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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
모래만 사막이 되는 게 아니지라,
사람 사는 세상도 사막이 될 수 있지라
그 속에
오아시스를
품고 있지 않으면
(박방희·시인, 1946-)
+ 사막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나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오르탕스 블루·프랑스 시인)
+ 푸르른 소멸·1 - 사막
누군가는 사막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하는데
시간을 건너온 것은 모두 사막이다
소슬히 뒹구는 낙엽이 사막의 무늬를 지녔듯이
늙으신 아버지 저 주름 또한 사막의 징후이듯이
시간이 걷히면 사막이 된다
(박제영·시인, 강원도 춘천 출생)
+ 사막 횡단·122
갈래진 사막으로
길은 막막하게 열렸건만
맘 둘 데
정히 없어
지평선을 굽어보며
입술을 깨문다.
근원 모를 모래바람에
하염없이 시달리는
선인장 위로
깜빡 낮달이 졸고
햇살에 잘 익은
전갈 서너 마리
꼬리를 곧추세우며
이방인의 행렬을 지켜본다.
(손정모·시인, 1955-)
+ 뜨거운 사막
모래 바람 부네,
한바탕 돌풍이 쓸고 간,
내 마음 쓸쓸한 폐허의 자리,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으리라는,
어느 외로운 시인의,
우울한 싯구절을 떠올려 볼 때에,
내 사유(思惟)의 황량한 사구(砂丘),
그 허무의 언덕 위로,
모래 바람 부네,
모래 바람 부네,
그러나 내 사랑 열절(烈節)의 당신,
또다시 그 너머 홀로 서 있네,
(홍수희·시인)
+ 어느 날 나의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그대가 오리라
바람도 찾지 못하는 그곳으로
안개비처럼 그대가 오리라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
모래알들은 밀알로 변하리라
그러면 그 밀알로, 나 그대를 위해 빵을 구우리
그대 손길 닿는 곳엔
등불처럼 꽃이 피어나고
메마른 날개의 새는 선인장의 푸른 피를 몰고 와
그대 앞에 달콤한 비그늘을 드리우리
가난한 우리는 지평선과 하늘이 한몸인 땅에서
다만 별빛에 배부르리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빗방울처럼 그대가 오리라
그러면 전갈들은 꿀을 모으고
낙타의 등은 풀잎 가득한 언덕이 되고
햇빛 아래 모래알들은 빵으로 부풀고
독수리의 부리는 썩은 고기 대신
꽃가루를 탐하리
가난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란 오직 이것뿐
어느 날 나의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
지평선과 하늘이 입맞춤하는 곳에서
나 그대를 맞으리라
(유하·영화감독 시인, 1963-)
+ 사막에는 많은 가르침이 있다
사막에서,
텅 빔을 향해 돌아라,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며.
홀로 서라,
누구의 도움도 청하지 말라,
그러면 너의 존재는 고요해질 것이다,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세상에 집착하는 사람들,
그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노력하라.
자유로운 사람들, 그들을 찬미하라.
병자를 돌보라,
그러나 홀로 살라,
슬픔의 물을 마시는 행복,
단순한 삶의 잔가지로
사랑의 불을 태우는 행복.
이렇게 당신은 사막에 살 것이다.
(메히틸트 폰 마그데부르크)
+ 사막으로 떠나라
그대 비만의 일상에 염증을 느끼거든
배낭 하나 메고 사막으로 길을 떠나라.
그대 사는 일이 죄스럽다고 생각 들거든
북 하나 메고 사막으로 길을 떠나라.
가서 사막처럼 건조해지고
사막처럼 부스러져 보라.
그대 영혼에 물기 한 점 없어질 때까지
그대 심장에 핏기 한 점 없어질 때까지
혹독한 사막에서
그대 자신과 치열하게 싸워보라.
사막은
그대 영혼 깊은 곳에 언제나 깔리어 있느니
그대 사막으로 가려거든
그대 영혼 깊은 곳을 들여다보라.
거기 한낮의 작렬하는 태양이
흰 모래구릉을 달구는 곳,
거기 시린 밤의 별들이
차가운 모래의 강 위에 쏟아지는 곳.
그대 영혼의 창을 들여다보라.
그대 영혼의 모래사막 위를 걸어 보라.
거기 그대가 아닌 그대가 있으리니
참다운 그대가 거기 있으리니
그대 영혼의 사막으로 가서
그대가 아닌 그대를 만나라.
그대가 그대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귀기울여 보라.
오늘 그대 삶이 죽음처럼 긴 터널이라면
그대를 찾아 당장
사막으로 길을 떠나라.
빈손 빈 몸으로 길을 떠나라.
(시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