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 /만세전
조미경
염상섭의 만세전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중편 소설인데, 서술자인 나는 일본에 유학 중인 대학생으로
시험을 치르다 고국인 조선에서 보내온 전보를 받고, 담당 교수에게 시험은 다음에 치겠다는 말을 남기고 일본을 떠난다.
전보의 내용은 나의 아내가 병이 깊어 바쁘지 않으면 다녀 갔으면 하는 내용이다.
조선에 가기 위해 여행 목록을 구비하는데 일본의 비밀경찰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눈초리를 느낀다.
그러나 강압적이거나 위협은 없다. 주인공인 나는 고국에 두고 온 아내에게 정이 없어 이미 병이 위중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걱정되거나 슬프지 않다. 대신 일본에서 자주 다니는 카페 여급과 견주면서 은근히 아내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숨길수가 없다. 소설은 주인공인 나가 일본을 떠나 조선으로 오게 되면서
겪는 한일합방 당시의 부산의 모습과 전차에서 헌병들이 조선의 지식인을, 감사하고 무시하는
그 당시의 생활상을 세세하게 , 풍경을 묘사를 한다.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병으로 죽어가는 모습과 일본인들에 떠밀리듯 점점 안쪽으로 들어가 살수 밖에 없는
민초들의 삶이 고단하게 다가온다. 또한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지식인들과 농민들의 삶이 너무나 차이가 나고
비참 하지만 살아야 하는 목숨이 붙어 있으니 살아가는 장면들에서 무섭기까지 하다.
그리고 같은 조선인으로 일본인들 밑에서 작은 권력을 가지고
백성들을 핍박하는 가진 자들과의 괴리도 컸다.
결국 소설에서는 나는 고국으로 돌아와 병든 아내를 만났다.
그러나 어떤 미안함이나 측은함도 없이 하루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반면 병든 아내 주인공 나의 아내는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이 낳은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편히 눈을 감지 못한다.
그리고 며칠 후 아내는 하늘로 떠나고, 나는 아내를 보내고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결혼 생활 7년 동안 살뜰히 남편 노릇을 못한 아직
철들지 못한 남편이 마지막에 살을 부딪히며 살아온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잠시 마음을 나눈 정자라는 여자에게 정을 떼는 장면이 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소설의 극적 반전이 아닐까 생각했다.
만세전은 식민지 지식인의 어두운 특히 문학인이라는 특수한 감성을 가진 주인공의 내면을 통해서
현실의 팍팍함을 느꼈다. 시간을 뛰어 넘어 현대에 들어와 요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또 어떤가.
작가의 눈에 비친 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어린시절에 읽은 염상섭 소설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나 이번에 있은 만세전 그리고 이합은 묘지에 나타난
우리나라 근대의 모습을 소설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작가는 만세전 소설을 통해 근대화라는 신지식인의 눈에 비친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한 묘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작성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근대화적 상징물 또한 공동묘지였다. 미신의 산물이면서 비 생산적인 전통적 매장풍습을 버리고 근대화 산물인 공동묘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묘지는 벗어나야 할 장소이면서 동시에 저항해야 할 장소로서 나타나 있는 셈이다.
염상섭의 묘지에 대한 인식을 제정비하고자 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염상섭의 전통 묘제에 대한 비판은 선산으로 집중되는 바. 이는 일리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선산은 주로 중류층 이상이 활용했던 것이었을 뿐이다.무산층은 일종의 중세적 공유지라고, 할 수 있는 북망산의 무료 사용권한을 진텅적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묘지령 이후에 그들은 죽어도 묻힐 곳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들째, 이소설에서 근대화의 모델로 상정한 공동묘지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염상섭이 유학시절에 자주 찾았다는 도쿄의 조시가야 묘지일 가능성이 높다. 셋째 일제는 산림조사사업과 묘지령을 통해서 식민지적 근대하를 위해 토지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겠다는 목적으로 1물1주권의 배타적 소유권 제도를 도입한다. [만세전]에서는 '생산에서 면제된 '공간'을 극소화 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적극 찬성 하면서 오직 그 새로 늘어난 땅이 주로 이라본인에게 넘어간다는 점만을 문제라고 인식 한다.
[만세전]의 주된 소재인 묘지를 당대의 사회현실과 대조하면서, 식민화및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가장 고통받는 무산계급에 대한 인식이 모자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 작품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석은 대체로 민족과 근대성의 문제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계급과 자본주의의 문제를 소홀히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