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이 공회 앞에서 구약 성경을 관통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때
사도 바울은 모세 율법에 능통한 자로 교회를 핍박하는 포행자였습니다.
복음의 의식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난 스데반에 비해
사울은 복음의 의식이 전혀 없는 그리스도 밖의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정통으로 배운 바리새인이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율법적인 유대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구약 성경을 배경으로 한 유대교적 신앙으로 투철하였지만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 대학에서 가르치는 인본주의 학문으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학문을 하지 않는 대학의 교육은
상아탑의 지성을 꽃피울지라도 생명의 샘을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질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 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힘업어 생명을 얻는 학문은 영원한 창조적 생명의 능력을 갖게 합니다.
헛된 교육의 열정은
참된 인격과 품성을 가진 인재를 생명의 샘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조화는 아름다우나 생명의 향기가 없어
나비와 벌들이 찾지 않습니다.
나비와 벌들이 찾지 않는 조화를 만들어내는 지식 교육과 열정은
오늘날 우리 교육의 척박한 현실이요, 비참한 실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위대한 가말리엘 문하에서 정통으로 공부하였지만
생명의 그리스도를 발견하기는 커녕 오히려 핍박자의 선봉장이 되었던 사울은
헛된 교육과 학문의 열정을 쏟는 우리 시대 일그러진 모습, 허망한 자화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울의 다메섹 도상은
최선을 다한 삶의 열정을 불태운 화려한 인생무대였습니다.
오늘날 메스컴의 영상 문화를 주도하는 아이돌과 나가수,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와 스포츠 등
나름 최선을 다한 삶의 열정을 불태우는 무대입니다.
바로 사울의 다메섹 도상의 정상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이시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며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난다는 사실을 성경은 잠언으로 교훈합니다.
사울의 다메섹 도상은 자신이 마음으로 경영하는 자기 인생의 정상이었으나
하나님은 뜻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으로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빛의 복음으로 받은 사울은
교회의 핍박자 사울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광채를 하나님의 은혜로 입은 사울은
인생의 정상에서 완전한 터닝포인트를 하였습니다.
이전과 이후의 분명한 삶의 패러다임을 가진 사울은
인생역정의 반전이 하나님의 뜻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울의 회개는 눈물짓는 감성적 회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터닝포인트로 변화 그 자체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광채를 하나님의 은혜로 입은 바울은
자기 주도적 인생에서 하나님의 뜻을 담아내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 쌓은 유대교적 인생의 열정은 다 무너지고 ......
하나님의 뜻이 은혜로 임하여 새롭고 산 길을 하나님의 종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가말리엘 문화에서 열정의 학문으로 배웠던 인생관과 세계관과 가치관은
교회를 핍박하고 박해하는 파멸의 덫일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참이요, 진리라고 생각하였던 모든 가치가 무너지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새로운 믿음과 사랑의 자아가 세워졌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핍박자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이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뜻이요,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은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구하는 기도 신앙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종교적 열정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따스한 봄을 맞듯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은 사단의 역사요,
기복과 무속 신앙으로 사단의 주구들이 추구하는 인본주의 신앙입니다.
부활 신앙은 종교적 열정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체험을 갖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곧바로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믿음이요,
부활의 은혜를 입은 사랑이요, 충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선 인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역동적인 삶을 성령의 역사로 그 아름다운 흔적을 가집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종"이란
모세의 대명사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하여 반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도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온전히 전파하며 증거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바울의 증거는
바울 서신을 통하여 성경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바울 서신에 담겨진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바울의 증거와 이해는 하나님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종인 사도로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는 믿음으로 영생의 구원을 얻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증거를 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선택은 복음의 증거를 받은 사람의 믿음으로 주어지지만하나님의 은혜요,
구원하시는 성령의 주권적인 사랑의 역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로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또한 사도 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요,
죄인의 괴수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을 얻었으며 사도의 직분을 하나님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종으로 쇠사설에 매인 몸이 되어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바울은 자기 앞에 열려진 새롭고 산 길을 전력으로 질주하며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전파하였습니다.
이전 것은 잊어 버리고 앞으로 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길을 달려갔습니다.
바울은 뛰고 달리면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충성스럽게 전파하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전령이 되어 율법 아래 있는 자들과 율법 밖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법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의 그리스도 이해는 기존 가치의 세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주젹이었으며 하나님 나라의 중심이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빛의 복음으로 받은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 메세지로 삼았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완전한 인류의 구원과 우주적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소통의 복음으로 확립하였습니다.
바울의 그리스도 이해는 성경으로 공인받은
그의 서신서 전반에 걸쳐 녹아져 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복음의 광채 받은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키워드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복음 메세지로 담아내었습니다.
바울의 그리스도 이해는 복음, 그 자체이며
아들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탄성을 그대로 가졌습니다.
만상을 그 수효대로 이끌어 내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창세 전에 예정한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로
영원히 이루었다는 탄성을 찬송의 메아리로 가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완전한 계시자인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로
어버지의 아들이 되고 아들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성령으로 이루시는 놀라운 은혜를 탄성으로 가졌습니다.
"죄와 벌"의 문제를 그리스도 예수의 흘리신 피로
구속의 은혜를 베푸시는 복음 진리의 구원관을 확립하였습니다.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영광의 찬송이 되는 복음 메세지를 성경으로 기록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로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가 되는 만유의 주요,
만왕의 왕으로 우주적 하나님 나라 통치자인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는 몸인 교회와 지체인 성도들과
유기체적인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영원한 성전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바울의 교회라는 개념은 통상적인 교회가 아니라 우주적 하나님 나라로서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으로 통치하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 개념입니다.
바울의 그리스도 이해는 한낱 관념이나 이념이 아니라
내 안에 살아계시는 주라는 통전적인 믿음, 그 자체였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왕으로 성전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내 안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통전적인 생명의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의 인본주의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유사 기독교의 기복과 무속 신앙을 추구하는 인본주의 신앙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주도하였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등이
중심인 유대교적 사이비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인본주의 신앙이란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며, 존재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오늘날 기복과 무속의 인본주의 신앙으로 기독교 엑소시스터 문화를 주도하는 초대형 맘몬 교회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바울의 이해를 기복과 무속으로 혼합하여
종교 다원주의 형태의 문화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마져 세속적인 타락한 종교적 이익의 재료로 사용하여 "긍정의 힘"을 극대화시키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부당한 도전으로 종교적 바벨탑을 쌓는 모습은
종말론적 심판을 불러오며 앞당기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의 그리스도 이해는 순전한 복음, 그 자체이며
신념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유기체적인고 통전적인 생명의 믿음으로
구원을 이루어 하나님 나라와 하나되는 소통을 가졌습니다.
언약 신앙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백성의 하나님이 되는 언약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아들의 아버지 되는 새언약의 본질로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법으로 영원히 성취하였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이요, 복음의 본질이며.....
바울이 그리스도를 이해한 순전한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