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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 극락으로의 초대
극락왕생의 가장 수승한 길이자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락으로 바꾸는
불가사의한 힘, 염불!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감동과 희열이 솟구쳤습니다. 선지식이 들려주는 진리의 말씀은 보석보다도 빛을 발합니다. 이 책이 성불 학교 극락의 문으로 들어가는 훌륭한 안내자가 되어주리라 믿습니다.
- 광우 스님 (BTN불교TV 〈광우 스님의 소나무〉 진행자) 추천사 중
“말법 시대에는 수억의 사람이 수행하되 한 사람도 도를 얻기 어려우나, 오직 염불에 의해서만 생사를 건널 수가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불보살들에게 대승의 법을 설명한 경전인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에 나오는 말이다. 말법 시대란 부처님 열반 후 만 년이 지나 불법이 쇠퇴한 시기를 말한다. 수억 명이 수행해도 한 사람조차 도를 얻기가 어렵고, 교만과 질투가 넘치는 때이다. 그런데 염불에 어떤 힘이 있기에 이토록 어려운 시기의 중생이 의지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일까? 염불을 외면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뀔까? 실제로 염불의 덕을 본 이가 있을까?
이 책, 『염불, 극락으로의 초대』에 그 모든 답이 있다. 중국 위앙종 9대 법손이자 1962년부터 미국에 선원을 짓고 불교를 전파한 선화 상인의 가장 대표적인 염불 법문을 모았다. 선화 상인의 법문은 이제 막 불교를 접한 미국인 불교도들을 대상으로 해 설명이 자세하고 이해하기 좋다. 염불 수행의 목적과 방법, 그 공덕은 물론 염불로 가피를 얻은 사람의 이야기까지 읽어보고 나면 절로 두 손과 마음을 모아 염불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선화 상인
인물정보
종교인
(宣化 上人, 1918~1995)
법명은 안자(安慈), 자는 도륜(度輪)이다. 중국 위앙종의 제9대 법손이며, 사호(賜號)는 선화(宣化)이다. 29세 되던 1947년 보타산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1949년 홍콩으로 건너가 선종, 교종, 율종, 밀종, 정토종의 다섯 종파를 고루 선양하며 문호파벌을 타파하고, 여러 사찰을 건립하였다. 1956년 허운선사(虛雲禪師)로부터 중국 위앙종의 법을 이어받고 ‘선화(宣化)’라는 법호를 받았다. 1962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 불교학당을 설립하여 불법을 전했다. 1973년 국제역경원을 설립하였고, 1974년 캘리포니아주 유카이아 시(市)에 만불성성(萬佛聖城)을 건립한 후 미국 등 세계 각지에 27개의 도량을 건립하였다. 상인은 평생토록 계율을 엄정하게 지키고 부처님의 제도를 준수하였으며, 참선과 염불 예참, 경전 연구, 계율 수지, 대중화합 등을 특히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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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 극락으로의 초대(큰글자책)
염불 극락으로의 초대(큰글자책)
부처님 말씀 그대로 행하니
부처님 말씀 그대로 행하니
허공을 타파하여 마음을 밝히다
허공을 타파하여 마음을 밝히다
능엄경 강설(하)(양장본 Hardcover)
능엄경 강설(하)(양장본 Hardcover)
능엄신주 법문
능엄신주 법문
번역 각산 정원규
인물정보
불교인 번역가/통역사
경남 진주에서 출생하여 경북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중국의 대학연수와 해외사무소 파견근무를 하였으며, 중국에서 접한 불서와 고승의 법문에 감명을 받아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불교에 입문한 이후 경전 연구, 염불, 능엄주 지송, 참선 등의 수행을 통해 마음을 밝히고, 극락왕생하기 위하여 정진하고 있다. 지금은 인터넷 법당 「정수(淨修)법당」을 운영하며, 매일 염불법회를 열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 『선화상인 능엄신주 법문』, 『선화상인 능엄경 강설(상·하)』, 『선화상인 법화경 강설(상·하)』, 『허공을 타파하여 마음을 밝히다』, 『부처님 말씀 그대로 행하니』, 『내 이름을 부르는 이 누구나 건너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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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 극락으로의 초대(큰글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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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큰글자책)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큰글자책)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
염불삼매
염불삼매
본래의 자기 집을 찾아라
본래의 자기 집을 찾아라
불설대승무량수장엄청정평등각경(양장본 Hardcover)
불설대승무량수장엄청정평등각경(양장본 Hardcover)
생사의 근본에서 주인이 되라
생사의 근본에서 주인이 되라
부처님 말씀 그대로 행하니
부처님 말씀 그대로 행하니
내 이름을 부르는 이 누구나 건너리
내 이름을 부르는 이 누구나 건너리
능엄경 강설(하)(양장본 Hardcover)
능엄경 강설(하)(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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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서방 극락이 그대의 집
추천사
1장 누구나 왕생할 수 있는 염불 법문
무엇 때문에 염불을 해야 하는가?
착실하게 염불을 하라
염불은 마치 전화를 걸듯이
극락세계로 이민을 가다
아미타 부처님은 대법왕이다
염불의 네 가지 방법
믿음, 발원, 수행은 세 가지 자량
자기의 극락세계를 성취하다
염불삼매
여러 대보살이 찬탄하는 염불 법문
서방 정토에 이르면 생사를 마친다
대세지보살의 염불원통
연꽃이 피면 부처님 뵙고 무생법인을 깨닫다
염불하는 사람이 바로 부처이다
평소에 염불해야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다
2장 서방 극락이 그대의 집
입으로 부르고 마음으로 염하여 일념을 이루어라
오염된 인연을 놓아 버리면 곧 불연이다
송이송이 노을빛이 캘리포니아주를 비추네
추위도 배고픔도 모두 시험이다
붉은 연꽃이 온 땅에 피어나다
거짓이 없으면 어떻게 진실이 드러날 수 있겠는가?
