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의 시적 주체는 대상을 인간주의적 관점으로 해석하거나 주체의 정념으로 일렬 배치하는 서정시의 기율 대신 사물의 사물성과 순수성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보존하려는, 김춘수로부터 시작된 한국 시의 저 오래된 반인간주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율:도덕상으로 여러 사람에게 행위의 표준이 될 만한 질서)
<구관조 씻기기>는 황인찬 시인의 그런 면이 가장 잘 드러난 시로 읽혔다. 시적 대상을 내게로 끌어당기려는 구식 관조(구관조)가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신식 관조다. "비현실적으로 쾌청한" 날, 시인은 숨소리조차 내기 미안할 만큼 조용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 / 어떻게 새를 다뤄야 하는가"를 다룬 책이다. 시인이 고른 두 개의 인용문이 재밌으면서 의미심장하다. 새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고 스스로 목욕을 할 줄 아니 씻길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구관조 씻기기'라는 제목은 인간이 인간의 잣대로 자연에 쓸데없는 짓을 하거나,
누군가가 저만의 판단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불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을 꼬집는 역설일 수 있겠다.
자연도 사람도 함부로 재단하지 말 것. 내 관점으로 해석하지 말 것. 진정한 배려란 씻길 필요가 없는 새를 목욕시키는 것이 아니라 물이
사방으로 튈 때 "랩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새장을 감싸주는 것"이라는 것. 황인찬은 조용한 도서관에서 새에 관한 책만 읽고도 한 편의 시를,
그것도 무언가를 깊이 사색하게 만드는 시를 써낼 줄 아는 시인이다. 그는 또한 '자기복제'는 기피하며 거듭나기를 원하는 시인이다.
조(操)’라는 한자는 세 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왼편에는 손이 있고, 오른편 아래에는 나 무, 그 위에는 세 개의 입이 있다. (...) ‘손으로 나무 위에 있는 새를 잡는' 모양을 따른 글자라 고 나온다. 그렇다면 거기에 '심(心)’을 더한 ‘조 심'의 뜻은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이 될 것이 다. 손으로 새를 쥐다니, 과연 조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신형철, 《인생의 역사》, 25쪽 어떤 사랑이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의 '조심'이라 면, 황인찬의 사랑도 그러할 것이다. 그의 첫 시 집 《구관조 씻기기》는 그 제목에서부터 새를 씻기 는 행위를 언급한다. 새를 씻기려면 새를 손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시집의 표제작이자 두 번째 순 서로 실린 <구관조 씻기기〉를 먼저 읽어 본다.
새를 키우지 않는 화자는 새를 다루는 방법에 관 한 책을 읽는다. '너무 조용해서 책장을 넘기는 것 마저/실례가 되는 것 같’은 도서관에서 그는 책의 어느 구절을 보고선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읽었 다’. 새를 키우지 않는 사람이 새에 관한 책을 읽 는 것도 의아한 일인데, 새를 씻기는 내용을 보고 선 심지어 소리를 내서 읽기까지 했다. 남에게 들 려주려는 목적이 아닌 이상, 책은 보통 눈으로 읽 는다. 글이 많지 않은 그림책을 제외하면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입으로 읽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어떤 문장은 눈으로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꼭 소리를 내서 읽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 는 문장이 아무렇게나 쓰인 말은 아닐 것이다. 읽 는 사람의 목소리로 재구성되어야만 하는 말에는 분명히 어떤 깊은 의미가 있을 테다. 화자가 읽은 문장이 바로 그렇다. 애당초 그가 읽은 책은 새에 관한 책이 아니었을 것이다. '새를 사랑하는 사람 이/어떻게 새를 다뤄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설명했지만 '새'의 자리에는 그 무 엇이 들어가도 상관없다. 화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무언가를 다루는 방법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책 장을 넘기는 게 조심스러운 이유는 단지 도서관 이 너무 조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을 다루는 책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 새를 다루는 것처럼. 그런 화자가 책이 아닌 실제로 사랑하는 대상을 다룰 때는 어떠했을지 생각해 본다. 그는 아마도 그것조차 손으로 새를 쥐듯 대했을 것이다. 손에 쥔 새는 힘을 풀면 날아가 버리고 너무 꽉 쥐면 죽 어 버린다. 정말이지 '조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 다.’ 그토록 조용한 도서관에서 한 문장을 소리 내 읽을 수밖에 없었던 건 화자의 이런 조심하는 태 도 때문이다. 새를 씻기려면 잘 잡고 있어야 한다. 날아가지도 죽지도 않는 적절한 세기의 힘으로 조 심히 쥐어야 한다.
