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권영상
혼자 출발하기
힘든 분을 위해
함께 첫걸음을 떼어드립니다.
원하신다면
가시는 그곳까지
동행해 드릴 수 있습니다.
-《동시 먹는 달팽이》 (2023 봄호)
멸치 나라 사전에는
김규학
떼 지어 알을 까고 나와
떼 지어 다니다가, 그물에도
떼 지어 들어가고
떼 지어 삶기고
떼 지어 마르고
떼 지어 상자에 담겨
떼 지어 팔려와
떼 지어 볶인 다음
떼 지어 밥상에 오른다.
혼자라는 단어는 아예 없겠다.
멸치 나라 사전에는
-『동시 동물원』 (2022 도서출판 LH)
배움의 끝은
김주안
문화센터에서
영어도 배우고
중국어도 배우더니
주말농장 하며
상추, 오이, 고추랑 말하는 우리 엄마
새로운 언어를 또 배우는가 보다
-『시간을 당겨 쓰는 일』 (2024 도서출판 소야주니어)
휘파람새
박희순
바람이 왔나 봐요
웃음소리가 들리는걸요.
새 한 마리 날아든 숲속에서
나무가 저리도 흔들리고 있는 걸 보면.
함께 놀던 바람이
새가 되어 온 게 분명해요.
-《열린아동문학》 (2023 겨울호)
해2
손동연
해는
그림자가 없어요
제 그림자
만들 빛까지
다 나누어 주어서.
해는
나이테도 없어요
제 나이테
새길 힘까지
다 나누어 주어서.
-《동시발전소》 (2023 겨울호)
주머니엔 뭐가 들어 있을까
신새별
은수 눈꺼풀에 매달려 있는
졸음 주머니
대롱대롱
“시험 잘 보고 싶은데, 잠이 와요.”
졸음 주머니 안엔
잠이 들어 있지만
꿈도 들어 있지
‘공부 잘하고 싶어.’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
‘예쁜 딸 낳아서 잘 기르고 싶어.’
은수 눈망울엔
꿈 주머니도
초롱초롱.
-《동화향기 동시향기》 (2024 15호)
다다다다
윤삼현
다리에 힘이 풀려
기우뚱 넘어졌습니다
달리기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툭툭 털고 일어섰습니다
아이 눈에
눈물이 살짝 비쳤지만
주먹 쥐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다시
다시
다시
다시란 말을 주문하자
다리 힘줄이 솟습니다
다리가 다시
다다다다
달려나갑니다.
-『누구에게 말하지?』 (2023 초록달팽이)
자라는 선물
조영수
아빠 유치원 입학 선물로
할아버지가 준 작은 고무나무
아빠가 물 주고
칭찬도 듬뿍 주어
가지가 천장에 닿았다.
아빠가 그 가지를 잘라
뿌리 내려
내 유치원 입학 선물로 주었다.
나도 아빠처럼 물 주고
칭찬도 해 주며
고무나무를 선물로 키우고 있다.
선물이 잘 자라
천장에 닿으면
잘라 뿌리 내려
내 아들에게 선물로 줄 거다.
-《동시마중》 (2023 1·2월호)
조심조심
차영미
좁좁좁,
참새가 밥 먹는다.
콕콕콕콕,
까치도 먹느라 바쁘다.
밥은 편히 먹어야지
할머니가 늘 그러셨는데
새라고 뭐 다르겠어.
그러니까
참새 옆을 지날 땐
조심조심
그러니까
까치 옆을 지날 땐
조심조심
- 『여름 놀이터』 (2023 청개구리)
의자에 바퀴를 달고
한현정
칠판과 컴퓨터는
세상을 다 알려줄 듯 친절하게 굴지만
교실은 어제처럼 지루하지
내 머릿속을 뛰어다니는 딴생각과
들썩이는 엉덩이는
그저 밖으로 뛰어나가고만 싶지
의자에 바퀴를 달고
복도를 쌩 달려 나가
쿵쾅거리며 계단을 굴러 내려가고 싶지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햇빛 쏟아지는 골목길을 마구 쏘다니다가
놀이터의 미끄럼틀 위로 불쑥
튀어 오르고 싶지.
-『푸른잔디』 (2023 상주아동문학회)
카페 게시글
시 읽는 방
한국동시문학회/이달의 좋은 동시(2024년 2월)
팥쥐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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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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