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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띠방 스크랩 지리산종주산행기
흰 구름 추천 2 조회 1,513 16.07.19 13:51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지리산 종주 단독 산행기

 

산행일시 : 1994.10. 1 - 10. 3. (2박 3일)

 

산행기록 : 정 지 홍

 

* 출발 *

이천 → (버스) → 청주 → (기차) → 남원 → 반선 → 반선(1박)

→ 뱀사골 → 반야봉 → 형제봉 → 벽소령 → 선비샘 → 세석평전

→ 연하봉 → 장터목산장(1박) → 제석봉 → 천왕봉 → 장터목산장

→ 백무동계곡 → 남원 → 수원 → 이천

 

 

 

   

오래 전부터 오르고 싶었던 山! 地異山!

예로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의 하나라고 불리어 오는 산이고, 남한에서 한라산(1,950m) 보다 조금 낮은 1,950m의 山이다.설악산(1,708m)을 청년의 산, 한라산을 중년의 산, 지리산을 노년의 산이라 했다던가?

1976년도에 군대말년휴가 때 노고단을 올라 능선을 타고 천왕봉 쪽을 향하여 걷다가 너무 멀고 험해서 하동 쪽으로 하산해서 하동읍 강가 소나무 밭에서 텐트를 치고 잤던 기억이 있고 89년에 박현수와 함께 유명사찰순례 시 화엄사와 천은사 그리고

실상사를 들렸었고, 지리산 횡단도로를 넘었던 일이 있었으나,늘 지리산을 종주하고 싶은 마음이 깊이 자리하고 있던 터였고, 94년 8월 방생 ? 칠불암에 들려 기도 했었다. 山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지리산 산행기록!

10월 연휴를 이용해 오르겠다고 마음먹고 준비를 시작했다. 식사는 가능하면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간단하게 하기로 계획하고 가스버너와 코펠 등 절대 필요한 등산구만을 가지고 쌀 대신 찰밥 세끼 분을 준비하고, 라면 3개를 배낭에 더 넣었다. 이만하면 2박 3일 식사는 족할 것이다. 차 타는 시간은 어차피사 먹어야 하니까.

10월 1일은 토요일. 기다리던 연휴다. 이 황금의 연휴를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사무실에서 조금 일찍 나와 집에서 준비물로 배낭을 꾸리고 버스터미널에 가니 대전행 직행버스 시간이 몇 번 지나갔고, 1시 40분 버스도 또 놓쳤다. 14:20분 버스를 기다리는데 옆에 두 명의 총각들이 배낭 을 지고 대전 버스 줄을 섰기에 물어 보니 그들도 지리산에 가는데 초행이란다. 코스를 물어 보니 노고단 코스로 등산하여 반선으로 하산할 계획이라고 한다. 마침 잘됐다 싶어 그들에게, 그렇게 먼 곳에 등산을 하면서 정상정복을 포기하면 너무 아까우니 나와 함께 천왕봉을 가는 게 좋겠다고 권유하여 함께 동행키로 하고, 그들에게 배낭을 맡기고, 터미널 식당에서 우동을 한 그릇 사 먹었다.

중부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 2시간 후인 4시 30분 경 대전에 도착하여 택시로 서대전 역을 향했다. 택시비 7,500원, 1인당 2,500원씩이니 동행의 이득을 보는 셈이다. 역사 앞 시멘트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지나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보니 무척 분주하고 다양하다. 함께 가는 그들은 현대전자 직원이란다. 그들이 술과 과일을 준비하고,나는 지나는 여행객들을 바라보며 꽤 오래 동안을 기다 린뒤에야 5시 30분 완행기차 를 탔으나, 자리가 없다. 요금이 싼 입석이라 좌석이 없어 식당 칸으로 찾아가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와 안주를 시키고 셋이서 즐거운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냈다.

아직도 창 밖은 검은 산과 넓은 들이 전개되고 있다. 산과 들을 지나고 강가를 돌아 南原에 도착하니 7시경쯤 되었나 보다.

