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사(漁夫辭)
굴원(屈原)
굴원의 어부사(漁夫辭)를 모른다면 동양에서 절개를 말할 수 없다. 여기 나오는 탁영(濯纓)이란 말에서 김일손 선생 호가 나왔으며, 창랑(滄浪)이란 말에서 1950년 대 국무총리 장택상 씨 호가 나왔다. 둘 다 기원전 3세기 초(楚)나라의 대시인 굴원의 어부사에서 나왔다. ‘창랑지수(滄浪之水)가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겠다'는 구절이다.
굴원(사진)
굴원은 전국시대 초나라 왕족이다. 견문이 넓고 치란(治亂)에 밝아 회왕(懷王)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초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한 헌령(憲令)을 기초하였다. 그런데 상관대부 늑상이 '굴원은' 학식이 빙자하여 믿고 대왕을 업신여기며 무엇인가 딴마음을 품고 있는 듯합니다' 회왕에게 참소하여 회왕이 그 말을 믿고 굴원을 멀리하자, 굴원은 장편의 시를 지어 울분을 토로하니 그 시가 '이소(離騷)'이다.
그후 경양 왕 27년(BC.27년)에 진나라 장수 백기(白起)가 초나라를 함락시키고 선왕의 무덤 이릉(夷陵)을 불태워버리자, 이 소식을 들은 굴원은 '어부사'를 남기고, 5월 5일 돌을 품고 멱라수에 몸을 던져 순국(殉國)하였다. 그의 나이 62세 때인데, 현재 호남성 도강현 굴원이 투신한 멱라수 옆에 그의 무덤과 사당이 있다. 굴원이 순국한 날이 음력 5월 5일인데, 이 날을 단오절(端五節)이다. 사람들은 매년 용선(龍船) 경주를 성대히 벌이고, 갈대잎으로 싼 송편을 멱라수 물고기에게 던져준다.
어부사(漁父辭)
굴원이 이미 쫓겨나 강담(江潭)에서 노닐고 못가를 거닐면서 시(詩)를 읊조릴 적에 안색이 초췌하고 몸이 수척해 있었다. 어부(漁父)가 그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닌가? 어인 까닭으로 여기까지 이르렇소?'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어, 추방을 당했소.'
어부(漁父)가 이에 말했다.
'성인(聖人)은 사물에 얽매이거나 막히지 않고 능히 세상을 따라 옮기어 나가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혼탁하면 왜 그 진흙을 휘젓고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으며,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있으면 왜 그 술 지게미를 먹고 박주(薄酒)를 마시지 않고, 무슨 까닭으로 깊은 생각과 고상한 행동으로 스스로 추방을 당하셨소?'
굴원이 이에 대답하였다.
'내 듣기로, 막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관(冠)을 털어서 쓰고, 막 목욕을 한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 하였소. 어찌 깨끗한 몸에 외물(外物)의 얼룩덜룩한 더러운 것을 받겠소? 차라리 상강(湘江)에 뛰어들어 물고기의 뱃속에 장사(葬事)를 지낼지언정, 어찌 희디흰 순백(純白)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쓴단 말이요?'
이에 어부는 빙그레 웃고는 배의 노를 두드려 떠나가며 노래를 불렀다.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내 갓 끈을 씻을 것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을 것이요(滄浪之水淸兮 可以濁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그리고 어부는 떠나가고 굴원은 다시 그와 더불어 말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