질의 흔적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1916년, 카프카의 <변신> 초판 표지
출처-<나무위키>
누이의 호의와 그레고르 등에 박힌 사과
누이는 그레고르가 보다 자유롭게 기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의 세간을 치우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의 호의는 그레고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자기 방이 텅 비워지는 걸 그는 절대 원하지 않았다. 그의 정든 가구를 치운다는 것은, 그의 방이, 벌레가 사는 동굴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람으로서의 과거가 지워지는 것과 같았다.
혼자서 가구를 옮길 수 없었던 누이는 어머니를 불렀다. 덕분에 그레고르는, 그가 변신한 이후로 처음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가 너무 놀라지 않도록 이불 홑청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는 소파 위에 우연히 던져진 홑청같이 보이게 되었다. 두 여자는 끙끙대며 밖으로 가구를 내갔다.
학창 시절, 그리고 얼마 전까지 사용했던 아끼던 책상이 실려 나갔다. 그레고르는 견딜 수 없었다. 무언가 하나라도 지키고 싶었다. 그때 텅 빈 벽에 걸린 여자 사진이 눈에 띄었다. 어머니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것 하나만큼은 구하고 싶어 홑청에서 급히 기어 나왔다. 그리고 액자 유리에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유리는 그의 배에 기분 좋게 와 닿았고, 그를 꽉 잡아주었다.
「어머니는 옆으로 비켜서면서, 꽃무늬 벽지 위의 거대한 갈색 얼룩을 보고 말았고, 자기가 본 것이 그레고르라는 것을 의식하기도 전에 울부짖는 잠긴 목소리로 "오 하느님, 오 하느님!"하고 소리치더니, 모든 것을 포기하듯이,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소파 위로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출처-<Luis Scafati>
그가 변신한 이래 처음, 누이가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누이는 기절한 어머니를 깨울 약을 가지러 옆 방으로 달렸다. 그레고르도 그녀를 돕기 위해, 액자 유리에 단단히 달라붙어 있던 몸을 무리해서 떼어냈다. 누이가 있는 옆방으로 기었다. 약병을 뒤지던 누이가, 뒤에 와 있는 그레고르를 보고 놀라 약병 하나를 떨어뜨려 깼다. 깨진 유리 조각 하나가 그레고르 얼굴을 상하게 했고, 부식성 약품이 얼굴에 흘러내렸다.
누이는 쓰러진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문을 발로 쾅 닫았다. 그레고르는 자책과 걱정으로 마음 졸이며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벽, 가구, 천장할 것 없이 정신없이 기었다. 절망감을 느낀 그는, 책상 한복판에 뚝. 떨어졌다. 그때, 아버지가 들어왔다. 그레고르는 아버지의 오해와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행동으로 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아버지가 현관에 들어서면서 자기가 즉시 자기 방으로 되돌아가려는 최선의 의도를 품고 있으니, 그를 쫓아 들여보낼 필요는 없고 문만 열어주면 그가 곧 사라지리라는 점을 바로 알아볼 수 있게끔, 자기 방문으로 얼른 도망쳐 문에 몸을 찰싹 붙였다.」
출처-<교보문고>
하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고려할 기분이 아니었다. 양 소매를 걷어붙이고 얼굴을 찌푸린 채 그레고르를 향해 다가왔다. 그레고르는 아버지를 피해 달아났다. 아버지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면 그도 따라 멈췄고, 아버지가 재빨리 다가오면 그도 서둘러 달아났다. 아버지의 한 걸음이 그에게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움직임을 요구했다. 그렇게 둘은 방을 몇 바퀴 돌았다. 그레고르는 지쳤고, 눈에 띄게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그때, 아버지는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하나씩 꺼내, 그레고르를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바로 사과였다.
「약하게 던진 사과 하나가 그레고르의 등을 스쳤으나 상처를 입히지 않고 떨어졌다. 바로 또 날아온 것은 그러나 그레고르의 등에 호되게 들어가 박혔다.」
자력으로 살게 된 가족들
그레고르는 저녁 무렵이 되면, 언제나 거실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거실에서는 보이지 않게, 어두운 방에 누워 식탁에 모여 앉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그는 그 시간이 좋았다. 이날도 그레고르는 등에 사과가 박힌 채 가족들의 대화를 몰래 엿들었다.
