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소득 추락 '사상 최악'
서울 구로구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 온 이현욱(29)씨는 올해 들어 월급이 줄었다. 지난해 6470원이었던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인상됐지만, 사장이 몸소 가게를 보는 시간이 늘면서 근무시간이 하루 6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90만원이 조금 넘었던 월급은 70만원 초반대로 깎였다. 이씨는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 뉴스를 보고 기뻤는데 막상 결과는 기대와 반대라서 사는 게 더 팍팍해졌다"고 푸념했다.
문재인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소득 주도 성장 모델을 1년간 가동했지만, 정책 브레인들의 기대와 달리 저소득층 소득이 사상 최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초라한 1년 성적표를 받아들고도 문재인 정부의 경제팀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소득 주도 성장 모델을 밀어붙일 태세다.
◇정부 '고령화'와 '중국 관광객 감소' 탓으로 돌려
정부는 1분위(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사상 최대(8%) 하락한 원인을 '고령화' 현상에서 찾고 있다. 올해 3월 당시 60세 이상 인구는 1080만7200명으로 1년 전보다 52만400명 증가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4일 "직장에서 은퇴하는 60세 이상 고령자가 증가하면서 1분위 가구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고, 소득이 자연스레 줄어든 것"이라며 "1분위 가구에서 가구주가 70대인 비중이 지난해에는 36.7%였으나 올해는 43.2%로 상승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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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픽=김성규
정부는 또 사드 논란 이후 중국 관광객 급감과 이로 인한 서비스 업종 경기 침체를 또 다른 요인으로 들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사드 논란 이후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도소매·숙박 및 음식점 업종의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런 업종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소득 분배가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건설 경기 침체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자영업종 과당 경쟁으로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줄어든 것이 소득 감소를 가속화했다는 분석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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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최저임금 급등에 따른 고용 감소가 주요인"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의 진단은 다르다. 고령화와 경기 침체는 최근 꾸준히 지속된 현상이기 때문에 저소득층 소득이 갑자기 감소한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3개월 단위인 '분기별' 소득이 감소한 원인으로 10년 이상 장기 추세를 봐야 하는 '인구구조·고령화'를 꼽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며 "우리 경제에 발생한 특이 사항을 중심으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다수 전문가는 저소득층 소득 악화의 원인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악화를 꼽았다.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으로 임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사업자들이 고용을 줄이거나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 임시·일용직 근로자들이 속한 저소득층의 평균 가구 소득이 하락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저소득층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여러 지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최저임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임시 근로자와 일용 근로자는 지난 3월 1년 전보다 각각 9만5000명, 1만6000명 줄어들었다. 임금을 줄이기 위해 사업자가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줄이는 경우도 늘고 있다. 주당 근로시간이 17시간 이하인 근로자는 지난 3월 154만8000명으로 1년 전보다 13.3% 늘었다. 반면 근로시간이 54시간 이상인 사람은 10.6% 감소했다. 조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후진 기어 넣고 앞으로 전진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균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는 소비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국내 소비 지출액은 196조1223억원으로 1년 전보다 2.4%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고소득층이 주도하는 해외 소비는 8조4376억원으로 1년 전보다 18.9% 증가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좋은 의도로 정책을 만든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최저임금 인상"이라며 "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한다며 최저임금을 인상했겠지만, 실은 이것이 저소득층을 가장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