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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발심(伐草 發心)
오종락
벌초는 조상님과 후손이 교감하고 소통하는 행위다. 얼굴을 못 뵌 윗대 조상님에 대한 벌초는 자신의 큰 뿌리에 대한 정체성을 일깨워 준다. 벌초에 대한 발심은 조상님을 추모하는 마음가짐에서 시작되며 자발적인 벌초 및 성묘라는 행위로 표현된다. 벌초에 임할 때는 부모님 생전에 어깨를 주물러 드리는 마음 자세로 하는 것이 좋다. 살아 계실 때 잘 해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도임은 분명하다. 하나 생전에 못다 한 효도는 사후에 작은 정성이라도 올리는 것이 자손의 도리다.
조상님의 묘소는 팔공산 인근 여러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한 해에 두 번 정도는 산소에 성묘를 하고 벌초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정성이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봄에 해동이 되면 묘소를 둘러보며 겨우내 이상이 없는지를 살피며, 추석 두 주 전에 항상 벌초를 하곤 했다. 벌초와 성묘 후 멧돼지를 쫒기 위해 묘소 둘레에 크레졸 비누액을 매달아 놓는다.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크레졸 비누액 몇 병이 나를 대신하여 묘소를 지켜준다. 십여 년이 넘도록 묘소를 보호하는 든든한 보초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벌초는 후손으로서 기본적인 도리다. 올해도 기본임무를 완수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당초는 추석 두주 전 토요일에 하기로 약속했으나 비 때문에 한 주 뒤 토요일로 연기하여 실시했다. 매년 이맘때는 주말이면 비가 자주 내리는 경향이 있다. 추석 명절 전에 벌초를 하려고 하니 일정이 어려울 때도 있다. 반드시 추석 전이 아니라도 후손들의 손으로 직접 하는 것이 조상님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벌초는 무엇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껏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올해 벌초는 유달리 힘들었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날씨가 습한 탓인지, 아니면 체력이 다소 약해진 탓인지? 기온은 그리 높지 않았는데 숨이 몹시 찼다. 하루 만에 먼 곳에 있는 윗대 묘소까지 모두 마무리하기 위해 오후 늦게 까지 무리를 했다. 더구나 예초기를 잘 돌리는 작은 조카 한 명이 오후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묘소 주변의 잡목을 뽑아내며 부지런히 잡초를 베었다. 화장실 가는 것도 잊은 채 낫질을 계속했다. 조카들에게 맡기고 쉬엄쉬엄 해도 벌초는 별 무리 없이 진행된다. 하지만 나의 진두지휘 아래 벌초하는 조카들을 보며 내 작은 정성이라도 보태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알뜰히 풀을 깎고 나니 이발을 말끔히 해드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일 년에 한 번 하는 이발에 흡족하신 듯 “애야, 너 덕분에 추석 이발 잘 했다.”라고 말씀하시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생전에 아버님이 명절을 앞두고 이발을 하신 후 “기분이 참 개운하구나” 하시던 말씀과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풀들로 가려진 봉분과 묘소 주변이 말끔히 정리되고 나니 내 기분이 상쾌하다. 묘소 주변의 잡풀은 끈질기게 자라나며 후손의 효심과 관심도를 시험하는 것만 같았다. 벌초 작업을 끝낸 후 크레졸 비누액을 나뭇가지에 매달았다. 내년 봄 해동할 때까지 조상님의 묘소를 잘 지켜달라고 부탁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듯 점심시간이 되었다. 도래솔 그늘 아래 빙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집집마다 준비한 도시락을 잔디 밥상 위에 풀어놓으니 푸짐한 만찬이 차려졌다. 이처럼 고향 선산의 야외 소풍은 벌초란 행사가 있기에 느끼는 행복이다. 요즘 시대에 조카들이랑 이렇게 야외에서 점심을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는 어렵다. 조상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기분이 좋으니 소주를 한잔 곁들인 점심은 달고 맛이 난다. 어느 누구 하나 귀찮은 내색 없이 열심히 벌초에 임해 주는 조카들이 참 고맙다.