염불하여 몸과 마음을 놓아 버려라
잘 염불하고 헛된 염불을 하지 말라
염불 수행으로 피안에 이르다(1)
염불 수행으로 피안에 이르다(2)
본원력을 알고서 정법을 드날리다
정토왕생을 구하려면 부지런히 염불하세
한 생각의 광명이 바로 부처이다
염불 수행에 대한 문답
3장 부처의 뿌리를 심는 땅
부처의 뿌리를 심자
염불의 공덕
아침저녁에 염불하는 십념법
염불하여 개의 병을 치료한 이야기
염불의 감응과 서상
세상 만물은 묘법을 연설하고 있다
아미타불의 원력은 쇠를 흡수하는 자석
4장 천도의 진실한 의미
죽음의 고통
임종 시의 세 귀신
천도의 방법
염불의 수승한 공덕
천도의 진실한 의미
천도의 경전 근거
부록 선화 상인의 행장
선화 상인의 18대원
법계불교총회 안내
아미타불과 염불정진법회
역자 후기 나의 염불 수행과 선화 상인 도량과의 인연 _이정희
본래의 고향 극락정토로 돌아가자 _정원규
접기
책 속으로
“참선과 정토 수행이 있는 이는 호랑이에 뿔을 단 듯이 현생에선 사람들의 스승이 되고 내생엔 부처님과 조사를 이루리라. 참선 수행만 있고 정토 수행이 없으면 열 명에 아홉은 그르치고, 참선 수행은 없어도 정토 수행을 닦으면, 만 명이 염불하여 만 명이 모두 왕생하리.” -5쪽
염불의 공덕은 불가사의하여 그대가 염불을 한번 할 때마다 그대의 몸에선 광명을 발하게 됩니다. 아! 이렇게 광명이 나오면 요사스러운 마(魔)와 귀신은 멀리멀리 달아나 버립니다. 그러므로 염불의 공덕은 매우 불가사의합니다. -6쪽
그런 까닭에 이 법문은 일반인이 믿기 어려운 것이지만 도리어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마땅한 법문입니다. (…) 즉 그대가 총명한 사람이건, 어리석은 사람이건 관계없이 모두 다 성불할 수 있습니다. -38~39쪽
염불한다는 것은 곧 믿음, 발원, 수행 이 세 가지를 실행에 옮기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여비이자 자량(資糧)입니다. -50쪽
사람들의 마음은 바쁘기 그지없어, 하루 종일 할 일을 찾아 쉴 줄을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의 이 마음에게 그대가 한 가지 할 일을 주지 않으면 그는 언제나 자재롭지 못하므로 ‘나무아미타불’을 찾아 주어야 합니다. 이 한 구절 부처님의 명호는 또한 바로 참선이기도 합니다. 그대는 눈을 감고 그럴싸하게 앉아 있는 것만 참선이라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눈을 뜨고서도 참선을 할 수가 있습니다. -61쪽
그대도 염불하고 나도 염불하고,
그대와 나 무엇 때문에 염불하나?
생사를 마치고 사바를 바꾸니,
곳곳마다 극락세계 아미타 부처님. -68쪽
부처를 염하면 곧 부처님이 자신의 마음 가운데 돌아오므로, 밖을 향해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염불을 하는 것은 부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므로 반드시 서방 극락에 왕생하게 됩니다. 그대가 부처님을 염하고, 부처님이 그대를 염하면 마침내는 부처를 이루게 됩니다. -88쪽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일정치가 않고 전변(轉變)할 수가 있습니다. 일례로 우리는 업장이 깊어서 원래는 서방 정토에 왕생할 자격이 없지만, 만일 우리가 정성을 다해 염불한다면 왕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편 염불하지 않으면 본래는 왕생할 것도 도리어 왕생할 수 없게 변하고 맙니다. 그렇기에 “일체법은 모두 정해진 바 없고, 오직 마음이 짓는 것이다〔一切法皆無定法, 唯心所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106쪽
만약 사람이 늙어 앞날이 얼마 남지 않으면 / 염불하기 마침 좋고
만약 사람이 젊어 앞날이 창창하면 / 염불하기 더욱 좋으며
만약 사람이 병이 있으면 / 병은 고통임을 아니 바로 염불해야 하며
만약 사람이 병이 없으면 / 평안하고 즐거우니 더욱 염불해야 하네. -133쪽
우리가 ‘아미타불’하고 한번 염하면,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그곳에서도 한 번의 염불 소리를 듣게 되고, 우리가 열 번의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면, 아미타 부처님의 그곳에서는 열 번의 염불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리하여 백 번, 천 번, 일만 번, 일억 번 염불을 계속하면 아미타 부처님께서는 “이 사람은 임종 시에 내가 반드시 맞이하리라.”라고 기록을 해 두십니다. 즉, 그대의 일을 기억해 주시는 것입니다. -162쪽
우리가 부처를 이루느냐, 지옥에 떨어지느냐는 모두가 이 한 생각의 분별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시 이 마음을 시시각각 잘 관리하여 날뛰는 마음의 거친 성질과 어리석은 마음의 망상을 내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168쪽
발원은 마치 앞에 있는 길가의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당신이 길을 갈 때 등불이 길을 비추면 길을 가기가 훨씬 쉽습니다.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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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시대의 큰 스승이 전하는 가르침
온 마음으로 부처님을 염하라!
불교의 수행법 가운데 하나인 염불은 부처의 모습을 떠올리거나 그 명호를 부르는 것이다. 염불의 궁극적인 목적은 번뇌를 버리고 열반에 드는 데 있다. 또 죽은 뒤 부처의 세계인 정토, 즉 극락에 왕생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정토 신앙에서 특히 중요시하는 수행법이다. 정토삼부경 중 하나인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서는 “염불하는 사람은 하얀 연꽃과 같다”라고 했다. 연꽃 중에서도 제일 고귀한 것으로 보는 ‘하얀 연꽃[芬陀利華]’이라 했으니 극찬이 아닐 수 없다.