아직 너무 어둡지는 않지만 지리산 登山起點인 반선행 버스는 모두 끊겼고 택시로 가야한단다. 30분만 일찍 도착했어도 되는 것인데 너무 아쉽다. 반선에서 자야지 내일 산행시간을 벌 수 있는데 차가 없다니 걱정이다. 좋은 방법은 없을까? 기차 역을 걸어 나와 택시부를 향해 걸어  가는데 중년남자가 다가오더니 어디까지 가는지 자기의 차로 가면 싸게 해줄 테니 가자고 하여 반선까지 2만 원에 가기로 하고 그의 차가 있는 면사무소 건물인 듯한 곳으로 가서 그의 승용차를 타고 나와

어두워진 밤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산과 세상이 모두 까맣다. 까만 밤에 88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오직 자동차의 밝은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밝게 비출 뿐 모두가 까맣게 물들어 있다. 몇 년 전에 親舊  박현수와 함께 들렸었던 실상사 입구 쪽을 지나서 등산로 입구인 반선이라는 곳에 도착한 것이 아홉시 쯤은 되었으리라. 도로의 포장은 잘돼 있었으나 생각보다 멀고 오래 동안 택시로 달려야 했다. 요금 2만원에 이렇게 멀리 왔으니 매우 싼 값에 왔다. 매표소를 지나서 마을 입구에 도착하였으니 입장료도 내지 않고 들어온 셈이다. 민박집을 찾아서 길을 내려와 어느 집에 들어가니 큰 방이 하나 있어 셋이서 함께 자기로 하고 들어가다. 숙박비는 2만 원이라고 하나, 만 오천 원에 자기로 하다. 택시 운전사는 3만 원은 줘야 잘 수 있다고 했는데 더 싸게 잘 수 있다니 다행이다. 셋이 아래층 큰 방에 들어가 여장을 풀고 現代人들이 쌀을 씻고 찌개를 맛있게 끓여 저녁을 먹으며, 진로 소주로 여행의 즐거움을 즐겼다. 오늘 밤은 일찍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 새벽 등산을 해야지.

 

둘째 날 새벽.

 

술 먹은 탓인가? 네시 삼십 여분 경 잠이 깼다. 現代人들의 잠을 깨우고 식사는 중간에 하기로 하고 출발.

랜턴을 들고 검은 새벽 길을 안내 표지판을 따라 올랐다. 한참을 간 후에야 앞에서 등산객들의 불빛이 보인다. 우리보다도 더 일찍 출발했나 보다. 산 속의 계곡을 따라 힘겨운 등산이 시작된다. 그 유명한 뱀사골의 구불구불한 계곡을 힘겹게 오르는 것이다. 등산 지도에는 뱀사골 산장까지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표시되어 있으나 우리는 더 단축시킬 수 있으리라. 부지런히 걸었다. 검은 아침은 점차 그 검은 옷들을 하나씩 벗어 던지고, 하이얀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홉 시는 되었으리라.

힘든 다리를 쉴 수 있는 뱀사골 산장에 도착하니 수많은 등산객들이 텐트를 걷고 밥도 하고 분주하여 마치 이천 장날에 시장을 방불케 한다. 우리는 산장 앞쪽에 자리를 잡고 現代人들이 식사를 준비했다. 라면을 끓여서 따끈한 밥과 맛있게 먹었다.

이제 산장에서 화개재까지 10여분이면 족하리라. 뱀사골 산장의 간판 글씨가 나무에 한자로 서각되어 있어 사진을 찍었다. 굵직한 글씨로 구불구불하게 썼다. 그 끝에 1985년10월 2일이라고 날짜가 씌어 있다. 힘을 내서 등산을 시작하여 30여분이 지나서야 화개재에 올랐다. 첫번째 고개에 오른 것이다. 화개재에서 안내표지판을 뒤로 하고 사진을 찍었다. "뱀사골 정상 1260m,

반야봉 4km, 노고단 10km, 토끼봉 2km, 천왕봉 35km"로 표시되어 있다. 천왕봉까지는 아직도 35km를 더 가야한다.

토끼봉을 지나 선비샘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다시 걷기 시작하여 삼각고지와 형제봉을 지나 벽소령에 도착했다. 산길을 깎아 만든 좁다란 길로 트럭이 과일을 싣고 와 팔고 있다. 사과를 2,000원어치 사서 현대인들과 목마른 갈증을 풀었다. 이 얘기 저 얘기로 다리의 피로와 땀을 들이고 점심은 선비샘 에서 먹기로 하고 또 출발이다.

