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71/만화 <미생未生>]그대, 완생完生을 꿈꾸는가?
윤태호의 만화 <미생未生> 9권을 다 읽었다. 거의 하루가 걸렸다. 7, 8년 전에 큰아들이 사줬는데 이제야 읽은 것이다. 80년대 어느 해,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부대> 20권을 아내와 함께 밤새 정신없이 독파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후 읽은 만화가 있다면 허영만의 12권짜리 <사랑해>뿐일 것이다(지금도 소장하고 있다). 만화는 무척 재밌었다. ‘바둑만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같아 더욱 흥미로웠다. 주인공 ‘장그래’라는 친구가 사장 빽으로 인턴으로 들어가 고군분투하는 장면, 장면은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 친구는 어릴 적부터 ‘바둑’밖에 몰라 학교도 작파하고 프로기사가 꿈이었으나 실패했다. 그는 당연히 세상 사는 원칙, 요령, 이치 등을 바둑 두는 원칙으로 풀어나간다. ‘바둑의 십계명’이라는 ‘위기십결圍碁十訣’를 들어보셨으리라. 바둑을 잘 두기 위한 열 가지 비결이다.
1. 부득탐승不得貪勝: 너무 이기려고 욕심을 부리지 마라.
2. 입계의완入計宜緩: 적의 집이 커보이지만 적의 세력권(경계)에 들어갈 때는 무모하게 서둘거나 깊이 들어가지 마라.
3. 공피고아攻彼顧我: 적을 공격할 때는 나의 능력 여부와 결점 유무 등을 먼저 살펴라. 공격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보라.
4. 기자쟁선棄子爭先: 돌 몇 점을 희생하더라도 선수先手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5. 사소취대捨小取大: 눈 앞의 작은 이득을 탐내지 말고 대세大勢상의 요소를 취하라.
6. 봉위수기逢危須棄: 위험에 처했을 때에는 모름지기 버리거나 때가 올 때까지 미뤄두라.
7. 신물경속愼勿輕速: 경솔하게 빨리 두지 말고 한 수 한 수를 신중히 생각하면서 두어라.
8. 동수상응動須相應: 행마할 때는 놓는 점들이 서로 연관되게, 호응을 하면서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전개하라.
9. 피강자보彼强自保: 주위의 적이 강하면 우선 내 돌을 먼저 보살펴라.
10. 세고취화勢孤取和: 상대 세력 속에서 고립되어 있을 때에는 신속하게 안정하는 길을 찾아라.
바둑의 문외한이라도 찬찬히 읽어보면 ‘세상 사는 것도 이와 같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바둑=인생’이라고 했을 터.
1989년 9월 5일 오전 10시, 싱가포르의 한 호텔에 마주앉은 중국의 섭위평(녜웨이핑) 9단과 한국의 조훈현 9단의 한 판 대국으로부터 긴 이야기가 전개된다. 중국 출신 대만 재벌회장 응창기는 전세계 바둑고수 16명을 초대해 제1회 응창기應昌期배를 개최했다(총규모 115만달러). 최종 결승에 올라온 두 선수. 5판3승, 상금이 무려 40만달러(당시 윔블던 우승상금이 18만달러였다). 상금이 문제가 아니고 국가의 자존심까지 걸린 5천년 바둑사의 진검승부였다. 섭위평은 등소평이 '기성棋聖'이라는 호칭을 내려준, 일본의 고수들을 상대로 11연승을 한 세계 제일의 초절정고수였다. 제1국 조훈현 승, 2,3국 섭위평 승, 4국 조훈현 승. 2대2 절체절명의 5국.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가? 만화는 제5국 1수 장면부터 시작된다. 2수, 3수… 마지막 145수까지 장면마다 박치문의 짧고 명쾌한 해설이 있고, 그에 따른 만화가 평균 20여쪽씩 이어진다. 이로써 조훈현의 바둑도, 장그래의 만화도 피 튀기는 대장정大長征을 끝낸다.
아무튼, 천신만고 끝에 기사회생하여 마침내 우승컵을 거머쥐고 한국의 위상을 크게 떨친 조훈현처럼, 우리의 주인공 ‘장그래’는 ‘미생’을 넘어 끝내 ‘완생’의 삶을 살게 되었는가? 미생은 두 집이 나지 않아 아직 살아 있지 못한 것을, 완생은 두 집이 나 확실히 살게 된 것을 일컫는다. 장그래는 인턴사원을 넘어 2년짜리 계약직 사원이 되어 세상을 배워나간다. 만화는 회사의 상사 오과장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바둑은 천하 없는 고수라도 두 집이 안나면 죽은 것이고 지는 것이다.
우리의 긴 인생에 비유해 본다. 나는 아직도 ‘미생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육십을 넘어 무사히 정년퇴직하고 고향에 안착해 머리를 뉘이고 있는 ‘완생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누군들 ‘완생의 삶’을 꿈꾸지 않겠느냐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어느 유행가수가 “인생은 미완성”이라며 노래를 부른다. 미생을 미완성으로 바꿔보자. 그 노랫말처럼 <인생은 쓰다가만 편지, 부르다 멎은 노래, 그리다만 그림, 새기다만 조각>일 것인가? 그 말이 맞다면 우리는 <편지도 곱게 써야 하고, 노래도 아름답게 불러야 하며, 그림도 아름답게 그리고, 조각도 아름답게 새겨야 하>지 않겠는가? 죽는 순간까지 완생을 향하여 미생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삭막하게 ‘몸부림’이라고 말하지 말고, 대신 ‘배움’이라는 말로 바꾸어 말하자. 죽을 때까지 나는 배우는 학생, 나는 바둑의 위기십결, 그 십계명 따라 한 수 한 수, 차근차근 바둑을 두어 나가리라. 만화 <미생>을 독파한 소감이다. 흐흐.
어차피 인생은 ‘한 판의 바둑’. 명국名局을 남기느냐, 졸국卒局을 남기느냐는 자신의 몫. 전두환은 형세가 불리하면 바둑판을 엎어버리고, 노태우는 ‘한 수’만 물려달라고 떼를 쓴다던 왕년의 농담이 생각난다. 자, 한 판의 바둑, 우리는 어떻게 둘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포석布石에서부터 산뜻한 행마行馬, 치열한 전투, 곤마困馬 처리, 머리 쥐나는 수읽기, 반집을 다투는 종국의 끝내기까지 빈틈없이 올바른 수순手順으로만 둘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