이토록 수승한 염불 수행을 권한 선화 상인의 법문을 한 권으로 엮었다. 선화 상인은 경전, 교리에 통달하고 불교의 수행법을 두루 섭렵했던 분이다. 1962년부터 미국의 다양한 곳에 불교 학당을 세우고 수차례 법회를 열어왔다. 이 책에는 그중 염불에 관한 대표적인 법문을 추려 담았다. 선화 상인의 법문은 다양한 일화와 구체적인 비유를 활용해 불교가 낯선 서양인들도 이해하기 쉽다. 그렇기에 염불 수행에 처음 입문하는 이들은 물론, 다시금 믿음을 단단히 하려는 불자들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극락왕생을 바라는 중생에게 권하는
가장 간편하고, 가장 직접적이며, 가장 마땅한 수행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는 아무리 불교에 문외한이라 해도 알고 있는 기도문이다. 이 여섯 글자를 반복해 외우는 것이 염불 수행 중 ‘지명(指名) 염불’에 해당하는 수행 방식이다. 이는 아미타불이 먼 과거에 “만일 어떤 중생이 나의 명호를 불러서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없다면, 나는 정각을 이루지 않으리라.”라고 발원한 내용에서 비롯한다. ‘정각을 이룬다’라는 말은 곧 진리를 얻음을 뜻한다. 구원을 찾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중생을 극락세계로 이끌 수 없다면 진리조차 포기하겠다는 서원에 중생구제의 정신이 담겨 있다. 한편으로는 오직 아미타불의 이름만 부르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뜻이니, 이렇게 쉽고 직관적인 수행법이 또 없다.
선화 상인은 말한다. “그런 까닭에 이 법문은 일반인이 믿기 어려운 것이지만 도리어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마땅한 법문입니다. 염불 법문은 상·중·하의 세 근기가 두루 가피를 입을 수 있으며, 이근(利根)과 둔근(鈍根)을 함께 받아들입니다. 즉 그대가 총명한 사람이건, 어리석은 사람이건 관계없이 모두 다 성불할 수 있습니다.” 선화 상인은 이러한 염불 수행의 목적과 바른 방법, 믿음·발원·수행이라는 세 가지 자량에 대해 설명한다. 더불어 염불을 통해 가피를 얻은 다양한 일화를 통해 염불 수행이 사후뿐만 아니라 현생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선화 상인의 가르침을 따라 일심으로 염불하다 보면 근심 걱정도, 업장도 사라지며 극락에 한 발짝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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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ISBN 9791193454473
발행(출시)일자 2024년 02월 05일
쪽수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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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시작
cover
저자 소개
선화 상인 (宣化 上人, 1918~1995)
법명은 안자 (安慈), 자는 도륜 (度輪)이다. 중국 위앙종의 제 9대 법손이며, 사호 (賜號)는 선화 (宣化)이다. 29세 되던 1947년 보타산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1949년 홍콩으로 건너가 선종, 교종, 율종, 밀종, 정토종의 다섯 종파를 고루 선양하며 문호파벌을 타파하고, 여러 사찰을 건립하였다. 1956년 허운 (虛雲) 선사로부터 중국 위앙종의 법을 이어받고 ‘선화 (宣化)’라는 법호를 받았다. 1962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 불교학당을 설립하여 불법을 전했다. 1973년 국제역경원을 설립하였고, 1974년 캘리포니아주 유카이아 시 (市)에 만불성성 (萬佛聖城)을 건립한 후 미국 등 세계 각지에 27개의 도량을 건립하였다. 상인은 평생토록 계율을 엄정하게 지키고 부처님의 제도를 준수하였으며, 참선과 염불 예참, 경전 연구, 계율 수지, 대중화합 등을 특히 강조하였다.
각산 (覺山) 정원규
경남 진주에서 출생하여 경북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중국의 대학연수와 해외사무소 파견근무를 하였으며, 중국에서 접한 불서와 고승의 법문에 감명을 받아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불교에 입문한 이후 경전 연구, 염불, 능엄주 지송, 참선 등의 수행을 통해 마음을 밝히고, 극락왕생하기 위하여 정진하고 있다. 지금은 인터넷 법당 ‘정수 (淨修) 법당’을 운영하며, 매일 염불법회를 열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 『선화 상인 능엄신주 법문』, 『선화 상인 능엄경 강설 (상·하)』, 『선화 상인 법화경 강설 (상·하)』, 『허공을 타파하여 마음을 밝히다』 등이 있다.
이정희
부산에서 출생하여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로스앤젤레스 삼라한의대를 졸업하였다. 지금은 로스앤젤레스 Village Health Foundation에서 한의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만불성성 LA분원에서 선화상인의 가르침과 인연이 되어 염불수행에 매진하고 있다.
북디자인 | 쿠담디자인
The Ultimate Bliss In The West Is Your Home
Copyright © DRBA/BTTS, 2009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Bulkwang Media Co., 2024
Korean edi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Dharma Realm Buddhist
Association – Buddhist Text Translation Society (‘ DRBA / BTTS ’).
All rights reserved.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법계불교총회 -
불경번역위원회 ( 法界佛敎總會 - 佛經飜譯委員會 )와 독점 계약한 불광미디어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제 및 복제를 금합니다.
•서문: 서방 극락이 그대의 집
머리말
서방 극락이 그대의 집
염불을 오롯이 집중하면 안양 ( 安養 )의 땅
아미타불의 대원으로 서방 극락에 이르네.
삼배 구품 ( 九品 )의 연화가 나타나며
육도만행이 찰나에 원만해지네.
