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수변공원
어느새 일월 넷째 주 월요일이다. 비가 올 듯 잔뜩 흐린 날씨에 영하권이 아님만도 다행이다. 지난 연말 내렸던 눈이 녹지 않은 데가 많다. 포근한 날씨에 흡족한 비가 내려야 그 눈들이 녹지 싶다. 낮은 데는 비가 올지라도 높은 산은 눈이 되어 내리거나, 응달엔 비가 와도 눈이 다 녹아내리는 데는 한계가 있지 싶다. 나는 도시락과 우산을 챙겨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길을 나섰다.
올겨울은 산길은 눈으로 얼어붙은 데가 많아 등산은 가급적 자제했다. 대신 강둑이나 갯가를 부지런히 걸었다. 때로는 들판 길도 걷고 또 걸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산을 오를 형편이 못 되니 다른 방도를 찾았다. 창원실내수영장 건너편에서 북면으로 가는 버스를 골랐다. 북면 가운데서도 명촌마을로 가는 14번을 탔다. 명촌마을은 창원에서 낙동강 최북단 강마을이다.
버스는 충혼탑에서 홈플러스까지 시내를 빙글 둘러 동정동으로 갔다. 굴현고개를 넘어 화천리로 가서 온천장에서 바로 바깥신천을 향해 나아갔다. 안신천에서 강둑 따라 곧장 가 닿은 종점이 명촌마을이었다. 명촌마을 앞은 들녘이고 북쪽은 낙동강 강둑이다. 강 건너는 부곡 학포에서 임해진으로 오르는 벼랑이었다. 그 사이 부곡 온천에서 낙동강으로 빠져나오는 작은 개울이 흐른다.
명촌마을 앞은 벼농사를 짓고 겨울엔 비닐하우스에서 특용작물을 가꾸는 들녘이다. 4대강 사업을 하면서 퍼낸 준설토를 채워 농지를 리모델링해 예전보다 지표면이 높아졌다. 이제는 침수 우려가 사라지고 물 빠짐 잘 되어 농사짓기 수월해졌지 싶다. 강둑 바깥 너른 둔치 감나무과수원은 말끔히 정리되었다. 수령이 제법 되는 단감나무는 모두 베어내고 수변공원으로 조성해 놓았다.
종점에서 강둑으로 나갔다. 건너편 벼랑 끝난 지점이 부곡 임해진(臨海津)이다. 내륙지역 지명에다 바다에 임한다는 나루라는 뜻을 붙인 특이한 곳이다. 옛적 낙동강 하구에서 수운을 따라 올라왔을 배가 있었을 터이니 바다와 만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남지에서 밀포와 봉촌을 흘러내린 낙동강은 암벽을 만나 크게 굽이쳐 흘러 곡이 진 곳에서 부곡 노리마을 앞으로 빠져나간다.
강마을 명촌 앞 둔치는 내가 하루 동안 도보여정을 시작한 기점이었다. 그곳 강변 북면수변공원부터 걸었다. 바깥신천 앞에도 생태공원을 잘 꾸며 놓았다. 4대강 사업 전 그 모래밭에선 봄에는 감자를 심고 가을엔 김장채소를 가꾸던 둔치 경작지였다. 달천계곡에서 흘러온 신천이 낙동강 본류와 만나는 곳엔 갯버들이 무성해 수해를 이룬 곳으로 평소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자전거길이 뚫리면서 본포 취수장 암벽 벼랑을 휘감아 도는 생태보도교가 생겼다. 나는 강물 위로 세운 다리를 걸어 본포나루로 갔다. 예전 본포 백사장에도 수변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봄날에 들리면 조팝나무 꽃들을 비롯한 여러 야생화들을 볼 수 있을 듯했다. 예전 강변에 ‘알 수 없는 세상’이라는 낡은 찻집이 있었는데, 묘령의 찻집 여주인은 강 건너 곡강마을로 옮겨 갔단다.
시내를 빠져나올 때부터 비는 부슬부슬했고 안개가 자욱했더랬다. 본포까지 내려오는 즈음에도 비는 간간이 흩뿌렸고 안개는 걷힐 기미가 없었다. 강 가장자리엔 오리가 떼 지어 놀았다. 나루엔 고기 잡는 거룻배가 몇 첫 보였다. 본포 근처 가곡과 상옥정은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의 조부모와 외조부모가 살던 마을이다. 그들은 해방 전후 면장과 수리조합장을 지낸 지역 유지였다.
본포수변공원 정자에서 도시락을 비우고 강물 따라 계속 걸었다. 대산정수장 부근을 지나 일동으로 갔다. 대숲 뒤엔 비를 맞고도 녹지 않은 눈이 희끗희끗했다. 옛 수산다리와 수산대교를 지나니 모산과 북부동이 나왔다. 너른 둔치엔 대산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내친김에 유등마을까지 쭉 내려갔다. 겨울비 속에 걸었던 안개 낀 둑길이었다. 비 그치고 안개 걷히면 봄은 저만치…. 13.01.21