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우리 가게가 어디 있는지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그래서 근처 가게에 돌아다니면서
이 근처에 준오헤어라는 곳이
어디 있는 지 아냐고 묻고 다녔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한번이라도 들어본 곳이니까
인식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지금은 89개의 직영점을 가지고 있는
준오헤어의 대표 강윤선의 이야기이다.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반 중학교가 아닌
야간 학교에 진학해야 했다.
막내 딸 교육에 투자할 형편이 안 됐던 부모님은
그녀에게 일찍이 돈 벌어 오기를 원하셨다.
낮 시간 동안 잔심부름꾼으로 일하며 돈을 벌었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학교 다니는 친구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줄 때는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침마다 미용실에 들러
깻잎 모양으로 앞머리 드라이를 했는데
어릴 적부터 ‘예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은
어린 소녀가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사치였다.
그러던 그녀의 미용사라는 꿈은
특별할 것 없었던 그녀의 일상에서 시작됐다.
그 날도 어김없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들어와 직원에게 잠깐 동안
보따리 하나를 좀 맡아줄 수 없냐고 부탁했다.
직원은 매몰차게 거절했고
아주머니는 힘없이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던 그녀는 생각했다.
"나 같으면 친절하게 받아줬을 텐데.
그럼 저 아주머니는 평생 내 단골이 될 텐데.
나라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예 내가 미용을 배워볼까?"
그 날로 그녀는 무궁화기술고등학교로 달려가
미용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의 악바리 근성은
기술학교에서도 빛이 났다.
틈만 나면 연습에 매달렸던 그녀는
무궁화기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미용실에 취직했다.
그리고 1년 만에
미용사면 누구나 꿈꾼다는 명동 미용실 입성에 성공했다.
그리고 다시 1년 후,
돈암동에 `고추잠자리`라는 그녀만의 미용실을 열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가 21살이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대학 가서 멋모르고 멋이나 부릴 나이에
미용실을 내기 위해 사채를 쓰고도 모자라 일수까지 찍어서
겨우 얻은 4평짜리 미용실이었다.
100만원을 빌리면 하루에 1만3000원씩
100일을 갚아야 했다.
엄청난 이자지만, 일수 찍을 때마다 행복감이 밀려왔다.
이러한 기억 때문에 그녀는
실력 있는 미용사가 자신의 매장을 가질 수 있도록
매장을 새로 열어주거나 일정액을 도와주고
수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직영점을 늘려가고 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야간학교로 진학해
많이 못 배운 게 속상해
그녀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길이 보이는 듯 해
그 기쁨을 직원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매월 한 권의 도서를 정해 직원들도 책을 읽게 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처음부터 그녀의 나눔을
반갑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는
정말 몇 초, 혹은 몇 센티미터 차이밖에 되지 않는다.
어떤 선수가 더 이기는 습관을 갖고 있는가가
메달 색깔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는 믿음으로
책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후 찾아 온 변화는 그녀의 기대 이상이었다.
같은 책을 읽으니 공통의 화제가 생겨
직원 사이에 소통이 이뤄졌고,
지식과 상식이 풍부해지니
고객의 요구를 잘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사소한 것들이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본이 되었다고 말했다.
직원으로 근무할 때 점장, 사장을 보면서
‘나라면 저렇게 안 할 텐데’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실천하다 보니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된 것 같다는 그녀.
미용실 1개를 수백 억원 대의 매출을 자랑하는
미용기업으로 키워낸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직원들을 위한 교육기관이었던
준오아카데미 외에
새로운 아카데미를 준비중인데
이곳을 모든 미용업계 종사자를 위한
아카데미로 개방하여
이 곳에서 미용업계 스타 헤어디자이너를
줄줄이 배출해내고 싶다는 게
그녀의 꿈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죠.
그런데 계속 실패만 하면 안돼요.
작은 성공이라도 결국
성공이 성공을 만들어 낸답니다.
작더라도 작은 성공을 꾸준히 내 나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