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크 샤갈의 작품세계Ⅰ
[1906~1915]- Marc Chagall
[ Russia, 표현주의 화가 1887 7. 7.~1985 3. 28.]
Marc Chagall
20세기 전반 예술가들은 창작의 자유로움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파리로 몰려들었다. 정치, 종교, 전통을 강요하기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파리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파리에서 활동한 다국적 예술가들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파리는 그들의 다양한 예술세계를 용광로처럼 녹여 하나로 통합시킨다. 당시 파리에서 활동했던 예술가들을 가리켜 ‘에콜 드 파리’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미술을 시처럼, 시를 삶처럼 이상화하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파리에서 활동하던 ‘에콜 드 파리’ 화가들 중 모든 것을 시처럼 표현한 대표적인 화가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이다.
샤갈은 전 생애동안 가족과 러시아 농가의 생활, 고국에 대한 향수, 성서 등의 주제를 몽환적이고 시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또한 사회 격변기 속의 그대로 노출된 자신의 삶을 기묘하게 형상화 시켰다.
샤갈은 1887년 러시아 비테프스크에서 가난한 유태인 가정 9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다방면에 재능이 많았던 샤갈은 그림을 공부하지만 늘 궁핍했다. 샤갈은 교육을 별로 받지 못했지만 독특한 개성과 기질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샤갈은 만족할 수 없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유대인 후원자의 도움으로 프랑스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서 샤갈은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생선도 하루는 머리, 다음날은 꼬리로 나눠 먹었으며 캔버스도 재사용해 다시 그렸다.
재정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샤갈은 파리시가 예술가들에게 제공한 작업실에서 작품에 매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작업실은 파리 근교에 있는 도살장 근처에 위치한 벌집 모양의 목조 건물로 ‘라 뤼슈(벌집)’라고 불렀다. 라 뤼슈에는 140개의 작업실이 있었으며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예술가들이 성공을 꿈꾸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검은장갑을낀 피앙세.1909.
샤갈보다 아홉살 어린 '벨라 로젠펠드'는 보석상을 하는 부유한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샤갈이 스물두살 때 고향 마을의 여자친구 '테아 '집에 놀러갔다가 마침 그 집을 방문한 벨라와의 첫만남이 이루어졌다. 아직 열세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녀였지만, 그 순간 샤갈의 마음은 여자친구로부터 멀어져 곧바로 벨라에게로 갔다고 한다.
Cain and Abel. 1911. gouache, cardboard. Private Collection
Daphnis and Chloe. 1911. watercolor. 21 x 16.5 cm . Private Collection.
I and the Village. 1911. oil on canvas . 150.5 x 191 cm .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USA
꿈의 세계로고향 묘사한 ‘나와 마을’
샤갈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예술가들을 만나 교류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모색한다. 그는 “파리에서 나는 모든 것, 특히 직업으로서의 예술을 발견한 것 같다. 나는 미술관과 살롱전, 어디에서나 나를 알려야 했다. 어떤 미술학교도 내가 파리에서 열린 전시회와 그곳의 전시작품들, 파리의 미술관에서 흥미롭게 발견한 것들을 가르쳐주지 못할 것이다”라고 파리에서의 작업에 대해 밝혔다.
샤갈은 국제적으로 활동을 하기 위해 이름도 세갈 모슈에서 마르크 샤갈로 바꿨다. 샤갈이 라 뤼슈에서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 ‘나와 마을’이다. 이 작품은 파리에서 샤갈의 첫 번째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이다.
화면 오른쪽의 녹색의 옆얼굴을 반쯤 보이고 있는 사람이 샤갈 자신인 ‘나’다. 유태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샤갈은 자신의 얼굴의 특징을 날카로운 삼각형의 코로 표현했다. 화면 속에 말이나 양에서 젖을 짜는 여인, 건물, 농부 등은 고향 비테프스크의 모습을 묘사했다. 이 작품에서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농부와 건물은 샤갈에게 고향이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꿈의 세계임을 뜻하고 있다.
이해부터 3년간에 걸쳐 이른바 샤갈의 퀴비스트 시대가 시작된다. 이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화면을 원과 삼각, 사각으로 구성하는 방법은 분명히 퀴비스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하학적 구성은 작가의 흩어진 추상의 이미지에다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점은 나와 마을의 <거리(距離)>를 이렇게 친밀하게 하여 주는 것은 심정에 의한 질서화의 힘이다. 이 힘이 바로 소와 나를 같은 원 안에 접근시키고, 인물과 집들을 흡수하여 도치 시키고, 소의 희생(두부의 유혈)과 무구(無垢)의 상징인 작은 흰 소로서 표현하게 한 것이다.
