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양이와 동거하기 시작한지 3년이 넘었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사람 가까이 오지 않고 정 붙이기가 힘들다고? 아니다. 고양이가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것은 맞다. 같이 사는 동거인이라고 해도 고양이가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마음의 문을 열게 되면 고양이들은 마치 영혼의 교류라도 하려는듯 가깝게 다가온다. 나는 고양이와는 영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구구는 고양이다]의 주인공은 도쿄의 작고 아름다운 마을 기치조지에 사는 만화가 아사코(고이즈미 교코 분)지만 진짜 주인공은 구구라는 고양이다.
일본 순정만화계를 대표하는 오오시마 유미코의 자전적 에세이를 영화화 한 이누도 잇신 감독의 [구구는 고양이다]는, 고양이를 전면에 내세워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이누도 잇신 감독이 오오시마 유미코의 만화를 영화화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금발의 초원][메종 드 히미코]의 원작이 모두 오오시마 유미코의 만화다. 현실의 좌절감이나 무력감을 통해 인간이 성장한다는 오오시마 유미코의 주제의식에 매력적으로 공감하게 되면서 이누도 잇신 감독은 대학시절부터 그녀의 만화를 영화화 하기 시작했다.
아사코는 13년간 함께 살아온 고양이 사바를 잃게 된다. 그녀의 상심은 너무나 커서 누구도 위로를 건네지 못할 정도다. 아사코라는 캐릭터는 만화원작자인 오오시마 유미코를 닮았다. 유명 순정만화가인 그녀는 혼자 살며 만화가로서 천재적인 감수성을 지녔고 아이처럼 순수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영화 속에서 그리는 만화는 실제로 오오시마 유미코의 [8월에 태어난 아이]다. 나오미(우에노 주리 분)를 비롯한 오오시마의 3인조 문하생들(일본의 유명한 개그트리오 모라선추가 배역을 맡았다)은 집필까지 중단하고 시름에 빠진 그녀를 위로하지도 못하는데, 어느날 3개월된 아메리칸 쇼트 헤어 종의 고양이를 분양받으면서 아사코는 다시 힘을 얻기 시작한다.
아기 고양이에게 구구라는 이름을 붙여준 아사코는 공원으로 외출한 구구를 찾아 나섰다가 연하의 남자 세이지(카세 료 분)를 만나게 된다. 남자를 만난지 오래 된 아사코는 세이지에게서 가슴 두근거리는 감정의 파도를 경험하게 된다. 새롭게 집필을 시작한 작품도 순조롭게 진행되어가고 세이지와의 연애도 무리없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사코의 삶의 중심에 위치한 것은 고양이 구구다. 굿(good)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고양이 구구는 아사코에게 행복감을 주는 원천적 존재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비롯한 이누도 잇신의 모든 영화들이 그렇듯이 [구구는 고양이다]에서도 삶의 미세한 물결이 탁월하게 형성화되어 있다. 이누도 잇신은 내러티브에 모든 것을 의지하지 않는다. 그는 삶의 여백을 바라보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흐르는 공기를 포착하는데 주력한다. 이번에는 고양이가 그 중심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 그가 펼쳐놓는 이야기들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가 등장하지도 않고 전대미문의 살인마가 활개치지도 않는다.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그 어떤 이야기들보다 더 감정의 파고가 크게 몰아닥칠 수 있다.
이누도 잇신의 영화에서 공간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할머니가 끄는 마트의 카트 속에서 조제가 바라보던 거리, 그녀가 살던 집, 그리고 게이 아버지를 둔 여자와 그녀를 찾아온 남자가 서로 부딪히는 호텔 메종 드 히미코, 80세 노인 속에 살아있는 20세 젊은이의 모습을 그린 [금발의 초원]에서 주인공이 거주하던 2층 양옥은 단순히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한다. [구구는 고양이다]에서도 아사코가 살고 있는 기치조지의 거리와 집들, 공원은 등장인물과 고양이 구구 사이를 흐르는 미묘한 공기 못지 않게 부각된다. 배경이 뒷면에서 인물을 받쳐주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배경 자체가 인물들에게(이 작품에서는 고양이까지) 영향을 미친다.
결국 [구구는 고양이다]는 삶의 행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살아가는 것은 무언가를 얻고, 또 무언가를 잃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 누구나 외롭고 누구나 아사코의 곁에 있는 구구같은 고양이를 필요로 한다. 이누도 잇신 감독은 오오시마 유미코의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 삶에 있어서의 소중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밀리터리 부츠를 신고 쫄쫄이 바지에 펌 헤어를 한 이상한 모습으로 영어 대사를 하며 작품 사이 사이에 끼어드는 사람은 헤비메탈 밴드 ‘메가데스’의 전 기타리스트 마티 프리드먼이다. 그는 [구구는 고양이다]에서 죽음의 신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할이 작품에 딱 맞지는 않다. 형식적으로도 [조재...]나 [금발의 초원][메종 드 히미코]에 비해 [구구는 고양이다]는 매우 느슨하다. 그만큼 여운도 적다. 아름다움과 설레임은 있지만 깊은 충격은 모자라다. 고양이의 귀여움이 이 모든 것을 상쇄해 버리기에는 형식적 고려가 더 있었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