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
수력발전의 역할변동
1. |
초기 단계의 수력발전
가. |
세계의 수력발전 원시형태의 수력이용은 BC 3세기경부터 탈곡과 제분에 물레방아를 이용해 왔으며, 현재와 같은 공학기계인 Francis Turbine이 1847년 발명된 이후 1882년 미국 Wisconsin주에 있는 Appleton 발전소가 최초의 수력발전소로 건설되었으며, 용량은 DC 10촉광 180등용 1대 였다. 그후 최초의 교류발전기로 1891년 독일 Lanfen에 낙차 3m에 용량 250㎾ 3상 교류발전기 1대가 건설되어 110miles 떨어진 프랑크프루트까지 12㎸로 장거리 송전에 성공함으로써 수요지에서 원거리에 위치한 수력발전소 건설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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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우리나라의 수력발전 우리나라 최초의 수력발전소는 1905년 동양금광회사의 운산금광에서 자가용으로 청천강의 지류인 구룡강에 550㎾ Francis 수차를 설치, 가동한 것이며, 일반 영업용 전기사업의 수력발전은 1912년 12월 86㎾ 용량의 원산수력 전기(주)가 최초이다. 대규모 수력발전소를 건설한 것은 1929년 북한의 부전강수력으로 20만㎾이며, 그 후 장진강수력, 허천강수력 및 압록강 수풍수력이 개발되었다. 남한에서 수력발전은 1931년 운암수력(2,560㎾×2기)을 시작으로 1937년 보성강수력(3,120㎾), 1943년 청평수력 #1, 2Unit, 1944년 화천수력 #1, 2Unit, 1945년 칠보수력 #1Unit 등이 해방전에 개발되었으며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더불어 본격적인 수력발전소 건설이 추진되었다.
<우리나라 초기단계 수력발전소 건설내역>
년도 |
개발회사 |
발전소명 |
용량(㎾) |
수계 |
비고 |
1905 |
동양금광회사 |
운산수력 |
550 |
청천강지류 구룡천 |
최초자가용 |
1912 |
원산수력전기(주) |
원산수력 |
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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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사업용 |
1929 |
조선수력전기 |
부전강수력 |
200,000 |
부전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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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
남선수력전기 |
운암수력 |
5,120 |
섬진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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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
조선수력전기 |
장진강수력 |
334,300 |
장진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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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
보성흥업 |
보성강수력 |
3,120 |
섬진강지류 보성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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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
부령수력전기(주) |
부령천수력 |
28,640 |
두만강지류 부령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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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
허천강수력전기(주) |
허천강수력 |
354,600 |
허천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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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
압록강수력발전(주) |
수풍수력 |
735,000 |
압록강 |
중국과 공용 |
1943 |
한강수력발전(주) |
청평수력 |
39,600 |
북한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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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
한강수력발전(주) |
화천수력 |
54,000 |
북한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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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
남선전기(주) |
칠보수력 |
14,400 |
섬진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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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수력발전의 역할 변화 수력발전이 시작된 후 전력에 대한 수요는 끊임없이 높은 비율로 증가하였고 발전설비는 이에 따르지 못함으로 제한송전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가 있었다. 또한 수력발전만으로는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공급을 감당할 수 없어 화력, 원자력, 유연탄 및 복합화력 등이 계속 건설되어 발전설비는 수주화종(水主火從)에서 화주수종(火主水從)으로 바뀌었고 수력발전의 역할 또한 변화되어 왔다.
<수력발전의 역할변화 추이>
구분 |
I |
II |
III |
IV |
1931∼1960 |
1961∼1970 |
1971∼1980 |
1981∼1997 (수력) |
1979∼1997 (양수) |
건설 목적 |
기저부하 |
중간부하 |
다목적 첨두부하 |
첨두부하 다목적 탈유전원 확보 |
전기품질향상 전력계통안정 종합효율향상 |
이용률 |
60% 이상 |
30∼50% |
25% 이하 |
25% 이하 |
20% 이하 |
해당 발전소 |
운암, 보성강, 화천#1, 2, 3, 청평 #1, 2, 섬진강 #1, 괴산 |
화천#4, 춘천, 청평#3, 의암, 섬진강 #2, 팔당 |
소양강, 대청, 안동 |
충주, 합천, 주암, 임하, 강릉, 섬진강 #3, 보성강(증설) |
청평양수, 삼랑진양수, 무주양수 |
가. |
제Ⅰ기 (기저부하용) 일제시대 미곡생산을 위한 관계용수 공급목적으로 댐을 건설하고, 건설된 댐의 수량과 낙차를 이용한 발전기를 설치하기 시작하였으며, 일제시대 말기에는 한강수계 개발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력발전을 시작하는 등 전력산업 초창기에 수력발전소는 기저부하를 공급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1945년 해방당시 전력설비 구성비를 보면, 북한은 수력 1,524㎿, 화력 34㎿이고, 남한은 수력 62㎿, 화력 137㎿로 북한이 남한의 약 8배의 설비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북한의 5.14 단전(1948년) 및 6.25 전쟁으로 남한의 전력공급능력은 극도로 부족하였으며, 전쟁 중 파손된 설비복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등 전력사업 기초를 닦는 어려운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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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제Ⅱ기 (중간부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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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
제Ⅲ기 (첨두부하용) 공업화 및 도시화의 진전으로 대규모 용수공급이 필요하고 매년 반복되는 홍수피해의 경감을 위해 다목적댐 건설이 시작되었고 전력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기저부하 및 중간부하는 화력을 건설하여 담당하게 하고 주파수 조정과 첨두부하 공급을 수력에서 담당하게 되어 전력의 양적 공급능력 확보와 함께 전기품질 유지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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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
제Ⅳ기 (전천후 첨두부하용) '78년 고리원자력을 시작으로 대용량 원자력 및 유연탄화력의 건설로 양적 공급능력은 확보되었으나 전기품질 고급화 요구와 대용량 발전소의 계통 탈락시 또는 수요 급증시 순시 예비력 확보를 위한 첨두부하 전원으로 양수발전소를 건설하고 일반수력은 경제성 있는 입지의 고갈로 발전단일목적 댐의 건설은 극히 제한되었고 용수공급, 홍수조절 등 다목적 기능을 갖는 댐의 수력발전소는 설계 이용률 20% 내외를 기준하여 건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 |
첫댓글 무주발전 은 정확하게 양수발전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