관세음, 대세지보살을 반려로 삼고
문수, 보현보살과 함께 법성의 배에 타네.
자비로운 아버님 나를 맞이하여 고향에 이르니
알고 보니 극락이 원래 우리의 고향일세.
念佛專注安養邦 彌陀大願到西方
三輩九品蓮 花現 六 度滿行刹那圓
觀音勢至爲伴侶 文殊普賢共法船
慈父接我臻故里 原來極樂 是家鄕
염불은 “나무아미타불”과 나 자신이 나뉘지 않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외에 어떠한 ‘나’도 있지 않고, ‘나’ 외에 어떠한 “나무아미타불”도 없을 때까지 염하여 내가 염하는 “나무아미타불”과 자신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아미타불은 극락세계의 교주 ( 敎主 ),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그를 좌우에서 보좌하고, 이는 서방의 세 분의 성인 ( 三聖 )이십니다. 그 어떤 분의 명호를 염하든지 일심불란 ( 一心 不 亂 )하여 한 티끌도 물들지 않은 경계에 이르면, 업을 가진 채로 〔 帶業 〕 왕생하여 연꽃이 피면 부처님과 보살님을 뵙게 됩니다.
영명연수 선사의 「사료간 ( 四料簡 )」 게송에 이르기를 “참선과 정토 수행이 있는 이는 호랑이에 뿔을 단 듯이 현생에선 사람들의 스승이 되고 내생엔 부처님과 조사를 이루리라. 참선 수행만 있고 정토 수행이 없으면 열 명에 아홉은 그르치고, 참선 수행은 없어도 정토 수행을 닦으면, 만 명이 염불하여 만 명이 모두 왕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극락세계에 비록 백학, 공작, 앵무, 사리, 가릉빈가, 공명지조가 있다 하나, 이는 모두 아미타불께서 법음을 널리 펴고자 변화로 지은, 일종의 변화로 나타난 경계이며, 진짜로 축생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극락세계는 그대와 나, 중생들이 본래로 지닌 진심 ( 眞心 ), 그대가 본래의 진심을 얻게 되면 극락세계에 나고, 그대가 자기 본래의 진심을 알지 못하면 극락세계엔 왕생할 수가 없습니다.
극락세계에 나면, 무릇 고통은 없고 오로지 온갖 종류의 즐거움만 있으며, 연꽃에서 화생 ( 化生 )하여 나는 것으로서 우리들이 어머니의 태 속을 거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극락세계 그곳엔 연꽃이 곧 태 ( 胎 )이며, 연꽃 속에서 일정한 시간을 머무르면 장차 성불하게 될 것입니다.
참된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감응이 있으며, 이 감응은 어떤 것입니까? 바로 범부의 마음과 불보살의 광명이 서로 통하는 것으로서 이른바 “빛과 빛이 서로 비추고, 열린 구멍마다 서로 통하는” 것입니다.
염불의 공덕은 불가사의하여 그대가 염불을 한번 할 때마다 그대의 몸에선 광명을 발하게 됩니다. 아! 이렇게 광명이 나오면 요사스러운 마 ( 魔 )와 귀신은 멀리멀리 달아나 버립니다. 그러므로 염불의 공덕은 매우 불가사의합니다.
그대도 염불하고 나도 염불하는데, 그대와 나는 무엇 때문에 염불합니까? 생사를 마치고자, 사바세계를 극락세계로 바꾸기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곳곳마다 극락세계 아미타 부처님이니 그대도 나도 없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만물을 조용히 관하여 모든 것을 깨달으니, 번뇌는 끊어지고 무명은 깨지며, 거대한 사랑의 강물 삼계 ( 三界 )를 뛰어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이 ‘마음’이라는 것은 바쁘기 짝이 없습니다. 그대가 만일 한 가지 일거리도 주지 않는다면 마음은 항상 자재롭지 못할 것이니, “나무아미타불” 한 가지를 찾아 그에게 주는 것입니다.
세간 일체의 모든 것은 정해진 것이 없이 모두 다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업장이 매우 깊어 원래 서방 정토에는 왕생할 자격이 없으나, 단지 우리가 만일 진심으로 염불한다면 우리도 왕생할 수 있습니다.
무릇 걷고 머무르고 앉거나 누울 때, 오로지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 홍명 ( 洪名 )만 알고 타성일편을 이룰 때까지 염하여 면면히 끊어지지 않으면, 흐르는 물까지도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는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진실한 염불이란 곧 입으로 염불하고, 마음으로도 염불하여, 행주좌와 모두 아미타 부처님을 염하는 것입니다.
『대집경 ( 大集經 )』에 이르기를 “말법 시대에는 수억 만 명이 수행하나 한 사람도 도를 얻기 힘들다. 오직 염불에 의해서만 생사를 건널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천만 명이 수행하되 그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수행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염불 한 가지 법문만이 그대를 피안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추천사
추천사
“서쪽으로 십만 억 국토를 지나면 세계가 있는데 극락이라고 이름한다. 그 국토에 부처님이 계시는데 이름이 ‘아미타’이시니 지금 현재도 설법하고 계신다.”
『불설아미타경』의 말씀입니다. 서방 (서쪽)은 아미타 부처님께서 지금 현재 머무르며 법을 설하고 계시는 극락세계를 가리킵니다.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극락이라고 하는가? 그 국토의 중생은 아무런 괴로움이 없고 오직 온갖 즐거움만을 누리기 때문에 극락이라고 이름한다.”
모든 괴로움이 사라지고 오직 즐거움이 가득한 곳, 그곳이 바로 극락입니다.
서방 극락세계가 곧바로 우리 중생들이 가야 할 마음의 고향입니다.
