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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범어사에 가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아내의 오래된 사진에서 '梵魚寺'라는 현판을 보고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범어사에 대해 조사하던 중, 이안눌이 청룡암의 바위에 시를 새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청룡암의 '암'자를 '庵'으로 이해하고 헤맸지만 실제로는 '巖'이라는 글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梵魚寺'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건물을 찾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이 과정을 통해 불교와 불교 관련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이 주제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어도 관련 지식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상황에 대한 이해를 부탁한다
설날이 되니 아내가 몹시 그리워 마음이 허전해졌다. 예전, 아내와 함께 범어사를 다녀오던 길에 있던 빈대떡 집에서 나눴던 소중한 추억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부산 금정구 범어사는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영남의 3대 사찰로 꼽힌다.
신라 문무왕 때 건축됐으며 역사적으로도 많은 고승을 배출한 수행사찰로 유명하다. 특히 아름다운 계곡과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는 금정산 자락에 위치해 사시사철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 입구 계곡에 있는 등나무
등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 덩굴성 식물로 줄기는 오른쪽으로 꼬여 감으며 10m 이상 자란다. 보통 참등, 자등(紫藤)이라고도 한다. 5월에 보랏빛 꽃을 피우고 열매는 9월에 익는다. 작은 가지는 밤색 또는 회색의 얇은 막으로 덮여 있다. 우리나라에는 한반도 남부에서 자라는 애기등과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등나무 등 2종이 자생하고 있다. 정원수, 환경 미화용 등 조경 소재로 많이 심는다. 부산 범어사 등나무 군락은 각종 나무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 올라 20m 이상 성장하였으며, 수령은 10년 정도이다.
등나무는 수분이 많은 점질 양토에서 생육이 빠르고 수명도 길며, 공해에 대한 내성은 보통이다. 범어사 주변 지역은 이러한 생장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등나무 군락지가 형성되었다. 등나무는 다른 생물보다 생장이 빠른 편이며, 어릴 때는 이식이 용이하나 성목이 되면 쉽지 않다
범어사 등나무군락은 금정산 중턱에 있는 범어사 앞 계곡에 있다. 개천에는 집채 같은 큰 바위가 곳곳에 널려 있고 그러한 바위 밭에 등나무가 나서 소나무, 팽나무 등의 큰 나무의 줄기를 감고 올라가고 있다. 등나무가 무리를 지어 자라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부산 범어사 등나무 군락은 학술적 가치가 높아 1966년 1월 13일 천연기념물 제176호로 지정하였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천연기념물로 재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면적은 6만 5502㎡이고 현재 부산광역시 금정구에서 관리하고 있다. 등나무 꽃이 한창 필 때면 그 꽃이 구름처럼 보인다고 하여 등운곡(藤雲谷)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금정산 절경의 하나로 꼽힌다
범어사 조계문은 일주문의 역할을 한다. 몸을 굽혀야 지나갈 수 있는 낮은 문인데 이는 굽혀지는 몸만큼 마음을 낮춰 섬기는 자세를 가지란 뜻이다. 돌기둥 목조기둥이 조화를 이루는 조계문은 조선 중기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어 과거 목조 건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가 된다.
사천왕들이 수미산 중턱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있듯, 사찰에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신성한 사찰에 무시무시한 사천왕을 모신 것은 악귀의 범접을 막기 위해서이다.
또한 절을 찾아온 중생들의 마음속에 있는 잡념을 없애주는 역할도 한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 사는 신들로서 제석천을 모시고, 각기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다. 부하들과 함께 천지를 돌아다니며 세상의 선악을 모두 알아와 제석천에게 보고한다고 한다.
사천왕은 동서남북을 지키는 방위신으로 동쪽은 지국천왕이, 남쪽은 증장천왕이, 서쪽은 광목천왕이, 북쪽은 다문천왕이 지킨다.
특징을 보면 지국천왕은 오른손에 칼을 들고, 왼손은 주먹을 쥐고 허리에 대고 있거나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다. 증장천왕은 오른손에 용을, 왼손에 여의주를 쥐고 있는 모습이며, 광목천왕은 오른손에 삼지창을, 왼손에 보탑을 들고 있다. 그리고 다문천왕은 환하게 웃으며 비파를 타고 있어서 쉽게 구분이 된다.
사찰로 들어가는 3문(三門) 중 절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이다
‘불이’는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 유마거사의 불이법문(不二法門)이 유명하다.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이 불이문을 통하여 재조명되며,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전개됨을 의미한다.
또한, 불이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불(佛)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여기를 지나면 금당(金堂)이 바로 보일 수 있는 자리에 세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문을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대웅전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보제루는 들러갈 때현판은 보제루 이지만, 대웅전 앞마당에서 바라본 현판은 금강계단이라고 쓰여 있다
6.25전쟁 당시 범어사에서는 순국 전몰 장병을 안치하고 봉안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범어사 내 보제루에서는 순국 전몰장병 영현 안치소를 설치하고 , 대웅전 앞 마당에서는 6.25전쟁 전사자에 대한 추도식을 거행였다.