샤갈의 아주 유명한 작품이다. 파리에서 공부를 시작하던 샤갈은 고갱과 고호의 원시적이며 열정적인 생명력에 감동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자신의 고향 비테부스크를 인상파 화가들보다 더 과감하게 그렸다. 소와 마주한 초록색 얼굴이나 뒤집혀 있는 듯한 사람 등을 보며 많은 이들은 충격을 받기도 했다.
1. 사실의 설명
이 그림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1887-1985)의 1911년 작품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로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림 속에는 하얀색의 소 (또는 말)과 초록색의 사람이 서로 시선을 마주치고 있다. 그림 윗부분에는 마을의 집과 교회가 있으며 몇몇 집들은 거꾸로 공중에 떠있다. 그 밑으로는 여인과 낫을 들고 있는 농부가 있는데 이들도 역시 집처럼 여인은 거꾸로 된 모습이다. 흰 소가 그려진 부분에는 흰 염소와 그 염소에게서 젖을 짜내고 있는 듯한 여인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림 중앙에는 원 형태를 볼 수 있는데 그 원 아래 하나의 나무가 자라나고 있다. 그리고 붉은색과 초록색 등 대비되는 색감이 사용되었지만 균형적인 전체적인 색감에 의해 무엇인가 몽롱한 분위기다.
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표현주의 화가 마르크 샤갈은 파리에 진출한 샤갈은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린다. 유대인인 그는 러시아의 가난한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시골의 미술 학교를 거쳐 페테르스부르크 왕실 미술 학교를 졸업하고, 1910년 파리에 유학,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공부하면서 피카소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다.
선명한 색채로 사람과 동물을 섞어, 환상적이며 신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그림은 러시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샤갈이 파리에서 입체파적 분석방법을 공부하면서 고향 마을에 대한 추억을 그린 작품이다. 샤갈은 문화적이거나 종교적인 상징과 민속적인 이야기에 애정을 지녀 이러한 주제들을 회화에 끌어들였으며 유화, 판화, 벽화, 조각, 도기제작을 비롯하여 무대 장식 분야에 이르기 까지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
2. 주제의 설명
그림 제목 ‘나와 마을’과 이 그림이 고향을 떠나 파리로 왔던 때에 그려진 시기로 보아 이 그림의 주제는 샤갈의 고향시절의 기억과 모습을 말하고 있다. 화면에 그려져 있는 소와 사람의 그윽한 시선으로 보아 샤갈에게 있어서 고향의 마을은 친구나 가족처럼 다정하고 따스한 분위기의 기억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따스한 기억은 새로운 타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샤갈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었을 것이다.
이 그림 속 샤갈의 고향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기하학 모형들의 균형적인 분할을 유지하면서도 거꾸로 된 집과 여인같이 몽롱한 동화적 장면처럼 묘사되어있어 그림은 더욱 꿈처럼 느껴진다.
3. 의도와 목적의 해석
화면 오른쪽에는 초록색 얼굴을 한 사람의 옆모습이, 왼쪽에는 하얀 얼굴의 소의 옆모습이 크게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여기서 초록색의 눈에 띄는 얼굴색을 하고 있는 사람은 전체적인 그림과 약간 겉도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이 사람은 이 몽환적인 분위기속에서 다른 실제 존재인 샤갈, 본인 ‘나’를 의미한다. 즉, 샤갈 본인의 유년기 시절의 기억들을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마치 고향의 대화를 나누듯이 마주보고 있다. 소와 나는 커다랗고 영롱한 눈을 빛내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눈빛은 적대적인 것이 아닌 평범하면서도 다정한 눈빛이다. 그리고 소와 인간은 둘 다 십자가를 목에 걸고 있는데, 이로보아 소는 의인화된 모습이다.
다정한 눈길을 담고 있는 흰 소안에 나타난 또 다른 작은 염소와 여성이 파랗고 맑은 아름답고 충만한 하늘과 함께 묘사되고 있다. 이와 같이 서로간의 의존은 샤갈이 어린 시절 마을에서 겪었던 다정하고 따스한 마을의 친밀한 유대감을 나타낸다. 그리고 소는 조국과 어머니, 연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샤갈이 겪었던 다정하고 따스한 모성애의 기억과 함께 아름답고 포근한 행복을 표현했다.
