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오전 5시 20분께 서울 송파구 잠실 1파출소에 괴한이 침입, 근무 중이던 부소장 조성호 경사[1]를 둔기로 가격하여 살해하였다. 근무를 마치고 교대를 위해 돌아온 동료가 그를 발견하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게 하였으나 사망하였다. 또한 소지하고 있던 38구경 권총과 실탄 3발, 공포탄 2발도 같이 사라졌다.
부검 결과 피하출혈과 늑골골절이 발견됨에 따라 범인이 2명 이상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생겼다.
이 당시만 해도 파출소는 경찰관 1명~2명이 근무하는 경우가 흔해 사건 발생 당시 파출소에는 피해자 혼자 근무 중이었고 파출소 2층에는 소장과 경찰 견습생 2명이 자고 있었으나 모두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2. 사건 경과
발견 장소가 근무자들은 사용하지 않는 파출소 내 방범원실이라는 점과 흉기가 소화기 혹은 권총이라는 점, 머리를 20차례 이상 맞은 점을 미뤄 우발적이나 처음부터 살해 의도가 분명했다는 점을 고려해 원한이나 채무관계에 따른 면식범의 우발적인 범행으로 추정했다.
피해자가 30대 남성과 있었다는 목격자의 진술로 작성된 몽타주[2]가 인근 유흥업소 업자와 상당히 닮아 있어 당시에 단속했던 유흥업소를 조사했으나 큰 소득은 없었다.
권총을 인근에 유기했을 가능성이 있어 일주일 간 서울종합운동장과 탄천, 석촌호수, 인근 한강변에 대한 수중탐색까지 실시했으나 총기는 발견하지 못했다.
당시 대통령이였던 김영삼이 유족을 위로했으며 경찰은 갑호 비상령을 내리고 인근 터미널 등에 병력을 배치했다. 또 권총을 이용한 추가범행에 대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은행 등 금융기관에 경찰이 근무를 했다. 경찰관에게 공포탄 없이 실탄을 지급하도록 조치하고 30개 경찰서에 전담반을 배치하는 노력을 했으나 결국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이 사건 이후 전국 파출소에 CCTV를 설치하게 된다.
모 언론에서는 경찰이 홀로 있다고 해도 맥없이 죽고 무기를 빼앗기느냐는 투로 비난조의 기사를 썼으며 당시 한국일보에 4컷 시사만화를 연재하던 고우영 화백 만화에서는 복처[3]에서 포졸이 맞아죽고 육모방망이를 빼앗긴 셈이라고 풍자했다. 언론의 비난이나 풍자도 아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파출소는 어디까지나 치안유지와 민원서비스를 담당하는 곳이지 군부대의 초소 같은 곳이 아니다. 범인이 이미 경관을 죽이기로 마음먹고 일반적인 민원인이나 평범한 시민으로 위장하고 경관이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에 은닉해둔 흉기나 둔기로 공격하면 경찰이 아니라 그 누구도 저항하기 힘들다. 파출소에 들어올 때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경찰은 당연히 민원인으로 생각하고 대하지 경계초소처럼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경찰이 1명이 아니라 2명 이상이었다면 대항하기 쉬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