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기사:
스페인독감과 천재 화가의 죽음
http://news1.kr/articles/?3785291
몇년 전에 에곤 쉴레의 미성년 소녀의 누드를 그린 작품을 올린 적이 있었습죠
이 분과 이 분 작품들은 되게 유명한데, 또 하나 유명한 것은 스페인 독감으로 28세에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아래 그림은 에곤 쉴레가 부인이 임신했을 때 태어날 자녀를 상상하며 그린 가족 자화상, <가족> 입니다.
너무 슬픈 부분은, 아기가 태어나 상상했던 단란한 가정을 이루기도 전에 스페인 독감에 휩쓸려갔다는 점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쉴레는 안정적인 수입을 가지고 중산층 여자와 결혼한 뒤 더 큰 아파트로 이사하고, 아기도 태어날 예정에 인생이 대박 잘 풀리기 시작할 시점이었습니다.
"에곤 쉴레의 대표작 중 하나.
어린아이가 있고, 그 뒤에 벌거벗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차례대로 있다.
곧 아빠가 되는 에곤은 아내의 배 속에 있는 아이를 기다리며, 곧 태어날 아이를 그림에 그려 넣었다. 그림과 같은 가족을 꾸리고 싶었다."
(기사에서 발췌)
그림 자체는 1918년 죽기 몇달 전에 그린 것으로, 뱃속의 아기가 6개월쯤 된 10월 말에 부인에게서 스페인 독감 증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상황에 대한 소개는 생략하고 제가 참조했던 기사 내용을 발췌하겠습니다(부득이하게 스크랩은 금지입니다)
(저작권 침해이니 중간중간 편집을 해서 그대로 옮기진 않았습니다만 혹 문제가 된다면 글을 삭제하겠습니다)
중간 다 자르고 핵심만 넣다보니 표현이 좀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내용이 다 팩트인지 확인은 미처 못 했지만, 대체적으로 쉴레가 남긴 일기장(일기장 내용을 실은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내용에서 참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페인 독감을 소개한 부분은 기자가 직접 작성한 것 같습니다.
일부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가 다른 데서 더 발췌했습니다.
(기사 내용 발췌)
첫 번째 독감 환자가 발생한 곳은 프랑스 주둔 미군 병영이었다.
프랑스에서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 병사들이 본국으로 귀향하면서 스페인독감은 대서양 건너 미국에 상륙,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미국 서부까지 확산, 다시 드넓은 태평양을 건넜다. 지구적 재앙이 되었다.
(다른 기사에서 보충 발췌)
사실 미국은 국민의 1/4이 독감에 걸렸을 정도로 심각. 노인보다는 젊은이들이 독감에 더 많이 걸렸다.
특히 젊은 군인들이 문제로 육군과 해군병력의 40%가 독감에 걸렸다. 사실상 전력 손실이나 (미국은) 이를 철저하게 비밀에 붙인다.
심하게 앓는 환자들이야 유럽으로 파병을 보낼 수는 없었겠지만 건강해 보이는 군인들 중에도 잠복기인 경우는 많았을 것.
그들이 유럽에 상륙하면서 독감 바이러스가 빠른 속도로 유럽 전역을, 나아가서는 전세계로 확산된다.
곧 다른 참전국가들도 비상이 걸린다. 하지만 모두 일제히 보도 통제를 해서 공식적으로는 독감 환자는 없었다.
하지만 참전하지 않은 스페인은 보도 통제가 없어 환자 발생을 보도한다. 그래서 스페인에서 첫 환자가 나타난 것처럼 보였고, 다른 나라들은 ‘스페인 독감’으로 불렀다.
(출처: 천재 화가를 죽게 한 스페인독감, 사이언스타임즈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b2%9c%ec%9e%ac-%ed%99%94%ea%b0%80%eb%a5%bc-%ec%a3%bd%ea%b2%8c-%ed%95%9c-%ec%8a%a4%ed%8e%98%ec%9d%b8%eb%8f%85%ea%b0%90/ )
첫 환자가 발생한 것은 1918년 늦봄. 주로 고령자들이 독감의 희생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스페인독감이 노약자들 사이에서 잠깐 유행하다 끝나는 것인 줄 알았다.
(중략)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에 먹장구름이 드리워졌지만 더 치명적인 것은 1918년 9월에 찾아왔다.
스페인 독감의 2차 파도가 밀어닥친 것.