벌초 때문에 시끄러운 집안이 더러 있다. 하지만 추석을 앞두고 벌초 행렬로 도로가 꽉 막히는 광경을 보면 흐뭇하다. 아직 우리 국민들은 조상을 기리는 착한 민족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벌초는 핏줄이 직접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아들이 없는 집안은 딸이나 사위라도 하면 될 것이다. 시대 상황이 많이 바뀌었으니 대행업체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건이 되면서도 힘들고 귀찮다는 이유로 벌초를 위탁하는 방법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벌초는 단순히 풀밭에 제초 작업을 하는 행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시켜서 대신 세배를 드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이런 나의 생각은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고리타분한 생각일까? 주위에 보면 각종 친목행사나 종교행사에는 온갖 정성을 쏟는 사람이 정작 조상의 벌초는 귀찮은 연례행사 인양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별로 좋은 이야기로 들리지 않으며 조상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내가 아는 S후배는 추석이 다가오면 벌초를 하기 위해 2주 전부터 체력단련을 한다고 했다. 형제 단 둘이서 여러 기의 묘소를 벌초하기 위해서는 기초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예초기 사용에 필요한 근력을 키우기 위해 팔굽혀펴기, 허리운동, 조깅 등 체력관리에 신경을 쓴다고 했다.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벌초는 당일에만 국한된 행사가 아닌 것 같다. 몇 주나 최소한 며칠 전부터 조상님을 기리고 자신의 몸을 가다듬는 행위가 선행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나 또한 후배보다는 못하지만 벌초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는 편이다. 첫째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조카들에게 말벌 방어용 울트라 킬러 준비와 뱀 등 위험방지를 위한 등산화 착용 등 철저히 준비하도록 문자를 보내는 것이 나의 임무다. 조상을 기리는 행사지만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벌초 며칠 전 준비물로 숫돌에 조선낫 한 자루와 양낫 몇 자루를 잘 갈아 놓는다. 그밖에 야전삽, 크레졸 비누액을 달기 위해 송곳, 노끈 등도 챙겨 놓으며 조상님 뵐 날을 기다린다.
예전에 제주도에는 음력 8월 1일 벌초 방학을 실시하여 집안의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효행을 고취하는 아름다운 전통도 있었다. 세상만사가 마음먹고 생각하기 나름이다. 한순간 조상님을 섬기는 쪽으로 마음을 고쳐먹어 보면 어떨까 한다. 그러면 벌초는 즐거운 소풍놀이며 핏줄 간 단합을 도모하는 행사임을 깨닫게 된다. 결코 번거롭고 힘든 노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벌초는 조상님 묘소 앞에서 혈연관계를 확인하고 공동체인 문중의 결속을 다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초가을의 가느다란 매미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선율로 우리들의 피곤함을 달래준다. 벌초는 몸은 다소 고단하지만 조상을 섬기는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문화다. 벌초를 시대변화에 맞게 의미 있는 행사로 승화시킬 수 있는 묘안을 한번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16.09.18.)
첫댓글 조카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벌초 하시는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벌초는 자손들이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이 바뀌면서 벌초 풍속도 많이 바뀌어 가는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벌초도 하나의 각개전투란 생각이 듭니다. 조상을 위하는 마음으로 무장된 지휘관의 구령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조카들을 선도하여 집안 일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귀감으로 닥아옵나다. 벌초와 관련하여 조상에 대한 예절 행을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벌초란 단순한 조상님의 묘소에 제초작업을 하는 행위로 생각하거나 남의 눈을 의식해 벌초대행 업체에 위탁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읍니다. 어쩔수 없는 사정이라면 이해도 할수있지만 조상묘를 풀숲에 방치하는것 보다는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도 듭니다. 풀베기 작업이 아닌 성묘의 관점에서 후손의 도리를 하는것이 효의 출발이라 생각해 봅니다.
명당에 있는 묘소도 잘 관리하여야 발복이되고 후손들의 교육장도 된다고 생각합니다.삼촌이 조카들을 인솔하여 벌초를하면 선조님등이 얼마나 흐뭇하겠습니까 대단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수필창작반에 오길 참 잘했다 싶습니다. 옛날 고향집에 온듯 지금 고향에 자주가지 않는 지금 젊은 사람들 도래솔을 몇이나 알까요 동네 가까이에 있는 종중산소에서 묘사지내고 그날은 온동네 명절인듯 도래솔에서 떡 음복 먹던 시절이 그립네요.벌초도 농사짓는 사람이 대행한다니 할 말이 없지요. 가끔 친정곳에 들리면 친정댁 대소가에서 자네가 아들이었다면 고향을 지켰을텐데 50도 안돼 돌아가신 2대독자 오빠가 원망스럽기도하고 그립기도 합니다.
벌초는 꼭 해야하는 후손의 일. 그러나 걱정입니다.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