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서양을 날아 로마에서 몇주째 휴가를 보내고 있다.
요즈음의 나의 화두는 그제나 언제나 시간 사용에 대한 것이다.
은퇴를 한 지금의 이 나이에 로마에서 어떤 휴가가 가장 흡족할까?
한 때에 세상의 수도(Caput Mundi), 천년 제국의 수도이었을 지언정,
이제 은퇴 맨션에서 오늘 내일 죽을 날만 기다리는 은사들을 마지막으로
보고자 명분을 내세우긴 했지만 휴가는 휴가이고 로마는 로마이고,
로마에서 보내는 휴가는 로마에서의 휴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과거가 없는 미래는 상상조차 할 가치가 없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로마에서 몇주째 끝도 특정한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배회하고 있다.
로마의 동부 옛 유적지들이 널려있는 로만 포럼과 Palatine 언덕과 콜로세움,
항상 여행자들로 북쩍이는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진수가 밀집된 메트로 중심가와,
강 건너 바티칸을 돌아 내려오면 서부 주택가와 노점들이 여유로운 Trastevere까지,
슬슬 걸어서 6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지난 28세기 동안의 잔해과 웅장한 성전들과 조각 예술품들의 겉 모양을 보는 데
대충 이틀 정도면 겉핥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성전들이 내장하는 작품들과 수백의 찬란한 연못 내력들을
하나 하나 따져 보려 들자면 한 목숨 만으로 충분치 않다고들 한다.
유럽 연합(EU)이 형성된 지 벌써 만 20년이 지난 지금
유럽의 여러 도시들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들이 현저하다.
런던, 빠리, 베를린, 쥬릭, 특히 EU의 수도 브루셀도 한 몫을 거들면서
문화적, 정치적, 금융과 건축 기술에 이르기 까지
유럽의 대도시들이 힘 겨루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로마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초연하다.
수 천년의 흥망성쇄를 거듭해온 역사의 깊은 손금 때문인가?!
방학도 휴가철도 아닌 로마의 2023년 봄거리는 놀라울 정도로 인파가 넘쳐난다.
190만의 이탈리안들의 생명을 앗아간 코비드 전염병이 사그라들자
온 세계의 사람들이 ‘영원한 도시 ( La Città Eterna )’ 로마로 다시 몰려든다.
수 십세기의 풍상을 겪어낸 웅장한 건물들과 성전들과 거리 사이로
밀썰물처럼 오가는 거대한 인파속에서 가장 리듬미칼하고 확연히 들리는 말은
대다수의 이방인들의 언어가 아닌 로마인들이 쓰는 바로 이태리 언어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태리어가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라고 말한다.
로마제국이 쇄락하면서 라틴 파생어가 불어, 포르투칼, 스페인, 이태리어로 진화되었다.
마치 한국어를 대변하는 (표준어) 언어가 교육받은 중산 서울 사람들이 쓰는 언어라고 한다면
오늘 날의 불어는 중세 빠리 언어이고, 포르투칼어는 리스본, 스페인은 마드리드 말에서
유래했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그러면 당연히 이태리어는 로마 말에서 유래되었는가? 대답은 백 퍼센트 No이다.
역사적으로 이태리가 국가로 통일할 수 있었던 시기는 19세기 중반 (1861)년,
즉 프랑스와 스페인과 바티칸의 식민지로 다 내어주고
유일하게 남은 반도를 통일 연합한 것이 오늘 날의 이태리란 국가이다.
그러면 오늘날의 이태리어는 어디서 왔는가?
16세기때까지도 피렌체의 과학자와 시실리의 시인, 그리고 베니스의 상인
세사람이 서로 만나면 오로지 라틴어만으로 대화가 가능했다고 한다.
해서 고심 끝에 국회는 이태리 반도에 적합한 가장 아름답다고 손 꼽은 언어로
14세기 위대한 플로렌스의 시인 단테 알리에리의 신곡의 언어를 지명했다.
라틴어를 부패하고 엘리트어로 간주했던 단테는
플로랜스 시민들의 길거리 언어, 복카치오와 페트락크의 언어를
자신의 대작속에 감미롭고 새로운 스타일 (Dolce Stil Nuovo)로 창조해 냈다.
한마디로 영국의 섹스피어 언어보다 더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비교할 수 있다.
다른 말로 오늘날의 이태리어는 로마나 베니스의 언어도 아니고,
심지어 플로렌스의 언어도 아닌, 단테의 개인 언어이란 점이다.
신곡(Comedia Divina)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매 5행마다 3번씩 반복되는
물처럼 감미롭게 흐르는 시적 리듬이 담긴 말이
오늘 날의 로마의 골목마다 광장에서 상점 직원에게서
택시 기사에서도 관청 직원이나 도서관 사서에게서도 그대로 엿들을 수 있다.
단테는 그의 작품속에서 신은 단순히 눈부시고 영광스런 빛(묵시록)을 넘어
“태양과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 L’amor che move il sole e l’altre stelle . . .”이라고 묘사한다.
