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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로 성령을 근심케하지 말라.
에베소서 4장 30~32절
(잠12:16)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질을 내는 것은 성령의 다스림을 받고 있지 않다는 표시이다. 성질을 내는 것은 성령께서 환경가운데 안배하신 것에 대하여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다. 성령의 다스림 받기를 배우고,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의 쓸모없음을 보게 되면 자연히 성질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믿을 때 즉시 성질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성질의 문제를 그리스도인이 된지 수년이 지난 후에 다룬다면 늦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주관적인 사람이 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자신만을 돌보지 않고, 금전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에게 임한 모든 일이 우리의 유익을 위한 성령의 안배임을 알고 받아들이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병의 증세인 성질을 처리하려고 하지 말고 병의 뿌리를 처리해야 한다. 절대로 성질만을 처리하고 자아를 처리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볼 때 성질이 있는 데에는 자아가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먼저 성령의 안배 가운데서 자아를 처리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나는 지금 의로운 분노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 불의나 악에 대해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종류의 분노 말고 그저 죄받을 분노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화를 낼 때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때가 많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우리에게 잘못을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노는 종종 정의감을 동반한다. 하지만, 분노는 죄받을 분노, 증오, 원한으로 변하기 쉽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내 자신의 죄받을 분노를 극복하도록 돕기 위해 사용하셨던 성경적 진리와 원칙을 몇 가지 소개한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마태복음15:19) 다른 어느 누구도 당신을 화나게 할 수 없다. 환경도 당신의 분노를 촉발하지 않는다. 분노는 당신 자신의 죄이다. 데이비드 파울리슨은 우리의 마음이 스폰지와 같다고 말한다. 만일 스폰지를 짜는데 검은 잉크가 나오면, 짜는 행위 자체가 검은 잉크의 유출을 초래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다른 스폰지를 짰는데 거기서는 깨끗한 물이 나올 수 있다. 따라서 잉크가 나온 것은 짠 행위 때문이 아니라 잉크가 스폰지 속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짠 행위는 그저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을 드러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이 우리의 마음을 "짤" 수 있는데, 그때 분노가 나오면 그것은 분노가 우리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분노는 충족되지 못한 욕망 때문에 촉발된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야고보서4:1-2)
야고보 사도는 우리 자신의 "정욕들"이 우리의 모든 다툼과 싸움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우리가 욕심을 내는데 얻지 못하게 되면, 살인하고 싸우고 다툰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무언가를 원하는데 그것을 얻지 못하게 되면 화를 낸다는 말이다. 화가 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내가 얻지 못해서 지금 갖고자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지?" 한번은 내가 아이들에게 저녁에 잠을 자라고 말했는데 그 아이들이 레슬링을 하면서 무언가를 던지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들에게로 올라가서 "나를 화나게 하지 마라"고 경고했는데, 한 아이가 "하지만, 아빠는 다른 어느 누구도 아빠를 화나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잖아요?"라고 대꾸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네 말이 맞다. 너희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고, 그것이 나를 시험하고 있다(나를 쥐어짜고 있다). 그런데 내가 화를 냈고, 그것은 나의 잘못이다"라고 대답했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얻지 못해서 갖고자 한 것이지?" 나의 대답은 '나는 쉬고 싶었다'였다. 나는 언제나 완벽하게 즉시 복종하는 아이들을 원했던 것이다. 나는 TV를 보기를 원했지 아이들의 취침시간을 감독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야고보서1:19-20)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태복음5:21-22) 우리는 분노의 심각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저 한판 터뜨린 것뿐이야," 아니면, "열 좀 받았지" 정도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분노가 마음속의 살인이며 십계명 중의 하나를 어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바로 지옥불에 해당하는 범죄일 수 있는 것이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언15:1)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언15:18) 분노는 의로운 일을 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태를 악화시킨다. 다른 사람의 분노를 촉발시켜서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욕망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얻게 된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에베소서4:26-27) 우리가 "화를 내느라 해지는 줄 모르거나," 혹은, 화를 시의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할 때 사탄은 우리를 유혹해서 원한과 분노와 중상 그리고 무수한 다른 죄들을 짓게 한다. 이는 용서를 구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등 일을 순리대로 처리하지 못한 결과이다. 아벨에 대한 가인의 분노는 결국 동생을 죽이게 만들었다. 분노는 심각한 증상이다. 분노는 신속하게 처리해야만 한다.
분노를 적절하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 (분노.스트레스 전문 심리학자 전경구교수)
상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먼저 표명한 뒤 분노를 표현하라. “당신은 내 친구 앞에서 나를 무시했어” 대신 “나는 내 친구 앞에서 무시당하면 화가 나”로. ‘당신’이 주어가되면 대화가 비난조 “아리스토텔레스도 바른 대상, 바른 정도, 바른 시간, 바른 목적, 바른 방법으로 분노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오른손으로 벌하되 왼손으로는 정답게 껴안으라
아무 증거 없이 타인의 말과 행동이 당신을 겨냥한다고 느끼지는 않는지…. ‘나는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을까?’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과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지각하라. 자신뿐 아닌 좀 더 넓은 세계에 관심을 가져라. ‘~때문에’라는 부정적 핑계보다 ‘~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긍정적 논리에 익숙 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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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oyful의 뜰 원문보기 글쓴이: Joy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