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나만의 안식처
나는 평생 공부에 대한 갈망을 품고 살아왔다. 어린 시절, 단칸방에서 부모님과 동생 넷과 함께 지내며 책 한 권을 펼칠 공간조차 없었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 내게 허락된 것은 좁은 방 한 칸과 희미한 등불뿐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불빛 아래에서 나는 꿈을 키웠다. 오직 배움만이 나를 이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 믿으며, 음비 중학교 장학생으로 선발되었고, 대학까지 이르렀다.
대학을 졸업한 후, 배를 타며 일했고, 그 월급으로 집안의 빚을 갚아나갔다. 내 해가 지나고 빚이 거의 정리되었을 때, 마음 한구석에서 다시금 공부에 대한 열망이 피어올랐다.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결국 교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교수라는 직업이 있다고 해서 여유로운 삶이 펼쳐진 것은 아니었다. 낮은 월급으로 인해 집에는 조용히 공부할 공간 하나 마련할 수 없었고, 나는 언제나 학교 연구실에서 강의 준비를 해야 했다. 늘 서재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살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 소망을 오랫동안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평생을 바쁘게 살아오다 보니 어느새 정년퇴직을 맞이하게 되었다. 연구실에 있던 책을 전부 이상 정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자녀들을 시집보내고 아내와 단둘이 아파트에 산 후, 나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서재를 마련했다. 서재 한 칸을 차곡차곡 책으로 채우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러나 책은 늘어나기만 하였다. 책장은 가득 찼고, 결국 출입문과 책상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책으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서재가 나는 너무나도 좋았다.
서재에 들어서면 비로소 나만의 세계가 펼쳐졌다. 바깥세상의 소음이 차단된 조용한 공간, 책들이 주는 안정감, 그리고 평생을 바쳐 온 배움의 흔적들. 서재는 단순한 책 보관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삶이었고, 나의 역사였으며, 나의 익숙한 안식처였다. 좁은 단칸방에서 꿈꿔왔던 공부방이 이렇게 완성된 것이다.
그런데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서재의 주인은 누구일까? 책장마다 빽빽이 꽂힌 책들이 나를 감싸고, 바닥에도 책들이 수북이 쌓여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책을 정리하려 해도 어쩐지 손이 가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모아온 이 책들이 나를 품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 책들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새 책이 서재의 주인이 되고, 나는 그 안을 떠도는 손님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이상하리만큼 편안했다. 책이 주인이든, 내가 주인이든, 이곳은 여전히 나의 안식처였다. 언제든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새로운 것들을 배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온전한 나 자신이 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나만의 서재, 나는 오늘도 그곳에서 조용한 행복을 만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