1차 때와는 확연히 다른 특징이 있었다. 2차 파도는 고령자가 아닌 20~35세의 젊은 층을 강타했다는 사실.
스페인 독감이 다시 유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빈 시민들은 긴박하게 대응했다.
에곤은 아내가 아이를 갖고 있어 독감 바이러스를 피하려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
모든 약속을 취소했고, 식료품을 사는 일이 아니면 절대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쓴 채 생활했다.
그러나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다.
에디트가 먼저 걸렸다. 의사가 마스크를 쓴 채 왕진해 약을 처방했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에곤은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극진하게 간호.
(에곤 쉴레가 자기 어머니에게 쓴 편지내용)
'9일 전 에디트가 에스파냐 독감을 앓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 임신 6개월인데, 상태는 아주 절망적이며 목숨은 위태롭습니다.
저는 지금 최악의 상태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고통에 겨운 가쁜 호흡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에디트는 10월 27일 눈을 감았다.
쉴레는 검정 초크로 아내를 스케치했다. 이것이 에곤의 유작(遺作)이 되었다.
(다른 기사에서 보충 발췌)
실레는 그림의 한쪽 귀퉁이에 ‘27일 밤 10시’라고 날짜와 시각을 적은 후 꼬박 밤을 샜다. 이윽고 아침 8시가 되자 에디트는 눈을 감았다.
스페인 독감은 아내와 배 속 아이의 목숨을 가져간 걸로 모자라 실레의 목줄까지 움켜쥐었던 것.
공동묘지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실레는 자신의 몸이 갑자기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곤 바로 몸져누워야 했다.
(출처: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8794 )
<죽기 직전의 에디트 쉴레>
(출처: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8794 )
10월 30일, 이번에는 쉴레가 인플루엔자에 감염.
쉴레는 장모에게 병간호를 부탁하며 처가로 갔다. 그러나 독감에 걸린 지 하루만인 10월 31일 사망
맨 위에 링크한 기사에 따르면 위 사진은 사망 후 촬영한 에곤 쉴레의 사진이라고 합니다.
요즘처럼 확실한 위생용품도 없던 당시라 그런지 나름 조심한다고 했겠지만 열악한 당시 기술로는 대비가 아무래도 안 되었겠지요.
그리고 중요한 점이 시대가 시대인 탓인지 국제적 대유행이 진행중인 감염병에 걸렸음에도 국가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때까지는 아직 1차대전 종전 전으로, 참전국가들은 보도통제를 해서 공식적으로는 독감 환자가 없다고 할 때였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팩트 체크를 더 해볼 필요가 있어 보이긴 하는군요)
이번 사태 때 늦게 인정하는 바람에 초동조치를 손놓았던 중국보다도 더한 개막장 상황이었을 것 같군요 ㄷㄷ
솔직히 기사 내용은 어디까지가 팩트고 소설인지 구분은 안 가는데 (기사마다 내용도 조금씩 안 맞네요;;),
쉴레 이야기는 어차피 명확한 공식기록도 없고 고작 개인의 일기장을 근거로 했으니 어느 정도 걸러들어야 될 듯 합니다.
제가 발췌한 스페인 독감의 확산과정에 대한 부분도 기사마다 조금씩 모순된 부분이 보입니다.
P.S.
스페인독감 당시 각국의 대응에 대한 사실을 정리해서 별도로 글을 써보고 싶긴 한데 일단 시간이 없네요 ㅠ
너무 두서 없이 시간이 쫓기듯 글을 썼는데 죄송하군요... 시간 나는대로 수정하겠습니다
첫댓글 뭔가 아련함이 밀려옵니다 행복한 가정을 꿈꿨는데 죽음으로 점점 빨려들어가는게 안타깝네요
백년 후 2120년 인류가 보기에 지금 사태는 어떻게 평가될지 궁금해집니다 ㅎㄷㄷ
아무리해도 스페인독감의 아성은 못 깰듯요
전시상황+보도통제(국가컨트롤 부재)+열악한 의학기술(원인 바이러스가 정확히 뭔지는 2005년에나 확인됨) 공포의 3위일체가 있으니 2500~5000만씩 죽어나갈만한...
스페인 독감이라고 이름 붙은 자체가 당시 1차대전중이라 대부분의 국가가 언론통제중. 그런데 스페인은 참가 안하고 있어서 스페인에서만큼은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해서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붙었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