그런데 책에서는, 충격적이게도, ‘새는 스스로 목 욕하므로 일부러 씻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애 초에 새를 쥐고 씻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 고 책에서는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러나 물이 사 방으로 튄다면, 랩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새장을 감싸 주는 것이 좋습니다.”” 새는 스스로 목욕할 수 있다. 사람이 할 일은 물이 새장 밖으로 튀지 않 도록 덮어 주는 게 전부다. 새를 아무리 사랑해도 새를 직접 손에 쥔 채 씻겨줄 필요가 없었다. 이것이 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성 립되는 말이다. 사랑하는 것을 언제나 쥐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경우에는 손대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나을 때도 있다. 화자는 그 것을 새를 다루는 책을 읽고서 비로소 깨닫는다. 깨닫고, 도서관 밖으로 나갔을 때는 ‘거리가 젖은 것을’ 본다.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고 보기만 한 다. 여기서부터 화자의 새로운 사랑법이 시작된 다. 그동안 어린 새를 쥐는 사랑을 했다면 이제부 터는 새를 손대지 않을 줄도 알되, 그 마음만큼은 여전한 사랑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행의 '이 책'은 화자가 읽는 새에 관한 책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구관조 씻기기》라는 시집 자체를 뜻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황인찬의 시에는 공백이 많다. 손에 쥐지 않는 수 준이 아니라 아주 먼 곳에서 마치 관조하듯 바라 보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다. 단어 하나하나 신중하 게 고른 기색이 역력하고 행과 연 사이의 공백까 지도 조심스럽게 배치되었다. 말을 조심하다 보면 길게 얘기할 수가 없듯이 《구관조 씻기기》에 수록된 시들은 대체로 길지 않다.
(답) 구관조는 스스로 목욕을 하기 때문에 사람이 씻겨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씻기는 것은 구관조를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구관조 뿐만 아니라 모든 새가 마찬가지 입니다. 따라서 구관조가 들어가서 씻을 수 있는 물통을 준비하여 구관조가 들어갔을 때 가슴에 닿을 정도로 물을 담아주세요. 물이 너무 사방으로 튄다면 랩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새장을 감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황인참 시인은 이 네이버 지식인을 보고 이 시를 썼다고 한다.이와 같이 이미 아는 지식이나 사전, 혹은 길에서 들은 이야기에서 시를 출발시켜 낯설거나 놀라운 지점으로 이동시키는 기법을 즐겨 사용한다고 한다.
첫댓글 새를 연인이나 시로 치환해서 읽어본다.
https://naver.me/FGe1nE9E
네이버지식인
(문) 제가 얼마전부터 구관조를 키우거든요.일요일에 사왔어요.
근데,제가 어떻게 씻기는지를 몰라서;;;
자기도 씻고 싶은지 물통에서 노는데,
물이 사방으로 튀어서 엄마가 기겁을 했거든요;;어떻게 씻어야 좋을까요?
(답) 구관조는 스스로 목욕을 하기 때문에 사람이 씻겨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씻기는 것은 구관조를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구관조 뿐만 아니라 모든 새가 마찬가지 입니다.
따라서 구관조가 들어가서 씻을 수 있는 물통을 준비하여 구관조가 들어갔을 때 가슴에 닿을 정도로 물을 담아주세요. 물이 너무 사방으로 튄다면 랩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새장을 감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황인참 시인은 이 네이버 지식인을 보고 이 시를 썼다고 한다.이와 같이 이미 아는 지식이나 사전, 혹은 길에서 들은 이야기에서 시를 출발시켜 낯설거나 놀라운 지점으로 이동시키는 기법을 즐겨 사용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