불교는 하늘 세계 (천국)에 태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하늘 세계에 태어나 온갖 기쁨을 누려도 복이 다하면 다시 뚝 떨어져야 합니다. 윤회의 흐름에 잠겨서 괴로움의 수레 속으로 굴러가야 합니다. 하늘 세계 꼭대기에 태어나도 결코 영원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밑으로 떨어져 고통의 바다를 헤매게 되는 윤회 세상일 뿐입니다.
서방 극락세계는 그런 하늘 세계가 아닙니다. 윤회의 쇠사슬에 묶여 있는 불완전한 세상이 아닙니다.
서방 극락세계는 중생을 성불시키는 ‘성불 학교’입니다. 극락에 태어나면 반드시 윤회에서 벗어나고, 틀림없이 깨달음을 얻어 결단코 성불을 보장받는다고 부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불경』에서 분명히 증언하고 계십니다. 수많은 대승 경전에서도 아미타 부처님과 극락세계를 찬탄하고 증명하십니다.
우리나라의 원효 대사도 극락을 찬탄하였습니다. 의상 대사도 오직 『화엄경』을 연구하였지만 늘 극락에 태어나기를 발원하였습니다.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 스님도 극락에 태어나기를 발원하였고, 조선시대 서산 대사도 참선을 수행한 선사로 알려졌지만, 극락에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극락왕생발원문〉을 남겼습니다.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의 역대 고승 중에서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발원한 분들을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서방 극락세계야말로 수행자가 가야 할 ‘최고의 성불 대학교’입니다.
성불 학교 서방 극락세계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직 염불입니다. 오직 간절한 염불입니다. ‘아미타불에 대한 믿음’과 ‘극락에 태어나겠다는 원력’과 ‘간절한 염불’, 이 세 가지를 갖추면 어떤 중생도 반드시 극락세계에 들어간다고 경전에서 말씀합니다.
선화 상인 ( 宣化上人 )은 서양에 불법을 널리 펼친 고승입니다. 참선과 염불, 경전과 계율을 고루 닦으며 미국에 불교 학당을 세우고 부처님의 바른 법을 전한 시대의 큰 스승입니다.
경전, 교리에 통달하고 불교의 수행법을 두루 섭렵했던 선화 상인이 간곡히 말씀합니다.
“극락에 가시오. 반드시 극락에 가시오. 극락에 가는 것이 가장 좋은 최고의 길이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감동과 희열이 솟구쳤습니다. 선지식이 들려주는 진리의 말씀은 보석보다도 빛을 발합니다. 이토록 소중한 말씀을 세상에 소개한 역자와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염불, 극락으로의 초대』는 성불 학교 극락의 문으로 들어가는 훌륭한 안내자가 되리라 믿습니다.
모든 중생 극락에 왕생하여 다 함께 성불하여지이다.
나무아미타불 무량공덕.
광우 스님
(BTN불교TV 〈광우 스님의 소나무〉 진행자)
1장 누구나 왕생할 수 있는 염불 법문
무엇 때문에 염불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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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임종 시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순조롭게 극락세계에 왕생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왜 염불을 해야 할까요? 평소에 염불하는 것은 바로 임종 시를 대비하여 준비를 하기 위함입니다. 어째서 임종에 가까워 염불하지 않고 평소부터 염불을 해야 하는 걸까요? 왜냐하면 습관이란 날이 가고 달이 가면서 조금씩 쌓아져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평소에 염불하는 습관이 없는 이는 임종 시에 이르러서 염불을 생각할 수 없거나 혹은 아예 염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평소에 염불을 배우고 정토 법문을 닦아두면 목숨을 마칠 즈음에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순조롭게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극락세계에 왕생해야 할까요? 아미타 부처님께서 비구승으로 인지 ( 因地 )에서 수행을 하던 때에 일찍이 48대원 ( 大願 )을 발하였는데, 그 가운데에 이르시기를 “내가 부처를 이루면, 나의 명호 ‘아미타불’을 염하는 시방의 모든 중생을 반드시 나의 극락세계에 맞아들여 장래에 성불케 하리라. 나의 세계에는 중생이 모두 연꽃에서 화생하여 그에 따라서 몸은 오염됨이 없이 청정할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이 이러한 큰 원을 발하였으니 일체중생은 모두 염불 법문을 닦아야 하며, 이것은 중생들의 근기에 맞는, 매우 수행하기 쉬운 하나의 법문입니다.
『대집경 ( 大集經 )』에서 또한 이르시기를 “말법 시대에는 수억 ( 億 )의 사람이 수행하되 한 사람도 도를 얻기 어려우나, 오직 염불에 의해서만 생사를 건널 수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곧 천만의 사람이 수행한다 해도 도를 얻는 자는 한 사람도 없고, 오직 염불에 의지하여야만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생사를 건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현재는 말법 시대로서 염불은 그야말로 일반인의 근기와 상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양은 현재 말법 시대가 아니라 정법 시대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어째서 정법 시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불법이 이제 막 서양 국가에 전해져서 마침내 흥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매우 많은 이들이 참선을 즐겨 하고 있으니 이 또한 정법의 표현이라 봐야 합니다. 염불 법문은 정법의 시기에도 닦을 수가 있고, 말법의 시기에도 닦을 수 있으며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모두 다 닦을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법문을 공부하여 진취가 없다면 염불 법문을 닦을 수가 있습니다.
