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구원은 바로 예수(예슈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구원이란 뜻입니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여기보니 구원의 정의가 너무나도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어디서 구원하시는가? 바로 죄입니다. 죄에서 구원한다면 또한 죄로 인한 결과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구원'은 종종 '치유'대신 쓰이기도 합니다.
(마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혈루병 앓던 여인 얘긴데, 이 여인은 치유를 받았지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닌데도 예수님은 구원받았다고 하시고 마태도 구원받았다고 기록합니다. 그 이유는 헬라어로 구원, 쏘테리아(동사는 쏘조)에는 구원이란 뜻도 있고 치유란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치유란 무엇일까요?
손이 칼에 베이면 원래 모습과 다르게 벌어지지만 치유가 되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보면 구원도 그렇고 치유도 그렇고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애초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다음 두 구절은 우리를 헷갈리게 합니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우리는 구원을 이미 받은 것인가, 아니면 구원을 앞으로 받아야 할 것인가?
여러분, 저는 제가 '영혼몸'을 번역하는 영광을 맡아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왜냐면 성경 말씀 중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웬만하면 영혼몸으로 대부분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위로부터 난다,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난다는 뜻으로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거듭날 때, 우리는 영이 태어납니다. 그때 우리 영의 구원은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 가야 하는 구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혼의 구원입니다.
여기서 혼의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 구원의 헬라어를 좀 설명해야 합니다.
헬라어로 구원에는 '축사'의 뜻이 있습니다. (사전 링크는 여기) 영어로 축사는 deliverance인데, 이 말 자체에도 구원이란 뜻이 있습니다. 이 말이 축사라는 뜻으로 쓰일 때는 '마귀의 억압에서 구원을 받다, 자유케 되다'는 뜻이 됩니다. 또 헬라어 사전에 구원은 '원수의 훼방으로부터의 구원'이라고 정의 되어 있습니다. 귀신이 들렸다기 보다 원수마귀의 괴롭힘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로 보면 누구나 마귀 사탄의 괴롭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원수의 훼방으로부터 우리 혼의 영역이 구원 받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구원이란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의 영, 혼, 몸의 상태로 회복된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영의 구원은 단번에 이루어졌지만 우리 혼의 영역은 점진적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빌 2:12). 혼의 구원이 바로 성화고, 회개고, 생각을 새롭게 하는 것이고, 내적으로 치유 받는 것이고, 원수 마귀의 괴롭힘, 훼방에서부터 자유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그 작업을 두렵고 떨림으로 하라고 했는데 우리 각자는 얼마나 두렵고 떨림으로 그 작업을 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