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일본 해군의 침략전쟁의 최첨병으로 진주만 기습 때 비행대 총지휘관으로 활약했던 후찌다 미쓰오(淵田美津雄 1902-1976).
일본이 패전한던 날, 후찌다 (당시 대좌)도 분해서 울었다.
미주리함상에서의 항복조인식 때 해군측 대표중의 하나로 참석한 후찌다는 치욕감, 굴욕감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정말로 미국인(서양인)을 증오했다.
그 후, 후찌다는 일본점령군 사령부(GHQ) 정보부 전사실장 브랑케박사에게 호출되었다. 진주만 기습에 관한 인터뷰 요청이었다.
후찌다는 이에 응해 가던 중 우연히 한 책을 발견했다.
'나는 일본군 포로였다'라는 책으로 저자는 제콥데시에이서였다.
제콥은 비행중사출신으로 두리틀의 도꾜공습에 참가, 불행히도 일본군 포로가 되어 갖은 고문과 폭행, 학대에 시달리다 일본 항복 후 석방됐다.
제콥은 책에서 ' 일본군 수용소에서 고문을 받으면서도 성서를 읽고 기독교도가 된 후 일본인에 대한 적개심을 버렸다.'고 썼다.
후찌다는 이 책을 읽고 크게 감명받아 기독교에 귀의하기로 결정했다.
적을 증오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후찌다가 오오사까에서 처음으로 가두에서 전도활동을 벌이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진주만의 영웅 후찌다 상이 저 사람이래요..." 하며...
후찌다는 이 후 일본 전국, 미국 ,유럽 등으로15년간 선교 활동에 나섰다.
1970년대 초, 한국 선명회초청으로 한국도 방문, 경희대에서 선교 강연도 했다.
이 때 후찌다는 일제 26년간의 싣민지 통치(침략행위)에 대해 깊이 사과했다.
골수 군국주의자, 군바라의 놀라운 변신과 자기 개조였다.
후찌다는 1976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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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찌다 미쓰오가 기독교에 귀의한 이유는?
코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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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1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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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쟁광이었던 아소카왕이 잘 나가던 인도통일전쟁을 중단하고 인도에 불교를 널리 전파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 많은 수수께끼가 전해지지요. 예를 들자면, 전쟁터를 둘러보던 중 죽은 병사들의 시체들을 보고서 그 참혹함에 눈물흘려서 였다기도 하고... 혹은 전쟁터에서 죽은 아군과 적군 병사들의 귀신들이
그의 꿈속에 나타나서 "부처님께 빌어서 우리를 성불시켜라!"해서 였다기도 하고... 그런데, 그도 진짜 이유는 위와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런지요.
좋은 글이다 싶으니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