그림에는 마음속에 깊이 잠재되어 비틀거리고 있는 추상의 이미지를 기하학적 구성을 통해서 평면화 시키고 있다. 또한 거꾸로 있는 집과 여인,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조, 인간과 동물의 기이한 공존, 달을 가리고 있는 태양 등 사실적 표현이 아닌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기하학 모형들과 사람들과 동물들과 집들은 서로 다정하고 따스하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오히려 부조화를 이루는 요소들이 기억의 파편, 동화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어 이 작품의 상징주의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붉은색과 푸른색은 보색의 효과로 불균형적인 모습보다는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이루어진 색동옷 등 보색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이 그림이 더욱 생기 있고 친숙한 느낌으로 해석된다. 또한 다정한 염소의 모양으로부터 농부 부부가 걸어가는 저 길의 끝까지 그림의 모든 구조들은 서로 상호보완,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림 아래쪽의 나무는 마을 사람들 간의 협력으로 인한 창조물들 가을에 거두어들일 수확물들 곡식들을 상징한다. 생명을 묘사하는 이 나무는 물질적인 가을의 수확물들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긴밀한 유대감과 따스한 정으로 인한 정신적인 행복이라는 마을 사람들이 누리는 보상도 상징한다. 또한 그림 중앙의 둥근 원의 형상과 주위에 조금씩 보이는 원의 형체들은 태양과 달, 지구를 상징하며 이 작은 마을이 우주와 태양과 지구와 달에 의해 둘러싸여있으면서 서로 연결되어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음을 나타낸다.
Russian Wedding. 1909. oil on canvas. 97 x 68 cm .
Bührle Foundation, Zürich, Switzerland
4. 배경의 해석
이 그림의 화가인 샤갈은 러시아의 작은 유대인마을 비테브스크에서 태어나 1910년 후원자를 만나 파리로 이주하게 된다. 미술의 꿈을 위해 파리로 왔지만, 타지에서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그 역시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타지에서의 적응에서 비롯되는 힘든 상황은 고향을 더욱 따스하고 푸근했던 곳으로 기억하게 만들 것이다.
파리에서 온지 1년 후에 그려진 ‘나와 마을’은 이러한 타지에서의 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의 상황도 많이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파리에서 파리의 전위 예술가들, 특히 시인 블레즈 상드라르, 기욤 아폴리네르와 화가 카임 수틴, 페르낭 레제, 로베르 들로네 등과 친분을 맺었고 이와 같은 새로운 환경의 영향은 곧 그의 작품에 나타났다.
그 전까지는 사실주의를 기초로 한 그림이었지만 곧 그 당시 유행하던 입체파적인 경향으로 바뀌게 된다. “ 예술의 태양은 파리에서만 빛나고 있었다.” 라고 화가 본인이 말했을 정도로 파리에서의 달라진 그의 변화는 파리로 오기 전 그렸던 <러시아 결혼식>에서 묘사된 마을의 모습과 파리에 오고난 후 그린 마을 ‘나와 마을’을 비교해보면 분명히 나타난다.
‘나와 마을’에서는 원과 삼각형 구도를 차입하는 새로운 조형표현을 하였으며, 전체화면에 x로 구획을 짓고 삼각형을 꼭짓점으로 하는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또 다른 새로운 원을 그려 넣었다. 고향을 떠나 파리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도전하는 그의 당시 상황은 형식과 색채에 대한 전위적인 실험을 행하는 그림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표현적 내용의 분석을 위한 질문들
․ 이 그림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나요?
․ 이 그림에 있는 사람과 동물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표정은 어떠한가요?
․ 제목과 연관시켜 그림을 설명해 보세요.
․ 화가가 살았던 고향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고 살았을까요?
․ 이 그림은 우리나라의 모습을 그린 것일까요, 다른 나라의 모습을 그린 것일까요?
․ 그림 중앙에 있는 푸른색 얼굴의 사람은 누구일까요?
․ 그림 아래의 나무는 무엇일까요?
․ 그림속의 사람과 집은 왜 거꾸로 있을까요?
․ 그림의 배경은 어떠한 구조로 되어있나요?
․ 이 그림속의 색깔들은 어떠한가요?
․ 이 그림 속에 사용된 도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요?
․ 화가는 이 그림을 그릴 때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그렸을까요?
․ 이 그림을 보았을 때 여러분의 느낌은 어떠했나요?
․ 이 그림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 참고자료
에밀 뷔를르 박물관 그림소개
Adam and Eve. 1912. oil on canvas. 109 x 160.5 cm .
Saint Louis Art Museum, St. Louis, MO, USA
당시 샤갈은 세잔을 동경하여 형태의 다양한 기하학적 해체를 철저히 관찰하려는 그의 결심을 추측할수 있다.
바로 이 그림이 그 좋은 예의 하나이다. 다만 형태가 이렇게 세분 되면서도 유동적 이고 시원한 감을 주는것은 코로니스트로서의 작가의 자질에 힘입은 바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같은 그림을 흑백사진으로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다른 작품에도 나타나지만 인물표정에 음산한 면이 떠올라와서 금단을 범한 악의 주제가 드러날 것이다.
Birth. 1912. oil on canvas. 193.5 x 112.5 cm .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IL, USA
Golgotha. 1912. oil on canvas 191 x 174 cm .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USA
Homage to Apollinaire. 1911~1912. oil on canvas. 9.9 x 200 cm .
