봰지가 조금 지나서인가
마음의 잡풀이 솟아나
잊어질까 두려워
남원 산림청 가는길에
도반 임실 오수
우천 최영록 선생집에 들여
장성 특산물 청산녹수
산소 막걸리 한박스와
안주로 발효 타워에서 만든
세심 육포를 드렸더니
땅콩 민물새우 죽순
몽땅 싸주셔서
친정에서 바리 바리
싸가지고 온 기분이었는대
글로 남겨 받고 보니
즐거움이 이어짐니다
감사 감사 감사
벗은 가끔 왕래가 있어야
오래도록 관계를 유지한다
(찬샘뉴스) 264/1007]‘산소막걸리’와 세상에 없는 육포肉脯
전주 홍지서림. 추억의 서점이다. 나는 특히 ‘서림’이란 단어가 마음에 든다. ‘새 책들로 둘러싸인 숲’이란 말이리라. 어제 오후 모처럼 전주에 올라와, 그 서점에 들러 ‘행복이 가득한 집(약칭 행가득)’ 10월호를 샀다. 책방book store하면 제일 먼저 교보문고를 떠올릴 것이고, 다음이 영풍문고일 것이다. 오울드 독자들은 종로서적을 기억할 것이지만. 나는 고등학교를 전주에서 다녔기에 ‘책방’하면 민중서관과 홍지서림을 기억한다. 책방 이름들도 적어놓고 보니 재밌다. 00冊房, 00書店. 00書林, 00文庫, 00書籍, 00書館.
십수년 전에 홍지서림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소설가 양귀자님이 인수를 하여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한다. 그분에게도 어쩌면 작가의 길을 걷게 한,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책방이었기에 그런 결단을 했으리라. 그저 한번 읽고 버리기 십상인 잡지를 산 까닭은, 이번호에 장성 축령산 도반道伴에 대한 스토리(‘듣보잡’인 발효타워 건축이야기)가 실렸다해서다. 글은 명리학자인 조용헌님이 썼다. 발효타워 이야기는 찬샘통신 148편을 참조하시압http://cafe.daum.net/jrsix/h8dk/674.
발효타워를 구경하며 연신 감탄을 하셨던 아버지께도 보여드리면 ‘아주 특출난 사람이구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다냐?’며 또 한번 놀라실 것이다. 축령산 정상에 있는, 희한한 이 건축물이 소문이 나면 구경 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을 게 틀림없고, 그 지방의 명물名物이 될 것이다. 그 옆에는 구리로 만든 ‘세심洗心빗자루碑’도 세워져 있으니, 왜 아니겠는가. 도반의 ‘큰소리’ 호언장담豪言壯談이 기가 막힌다. 발효타워의 3층 ‘작은 방’의 ‘작은 의자’에 홀로 앉아 ‘작은 창문’으로 축령산 전경을 3분만 조망眺望하면 아무리 못된 ‘인간人間’도 순식간에 숙성熟成돼 버린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실제로 그런 것같다. 나도 앉아보았는데, 앉자마자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이 어찌 선지식善知識들만의 전유물이랴? 우리같은 범부凡夫들도 성불成佛할 수 있는 것이거늘.
임실장場이 대목 뒤끝이라 한산하다. 순대국을 한그릇 먹고 있는데, 느닷없는 도반의 전화다. “우천선생, 집에 있으시오?” “장 구경하고 있는디요” “글먼 2시까지 돌아오시오. 남원에서 3시 약속이 있는디, 가는 길에 잠깐 들르겠소” 몇 달을 안봐도 늘 변함없이 '그 택(모양)'인 청담(도반의 호) 형이 툇마루에 터억허니 내려놓은 게 막걸리 한 박스와 육포 한 통. 세상에나, 이렇게나 귀한 ‘산소막걸리’를 한두 병이 아니고 20개들이 한 박스를 가져오다니? 병 디자인도 엄청 깔끔하고 세련됐다. <산소 막걸리-파란 하늘 맑은 공기>라벨에 도수는 5.2도, 부드러운 맛과 달콤한 향기에 편백숲의 맑은 공기를 더했단다. 양조장 이름까지 의미심장하다. ㈜청산녹수.
어떤 술인지 양조장을 검색해봤다(https://koko8829.tistory.com/1906). 놀라웠다. 전통양조과학기술연구소 대표인 전남대 김진만 교수가 유기농 쌀로 누룩을 빚어 만들었다. 미생물 연구가 전공인 김교수가 끝내 막걸리 제조로 전공을 바꿔 만든 ‘사미인주’ 막걸리에 이어서 출시한 걸작품이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한 ‘찾아가는 양조장’이다. 산소막걸리 한잔이 지친 하루의 휴식이 되도록 정성을 다해 빚었다는 설명도 부기되어 있다.
역시 나의 도반이다. 아버지께도 드리고 동네 어울리는 분들과 막걸리파티를 하라며 안주로 가져온 육포肉脯는 또 어떤가? 캐나다 육포가 세계 최고라 하여 먹어봤는데, 이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것을. 돼지고기 한 근을 통째로 발효타워 천장의 대나무 횃대에 걸어놓은 채 숙성을 시킨 이 육포는, 편백숲의 피톤치드 향내음이 속속들이 배어서 그럴까? 조금도 짜지 않는 최고의 술안주로, 도반이 얼마든지 잘난 체해도 부족한 명품 안주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발효 숙성시킬 생각을 했을까? 콤바인이 황금벌판을 휘젓기 시작하는 이 가을, 열 명이 먹어도 충분한 육포와 막걸리 한 상자, 도반의 통큰 선물이 고맙다.
늘 마음을 비우고 크레이티브creative한 생각으로 살기에 가능한 일일 터. 상품화를 하지 않고 ‘육포회원’을 모집하여 제공하겠다는 포부도 밝힌다. 어안이 벙벙하다. 장성군에서 개인으로 빚이 가장 많다는 그는 오늘도 당당하게 그의 길을 간다. 참, 대단한 인물이다. 불과 5분도 있지 못하고 간다고 서두르기에 냉동고를 털었다. 얼린 민물새우 몇 봉지와 죽순 한 뭉텡이 그리고 땅콩 한 봉지를 주고나서야, 동네이장님을 콜하여 산소막걸리를 사랑채 툇마루에서 해바라기하며 주거니받거니 한다. 이렇게 가을이 익어간다. 익어갔다.
발효 타워
달
첫댓글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보고싶으면 보고싶다고 있는 그대로만 이야기하고 살자.!!... 댕겨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