전쟁 이후 범어사에 안치되어 있던 전몰 장병들의 유골과 위폐는 국립서울현충원과 각 국군 묘지로 이전되었다
2023년 대한민국 정부는 위와 같은 내용을 인정하여 애국심 함양의 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보제루 바닥 밑 모습이다
범어사 대웅전은 그 독특한 건축 양식과 아름다움으로 많은 방문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장소이다. 처마의 둥근 형태와 기단의 계단에 새겨진 문양은 한국 전통 건축의 멋을 잘 보여준다.
대웅전을 한 바퀴 돌며 숨겨진 문양을 찾아보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경험일 것이다.
그곳에서 아내의 선한 미소가 나를 반기는 듯해 그리움이
더욱 짙어졌다. 그러나 그 건물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아쉬워졌다.
梵魚寺를 가보다 2
아내가 어릴 때 찍은 사진 속의 범어사 모습이다
아내의 어린 시절 사진 속 '梵魚寺'라는 현판이 걸린 건물을 찾아, 나는 경내를 천천히 걸었다.
점심을 기다리며 줄을 선 어르신들의 모습이 뱀이
또아리를 튼 것처럼 보인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고, 그들의 나날이 조금
이라도 더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사찰 입구 보행로와 차로가 나뉘는 지점에 선 네 개의 멍문을
사면에 새긴 표석
華嚴宗刹(화엄종찰)
金井叢林(금정총림)
禪刹本山 (선찰본산)
律刹本山(율찰본산)
魚山♡補寺有功碑(어산계보사유공비)
1913년 범어사의 어산계 활동을 기록하여 세원 비
下馬碑
사찰에 하마비가 설치된 것은 당시 억불숭유 정책으로 유생들이 훼불사건을 일으키는 등 사찰에서 횡포를 일삼고 불교를
어지럽히는 일이 빈번하자 전국의 주요 사찰에 하마비를 설치하도록 명했다고 전해진다
조계문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일주문은 초석 위에 둥근 목조기둥 2주를 세웠으나, 범어사 조계문은 적당히 치석한 둥글고 긴 석조기둥과 짧은 목조기둥 4주를 세워 3칸으로 구성하였다.
천왕문
다문천왕
증장천왕
지국천왕
광목천왕
불이문
신광불매만고휘유(神光不昧萬古輝猷)
부처님의 빛은 잠들지 않고 만고에 비치나니
입차문래막존지해(入此門來莫存知解)
이 문을 들어오면 알음알이는 내려놓으시라
대웅전에서 본 보제루
범어사의 주지 스님인 수불 스님은 4월 13일과 14일에 대웅전 앞 금강계단에서 제114회 보살계 수계산림법회를 열었다. 이번 수계산림에 앞서, 보제루에서는 대중 스님들이 함께 모여 계를 설하고 수지하는 의미의 ‘금강계단’ 현판을 제작하는 특별한 행사도 진행했다. 이 현판은 동산 스님이 쓴 글씨를 본떠서 만들었으며, 전각은 심무용 선생이 담당했다.
동산 스님의 원본 현판은 현재 범어사 성보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범어사는 “금강계단 현판은 계를 설하는 장소를 상징하며, 범어사에서 계맥이 이어져 왔음을 증명합니다. 보제루를 해체 후 복원하면서 기존의 현판 대신 이 현판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동산 스님의 수행 가풍을 이어간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고 덧붙였다.
수불 스님은 수계산림에서 인사말을 통해 “범어사에서 보살계가 설해진지 114회가 되었다”며, “금강계단 현판을 새롭게 만든 만큼 계율 도량으로서의 역사를 이어가고 현대적 가치도 계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범어사의 보살계 수계산림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1901년 성월 스님에 의해 공식화되었다. 현재까지 114회가 진행되었고, 올해는 고산 스님, 정관 스님, 무비 스님이 각각 전계대화상, 갈마대화상, 교수대화상을 맡아 이틀 동안 진행되었다. 약 6000명의 불자들이 참여하여 보살의 서원을 발원하며 계를 수지
했다.
청룡암
청룡암 위 소나무
이안눌(李安訥, 1571~1637)은 학문이 뛰어나고 청렴한 관직 생활로 명성을 얻었던 청백리였다. 그의 학문은 조선 후기 동악 시단(東岳詩壇)을 형성할 만큼 영향력이 컸으며, 관직에서는 예조 판서에 이르렀다.
이안눌은 동래부사로 재임하는 동안 범어사를 자주 찾았다. 그 당시 범어사의 혜정장로가 이안눌에게 시 한 수를 지어 바위에 새길 것을 요청하였고, 이는 후에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이안눌은 시를 지어 바위에 새겼으며, 이 시를 청룡암시라 한다. 현재 청룡암시는 범어사 지장전(地藏殿) 옆에 있는 청룡암의 전면에 새겨져 있다.
