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낙동강방어선의 한축이 되었던
호국의 다리 남지철교
겨울은 왔는데 겨울 같지가 않다는 말을 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이 요상한 말을 하지 않고 살아도 될 듯하다. 지난 2주의 한반도 날씨는 이상난동으로 괴변에 가까운 재앙이었다. 수은주가 20도 가까이까지 올라가 봄날씨 같은 날이 계속되었다. 장마철 같이 주간 내내 비가 내려 침수 우려로 산책길이 통제되기도 하고 강우로 실내에서 체육 수업을 해야 하는 날도 많았다. 12월이면 추운 날씨에 눈보라가 제격인데 따뜻한 날씨에 기록적인 강수량을 보였으니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는 창녕, 함안으로 역사 답사를 나갔는데 강풍 속에서 종종걸음을 쳤다. 남지 개비리길 낙동강 강가에도 올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함안 말이산고분군 산정에도 바람의 세상이었다. 특히 오후 늦은 시간 남지철교를 걸어서 가는데 태풍급 바람을 만나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지경이었다. 허리를 반으로 접고 몸을 낮추어 바람과 사투를 벌이듯이 하면서 걸음을 떼놓았는데 두려움을 넘어 공포감마저 들었다. 강 상류에서 몰아쳐 오는 바람이 철교 쇠붙이에 부딪치면서 기괴한 소리를 냈다.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꽹과리를 치면서 국경을 넘어오는 침략의 소리가 연상되기도 하고, 조선 선비 박지원이 한밤중에 배를 타고 열하를 건너가면서 들었던 격랑의 물소리 같기도 했다. 육이오 때 함안 방향에서 남지철교를 건너 창녕 남지 방향으로 건너오려는 적군과 북한군의 낙동강 도강 작전을 저지하려고 철교를 사수했던 아군의 치열했던 그날의 전투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가 발생한 여기 바로 이곳에서, 미 육군 제2 보병사단 소속 M26 퍼싱 전차 지휘관인 어니스트 R. 코우마 상사는 주변 부대가 모두 퇴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낙동강을 건너려는 북한군의 반복적인 시도를 혼자의 힘으로 막아냈다. 전차 밖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약 500여 명의 북한군에 포위당한 코우마 상사는 홀로 적과 교전해야 했다. 전차 탄약이 소모되자 그는 권총과 수류탄을 이용해 적군의 진격을 저지해냈다. 9시간 동안 치러진 힘겨운 전투 끝에 전차를 파괴하려는 북한군의 움직임을 멈췄다. 낙동강 제2 방어선으로 복귀한 코우마 상사의 퍼싱 전차는 혼자서 무려 250여 명의 적군을 사살하였고, 3개의 기관총 전차를 파괴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미 의회 명예 훈장을 수여받은 코우마 상사는 이후, 후배 군인을 양성하는 훈련 교관으로 활동하며 31년간 육군에 복무했다. 그는 미국 캔터키주 녹스 기지에 안장되었다.'(섬장오용환님의 블로그에서 옮김)
역사 답사를 하느라 전국방방곡곡을 찾아다니다 보면 눈물의 땅이 아닌 곳이 없다. 어제 창녕 답사에서도 임진왜란의 의병장군 망우당 곽재우장군이 낙동강을 거슬러 북진해 오는 왜군과 岐音江전투를 벌인 전장인 개비리와 유엔군으로 참전해 남지철교를 사수하여 북한군의 도강을 저지해낸 미군 육군상사 어니스트 코우마상사의 영웅담이 낙동강 물처럼 도도히 살아 숨쉬는 남지철교에서 또한번 옷깃을 여몄다. 귀한 생명을 초개같이 바쳐 정의와 대의를 지켜 무수한 당대의 민초들 안녕과 목숨은 물론 후대의 우리들 평화와 번영까지 보장해 주는 님들의 희생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현장 답사가 주는 깨달음의 희열이 있기에 20여 년 넘게 한 달에 한번씩 떠나는 즐거운 고행을 멈추지 못한다. 멈출 수 없는 역마살이다.
한파가 몰아치는 주말 이틀 집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근신할 수도 있겠지만 행장을 꾸려 누군가가 치열한 삶을 살았던 살벌하고 위험천만했던 역사 현장에 살아 있는 몸을 데려가 감사를 드리는 것도 마음 수련의 한 방편이다. 오늘 성지곡 일요 훈련에도 4명의 회원(회장님 풀코스, 꾸니, 달하니, 태암)이 나와 달리기로 심신을 단련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영하 4도의 강추위가 찾아왔지만 백기를 들지 않았다. 곽재우 장군이나 코우마 상사의 불굴의 정신이 우리들한테도 깃들어 있지 않나 싶다. 영하의 아침 공기를 뚫고 개금약수터까지 다녀온 꾸니 샘과 달하니 샘의 옷과 모자에는 땀이 흥건하다. 장군이나 병사로 전장에 나가도 한발도 물러서지 않을 용장이나 용병 같다. 현장을 지켜본 나로서는 좋은 공부를 한 셈이다. 천언만어의 장황한 말보다 훌륭한 수업이다. 동료가 존경스러운 스승이 되는 시간이다. 말씀이 없어도 성심의 행동으로 큰 울림을 주는 세 분 회원님들의 감동적인 노천 수업을 혼자만 보아 아쉽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고, 귀한 약초를 캐려면 남이 가지 않은 야생의 길을 가야 하듯이 로또 같은 동료들의 참수업을 보려면 오늘 같이 기상이 악화되었을 때 동참하면 행운이 따른다. 우리 스스로 동장군을 무서워하지 말고 추위가 우리들을 두려워하게 해 보자. 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인동초 같은 가야지가 아닌가? 영하 20도의 혹한이 찾아와도 훈련장에는 가야지 현수막이 변함없이 내걸릴 것이니 가야지 창단 정신을 믿고 안심하고 훈련장으로 나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聖知冬天
臘月天氣馬或豚
春節彷佛異常冬
薰風吹來多雨降
一夜之間零下落
突然豹變冬將軍
不似冬言一下隱
聖知洞天懷冷氣
水源池上起波浪
성지곡의 겨울
섣달 날씨가
모 아니면 도다.
봄을 방불케 하는
이상한 겨울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많은 비가 내리더니
하룻밤 사이에
영하로 떨어졌다.
갑자기 표변한
동장군에
겨울 같지 않다는 말은
쏙 들어갔다.
성지골도
차가운 기운을 품었고
수원지 위로
물결이 인다.
첫댓글 매 훈련마다 정성껏 올려 주시는 후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땅이 얼고 손, 발가락이 시린 것을 보니 이제 진짜 겨울 같습니다. 저물어 가는 2023년을 잘 마무리 하시고 수요일 송년 모임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답사를 같이 갔었는데 남지철교의 강풍은 역대급이었습니다. 남지철교의 역사적 이야기 감사합니다.
수요훈련 후 송년행사에 참석하신다고 곽태환선생님이 댓글 올려 놓은 거 확인했습니다. 환영합니다.
@달하니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 마라톤의 매력을 알게 되어 기뻤던 한해 마무리를 같이 하고 싶은 마음에 덜컥 참석하려고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