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일제 미쓰비시에게 70년을 빼앗긴 양금덕 할머니, 그 두 번째 만남
양 할머니 “이명박 정권에 맞서 젊은이들이 싸워야 한다”
5.18에 대한 기억, 주먹밥, 물 등 시민군에게 나눠줘...
우리가 숨 쉬고 사는 것은 4.3, 4.19, 5.18의 숭고하고 장엄한 죽음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이제 아프지 말아야겠어, 그래야 왜놈들과 싸우지!”, “이제는 살맛이 나, 연금 필요 없어, 미쓰비시 반드시 몰아내고 말거야”, 근로정신대 양금덕(광주 서구 82세) 할머니의 다부진 말이다.
양금덕 할머니에 대한 딱한 사연을 본지의(중앙통신뉴스, 2월 6일자) 보도이후 시민들이 할머니에게 반드시 ‘미쓰비시 퇴출’ 운동에 꼭 ‘승리’하라며 모금과 물품을 보내와 ‘미쓰비시 자동차 광주전시장(광주 서구 치평동, 광주시청 앞) 퇴출’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 본지의 취재진의 세배를 받고 눈물부터 쏟아내시는 양금덕 할머니, 할머니가 쏟아낸 눈물은 눈물이 아닌 ‘限’이었다.
전남 광양에서는 자신이 교사라고 하며 본지의 기사를 보고 성금 10만원을 익명으로 보냈으며, 시민들이 양말, 귤, 김 등을 보내와 양금덕 할머니에게 전달하기 위해 본지의 취재진이 다시 할머니 집을 찾았다.
할머니는 본지의 취재진의 세배를 받으며 “할머니 용기내시라고 시민들이 이런 물품들을 보내셨습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하자 눈물부터 쏟아내시며 “뒤늦게라도 내 편을 들어주니 겁나게 좋아, 먹기 싫은 밥이라도 먹고, 건강해서 싸워야겠다. 한발이라도 성하면 작대기라도 짚고 싸워야겠다”며 하시며 다시 한 번 용기를 북돋았다.
▲ 양금덕 할머니가 시민들이 보내 준 성원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구청에서 보내준 후원 물품이 고작 들기름과 참기름 한통, 그리고 잡곡 몇 봉지에 불과하다. 그것도 고마워하시며 자랑을 하신다.
양 할머니는 지난 8일 외교통상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당신들은 한 끼 점심을 100만원을 쓰지만, 나는 고깃집을 지날 때마다 이천원이 아까워서 못 사먹고 침만 꿀떡 꿀떡 삼킨다”, “‘당신들은 우리가 번 노임의 세금을 일본에 다 넘기지 않았냐?”고 항의 하셨다.
가족과 함께 즐거워야 하는 것이 명절이지만 역사의 뒤안길에서 고통 받는 이웃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며 여기에 5.18희생자 고 김복만(사망당시 29세) 열사의 부인 강성순(<화려한 휴가>의 택시기사로 패러디 됐다고 한다) 어머니가 암과 싸우다 올해 1월에 돌아가셨다. 는 본지의 한 취재진을 통해 소식을 들으신 양금덕 할머니는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하시며 5.18당시에 일화를 소개해 주셨다.
할머니는 82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5.18당시를 기억하며 “상무관에서 64구의 시신들과 도청마당에 널브러진 젊은이들의 시신을 보았고 전남대생이 맞아죽은 것을 직접보시면서 끔찍하고 참담함을 느꼈다”며 “그 당시 일주일동안 동네에서 쌀을 걷어서 김밥을 싸고, 막걸리 병에 물을 담아서 버스를 타고 다니시며 시민군들에게 나눠줬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안타까워했다.
▲ 수원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시민이 광주서정교회 장헌권 목사를 통해 알게 됐다며 10만원을 보내왔다. 할머니에게는 그 후원금도 자랑거리 이다. 할머니통장 잔고를 살짝 들어다 보니 10여만원이 전부다.
또 “전두환 정권과 이명박 정권, 정치에 대해 언제나 올바르고 똑바른 정치가 될 수 있을까”라고 한숨을 내쉬며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악착같이 싸워서 이 나라를 바르게 잡아 나가야 한다”며 나라 걱정을 했다.
할머니는 1일 시위 도중 미쓰비시 자동차 전시장에서 차를 구경하러 온 사람에게 “이 놈들 도둑놈들이니 사지 말고 돈 많으면, 불쌍한 사람들 돕고 한국 차가 더 좋으니 한국 차 사시오!”라고 했다며 “나는 미쓰비시에게 강제착취당한 노임도 못 받고 65년 동안 고통 받고 있소, 2년 동안 착취된 시간이 평생죄인으로 살게 만든 전범기업이요! 라고 했다”며 또 눈물을 쏟아냈다.
현재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 약 8만8천원과 생활보호자 15만원으로 한 달 생활비로 살면서도 매일 2천원의 교통비를 쓰면서 미쓰비시 자동차 전시장에 가서 1인 시위를 벌여 온지 벌써 100일 다가오며, 현재 600여 명의 시민들이 1인 시위를 다녀갔다.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이웃의 따뜻한 사랑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할머니가 끝까지 따라와 고맙다는 말을 한다. 새해 할머니의 건강과 미쓰비시 퇴출 싸움에 반드시 승리하기를 기원해본다.
“할머니 아무리 어려워도 보일러는 꼭 때고 주무세요”라는 취재진의 걱정에 대해 “3년을 냉방으로 살았는데, 이웃이 라디오방송국에 사연을 알려주어 동사무소에서 방 도배와 보일러를 고쳐줘서 작년부터 보일러를 때고 살아”라고 말했지만 기름이 아까워 보일러를 때지 않은 흔적이 방안의 입김을 통해 전해왔다.
할머니는 노인당에서 총무를 맡고 계시며 노인당 살림을 알차게 꾸려간 덕에 구청에서 큰 냉장고와 온수기를 노인당에 기증받았다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양금덕 할머니는 2년도 채 되지 않는 일본생활로 60년간의 인생이 굴절돼버렸다. 지금 우리가 가정을 꾸리고 아들을 키우고 공기를 마시며 사는 까닭은 일제강점기 희생자들, 명분 없는 한국전쟁 희생자들, 4.3, 4.19, 5.18의 숭고하고 장엄한 죽음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라며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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