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눅 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눅 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회개하다'의 헬라어 원어는 '메타 노이아'라고 발음하는데 뜻은 'change of the mind'로 말 그대로 '생각을 새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얘기를 처음 듣는 분들은 '생각만 바꾸면 되냐?'고 하는데 그러면 저는 '한번 해 보십시오'라고 답해 드립니다. 생각(mind)을 바꾼다는 것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나의 일부(생각)를 바꾸는 것이고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생각을 새롭게 하기'가 '회개'입니다. 하지만 '생각을 새롭게 하기'라는 제목의 책이라면 구입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도 '회개'라는 제목의 책은 구입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라도 사지 않을 것 같네요. 우리가 회개라는 단어를 아주 많이, 오랫동안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회 예배 순서 중에서 가장 따분했던 시간이 '회개의 기도' 시간이었습니다. '한 주간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모두 주님 앞에 고백합시다.' 그때마다 저는 생각했죠. '도대체 모르고 지은 죄를 어떻게 고백하란 말인가?'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죄 고백입니다. 그리고 죄를 고백했다고 회개한 것은 아닙니다. 죄를 고백해도 생각이 바뀌지 않아서 행동은 그대로라면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회개를 하고도 같은 죄를 또 지을 가능성은 있지만 대부분 생각이 완전히 바뀌면 결과적으로 행동도 따라서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의 행동이 바뀌었다면 그 전에 먼저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바꿨다고 단언해도 좋습니다.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다는 것이 마음 깊이 깨달아지면 허송세월한 것에 대한 슬픔이 밀려옵니다. 후회가 되고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자신이 작아지고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이러한 슬픔은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우리를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낮아지게 하고 그분이 옳고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부드럽게 해 줍니다. 내가 틀렸고 하나님이 옳으시니, 앞으로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겠다는 다짐이 회개입니다. 그것은 사실 내 능력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이기에 성령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내 힘으로 변해보겠다고 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는데 그러면 같은 죄를 또 짓게 됩니다. 원래부터 나에게는 그 문제를 극복할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나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사시는(갈 2:20)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이렇게 회개는 너무나도 좋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언제 회개를 할까요? 두 가지 경우에 합니다. 첫 번째는 돌아온 탕자처럼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고 내 한계에 도달해서 내가 나의 바닥을 쳤을 때입니다. 그때는 원해서라기보단, 자신의 상황이 고생스러워서 어쩔 수 없이 회개를 하게 됩니다. 우리 대부분은 이런 회개를 하는 것 같습니다. 더 고집이 센 사람은 바닥을 쳐도 회개하지 않다가 아예 부러져버립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셨다고 하는 데, 아닙니다. 자기가 벽에 머리를 박은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들이 하는 회개도 있습니다. 알려드릴까요? 사실 그동안 다 말씀드렸습니다. 말씀을 통한 회개입니다. 말씀을 읽으며, 또는 설교를 듣거나 말씀의 어떤 원리를 배울 때 내가 꼭 그 분야에서 고생을 하고 바닥을 치지 않았을지라도 얼른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에게 벌어진 그 일이 내 인생에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동일하게 연약한 육신을 가진 자임을 고백하면서 그 분야의 생각을 새롭게 하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삶의 경험을 통해 고생하여 바뀌는 것보다 말씀으로 책망을 받고, 지적(바르게 함)을 받아 변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제일 좋은 교육입니다.
오늘도 신랑되신 우리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로서 나의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과 다른 부분을 하나 더 내려놓는 회개를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더 가까이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