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문장, 끝문장] 자전거여행, 김훈 (2000년작) → [커뮤니케이션 스쿨 10]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독서법 – 책은 어떻게, 왜 읽는가?
2013/07/19 BY WHITE LEAVE A COMMENT
“서점에 가서 책을 들고 2/3 지점을 펴세요. 페이지를 꼼꼼히 읽으세요. 표현력, 컨텐츠, 문체 등이 훌륭하다면 그 책은 전체적으로도 훌륭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작가들이 글을 쓰다가 지치는 시점이 저 부분이기 때문이죠. 또, 마지막만 읽는 독자들도 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신경을 쓰게 됩니다. 2/3 지점이 가장 취약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2/3 지점마저 좋다면 전체적으로도 좋을 겁니다.”
1년에 4만 권의 책이 출간된다고 합니다. 다 읽을 수 없습니다. 기왕 읽는다면 잘 선택해서 읽어야 하고 선택한 책을 잘 읽어야겠죠. 그래서 지난 17일 저녁, 비를 뚫고 평론가 이동진의 ‘독서법’ 강의를 들으러 갔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뒤쪽에서 서서 들어야 했지만 불편함을 신경쓰지 않을 만큼 재미있었습니다. 가장 큰 수확은 ‘독서의 정도’라고 생각했던 것을 어겨도 된다는, 일종의 허락을 받은 느낌이랄까요
1-1 완독, 안 해도 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총균쇠>를 읽는다 치자. <총균쇠> 초반 텍스트는 읽기가 무척 어렵다. 진도가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의 텍스트를 건너뛸 수는 없어 붙잡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개츠비>가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사려고 마음을 먹는데, 집에 못 다 읽은 <총균쇠>가 생각난다. 집에 있는 책도 못 읽었는데 다른 책을 사면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 같이 느껴진다. 책을 잘 읽지 못 하게 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완독에 대한 강박’이다. 어떤 책을 읽는 데 지지부진 했다면 그냥 버리면 된다. 재밌으면 완독하면 된다. 어차피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재밌는 것만 읽으면 된다. 100페이지만 읽어도 그 책은 100페이지만큼 읽은 거다. 다 읽지 못한 책을 완주하지 못한 마라톤이랑 비교해서는 안 된다. 책은 서문만 읽어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1-2 속독, 안 해도 됩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15분 안에 읽을 수 있다는 속독법 학원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부 사기였다. 빨리 읽는 방법은 없다. 건너뛰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하다. 다독은 중요하지 않다. 시간이 걸리는 일은 그 시간이 걸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예를 들어 연애의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클럽에서 쉽게 만나는 연애도 있겠지만 빨리 끝나버린다. 20년 연애 끝에 결혼하는 것. 그런 과정 자체가 사랑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책을 빨리 읽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펴자마자 책의 마지막장을 읽을 때까지 책장을 덮을 수 없을 것이다”라는 말로 홍보한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는 것보다 종종 꺼내보는 것이 좋다.
1-3 책, 손에 들고 다니세요. 스마트폰을 보는 것은 휴대하기 때문이다. 책을 손에 들고 다닌다면 책이 스마트폰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다. 책을 휴대한다고 해도 가방 안에 있으면 꺼내고, 읽었던 부분을 찾고, 다시 가방에 넣고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잘 안 보게 된다. 들고 다니는 게 좋다.
1-4 책, 찢어도 됩니다. 책은 마음껏 하대해도 된다. 접어도 되고 적고 싶은 게 있으면 적고, 찢어서 가지고 다녀도 된다. 내가 책을 읽을 때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줄을 칠 때다. ‘아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할 때가 가장 즐겁다. 참고로, 책을 아무리 아껴도 중고서점에 팔 때 800원 차이밖에 안 난다. 베스트셀러는 너무 많아서 매입도 잘 안 한다
1-5 책, 사치 부려도 됩니다. 어떤 것에 허영을 부리고 싶다는 것은 그것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책읽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다. 일례로, 아이돌들의 연기가 대체로 잘 늘지 않는 이유는 연기를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돌들이 바라는 것은 인기를 얻는 것이다. 그런데 꼭 연기로 인기를 얻어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겠지만 일반 배우들의 그 생각과 큰 차이가 있다. 다른 예로 여행자 유성용씨가 있다. 이 사람은 여행 짐을 간단하게 싼다. 그런데 히말라야에 갈 때 팥빙수 기계를 가져갔다. 두 달 여행을 가더라도 배낭 하나 가져가는 사람인데 팥에 인절미떡, 후르츠칵테일까지 가져갔다. 이유는 히말라야의 얼음으로 팥빙수 만들어 먹고 싶어서. 그는 여행에 허영이 있는 것이다. 그게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저는 욕조에서 책을 본다. 몸을 푹 담그고 책만 빼서 본다. 4-5시간 볼 때도 있다. 책이 잘 읽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사치다. 책이 젖지는 않는다. 저는 달인이니까. 그런 장소를 하나씩 만들어놓으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빛이 잘 드는 카페 창가에서 3시간 독서시간을 자신에 선물해라.