요염하게 조개 나팔을 불고 있는 인어 인간 연못이 보이는
바르베리니 광장 뒷편 아파트에 살고 있는 로마 토박이 지인의 집
방 한 칸을 일주일만 얹혀 살기로 애초 예정이었지만,
오랜 만에 만나 술 한잔 하면서 한달로 연장을 하기로 즉석 결정을 했다.
로마식 흥정과 대구 경상도식 흥정이 그대로 통한 것 같다.
로마에서 가장 한가하고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시간은 이른 아침 시간이다.
요즈음은 야간 관광도 많이 권장하는 편이라서 더욱 이른 아침이 한적하다.
완연한 봄이 오고 있는 뜨리또네와 마첼리 거리를 따라 어슬렁 걷다보면
스빠냐 광장에 이른다. Scalinata di Spagna (Spanish Steps)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Trinità dei Monti 성당이 나온다.
내가 태어나기 3년전에 만들어진 명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 주연의
숨막히는 일정에서 탈출한 영국 공주 엔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휴가(Roman Holiday)로
한가하게 한손엔 꽃 송이를 쥐고 발이 편한 신발을 사 신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을 했던 그 유명한 계단(the Spanish Steps) 그 자리에
지금은 없어져버린 앤 공주가 사먹었던 스페니쉬 계단앞의
아이스크림 노점은 철거 되었지만 로마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한 이름하여 “Il Gelato di San Crispino”!를 청해 들고
거리의 연인들을 바라보며 달콤한 시상을 떠올린다.
“Dal centro della mia vita venne una grande fontana . . ..
내 삶의 한 가운데에서, 위대한 샘 하나가 나왔네…”
오랜만에 찾아 본 판테온도 이제 더이상 공짜 입장이 허용되지 않고 (5유로),
다른 모든 장소도 물가도 숙박료도 엄청 올랐다.
로마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의미있는 휴가일까를 고심하다가
문득 오래 전의 명화 ‘로마의 휴일’로 널리 알려진 ‘Roman Holiday’에서
약간의 아이디어를 얻어 본다. Roman Holiday의 진정한 의미는
로마 태생이 아닌 이방인들이 ‘로마식 휴가’를 즐겨는 것이 메세지일 성 싶다.
진정한 휴가는
남들이 다 몰려드는 곳으로 우루루 달려드는 것이 아닌
남을 완벽하게 흉내내지 말고 불완전하지만 자신에게 충실하라는
인도 고전 바그바다 기타의 요가 텍스트의 참된 가르침인 것 처럼,
평소에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사소한 것들을 하는;
이발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편한 신발도 사서 신어 보고
평생 잊지 못할 사랑에 빠지는 앤 공주의 휴가가 내게 주는 메시지는
은퇴 은사님과 거리에 앉아 단 것에 대한 걱정 오늘 하루 쯤은 잊어버리고
젤라또를 어린아이처럼 빨아 먹으며 거리의 사람 구경을 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로마의 휴가가 아닐까 싶다.
스케쥴의 억압에서 여유를 찾고 사랑을 가장 우선 순위로 내세우는
내 자신의 내면의 요구에 순종하는 행위가
자신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과 일치하게 되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것이 진정한 휴가의 의미일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듯 특별한 이벤트도 아닌 소소함속에서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행위가
지금 내가 로마에서 급속히 돌아가는 세상의 시간에 쾌념치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푸하하하!
Bel far niente! (The Beauty of doing Nothing)
Complimenti! (Congratulations!)
Vai avanti! (Knock yourself out, Be my gu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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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미칠 정도의 광폭 일정의 유럽 공식 방문 행사들로 탈진한 영국 공주 앤은
강력한 수면제 때문에 대사관에서 탈출하자 정신이 몽롱해져 거리 벤취에 누워있다.
마침 지나가던 미 신문사 취재원 죠는 대책없이 횡설수설하는 앤을
본의 아니게 자신의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제워주게 된다.
다음 날 아침에 신문사에 출근한 후에야 앤의 정체를 알아챈 죠는
이발도 하고 신발도 사고 거리 구경을 하는 앤을 몰래 따라 다니다가
스페니쉬 계단에서 다시 조우하는 척 하자
간밤에 기숙사에서 탈출했다며 반가워하는 앤과의 대화를 발췌해 본다.
ANN. 언제나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JOE. 예들 들면?
ANN. 당신이 상상조차 못하는 ...
뭐든 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루 종일해보는 것! [깔깔 웃는다].
JOE. 예를 들자면, 머리를 자르기? 아이스크림 먹기?
ANN. 그럼요, 좋찮아요, 길거리 카페에 앉아보는 것; 상점 눈요기; 빗속을 걸어보는 것!
재미로 약간의 흥분꺼리등 아마도 당신에겐 별 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JOE. 훌륭해. 이러면 어때: 둘이서 그런 것 전부 같이 해보는 거.
ANN. 하지만 당신은 일해야잖아요?
JOE. 일? [일어서면서] 아뇨! 오늘은 휴일이 되는거요.
ANN [장난스레] 정말 그런 우스꽝스런 일들을 할 수 있을까요.
JOE [손을 잡으면서]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첫번째 희망사항: 첫째 길거리 카페, 내가
아는 카페로 지금 당장 안내하겠소이다: [공손히 그녀를 계단에서 일으켜 세운다]
첫댓글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건강과 행복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