범어사 청룡암에 새겨져 있는 이안눌[1571~1637]의 시는 2수이다. 「청룡암 시(靑龍巖詩) 와 「범어사 증도원산인(梵魚寺贈道元山人)」으로 알려져 있다
범어사 팔상·독성·나한전(梵魚寺捌相·獨聖·羅漢殿)은 부산 범어사 대웅전(釜山梵魚寺大雄殿)의 서쪽 상단에 위치한다.
범어사 팔상·독성·나한전은 1706년(숙종 32) 이전에 건립된 이후, 1905년(고종 42) 11월부터 1906년 11월까지 약 1년여에 걸친 대공사 끝에 현재의 모습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다. 각각의 3불전(佛殿)을 하나의 건물에 융합하였는데, 중앙에 독성전(獨聖殿)을 두고 좌우에 팔상전(八相殿)과 나한전(羅漢殿)이 각각 배분되어 있다. 원래는 중앙의 천태문(天台門)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팔상전과 나한전이란 별개의 건물이 있었다.
이때의 개축 공사는 원형을 바꾼 것이 아니라, 팔상전과 나한전의 노후화된 부재를 교체하고 내부를 크게 수리하는 정도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정면 7칸, 측면 1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독성전 부분은 문틀을 하나의 통목재를 사용해서 반원형으로 구부려 만든 독특한 모습이고, 창방 사이의 삼각형 벽체 부분에는 통판(通板)으로 넝쿨 형상을 초각(峭刻)하였다.
창호도 팔상전과 나한전이 교살창인데 비해 독성전은 화문(花紋)살로 아름답게 꾸미는 등 장식 수법이 유사한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다.
범어사 팔상·독성·나한전은 간살, 가구(架構)와 평면, 입면 구성 등에서 원래의 건축 형식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한 건물에 3불전을 모신 점, 그리고 중앙에 위치한 독성전의 아치형 개구부의 뛰어난 의장과 초각 수법은 독특하고 예를 들기 힘들 만큼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평가된다.
.청련암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 소속 암자.
범어사 청련암(梵魚寺靑蓮庵)은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기록에 의하면 1709년(숙종 35) 신주 대사(信珠大師)에 의해 중창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범어사의 다른 산내 암자와 비슷한 시기에 중창되어 사세를 확장한 것으로 보이며, 3·1 운동 당시 부산 지역의 본거지였다고 한다. 현재 불문에서 전해지는 불교 금강영관(佛敎金剛靈觀)[몸과 마음과 호흡의 조화를 이루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불가의 수행 방법]을 수련하는 곳으로 유명한데 이는 현대에 들어 승려 양익이 주지로 주석하면서 불교 금강영관을 정립하고 불교 금강영관의 본산이자 산실로 자리매김하면서 비롯되었다.
범어사 청련암 입구에는 두 금강(金剛)이 강건한 자세로 지키고 있다. 주 불전인 대웅전에는 옆면과 뒷면 벽에 ‘차크라’(chakra)[물질적 혹은 정신 의학적 견지에서 정확하게 규명할 수 없는 인간 정신의 중심부]를 비롯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으며, 강현루에서는 설법이 이루어지고 있다. 범어사 청련암은 금강영관을 수행하는 곳으로 유명한데 금강료에 자리한 금강 연수원[금강영관 수련원]에서는 1950년대부터 스님들을 중심으로 많은 인재들이 기거하면서 금강영관을 수행하고 있다. 청련암에는 지옥(地獄) 중생(衆生)의 구제를 서원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지장원이 대단히 큰 규모로 자리하고 있어 사후 극락세계(極樂世界)를 염원하는 신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범어사 청련암은 범어사 계명암(梵魚寺鷄鳴庵)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범어사에서 2시 방향으로 5분 정도 오르면 사찰의 초입이 보이고 주 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지장원과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밖에 주 전각인 대자비전을 중심으로 삼성각, 법향각, 선원, 요사채 등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승려 정산이 주석하고 있으며 포교와 불법 전파에 힘쓰고 있다.
1918년에 대웅전에 봉안된 아미타불 좌상과 근대에 대웅전에 봉안된 관음보살 좌상 2점,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보살 좌상[대웅전 봉안] 등이 남아 있다. 그밖에 청련암의 건축물과 불상, 탱화는 대부분 현대에 조성된 것이다.
마음 속에는 온갖 번뇌와 갈등, 스트레스, 원망, 집착 등 욕심들이 얽혀있는데, 그런 것을 모두 벗어 던져버리라는 말이 방하착이다.
큰스님이 법문을 하시는 걸 듣고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그깨달음이 "명상 중"인 중생이 마치 졸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평안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풍경이 이렇게 소중할 줄이야
평안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풍경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힘이 있다
그곳에서 아내의 선한 미소가 나를 반기는 듯해 그리움이 더욱 짙어졌다. 그러나 그 건물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아쉬워졌다. 다음엔 성보박물관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