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꺼낼 일이 없을줄 알았는데;;;; 예전에 부대에 있을때 였습니다. 한참 왕고때 심심해서 미쳐버릴때였죠. 신병들 100일 휴가(지금은 신병위로휴가로 바뀐듯)를 갔다가 속속히 복귀할때.. 애들보고 가서 재미좀 보고 들어왔냐ㅋㅋ라고 한명씩 물어봤는데 한명 표정이 진짜 졸라 안색이 창백한겁니다.
제가 장난끼가 적잖아서 야이 XX 왜이렇게 무드잡어?ㅋㅋ하면서 놀렸었는데 그때 그놈 눈빛이 안잊혀지네요. 저녁점호끝나고 이야기를 듣는데 미치는줄 알았습니다.
아는 사람들이랑 술먹고 헤어지고나서 정신을 못차려서 여관주위에서 내돌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오더랍니다. 매춘업이였죠. 그놈이 술김에 돈을 지불하고 더 얹어주면서 "말 잘듣는 아가씨로!" 라고 말을했다고 합니다. 아주머니는 씨익웃으며 알았다고 했다고하네요.
이놈은 전형적인 여관바리라는걸 깨닫고 자기딴엔 마인드 좋은 아가씨로 선택하려고 한거였겠죠. 그리고 여관에 들어가서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가 들어오더랍니다. 그놈은 성질이 뻗쳤는지 박차고 나가려고 일어섰는데 아주머니가 등뒤에 뭐를 업고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아주 말 잘듣는 아까씨로 데려왔다고 하면서 무슨 보따리 같은걸 내려놓더니 즐길만큼 즐기고 입구에 계속 있으니까 나가는거 볼 수 있으니까 아무때나 나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놈딴엔 술취해서 골뱅이가된 여자를 데리고 왔다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보따리를 하나둘 풀어가는데...나이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의 웃는 얼굴이 나오고...그런데 가슴까지 벗겼을때 이상한건 몰랐는데 어깨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더랍니다. 팔 소매를 걷으려노 봤더니 팔이없는거 같아서... 너무 취했나 싶어 아래쪽을 확인해보는데...천에 구멍만 하나 딱 뚫려있고 팬티를 안입고있었다고 합니다. 이상하다 싶어 천을 다 풀어봤는데... 아니다 다를까 팔다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씨발이라는 말이 나왔고 그말함과 동
시에 다리에 힘이 풀려버려 주저 앉아버렸고 그 여성이 "오빠~왜그래~"하면서 꿈틀꿈틀 튕겨오면서 애무를 하려고 하자 겁에질린나머지 시발만 외치면서 그대로 튀어나왔는데 입구에 그 아주머니가 총각~재미있었어? 하면서 낄낄웃더랍니다. 그놈은 이미 자기가 거의 실성한 상태였다고 하면서 택시잡을 생각조차 안들었고 겁나 뛰었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역하기 몇일전... 그놈은 무슨 히스테리성 뭐시긴가...판정으로 의무대에서 사병원으로 보내졌다고 행보관이 말해주더군요. 그리고 제가 전역하고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이 아닌 일을 하면서 간혹 이 이야기를 아는 사장님들...실장님들이랑 이야기를 술먹으면서 하면 조까지마라면서 웃어넘기셨는데... 새로 들어온 실장이 정색하면서 그런걸 왜 니가 알고 있느냐고 뭐라하더군요... 에이 농담마세요 라고 넘기려고했지만 그때마다 인상 찌푸리시면서 생각하지 마라고...하셨죠 전 어느쪽도 믿는 편은 아니었지만...이쪽 업계에 실장이 그래버리니...;; 그후로 8년정도 이 업계쪽에서 일하다가...단속으로 망하고 다른일 하고있지만 이 이야기도 벌써 13년전?;;이야기네요...세월 참 빠르구나.
#2
저도 군대가기전에 겪은 일이라서 등골이 서늘했네요. 저희때는 색시집, 똥집이라고 해서 여자를 돈주고 사는일이 많았어요 - 집창촌 폐지되기훨씬 전임 저는 90년 다시마군번임 - 군입대전에 친구들과 술먹고 가는곳이 그곳이었고 한 친구 녀석의 직장이 수원이라서 수원에서 3차까지 술마시고 친구들과 엉켜서 똥집가자고 했고 끝나면 역 광장으로 오라는 얘기하고 집창촌에 갔읍니다. 제 기억에도 수원 역전 맞은편의 유흥가의 왼편 뒷쪽이었고 같은업종의 점포가 줄지어 있는 곳에서 호객아가씨들과 엉켜서 방에 들어갔는데 - 지금도 그곳은 미성년자 출입금지 구역으로 간판이 있음 - 호객하는 지지배가 참한애가 좋아? 거친애가 좋아? 하고 묻길래 참하고 예쁜애 라고 하자 그애 나가고 얼마있다가 밖에서 머리 긴 초등학생이 아줌마에게 안겨서 오길래 뭐야~ 하면서 자세히 보니까 팔은 윗쪽상완의 절반만 있고 다리는 허벅지가 절반인채로 옷은 벗기기쉬운 시스루의 옷을 입은 여잔데 얼굴을 묘사하자면 마치 스모키 화장한 이민정보다 100배는 예쁜얼굴이어서 한동안 보고있었는데 얘가 오빠 뭐해 안아줘야지 하니카 술기운이 싹 가시면서 말 얼버무리면서 신발신고 나가려니까 떡대가 앞을 가로막더니 돈은 내고 가야지 해서 3만원내고 나오는데 어떻게 나왔는지도 몰랐고 버스도 안다니는 그 새벽에 역전광장에서 담배물고 쪼그려 앉아 있으니까 친구녀석들이 하나 둘 오더니 서로 재미좋았냐 하며 서로 얘길하길래 내가 본 얘기를 하니까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그런애가 몇명된다는 얘기까지 들었네요. 본문의 내용이 1997년도리니까 얼추 제가 겪었던 시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니 집창촌에서 어관으로의 1:1호객으로 바뀐것이네요. 당시 1997년도가 imf시작이었고 집창촌이 해체되던시기라서 이해가 가네요. 직업이 영업직이라서 가끔 수원역 맞은편을 지나서 우회던할때 한번씩 보는데 꼭 그때 생각이 나네요.
첫댓글 어휴 씨발 한남들
ㅁㅊ ㅈㄴ 성매매충들 ㅅㅂ 인신매매로 뒤졌어야 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