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골죽도는 진도에서 53km 떨어진 해상에 있는 외딴 섬이다.
하루에 한 번 운행하는 배를 타고 4시간가량을 달려야만 닿을 수 있다.
서해와 남해 물결이 만나면서 쏟아내는 격랑의 바다 위에 떠 있다.
작은 섬이지만 아담하고 예쁜 섬이어서 낡고 음침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160여 개의 섬이 바다 위에 흩뿌려진 전남 진도군 조도면...
그중에서도 최남단에 위치한 맹골군도는 인근 주민들도 잘 알지 못하는 오지다.
전주에서 새벽 5시에 출발, 약 3시간만에 진도 팽목항에 닿았다.
섬사랑9호가 수리 중이어서 대체 선박으로 섬사랑17호가 들어왔다.
여객선은 서너 명의 승객을 싣고 9시에 출항하였다.
이 여객선은 조도군도의 다도해 12개 섬들을 연결해준다.
이 배는 바다 위를 누비는 일종의 시골 완행버스다.
섬 주민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발이다.
전화 사전 예약제로 여객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기항한다.
1시간 30분 만에 가장 먼저 슬도(瑟島) 에 입항했다.
섬이 워낙 작아서 농토가 한 뼘도 없다.
1979년 119명에 달하던 인구가 현재는 10명 안팎으로 줄었다.
두번째 기항지는 독거도(獨巨島)다.
'거센 파도 때문에 오도가도 못한다' 해서 '독거도'라 했다.
세번째로 청등도(靑藤島)에 입항하였다.
청등도는 관매도와 독거군도 사이에 위치한다.
경치가 좋고 마을이 온화한 모습이라 하여 '청등도'라 부르게 되었다.
네번째 기항지는 죽항도(竹項島)였다.
조도군도의 주 섬인 하조도의 동남쪽에 위치한다.
섬의 대부분이 암석해안으로 이뤄져 해안경치가 빼어나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리기 시작하여 불안하였다.
하조도(下鳥島) 등대가 보인다.
몇년 전, 산악회 따라와서 등대까지 트레킹하였다.
창유항(倉遊港)은 조도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조도 일대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규모가 제법 큰 항구다.
상조도와 하조도를 통칭해 조도라 하며, 2개의 섬은 조도대교로 이어졌다.
여섯번째로 상하죽도(上下竹島)에 닿았다.
상하죽도는 서거차도 바로 앞에 위치한 조그마한 섬이다.
두 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20여 년 전에 다리를 만들어 하나가 되었다.
일곱번째로 서거차도(西巨次島)에 입항하였다.
옛날에는 이곳에 어획물이 풍부해 파시가 섰다고 한다.
제주도를 왕래하면서 이 섬을 경유하게 되어 '거차도'라 하였다.
맹골죽도 옆에 붙어있는 참새바위가 보인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등대를 사모한 참새’라고 부른다.
참새바위를 찾아 마을 사람들이 알려준 길로 갔지만 실패했다.
여덟번째는 맹골도(孟骨島)로 들어간다.
맹골도는 죽도와 곽도를 비롯한 맹골군도의 중심 섬이다.
'맹수처럼 사나운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 맹골죽도에 도착하였다.
전국적으로 '죽도'라는 이름을 가진 섬은 너무 많다.
다른 죽도와 혼돈을 피하기 위하여 '맹골(孟骨) 죽도(竹島)'라 부른다.
우리 둘만 내려놓고 곽도로 떠나는 여객선이 멀어져 간다.
교회 목사가 써놓은 성경 말씀이 우리를 반겨준다.
전동차를 타고 나타난 무뚝뚝한 주민이 말을 걸어왔다.
선착장 앞에 있는 너른 암벽에 '맹골죽도'가 보인다.
맹골죽도는 작은 섬이지만 아담하고 예쁜 섬이다.
주인도 없는 '해변민박집'에 들어갔다.
돌 밑에 숨겨놓은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민박집은 그런대로 깨끗하고 아늑하였다.
주민들의 대부분은 목포에 나가 있어 집들은 거의 비어 있었다.
여름에 미역철이 되면 모두 들어와서 공동 작업을 한다.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은 오직 세 사람뿐이었다.
낚시하는 노인, 다리 다친 아저씨, 민박집 여주인이 모두였다.
마을은 경사진 북쪽의 뒷산을 배경으로 따뜻한 햇살이 드는 남향에 자리잡았다.
마을 오른쪽 끝자락에 아담한 교회가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교회는 담벼락에 성경 구절을 새겨두었다.