출처-<교보문고>
아버지는 파산 이후 일을 하지 않았고, 누이는 바이올린을 켜고 싶어 했다. 변신 전, 그레고르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는 점원 보조원에서 외판 사원이 됐고, 그 일은 작업의 성과를 즉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이었다. 처음 식구들은 그가 벌어온 돈을 감사하게 생각했으나, 그들은 점점 그것에 익숙해졌다. 가끔은 낭비도 했다. 그러나 그레고르는 이 모든 것을 불평 없이 감당했다. 나중에는 누이를 음악 학교에 보내기 위한 계획까지 세웠다.
그레고르가 더 이상 돈을 벌어 올 수 없게되자, 가족들은 자력으로 생계를 이어야 했다. 그레고르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늘 침대에 누워 팔을 들어 올려 반가움을 표현하던 아버지. 이제 그는 제복을 입고 하급 관리들의 아침 식사를 나르는 일을 한다. 어머니는 양장점 란제리 바느질 일을 하고, 누이는 가게 점원 자리를 얻었다. 가족들은 지금 사는 집의 방 하나를 비워 하숙을 놓고, 나중에는 작은 집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웠다.
「이 닳도록 일하고 지칠 대로 지친 식구들 중에서 누가, 꼭 필요한 것 이상으로 그레고르 걱정을 해 줄 시간이 있겠는가?」
출처-<교보문고>
가족들은 점점 지쳤다. 유일하게 그레고르를 챙기던 누이마저, 아침 출근 전 그에게 아무 음식이나 발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저녁에 돌아와, 그가 그것을 먹었는지 확인하지 않고 빗자루로 한 번 휙- 쓸어 버렸다. 방 청소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벽을 따라 더러운 띠가 생겼고, 방에는 여기저기 먼지 덩이와 쓰레기가 널렸다. 그레고르는 먼지를 쓰고, 실오라기, 머리카락, 음식 찌꺼기를 등과 옆구리에 달고 다녔다. 음식도 먹지 않았다. 장난삼아 한입 물고 있다가 뱉어낼 뿐이었다. 그 와중에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얼른 나아서, 다시 가족들을 보살피고 누이를 음악 학교에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며칠 밤낮을 그레고르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이따금씩 그는 다음번에 문이 열리면 가족의 문제를 전과 똑같이 자기가 떠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등에는 여전히 사과가 박혔다. 아무도 빼주지 않는 그 사과는 그레고르 등에서 썩어갔다.
그레고르의 죽음과 가족 소풍
출처-<Luis Scafati>
「"저는 이 괴물 앞에서 오빠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겠어요. 우리는 이것에게서 벗어나도록 해 봐야 한다는 것만 말하겠어요. 우리는 이것을 돌보고, 참아 내기 위해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다했어요."」
어느 날 저녁, 모두를 놀라게 한 그 사건 이후, 누이가 한 말이다. 그레고르는 그 일이 전적으로 본인 책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한, 누이동생의 마음을 이해했다.
거실에서 악기 소리가 들렸다. 저녁 식사 후, 하숙생들 앞에서 누이가 바이올린을 켠 것이다. 방에 조용히 누워있던 그는, 바이올린 소리에 매료됐다. 자신도 모르게 누이가 연주 중인 거실로 기어갔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버러지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누이를 곁에 앉혀, 그녀를 음악 학교에 보내주겠다는 그의 확고한 뜻을 전달하고 싶었다. 아마 그녀가 감동의 눈물을 쏟으리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출처-<교보문고>
하숙생 중 하나가 그레고르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징그러운 벌레의 등장에 놀란 하숙생들은 환불을 요구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몸을 돌려 서둘러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사과가 박힌 몸으로,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못해 야위고 힘없는 그에겐, 몸을 돌리는 일조차 힘들었다.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몸을 틀었다. 방에 도착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의 등에 박힌 썩은 사과와, 온통 부드러운 먼지로 덮인 곪은 부위 언저리도 그는 어느덧 거의 느끼지 못했다. 감동과 사랑으로써 식구들을 회상했다.」
그날 이후, 방에 갇힌 그레고르는 어느 날부터 통증이 잦아들다가, 마침내 아주 없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머리는 힘없이 떨어졌고, 콧구멍에서 마지막 숨이 새어 나왔다.