Stedelijk Van Abbe Museum, Eindhoven, Netherlands
Jewish Wedding. 1912. ink on paper . 30 x 20.5 cm . Private Collection
Mazin, the Poet. 1912. oil on canvas. 54 x 73 cm. Private Collection
Soldiers. 1912. 32.4 x 38.1 cm , Private Collection
Still life. 1912.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The Cattle Dealer. 1912. oil on canvas .
200.5 x 97 cm. Collection of Eberhard W. Kornfeld
강렬한 황색 수레바퀴와 암말의 태내에서 투시되는 망아지는 윤회의 느낌을 준다. 그러나 무의식적인 조형을 통해서 작가가 표현하려고 한것은 고향에 대한 향수인것 같다. 이 그림은 항상 어린 마르크 샤갈을 데리고 도살업자에게 가축을 팔러가던 숙부 내외를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 도살의 광경이 그를 항상 전율케 했으나,그의 그림에서 짐승은 언제나 축성되어 있다. 여기서도 부부의 얼굴은 앞을 보지않고 여자가 지고 있는 가련한 작은 동물을 되돌아 보고있다.
To Russia, with Asses and Others. 1912. oil on canvas. 122 x 156 cm .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러시아 태생으로 1910년에 파리로 간 샤갈은 맨 먼저 야수파의 강렬한 원색 구가(仇家)에 충격을 받았다. 이어서 스는 입체주의의 영향도 빋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 자유롭고 다이나믹한 공간 취급의 방법을 자신의 환상의 세계에 결부 시키는 형식으로 입체주의를 소화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당시 레제, 들로네, 모딜리아니, 수틴 등이 살고 있던 몽파르나스 근처의 라 디슈(벌집이라는 뜻)라 불리던 보잘것 없는 공동 주택에 살면서 자신의 세계에 전념했다.
거기에서 그는 시인 아폴리네르, 생드라르스 등과도 가깝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생드라르스의 시에서 힌트를 얻어, 구고 온 고향 비테브스크의 풍물을 그린 것이 이 작품이다. 유태인 교회도 보이는 주택가, 자신을 길러준 러시아 대지를 상징하는 암소, 목이 달아나고 있는 여인, 무지개 빛이 비낀 하늘 등을 중첩시킨 화면 구성은 입체주의의 적용이라 할 수 있겠다.
Burning House. 1913. oil on canvas . 120.6 x 107 cm .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The Birthday. 1915. oil on canvas. 99.5 x 80.5 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USA
방으로 뛰어 들어오는 여성의 동작에 따라 이 불가능한 도약이 그려졌으나, 허공에 나타난 것처럼 그녀에게 입맞추는 목의 묘사법은 15년 후의 <아크로바트>에 연결된다. 대상을 언제나 휘어지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제작 충동이 이 커플로 하여금 약간 희화적 이긴 하나, 결코 부자연스럽게는 보이지 않는 표현이 되게 하고있다.
샤갈의 생일날 벨라가 들꽃을 한웅큼 꽃다발을 만들어온다.벨라는 당시 모스크바에서 배우수업을 받고 있었으나 샤갈과 결혼하면서 자신의 꿈을 버렸다.그녀 부모로선 결코 환영할 수 없는 결혼이었다.
이 그림은 아주 유명합니다. 다들 어디선가 얼핏 한번쯤은 본적이 있는 그림일것 같다. 샤갈이 결혼하기 몇주전, 사랑하는 여인 벨라가 꽃을들고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기위해 온 행복한 순간을 담고 있다. 소박한 식기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 행복한 마음에 들떠 날아오를듯한 몸. 부드러운 선과 색채로 그린 그림이 그의 그녀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는듯 하다.
부유한 보석상의 딸과 가난한 화가의 결혼에 벨라의 부모님이 반길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자식의 사랑을 이기는 부모 없다고 열렬한 사랑으로 그들은 결혼을 했다. 30년 가까이 살며 그의 많은 작품에 모델이 되었던 그녀가 죽은 당시에는 9개월간 붓도 들지 못했다고 한다..
The Poet Reclining. 1915. oil on cardboard .77.5 x 77 cm. Tate Gallery, London, UK
Visit to grandparents. 1915.
pencil, ink, watercolor, paper . 62.5 x 46.3 cm . Private Collection
War. 1915. ink, paper. 18 x 22 cm.
The Art Museum of A. V. Lunacharsky, Krasnodar, Russia
Window in the Country. 1915.oil on canvas. 80.5 x 100 cm .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Mirror. 1915.
[출처] 마르크 샤갈의 작품세계Ⅰ[1906~1915]- Marc Chagall |작성자 ohyh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