목사는 육지에 나갔는지 인기척이 없었다.
마을 담벽에는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눈이 즐겁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저장하기 위해 집집마다 물탱크가 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등대와 무종(霧鐘)을 보기 위에 산으로 올라갔다.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멋진 민박집이 있다.
조그만 누렁이가 우리를 향해 맹렬하게 짖어댄다.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잎을 피워 열매까지 맺었다.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셔터를 눌렀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생을 이어온 섬 사람들의 기질과 닮았다.
정상에 오르니 뱀머리언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납작하게 엎드린 나무와 풀들만 넓은 초지를 형성하고 있다.
푸른 초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어 외국의 풍광을 연상케 한다.
마을에서 10여 분 언덕으로 오르면 등대와 무종이 나온다.
무종(霧鐘)의 종탑이 로마제국의 잔해 같다.
무종은 안개로 등대 불빛이 보이지 않을 때 직접 타종해 위치를 알려주었다.
무종은 종탑에서 떨어져 따로 보관하고 있다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무종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종탑에 무종이 매달린 원래 모습은 이렇다.
우리도 무종처럼 나이가 먹어가지만 서로 사랑합시다.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바다를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등대가 있다.
일본이 1907년 맹골죽도에 세운 이후 100년 넘게 이곳을 지켜왔다.
인천 팔미도 등대보다 4년 늦었지만 목포해역에서는 최초로 생긴 유인등대다.
맹골도의 자연 풍광만큼은 순진무구 그 자체다.
사람들의 자취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자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다양한 식물들이 분포하고 있는데 군데군데 자생 뽕나무가 보인다.
물결을 따라 물결로 가면 다다를 수 있을까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자란 바다의 갈비뼈 하나
섬은 섬을 섬이게 하는 바다를 모르고
바다는 바다를 바다이게 하는 섬을 모른다
물결이 물결을 일으켜 섬을 감추고
물결이 물결을 쓰러뜨려 섬을 드러내는
온갖 쓰러짐과 일어섬의 바다에서...............................................강연호 <섬> 전문
맹골죽도의 지킴이 먹구렁이가 몸을 말리고 있다.
마을 주민들에게 보여줬더니 모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해역을 ‘맹골수로’라 부르는데 조류가 매우 빠른 곳으로 알려졌다.
배가 하루 수백 척씩 오가지만 수심이 깊고 거칠어 선박사고가 빈번했다.
2014년 4월16일 이곳에서 세월호가 침몰하여 304명이 사망했다.
맹골죽도 등대는 원격조종이 가능한 무인화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등대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CCTV가 달려 있었다.
등대는 일몰시각이 되자마자 불이 켜졌다.
등대 불빛이 보이는 광달거리만 21해리(38.89㎞)라 한다.
죽도등대 불빛은 밤에도 쉬지 않는다.
맑은 바람을 맞고 자란 꽃들의 색깔이 선명하다.
꽃들의 이름을 알 필요도 없다.
그냥 ‘섬꽃’이라 하자.
가슴 시린 외로움과 거센 바람과 맞서며 피었을 섬꽃....
뱀머리언덕에 가기 위해 아래로 내려간다.
이 길은 섬 사람들이 미역 따러 갈때 이용하는 길이다.
잡풀과 작은 찔레넝쿨들이 엉켜있어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다.
가던 길을 포기하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갔다.
뱀머리언덕은 마음 속에 고이 담아가기로 하였다.
바다 위에서 섬을 그린다
가는 볼펜 끝에 낚시를 달고
먼 섬을 잡아당긴다
솔바람 소리가 일면서
수평선상에 떠오른 섬을 끌어올린다
섬이 팔팔 뛴다
줄이 끊어지자 다시 수평선으로 돌아간다................................... 이생진 <해상에서> 전문
오후 1시에 출항하는 배를 타고 진도항으로 나왔다.
섬사랑17호에는 우리만 타고 있어 무한 자유를 누렸다. ㅎㅎ
독거도에서 타신 안행식님 부부를 마을까지 모셔다 드렸다.
유명한 독거도 미역 1kg을 구입하였다.(16만원)
자기들을 집까지 태워줬다고 1만을을 깎아준 것이다.
자연산이라 끓이면 끓일수록 뽀얀 국물이 나오고 쫄깃쫄깃해진다.
진도 세방낙조전망대에서 낙조를 감상하였다.
섬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하였다.
내일 아침 일찍 가사도에 들어가야 하기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