출처-<교보문고>
그레고르의 시체를 확인한 어머니는, 비로소 그의 몸이 납작하게 말라 있음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신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누이동생은 이따금 아버지 팔에 얼굴을 묻었다. 그들은 가족 테이블에 앉아, 세 통의 결근계를 작성했다. 오늘 하루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전차를 타고 교외로 향했다. 여러 달 동안 하지 못했던 가족 소풍을 떠났다.
「그리하여 그들의 목적지에 이르러 딸이 제일 먼저 일어서며 그녀의 젊은 몸을 쭉 뻗었을 때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좋은 계획의 확증처럼 비쳤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은 언제나 옳은가
가족이란, 혈연이라는 생명체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만들어낸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강력한 것이고, 가족에 대한 사랑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 됩니다. 그렇기에 직장 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솟지만, 가슴에 묻고 가족을 위해 참아냅니다.
드라마 <미생> 中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 야외 일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견디게 하는 힘도 가족이며, 본업이 끝나고 피곤한 몸으로 다시 오토바이 배달로 추가 수입을 올리는 것도, 대부분 가족을 위해서입니다. 심지어 배우자의 외도라는 참담한 현실 앞에서도 자식을 생각해 가정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배신감마저 극복하게 하는 가족. 가히 위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족에 대한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훼손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별난 존재는 철저히 사회적 산물입니다. 인간이라면 예외 없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딘가에 소속됩니다.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 사고 체계와 삶의 양식을 학습하게 되며, 타인과 관계를 맺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 즉, 이 관계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족 역시, 사회적 관계와 체제의 산물입니다. 가족을 구성하는 것도 인간이기에. 단지 핏줄이나 본성, 본능이 아닌 자신이 속한 사회 생산 양식이나 문화 양식에 따라 조직, 운영됩니다. 사회 체제 변화로 가족 존재 방식도 변화하는 것이죠.
과거 농경 사회에서는 가족 공동체가 가장 기본적 생산 단위였습니다. 그리고 가족을 유지하는 것이 곧 신분제라는, 불합리한 체제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나 '가화만사성'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표현한 것입니다.
"부르주아 계급은 가족 관계조차 감상의 장막을 걷어버리고 순전히 금전 관계로 만들었다."
-카를 마르크스
오늘날, 가족 유지를 위해, 가족에 대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가 자본주의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톨스토이 저, <안나 카레리나>
톨스토이가 현시대 사람이라면, 아마 위 문장을 수정했을 것입니다. 가정은 생산, 소비의 토대이자 사적 소유의 기본 단위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행한 가정의 모습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다시 말해, 불행한 가정은 보통 풍족하지 않습니다.
출처-<교보문고>
우리 사회 '착취와 수탈'의 관계가, 가족 내에서는 '기생과 숙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내가 가족의 숙주라는 걸 깨닫는 순간, 자신을 버러지 같은 존재라 생각하는 건 그리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반응입니다. 이것이 '그레고르 잠자'가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신한 이유일 것입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은 언제나 옳은가. 이제 이 질문에 대답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미 답변을 생각한 독자도 있을 것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의 생각, 경험 그리고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단,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희생은 사랑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랑은 행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인데, 희생은 행복과 대립 지점에 있습니다. 영화 한 편이 떠오릅니다. 기러기 아빠의 삶을 다룬 영화 <마지막 휴가>. 영화 속 '오 부장'은 아들과 아내를 미국에 유학 보내고, 외롭게 삽니다. 힘들게 번 돈은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냅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개월. 소식을 들은 가족은 그에게 매정합니다. 그의 인생 모든 것을 바쳤던 가족은, 마지막까지 그에게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고독 속에서. 고통 속에서. 그는 홀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합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남은 가족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가족이 아닐 것입니다. 만약 내가 가족의 행복을 위한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이 내 의지에 의한 것인지 혹은 우리 사회의 가족 이데올로기 탓인지 한 번쯤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인간다운 삶'과 '버러지의 삶'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이 스물여덟 번째 인생을 소개하며 든 생각입니다.
/ 딴지일보 인빅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