덕평봉을 넘자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물이 귀하니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우리도 물 좀 받을 수 있을까? 줄 선 사람들이 많아 물어 보니 30분을 기다렸단다. 그러나 아직 더 기다려야 물을 받을수 있단다. 우리는 아직 배고픈 것을 모르겠고 더 걸을 수 있으니 세석평전까지 더 걸었고 그 곳은 아예 물이 말라 있었고 사람조차 없다. 내친 김에 연화봉을 넘어 장터목 산장까지 가기로 했다. 여기저기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동북쪽 멀리에 천왕봉이 자리하고 있고, 장터목 산장과 제석봉이 하늘과  닿아 보인다. 하늘은 높이 맑고 푸르게 빛나고 있고 가끔 흰 구름이 가을의 정취를 한결 더해준다.

반바지를 입었는데도 덥기만 하다. 군인들이 열병하듯 봉우리들이 가지런히 능선을 비스듬히 하고 누워 있다. 20~30일 쯤 뒤에는 단풍이 붉게 불타리라. 겹겹이 보이는 지리산 자락이 마치 어여쁜 여인이 얇은 모시치마를 입고 속살을 살짝 내비치듯이 비스듬한 산등성이를 희뿌연 안개로 가리고 있다. 한두 시간 뒤에는 엷은 안개가 걷히고 밝은 태양이 나를 반기우리라. 여기저기서 단풍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기에 파란하늘과 함께 그지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으나 다리는 힘이 없고 아프기만 하다. 현대인들이 먼저 출발하고 혼자 쉬면서 등산을 계속하여 네 시가 되어서야 세석평전에 도 착하였으나 현대인들을 찾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이 바다를 이루고, 식수를 받으려고 약수터에 갔으나 줄이 50여m는 족히 되리라. 세 개의 식수 중 맨 중앙에 있는 식수 터에 가서 륙색을 내리고 짐을 펴서 코펠에 물을 받고 라면을 끓여 찰밥과 식사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현대인 중 작은 사람이 물을 뜨러 왔다. 못 만날 줄 알았다 다시 만나니 반갑기 그지 없다. 나보다 조금 위에 자리를 잡았다기에 이리로 오라고 하여 식수터 옆에서 취사 준비를 한 뒤 라면과 찰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장터목 산장을 향해서 출발했다. 해는 西山에 가리워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가지 않으면 장터목 山莊까지 夜間 山行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부지런히 촛대봉에 올라 서편을 보니 해는 산너머로 넘어가고 엷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現代人 둘이 와 또 다른 서울산다는 登山人 세 명과 나,여섯 명이 그룹이 되어 헤드램프를 밝게 켜고 어두운 밤길을 재촉하여 1,703M 의 촛대봉을 넘고 연하봉에 올라서니 제석봉 허리춤에 있는 장터목山莊이 환하게 등불들로 밝혀져 있고 주위는 작은 도시의 밤마냥, 등불들이 즐거운 춤을 추고있다. 울긋불긋한 텐트의 불빛이 현란하게 어두운 산을 밝힌다. 山莊은 이미 滿員 이리라. 그래도 만원을 확인 하기위해 山莊에 올라가니 이미 처마밑에까지 비닐을 깔고 그 위에 매트리스를 깔고 앉아 있거나 누워 있다.

滿員謝禮이다. 걱정이다. 山莊 안은 사람들로 들끓고 있고, 하늘만 가린 취사장에도 시멘트바닥이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주변에도 Tent로 滿員이다. 우리들 6인조도 서울사람의 Tent설치장소를 물색 했으나, 자리가 없어 처음오던 쪽으로 산길을 되돌아가며 자리를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자리가 없어 한 골을 되돌아 올라가다 꽤 높은 곳에 가서야 빈자리가 있어 Tent를

設置하고 現代인들이 내려가 물을 길어 와서 저녁을 맛있게 끊여먹었다. 소주로 반주도하고!! 現代인들은 Tent 가 좁아 식사 후에 Tent를 찾아 떠나고 남은 넷이는 함께 자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의 침낭 속에 피곤에 지친 몸을 넣고 잠을 청했다.

서울사람 중 둘은 옷도 벗지 않고 침낭하나에 둘이 함께 들어 간다.  몸이 작으니 可能하리라.

