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 묵호쪽으로 가는 기차길을 따라 걸은 적이 있다.
그 당시, 기차길에서 노는 아이들이 많았다. 제일 많이 하던 장난이 대못을 철로 위에 올려 놓으면, 기차가 지나간 뒤에 못이 납작해지고, 우리는 그것을 갈아서 작은 칼을 만들었다.
강릉 옥천동 내가 살던 곳 부근에서 출발하면, 성남동 시가지가 나오고, 바로 남대천이다.
남대천 철교를 지나면 tunnel 이다.
터널로 들어서면 아이들은 갑자기 말이 없어진다.
반대쪽에 보이는 작은 불빛을 향해 걸어가기만 한다.
공포심과 빨리가야겠다는 절박함만 있었다.
그전 까지 우리는 떠들면서 즐겁게 걸었다.
동굴을 만나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멀리 보이는 밝은 빛을 향해 오로지 걷는 것 뿐이었다. 갖혀 있다는 공포감만 있고, 즐거움 따위는 없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동굴 속에 갖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 많다. 아니, 대부분이다.
갈수록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잘 보이지도 않는 목표를 향하여 살아간다.
다른 생각을 못하고 산다. 오로지, 오로지, 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생각은 틀 속에 갖히고 만다. 보이는 것이 없으니 당연하다.
삶이 즐겁지 않고 힘들기만 하다.
대부분 다 그렇다. 전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우리들은 그것이 최선이라고 착각을 한다.
만약 동굴 속을 걸어가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를 보면서 즐기면서 웃으면서 살아 갈 것이다.
목표라는 집착을 향해서 자신을 구속시키면서 재미없게 걸어가지 않을 것이다.
삶은 별 것 아니다.
다만 동굴을 벗어나야 한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
그럼 생각이 자유로와 진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면서 걸어갈 수 있다.
자신을 틀 속에 가두면 안된다. 몹시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구속하는 길이고 집착하는 길이다.
어릴 때, 그렇게 철길을 따라 걷다가 남대천을 지나서 tunnel을 빠져 나오면, 그곳 부터는 노암동 산동네다.
그곳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이모가 사는 동네였다.
혼자 사는 이모집에 가면 이모는 하얀 소복을 입고 계셨다.
이모의 남편은 동네 느티나무에 묶여 인민군들에게 총살 당해 죽었다.
이모는 그래서 하연 소복을 10 년도 넘게 입고 계셨다.
이모가 해 주신 따뜻한 밥을 얻어 먹고, 이모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