영명연수 ( 永明延壽 )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참선이 있고 정토가 있으면 호랑이에 뿔을 단 듯이 현생에서는 사람들의 스승이 될 것이요, 내생에는 부처님이나 조사를 이루리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참선을 하면서 또한 염불 수행을 겸하면 마치 뿔을 단 호랑이처럼 현생에서는 남들의 사표가 되고 장래에는 부처님이나 조사 스님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참선을 하는 이는 바로 진정으로 염불을 하는 이요, 진정으로 염불을 하는 이는 또한 곧 진정으로 참선을 하는 사람입니다. 더 깊이 말하자면, 진정으로 계율을 지니는 사람은 또한 바로 진정으로 참선하는 사람이며, 진정으로 참선을 하는 이는 곧 진정으로 계율을 지니는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경전을 강의하고 설법을 하는 이는, 경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을 강의하는 것도 또한 진정한 참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가 대사가 『증도가 ( 證道歌 )』에 이르기를 “선종도 통하고 교종도 통하며, 정과 혜에 두루 밝아서 헛된 공에 머무르지 않네 〔 宗亦通 說亦通 定慧圓明 不 滯空 〕.”라고 하였으니, 참선도 할 수 있고 또 설법도 할 수 있으면, 이것이 종 ( 宗 )에도 설 ( 說 )에도 정통한다는 뜻입니다. 한층 더 나아가 말하자면, 진정으로 다라니를 지니는 사람, 진정한 밀종 수행자는 곧 진정한 의미에서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선 ( 禪 ), 교 ( 敎 ), 율 (律), 밀 ( 密 ), 정 ( 淨 )의 다섯 가지가 있다고 말해도, 결국에는 모두 하나이며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실상 좀 더 깊이 말하자면, 하나조차도 없는 것이니 어떻게 다섯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진정으로 불법을 배우는 이는 이 점을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종파에 얽매어서 편견을 갖기도 하는데, 염불 법문이 최고요 참선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혹은 참선이 최고이며 염불은 그릇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불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응당 일체 모든 것이 다 불법이며, 모든 것은 얻을 수 없다 〔不 可得 〕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미 얻을 법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집 위에 집을 쌓는 불필요한 짓을 하며, 없는 일을 번거롭게 찾아서 합니까? 만일 그대가 진정으로 불법을 이해한다면, 불법은 얻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실은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하면, 그는 곧 실망할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방편법 〔 權法 〕을 베푸신 것은 곧 진실법 〔 實法 〕을 설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부처님이 방편의 지혜 〔 權智 〕를 설하신 것은 진실한 지혜 〔 實智 〕를 설하기 위함입니다. 진실한 지혜는 무엇인가요? 진실한 지혜는 ‘무소득으로 돌아감 〔 歸無所得 〕’을 말하며, 실상 ( 實相 )은 상이 없으면서 상이 없음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로소 진실한 지혜인 것입니다.
착실하게 염불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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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한 염불이란 바로 입으로 염불하고
마음으로도 염불하면서
행주좌와에 모두 아미타불을 염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마 ( 魔 )의 세력이 강하고 불법의 힘이 약한, 부처님께서 가신 지 오래된 말법 시대에 태어났으나, 불행 중에 다행으로 염불 법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염불 법문은 경제적이고 정신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매우 쉽고 간편한 법문입니다. 염불만 해도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염불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아미타 부처님이 무량겁 이전에 발한 48대원에 의거한 것입니다. 48대원 가운데에, “만일 어떤 중생이 나의 명호를 불러서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없다면, 나는 정각 ( 正覺 )을 이루지 않으리라.”라고 하는 서원이 있습니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발하신 이러한 원력은 발원마다 모두 중생을 섭수하여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왕생의 조건은 단지 중생이 신심을 갖는 것으로서 진정으로 아미타 부처님께서 서방의 극락세계에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서방 극락세계에 가서 아미타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고, 절실하게 아미타 부처님의 명호를 칭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 〔 信 〕, 발원 〔 願 〕, 수행 〔 行 〕의 세 가지 자량을 구비하면, 반드시 서방 극락에 왕생하게 됩니다.
극락세계에는 온갖 고통이 없고 중생은 단지 많은 즐거움만을 받게 됩니다. 그곳에는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가 없습니다. 비록 백학, 공작, 앵무, 사리, 가릉빈가, 공명지조가 있으나, 이는 모두 아미타불께서 법음을 널리 펴기 위하여 변화로 만든, 일종의 변화로 나타난 경계로서 결코 진실로 축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극락세계는 사바세계처럼 만 가지 고통이 들끓지 않고 만 가지 악이 가득 찬 번뇌도 없으며, 밤낮으로 ‘부처님을 염하고, 불법을 염하고, 스님을 염하는 묘한 법’을 연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극락세계에 가서 나려면 착실하게 염불을 해야 하고, 불성실하게 염불을 해서는 안 됩니다.
착실하게 염불을 한다는 것은 곧 그 마음이 오로지 염불에만 있고, 성불을 하든 안 하든 혹은 왕생을 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일심으로 염불하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염불이 전일하고 순수하게 무르익어 일심불란 ( 一心不亂 )의 경지에 이르면 임종 시에 아미타 부처님은 반드시 그대를 맞이하여 성불케 하십니다.
어째서 아미타 부처님께서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을 맞으러 오시는 걸까요? 이것은 매우 믿기 어려운 도리입니다. 맞습니다, 이것은 믿기 어려운 법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미타경 ( 阿彌陀經 )』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아무도 묻는 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설하신 〔 無問自說 〕 경전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와 같은 법을 이해할 수 없고, 또 믿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석가세존께서 우리 말법 시대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셔서 이러한 말법 시대 수행의 첩경을 일러 주신 것입니다.
착실하게 염불을 한다는 것은 입으로 염불하고, 마음으로도 염불하면서 행주좌와 ( 行住坐臥 ), 걸어 다닐 때나 머물 때나 앉으나 누우나 모두 아미타 부처님을 염하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아미타불의 명호를 염하고, 몸으로는 아미타불의 행 ( 行 )을 지닙니다.
무엇을 일컬어 행 ( 行 )이라 할까요?