 

셋째날 새벽

 

이른 아침 약간의 추위를 느끼며 잠을 깨니 다섯시 경이다.벌써들 산엘 올라가고 있는 듯하다. 어둠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어둡다. 여섯시 이십 분은 되어야 日出이 되리라. 부지런히 짐을 챙겨 Tent에 整理해 놓고 천왕봉을 향해 出發. 줄지어 선 登山객들이 마치 서울의 전철인파를 닮았다. 제석봉을 올라서니 맞은편에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천왕봉 이리라. 어두운 새벽 길을 한참을 올라갔으나, 아직도 멀었나 보다. 앞서가는 사람의 발자욱을 따라 오르다 보니 마지막 오름 새인 모양이다. 바위가 있고 철 계단이 가파르게 앞을 가로 막는다. 줄지은 사람들의 뒤를 따라 올랐다. 이제 더 앞으로 갈 길이 없다. 동쪽 앞은 낭떠러지 절벽이고 左右에는 사람들로 산 頂上이 모두 덮여 있다. 아! 드디어 정상 이다. 지리산 종주의 백미 천왕봉! 이제야 꿈에도 그리던 천왕봉 위에 서게 됐구나. 남한에서 두 번째높은 산을 정복했구나. 아! 기쁘다. 정상정복의 이 기쁨!

그러나 사람이 너무 많아 야호소리조차 지를수 없었다. 이른 아침이라 선가? 하늘엔 회색 구름이 엷게 조금씩 펴지고 있다.

일출을 못 보았더라도 오래 동안을 꿈꾸었던 지리산 종주와 천왕봉 정복이 아니었던가? 수년동안을 기다려 온 천왕봉 정상을

이제야 정복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상에서 기념 주(酒)한잔 못하겠구나. 日出時間은 아직 조금 남았으나 日出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頂上標示돌 앞에서 억지로 寫眞을 찍었지만 나올까 모르겠다.

寫眞을 찍고 기다렸으나, 구름이 조금씩 더 짙어져 좋은 日出이 틀린 것 같아 下山을 마음먹고 내려 가면서, 일출 전 구름이 黃金빛으로 물든 背景과 고사목이 자리한 地理산의 진풍경을 寫眞에 담았다. 고사목군이 많이 자리한 산등성이를 지날 때는 꽤 밝아져 있었다. 구름 속이지만 太陽의 위력인가보다. 부지런히 山을 내려오다 보니 Tent 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것인가? 산길을 지도와 비교해보니  장터목 山場을 많이 지나온 모양이다. 다시 발길을 돌려 온 길을 되돌아가니 좌우에 Tent가 많이 있으나 우리가 잤던 텐트가 보이지 않는다. 어제 밤을 되새기며 산장을 찾아서 생각하여 지나온 곳을 되짚어 Tent를 찾아갔으나 그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부근을 청소하고 Tent를 해체하고 있는데 그제야 그들도 돌아와 함께 해체하고 청소를 한 후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어제 먹다 남은 술로 목을 적시고 백무동 계곡으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백무동 계곡을 한참 내려가니 작은 폭포가 있고 맑은 물이 바위틈을 재잘거리며 흐르고 단풍은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들어 있다. 이런 곳이 仙境이 아닌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아직 다리가 아프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배낭을 내리고 사진도 찍고 다리도 쉬면서 내려 가는데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온다. 어제 16시간의 강행군 탓이리라. 상백무동쯤 내려오는데 개울가 옆에

있던 한 여자가 인사를 한다. 모르겠다고 했더니 벽소령과 세석평전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함께 등산했던 사람이었고 소록도에서 왔는데 일행이 여섯 명이고 자기가 텐트 등 무거운 짐을 지고 있기 때문에 제일 뒤에 올라가고 있다고 했었던 여인이다. 그 무거워 보이고 커다랗던 배낭이 작아진 탓에 못 알아본 모양이다. 조금 미안했다. 동료를 기다린다고 했다. 어제는 뒤쳐지더니 배낭이 작아져 이제는 앞서가고 있나 보다. 그녀와 간단한 수인사를 마치고 헤어져 중백무동에 도착하니 남원행 직행 버스가 있단다. 표를 사고 줄을 서서 기다려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간신히 자리를 잡았지만 조금 늦은 사람들은 문밖에서 차에 매달려 아우성이다. 함께 가자고 하지만 버스가 늘어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모두 억지로 타고 출발. 백무동을 떠나는 차는 통로에 사람으로 꽉 차있어 밖을 구경조차하기 어렵다. 다행히 일찍 올라가 뒷자리라도 앉아 갈 수있어 다행이었다. 열 한시는 넘었으리라. 남원에 도착하니 한 시반. 2시30분이 돼야 기차가 있다니 기차표를 사고는 남원역 맞은편에서 고픈 배를 채우려고 어느 식당에 들어가 얼큰한 육개장을 시켜 맛있게 먹고 돈을 내려고 지갑을 찾으니 지갑이 없었다.

