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매일매일』은 《경향신문》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격주로 연재한 글들을 수정·보완하고 새롭게 쓴 글들을 더한 것으로, 등단한 지 어느덧 10년 가까이 된 소설가로서의 꾸준한 성찰과 사유가 응집되어 있는 책이자, ‘빵’과 ‘책’을 매개로 작가가 애착을 갖고 살펴온 삶의 세목들에 대한 마음을 담은 책이다. 때론 달콤하고 때론 슴슴한, 세상의 많은 빵들만큼이나 다채로운 풍미를 지닌 한 편 한 편의 글들은 작가가 오래 붙들려온 책들에게로 우리의 시선을 이끈다. 문학 작품은 물론, ‘난민’을 주제로 한 그림책부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과학교양서, 주변인과 소수자에 대한 ‘관찰’이 아닌 ‘공생’을 담아낸 사회학 보고서, 원예지침서와 식품교양서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책들의 면면을 찬찬히 펼쳐보노라면, 현실에 치여 종종 외면해온 우리들 마음 안팎의 풍경이 “페이스트리의 결처럼” 겹겹이 되살아난다.
이 책은 총 다섯 개의 부로 나뉘어 있는데, 첫 번째 ‘당신에게 권하고픈 온도’에서는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의 중요성이, ‘하나씩 구워낸 문장들’은 소설 쓰기에 대한 진솔한 고민과 각오가, ‘온기가 남은 오븐 곁에 둘러앉아’는 가족과 친구, 반려견에 이르는 주변의 소중한 관계에 관한 일화들이 짧지만 밀도 높은 글들을 통해 조목조목 이어진다. 네 번째 ‘빈집처럼 쓸쓸하지만 마시멜로처럼 달콤한’에서는 사랑을 통한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을, 마지막인 ‘갓 구운 호밀빵 샌드위치를 들고 숲으로’는 인간과 자연, 문화 안과 밖의 경계를 넘어선 연대를 아우른다.
이렇듯 우리가 발붙인 세계와 그 구석진 자리까지도 환히 빛을 비추는 작가의 응시와 탐색은 한 컷 한 컷 공들여 작업한 김혜림 그림 작가의 일러스트와 어우러지며 명징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햇살 잘 드는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차와 디저트를 앞에 두고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책은, 삶이 고통스럽거나 불행 앞에서 무기력해질 때마다 온기를 간직한 “한 덩이의 빵”이 우리에게 있음을 잊지 말자고 당부하는 것만 같다. 목청 높여 강요하지 않고, 다만 차분한 목소리로. 우리의 매일매일이 조금은 더 다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당신의 매일매일이,
조금은 다정해졌으면
백수린 작가에게 책과 더불어 ‘빵’은 일용할 마음의 양식과도 같다. 빵이 나오는 구절을 만나면 내용과 상관없이 그 책에 대한 애정을 느끼곤 했다는 지극한 빵 사랑은 “빵집 주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과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결국 소설 쓰는 사람이 되었다”고 술회할 정도다. 하지만 작가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대신 둘을 모두 가슴에 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설 쓰기는 곧 빵을 굽는 일과 다름없었기에. 그것은 “누군가에게 건넬 투박하지만 향기로운 빵의 반죽을 빚은 후, 그것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일”이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런 마음으로 소설 쓰기에 임해온, 백수린 작가의 읽고 쓰는 나날들의 기록이자 빵에 대한 각별한 애정 고백과도 다르지 않다.
내게 소설 쓰는 일은 누군가에게 건넬 투박하지만 향기로운 빵의 반죽을 빚은 후 그것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일과 닮은 것도 같다. (…) 나는 오늘 빵을 건네는 이의 마음으로 허공에 작은 빵집을 짓는다. 어딘가 있을 당신에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책들을 건네기 위해서._본문 22~23쪽
마카롱과 앤 카슨
침니 케이크와 아고타 크리스토프
슈톨렌과 로맹 가리
……
빵과 책, 온기 어린 마음의 양식
『다정한 매일매일』은 작가에게 ‘소울푸드’라 할 수 있는 ‘빵’을 통해 책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입속에서 녹아 금세 사라지고 마는 마카롱의 ‘지독한’ 달콤함은, 앤 카슨의 『남편의 아름다움』에서 이성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예술 본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성찰을 이끈다. 굴뚝 모양의 헝가리 빵 침니 케이크가 매개하는 책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다. ‘침니 케이크를 헝가리의 빵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은, “기이하고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매혹적인 방식”으로 제기하는 정체성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마틴 슐레스케의 『가문비나무의 노래』는 오랜 시간 반죽을 숙성시켜 굽는 캉파뉴를 연상시키고, 독일에서 크리스마스 기간에 즐겨 먹는 슈톨렌은 로맹 가리의 「지상의 주민들」에 나타난 연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존재들의 기적적인 연대로까지 나아간다.
따듯한 단팥빵을 나눠 먹는 순간조차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고독할 것이다
언뜻 보면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로 가득 찬 책인가 싶지만, 백수린 작가는 섣부른 낙관이나 위로의 말은 삼간다. 누군가와 단팥빵을 나눠 먹는 순간에서조차도, 우리는 나름의 상처들로 각자의 자리에서 고독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에게 쉽게 발설할 수 없는 상처”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욕망과 충동을 감당하며 사는 존재”임을 짚어내는 작가는, 그럼에도 우리의 인생이 친애할 만한 것인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고민한다. 그리고 앨리스 먼로가 그토록 쓸쓸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제목을 ‘친애하는 인생에게’라고 붙인 것처럼, 그 답의 실마리를 다시 ‘소설’에서 찾는다.
소설을 읽고 쓰는 일은 나의 내밀한 고백에 “사람들은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한단다”라고 읊조려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소설이 그런 것이라면, 당신과 내가 소설을 읽고 쓰는 사람들인 한 인생은 아직 친애할 만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_본문 228쪽
작고, 어여쁘며, 서툴러 경이로운 당신에게
은은하고 감미롭게 흐르다가도 이내 무뎌진 감각과 의식을 예민하게 건드리는 글들에는 백수린 작가가 그간 천착해온 인생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의 일렁이는 결들이 고스란히 담긴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의와, 소설을 읽고 쓰는 일이 좀 더 나은 삶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는 각오가 글마다 선연히 새겨져 있다.
소설이 아닌 글을 처음으로 책으로 묶어내면서 걱정이 우선 앞섰다고 고백하는 작가이지만,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자기 앞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성심을 다해 통과해온 한 소설가의 내면을 투명하게 마주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내면 또한 정직하게 그리고 조금은 더 온기 어린 눈길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상처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면서 묵묵히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나가”고 있음을 이제는 믿기 때문에. 마음과 마음 사이가 어느 때보다도 멀게 느껴지는 계절에, 『다정한 매일매일』은 갓 구운 빵처럼 포근하고 좋아하는 책을 마주한 순간과 같이 따듯한 품을 기꺼이 그렇게 내어준다.
이상하고 슬픈 일투성이인 세상이지만 당신의 매일매일이 조금은 다정해졌으면. 그래서 당신이 다른 이의 매일매일 또한 다정해지길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는 여유를 지녔으면. 세상이 점점 더 나빠지는 것만 같더라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안녕을 빌어줄 힘만큼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을 것이므로. _「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