가령 우리가 지금 7일 동안의 염불법회를 거행하는 동안에 아무리 바쁜 일이 있을지라도 만사를 제쳐두고 법회에 참가하여 일심불란의 경지를 체득해야만 합니다. 일심불란이란 자나 깨나 늘 염불을 잊지 않는 것이며, 잠시 동안 염불한 후 고생스럽다고 여겨 돌아가서 쉰다거나 게으름을 피우며 안일을 꾀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쉬엄쉬엄 염불해서는 염불삼매를 얻을 수가 없으며, 이렇게 하다 말다 하는 것이 착실하지 않은 염불입니다. 착실하게 염불을 한다는 것은 바로 밥을 먹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자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일심으로 염불하는 것입니다.
본래 밥 먹고, 옷 입고, 잠자는 것은 인생에서 떠날 수 없는 것으로 누구나가 다 매일같이 부족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염불 시에 이 세 가지를 능히 잊을 수 있다면, 즉 다시 말해 밥을 먹었는지, 옷을 입었는지, 잠을 잤는지, 배고픔도 추위도 알지 못한다면 이것이 바로 착실한 염불입니다. 만일 밥시간이 되어 밥을 먹는 것을 안다면 이는 불성실한 염불이요, 춥다고 옷을 입으려 하면 이것은 착실하지 못한 염불입니다. 또한 잠이 부족하여 자고 싶다고 돌아가서 쉬려고 한다면 이 역시도 불성실한 염불입니다.
착실하게 염불하는 사람은 행주좌와 어느 때든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 홍명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만일 염불과 타성일편 ( 打成一片 )이 되면 염불이 면면이 이어져 흐르는 물소리도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이고, 부는 바람 소리도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이며, 지저귀는 새소리도 ‘나무아미타불’의 염불 소리입니다.
우리는 ‘나무아미타불’과 자기 자신이 떨어지지 않을 때까지 염불하여 ‘나무아미타불’ 외에 어떠한 ‘나’도 있지 않고, 나 외에 어떠한 ‘나무아미타불’도 없을 때까지 염하여, 내가 염하는 ‘나무아미타불’과 자신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때에 바람도 뚫을 수 없고, 비도 적실 수 없는 염불삼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물 흐르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모두 다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는 묘법을 연설하니, 이것이 바로 착실한 염불입니다.
만일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물이 흐르는 것인 줄을 알고,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부는 줄 안다거나, 혹은 염불하면서 이리저리 주변의 동정을 살핀다면, 이것은 착실한 염불이 아닌 것입니다. 착실하게 염불할 때에는 자나 깨나 염불에 집중하므로 어떠한 망상도 없으며, 무엇이 먹고 싶다거나 차를 마시고 싶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무엇이건 잊게 되는데, 이러해야 비로소 착실한 염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염불에는 특별한 어떤 비결이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마음을 통제하여 망상을 일으키지 않으면 됩니다. 한편 마음을 통제할 수가 없어 언제나 망상을 일으키면 착실한 염불이 아닌 것입니다. 그대가 바른 생각 〔 正念 〕을 일으키면 그것이 착실한 염불이며, 이리저리 어지럽게 생각하고 삿된 생각을 품는 것은 불성실한 염불입니다. 따라서 착실하게 하는 염불은 그 묘함을 이루 다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이며, 그대가 진정하게 염불을 할 수가 있다면 대자재를 얻어 남도 없어지고, 나도 없어지고, 중생도 없어지고, 수명도 없어져서 오직 ‘나무아미타불’만 남게 될 것입니다.
말하는 것은 법 ( 法 )이며, 행하는 것은 도 ( 道 )인지라 단지 말로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탁상의 공론이며, 실제 보배는 갖지 못하고 남의 보배만 헤아리는 꼴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말하는 도리를 여러분들이 이해한다면, 착실하게 염불을 하고 착실하게 7일 염불정진 〔 佛七 〕의 수행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 생명 가운데의 가장 귀중한 시간이므로 절대로 헛되이 보내지 마십시오!
내 그대들에게 원하노니, 여러분 모두 ‘견고한 마음 〔 堅 〕, 성실한 마음 〔 誠 〕, 한결같은 마음 〔 恒 〕’의 세 가지 마음을 발하여 열심히 염불하기를 바랍니다!
염불은 마치 전화를 걸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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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을 염하든 보살을 염하든
마음과 입이 모두 참되고 정성스러워야 합니다.
생각 생각이 참되니 생각 생각이 통하며
그윽한 가운데 그윽한 감응이 생기네.
곧바로 산이 막히고 물이 다한 그곳에 이르면
법계를 동서로 자유자재하게 소요하네.
念念 眞誠 念念 通 默默感應默默中
直至山窮水盡處 逍遙法界任西東
방금 내가 말한 게송의 참뜻을 그대들은 알겠습니까? 첫 번째 염 (念)자는 마음속에서 발한 생각이며, 두 번째 염 (念)자는 입속에서 발하는 것으로서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떤 생각을 입으로 표출하여 냄을 말합니다. 만일 단지 두 번째 염, 즉 입으로 하는 염 (念)만 있다면 참된 염불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염불 혹은 염보살은 마음과 입이 모두 다 참되고 정성스러워야 합니다. 마음과 입이 하나요 둘이 아닌 합일의 경지까지 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그저 되는대로 혹은 산란하게 다른 망상과 더불어 염하지 않게 된다면, 이것을 일컬어서 ‘참되고 정성스럽다 〔 眞誠 〕’라고 합니다.
참된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감응이 있을 것이니, 이러한 감응은 무엇일까요? 곧 범부의 마음과 불보살의 빛이 서로 통하는, 이른바 “빛마다 서로 비추고 열린 구멍마다 서로 통하는 〔 光光相照 , 孔孔相通 〕” 경지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러한 감응이 있게 되는 것일까요? 가령 전화를 걸 때 번호가 맞아 통하게 되면 ‘여보세요’라는 상대방의 음성이 들리는데, 이때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며 서로 간의 의사소통을 하게 됩니다. 보살님을 염하는 것도 마치 전화를 거는 것처럼, 통화가 되면 보살님께서도 그대에게 물을 것입니다.