어찌 된 일인가? 분명히 등산조끼 안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잠갔는데 어디서 사라진 것일까? 큰 낭패다.

돈이 없으니 어찌해야 좋을까 모르겠다. 벽소령에서 사과를 사 먹을 때까지 분명히 있었고 텐트에서는 등산조끼를 입고 잤는데 어찌 된 일인가? 할 수없이 주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돈을 보내 주겠다고 했더니 뜻밖에 이다음에 남원에 내려 올 때 달라고 한다. 남원의 인심이 고맙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천 까지는 어떻게 갈 것인가? 주머니에는 이천원정도 남았지만 서청주에서 내려서 청주버스 터미널까지 갈 택시비도 안 된다. 할 수없이 수원으로 가서 버스로 이천에 가야 겠기에 기차에서 청주까지의 표로 수원까지 오다. 수원 가까이 오니 길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길가에 네온 싸인이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걱정은 돈도 없이 수원역 출구에서 어떻게 나갈지가 걱정이다. 잘하면 통과 할 수 있을 테지만 걸리면 어쩔까??

애원이라도 해야 될까? 걱정을 하며 수원역에 도착하여 출구에 나가 보니 밀려든 출구 인파가 네 개의 출구에 모두 북적대고 있고 표받는 사람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한쪽 끝 출구에서 검표원과 승객이 부족요금을 계산하면서 서로들 의견이 틀린 지 말다툼을 하는 사이에 나는 이때다 하고는 재빠르게 표를 던지고 쏜살같이 출구를 나와 버렸다. 위기의 순간이 무사히 지났다. 안되면 사정 사정 했어야 했는데....이제 이천까지의 차비는 되니까 걱정이 없다. 버스터미널에서 버스승차권을

사고 버스에 올라가 긴장을 풀고 떨리던 가슴을 진정시키고 잠을 청해 이천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이천에 도착하니 8시경. 짧았지만 무척이나 오래 동안처럼 느껴지는 2박3일의 여행에 막을 내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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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6.07.19 22:27

    첫댓글 2016년 여름휴가를 중국 황산으로 계획했다가 계획을 수정하여
    지리산 종주로 바꾸면서 예전에 종주했던 기행문을 다시 읽어보고
    올해의 종주에 대한 계획을 세워 봅니다.
    22년전에 썼던 기행문이지만 지금 읽어도 가슴이 뜁니다.
    교통도 좋지않았던 시절에 갔던 기록 입니다.
    용친님들에게 미흡한 기행문 보여 드립니다.
    감사 합니다.(글쓴이 운해는 흰구름의 별명입니다)

  • 16.07.20 09:34

    오래전 다녀오셨던 산행일기 지만 기억이 생생하시겠습니다.
    설악산이 여성적인 산이라면 지리산은 남성적이지요.
    저는 중3 여름방학때 천왕봉을 갔었는데 정상에 토굴을 파놓고
    간식과 함께 잠자리를 제공하는 상인이 있었습니다.
    멋진 기행문 잘읽고 가며 저도 다시 가고픈 생각을 갖습니다.

  • 작성자 16.07.21 15:08

    예~~ 아주 오래전 기록이지요.
    저에 생각은 지리산은 어머니 품같이 넓고 푸근한 느낌을 받어요.
    종주능선길을 걸으면서 받는 느낌이지요.
    설악산이 오히려 남성적인 느낌이 들어요.
    마등령 과 천불동 계곡을 걸으면 너무 힘들고 웅장한 느낌도 들지요.
    바위가 많아서 일까 모르지만요..... (모두 느낌의 차이지요??)
    이번 종주는 노고단에서 시작해서 벽소령대피소를 지나 장터목에서 끝나는
    3박4일의 여유있는 일정으로 가려 한답니다.
    혼자가니 다소 짐이 많아서 조금 걱정이지만
    천천히 즐기며 걸을 생각이지요.
    좋은 산사진 한컷 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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