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윅 Malcom C. Fenwick, 침례교
선교는 타고난 사람이나 교역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인들도 마음 속에 소명의식이 있다면 누구나 선교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잘 보여준 이가 말콤 펜윅입니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읜 후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했지만, 독립심이 강했던 그는 캐나다에서 철물회사를 운영하고 꿋꿋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던 펜윅이 선교를 결심하게 된 것은 1886년 어느 토론토 거리에서였습니다. 길을 걷던 중 주님을 만나는 경험으로 거듭남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후 그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확신을 전해야 함을 발견했고, 결국 선교를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그는 신학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목사도 아닌 그저 사업가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하나님은 펜윅의 마음을 두드리셨습니다. 북미주 해외선교사였던 와일더(Robert P. Wilder)의 설교를 통해 선교를 굳게 결심했고, 1889년 헤론(J. W. Heron) 의료선교사의 부인이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교수형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 한국선교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26세의 청년이었던 펜윅은 1889년 7월 캐나다를 떠나 12월 8일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1년 가까이 우리나라의 문화를 익힌 뒤 황해도 소래에 사는 서병조 선생을 찾아가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그 후 4년 뒤 캐나다로 돌아가 미국 보스톤의 클라랜돈 스트릿 침례교회의 고든 목사 밑에서 3년 동안의 신학공부를 한 뒤 목사안수를 받아 1896년 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선교지를 함경도 원산으로 정하고 그곳에 선교본부를 두어 ‘대한기독교회’라는 간판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만주와 시베리아까지 160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등 선교사역을 시작했으며 그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는 공주, 강경지역의 교회를 맡아 양육하여 총 250여 교회를 이룩하며 침례교단의 초대 총회장이 되기도 했으나, 한국교회의 자립과 미래를 위해 제2대 총회장으로 이종덕 목사를 임명함으로써 한국침례교회의 새 장을 열어주었습니다.
이렇게 펜윅은 평신도였지만 위대한 선교사였고, 우리나라의 침례교 창시자로서 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불변의 명령에 순종하였고 선교사로서 부족함 없는 준비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 놀라운 선교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