“선남자 (선여인)여,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때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필히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마음이 없다면, 가령 다섯 자리의 전화번호인데 그대가 오직 세 자리만 누른다면 어떻게 전화가 통하겠습니까? 보살님을 염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일례로 그대가 잠시 동안 염하다가 다시 염하지 않으면, 이것은 성의가 모자란 것으로서 반드시 전화가 통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빛마다 서로 비추는 〔 光光相照 〕 감응은 오직 몸소 겪어본 사람만이 비로소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전화를 걸 때 오직 수화기를 들고서 듣는 사람만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분명히 알아듣는 것처럼 범부의 육안으로는 소리의 파장이 오고 가는 것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윽한 가운데 그윽한 감응이 생긴다 〔 默默感應默默中 〕”고 말한 것입니다.
“산이 막히고 물이 다하다 〔 山窮水盡 〕”라는 것은 “백척간두에서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하늘의 허공에서 손을 놓아 버리면 별다른 하늘이 있네 〔 百尺竿頭重進步 , 撒手天空 另 有天 〕”의 경지를 말합니다. 염불이 산이 막히고 물이 다한 이러한 경계에 이르게 되면, 그야말로 염하되 염하지 않으며 〔念 而不 念〕, 타성일편이 되어 염불이 한 조각으로 이루게 되는데, 그때에 곧 “법계를 동서로 자유자재하게 소요하게 〔 逍遙法界任西東 〕” 될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한다면 곧 생각에 응하여 왕생할 수가 있으며, 자비의 배를 몰아 널리 중생을 제도하려고 하면, 사바세계로 돌아와서 널리 중생을 제도하려고 하면, 또한 생각에 응하여 극락세계의 동쪽에 있는 사바세계로 돌아올 수 있으며, 또한 일체의 모든 법계 어디든 생각을 따라가지 못할 곳이 없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동서로 자유로이 〔 任西東 〕”라고 말하는 것이며, 이른바 “하나가 여의로우니 일체가 여의롭고, 하나가 자재로우니 일체가 자재롭다 〔 一如意一 切 如意 , 一自在一 切 自在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법을 배움에 어디에서든 참되고 성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하는 것들이 모두 거짓이 되고 말아서 “꽃만 피울 뿐, 과실을 맺지 못한다 〔 開空花 , 不結果 〕.”라는 문구처럼 되어버릴 것입니다. 따라서 불법을 공부함에 있어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기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다음은 옛사람도 말하기를 “군자는 모든 것을 스스로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모든 것을 남에게서 구한다 〔 君子求諸己 , 小人求諸人 〕.”라고 하듯이 우리는 의존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며, 감응이란 자기 자신이 부르는 것이지 결코 바깥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염불하여 정토에 나는 것은 불력 ( 佛力 )에 의한 접인 ( 接引 )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맞다고도 할 수 있고 또한 그르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왜냐하면 ‘접인’이란 말은 단지 근기를 따라서 한 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탐하는 마음이 많은 중생은 모두 힘은 적게 들이고 효과를 크게 거두기를 원합니다. 그러한 까닭에 마치 고리대금처럼 높은 이자, 작은 밑천으로 수입을 많이 거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에 성인께서 중생의 근기를 따라 응변 ( 應變 )하여 불력에 의한 접인을 말씀하신 것이며, 그 목적은 일체중생이 스스로 노력하여 염불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불보살님의 명호를 염하여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것도 전부 다 자신의 역량에 의거한 것입니다. 어째서일까요? 생각해 보세요. 부처를 염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그대를 대신하여 염하는 것인가요? 보살을 염하는 이 일념이 보살이 낸 마음인가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찌 타력 ( 他力 )에 의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가령 불보살님께서 빛을 발하여 그대에게 가피를 내리는 것도 또한 그대 자신이 부처님이나 혹은 보살님을 염해서 얻은 공덕의 감응인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전화 거는 것에 비유하자면, 만일 그대 스스로 전화를 걸지 않는다면, 누가 있어 그대의 전화를 받는 것입니까? 염불도 그와 같은 도리이며, 그러므로 이렇게 불력에 의지하여 정토에 날 수 있으리라고 바라는 마음은 사실상 욕심이며, 바로 의존심일 뿐,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 수행은 자력 ( 自力 )에 의지하여 정신을 고무하고 용기를 떨쳐 일으켜서 용맹정진해야 하며, 모름지기 과보는 결코 남이 내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염불도 불력에 의한 접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옛사람이 말하기를 “장군과 재상은 본래 따로 씨가 있지 않고, 마땅히 남자 스스로 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 將相本無種 男兒當自 強 〕.”라고 하였으니, 불법을 공부하는 우리는 가슴을 펴고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는 본래 따로 씨가 있지 않고, 중생 스스로 강해져야 할 것이다 〔 佛陀本無種 衆生當自 強 〕.”
만일 이와 같지 않다면 온종일 불력에 의한 접인에만 의존할 것이니, 이것은 마치 부유한 집안의 자제가 부모가 남긴 재산에 기대는 것처럼 마침내 자신을 망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 맹렬하게 각성해야 할 것입니다.
극락세계로 이민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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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하여 일심불란에 이르러 한 티끌도 오염되지 않으면
대업왕생을 하여 연꽃이 피면 부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중국에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집집마다 관세음이요, 집집마다 아미타불이네.”
이와 같이 관세음보살은 우리와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이민 ( 移民 ) 수속을 따로 밟을 필요가 없이 우리들이 극락세계에 가서 영주하는 것을 환영하십니다. 오직 “한 생각 참된 마음 〔 一念眞心 〕”이 있다는 증명만 있으면 모든 것을 통과할 수 있으며, 절대로 성가실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한 생각 참된 마음”이 있다는 증명이 없으면, 극락세계로 이민을 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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