2. 책은 왜 읽어야 할까
2-1 능동적인 인간 ‘그는 높이 뛰어올랐다’를 동영상으로 표현한다고 치자. 일단 ‘그’가 누구인지가 명확히 표현된다. 강동원일 수도 이병헌일 수도 있다. ‘어떻게 높이’ 뛰는 지도 명확해진다. 폴짝 뛸 수도 있고 다리를 버둥거릴 수도 있다. 영상은 단 하나의 표현만 담는다. 글은 그렇지 않다. 독자에 주어진 것은 ‘그’, ‘높이’, ‘아래에서 위로의 운동방향’ 세 가지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상상해야 한다. 굉장히 듬성듬성한 전달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아무리 재밌는 책이라도 보는 중에 딴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책은 산만하다.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읽는 것이 인간을 능동적으로 만든다.
2-2 읽는 인간을 넘어서 쓰는 인간으로 어떤 직장을 갖든 글쓰기는 계속된다. 또 중요하다. 인문학 계열은 말할 것도 없고, 엔지니어들도 글쓰기를 한다. 사원의 경우 업무시간의 30%, 매니저급은 50%다. 변호사의 능력은 소장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갈리기도 한다. 글쓰기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책읽기다.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많은 경우 피동적이다. 그냥 가만히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생각하고 싶다면 대개 글을 쓴다. 생각과 글쓰기는 한 몸이다. 우리 사고 과정은 언어에 종속되어 있다. 생각은 문자로 이뤄진다. 잘 생각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많이 쓰고 많이 읽는 방법밖에 없다.
2-3 취미가 있는 삶 독서는 쾌락에 의거해야 한다. 즐거움을 주는 것은 매우 많다. 단위시간당 쾌락의 정도가 높을수록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쾌락의 정도가 가장 강력하다는 마약은 오래 즐길 수 없다. 독서는 밥 먹는 것과 비슷하다. 안 질린다. 인생에서 취미는 중요하다. 노년에 스타그래프트를 취미로 가지기는 힘들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20대한테 진다. 취미 측면에서 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3. 책, 무엇을 읽어야 할까 가장 흔히 읽히는 것이 베스트셀러다. 그런데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그것이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이다. 패리스 힐튼의 유명세와 같다. 패리스 힐튼이 유명한 이유는 그냥 그가 유명하기 때문이다. (힐튼호텔의 상속녀라 유명하다기에는 다른 상속녀들이 유명하지 않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취향이 순수히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돈의 힘에 많은 경우 좌우된다. 예를 들어 영화의 경우 예고편을 언제 극장에서 트느냐에 따라 예고편 값이 다르다. 영화 시작 직전의 예고편 가격이 가장 비싸다. 우연히 그 예고를 보게 될 확률이 상당부분 돈의 힘이다. 보고 싶은 이유가 안 드는 영화는 우리가 그 영화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돈의 힘이 없는 영화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에 대해서 조언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 거부감을 두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자. 그 사람들은 밥 먹고 책만 보는 사람이다. 분업의 일부다. 처음 시작할 때, 평론가를 참고하자. 그렇게 2-3년 지나면 자신만의 눈을 가지게 된다. 그 후에 ‘사다리를 차버리면’ 된다. 편집 김정현
첫댓글 제가 책을 다 읽지도 않았는데 보수동가도 사고 누가 중고로 내 놓은 책도 사고 그래서 마음이 늘 무거웠는데 이제 안그래도 된다하니 한시름 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