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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턴 터치, 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교실을 가득 채우자 비로소 학부모님께 배턴을 받은 기분이 든다. 방학 중 배운 것을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교사도 새 학기에 대한 기대가 아이들 못지않은 것이다. 개학식에서 교장선생님께서 "개학을 하니 좋지요?" 하셨다. 묻지 말아야할 것이 아닌가? 내심 걱정이 되었는데 아이들이 웃으며 "네!" 한다. 아이들이 새 학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 들의 기대에 부응하자는 하는 마음이 든다.
키 조정, 아이들의 키가 한 뼘씩 자랐다. 아이들을 키 순으로 앉히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새 학기 한 번 정도는 순서대로 서봄 직하다. 줄을 서서 조회를 할 때나 운동경기를 응원할 때, 앞을 보고 수업을 할 때는 그 조정이 필요하다. 모든 아이들의 시야를 확보해 주고자 함이다. 교사는 마음이 쓰여 `키 작았던 동창이 가장 큰 어른이 되었다`는 군더더기 말을 붙인다. 건강한 아이들의 신체의 자람도 신기하고 기특하다.
마음의 자람은 행동과 말을 관찰하여 더디게 느끼는데 한 달 만에 쑤욱 커버린 아이들의 신체 자람은 선명하게 눈으로 관찰이 된다. 방학 중 부모님의, 혹은 함께 지내는 가족들의 챙겨먹임과 마음의 여유가 신체 자람에도 도움이 되었구나 싶다. 삐리리, 우리 학급에는 여러 가지 자리 배치들이 있다. `앞 보는 좌석 배치!` 하면 재미가 없어서 아이들과 자석 배치를 `삐리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물론 아이들 아이디어이다. `앞 보기 삐리리`는 앞에서 친구가 발표할 때 전체 토론이나 학급회의, 영상 매체를 감상할 때나 칠판 필기를 할 때 하는 좌석 배치이다.
`뒤보기 삐리리`는 선생님이나 교과 똘똘이가 교실 뒤에서 이야기 할 때 책상은 두고 의자만 돌리는 좌석배치이다. `짝 삐리리`, `모둠 삐리리`와 토론을 하기 위해 큰 ㄷ자로 앉는 `토론 삐리리`, 수업시작 전 자유롭게 함께 학습할 사람을 찾아 `딱 한 번만 이동 삐리리`, 집중을 요하는 활동을 할 때는 벽을 보고 책상을 배치하여 길게 함께 앉아 차분한 학습을 하는 `독서실 삐리리`, 책상을 모두 밀고 바닥에 모여 앉는 `엉덩이 찰싹 삐리리`는 인형극 공연을 보거나 선생님이 읽어 주는 책을 들을 때 혹은 교실에서 작은 무용활동을 할 때 활용하는 좌석 배치이다.
`시험 삐리리`는 5줄 뚝뚝 떨어져 앉는 평가 전용 좌석 배치이다. `합창 삐리리`는 노래나 춤 등을 꼭 해야 겠다는 사람들이 교실 뒤 무대에 자유롭게 나가 우리가 하는 노래나 연주에 맞춰 하고 들어오는 좌석이다. 다 잊어먹은 삐리리 복습하면서 구석구석 방학 동안의 먼지들을 잡는다. 1년 책장과 의자, 학년 초 의자와 책상을 배정 받으면 1년 쓸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교정이 필요하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힘을 모아 함께 높이를 조정하고 흔들리는 것을 교정하여 자신에게 딱 맞는 공부 자리를 만든다. 고쳐도 안 되는 것을 들고 창고에 가서 다른 것으로 바꾸고 끄떡 거리는 의자는 나사를 풀어 조정한다. 잠시 있다가 자리가 바뀌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던 아이들이, 조금 편한 자리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기울어진 의자에 앉아 선생님께 바르게 앉은 것으로 보이게 안간힘을 쓰는 아이를 본 적이 있다. 자라는 아이들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데, 집에 계시는 학부모님들은 와서 교정해 주시지도 못하는데 싶은 생각으로 시작하였다.
아이들의 책상과 의자를 보아줌이 중요하다. 새 학기가 되었으니 위험하게 풀어진 나사는 없는지, 삐뚤어지거나 기울어진 의자는 없는지 보고 교정하고 바꾸어 주어야 겠다. 책 길들이기, 새 학기에 아이들과 놀이처럼 하는 교과서 길들이기 활동이다. 교과 오리엔테이션을 겸하여 먼저 표지 살피기 들어간다. 이 표지 디자인을 하기 위해 여러 사람의 노력이 들어갔음을 인식하고 삽화와 교과명 등 표지의 색감과 가끔 동물의 수를 세기도 하고 찾기 놀이를 하기도 한다. 표지를 반듯하게 넘겨 잘 접고, 목차 읽기 시작! 띄어 읽기 박수를 치면 목차를 읽는다.
가장 재미있을 것 같은 단원에 하트, 그리고 그 페이지 열어 `난 기대해!` 라고 적어 둔다. 그리고 잊고 있다가 그 곳을 배울 때 첫 좋음이었음을 기억하고 자신의 낙서가 동기 유발이 될 것이기 때문에 넘기고 낙서하고를 오리엔테이션에서 많이 한다. 목차도 바싹 넘겨 잘 접고 10장정도 바싹 넘겨 잘 접고, 뒤쪽도 같은 방법으로 잘 접고 마지막으로 책을 절반 딱 나누어 뒤집는다. 속지가 책상 쪽으로 가게 두고 책의 가운데를 몸의 무게를 이용하여 잘 눌러준다. 책이 자연스럽게 딱 갈린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길들여졌다.
새 책이 거의 헌책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이제 책에 기록을 할 때 불룩하게 나온 책에 불편한 자세로 휘어 쓸 필요가 없어졌다. 끝까지 적어도 반듯하다. 내용에 대한 기대감을 곳곳에 낙서하였다. 이제 수업을 받으며 내가 기록한 흔적들을 찾으면 되는 첫 만남의 방법이다. 새 학기, 한 학기를 보낸 아이들은 이제 주어진 학기에 익숙하다. 이제 하던 대로 하고 싶고, 대충하고 싶어 질 때 낯선 환경을 제공할 의무가 교사에겐 있다.
오늘 개학날 급식 먹으러 가기 전에 한 층 업그레이드 된 `가라사대` 놀이로 아이들의 환호성을 들었다. 선생님을 이기려고 바짝 정신을 차리는 모습이 참 귀엽다. 아이들의 유쾌한 긴장을 끌어냈으니 오늘, 개학의 시작이 좋다. 한 학기 이 소박한 교실에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자랄까? 늘 보는 익숙함으로 그 자람을 느끼지 못할까 아쉽다. 방학 동안의 자람은 이리도 실감나는데 늘 보아주는 선생님은 아이들의 부지런한 자람이 안 보일까봐 바짝 긴장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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